구재이/세무사, 납세자권리연구소장Ⅰ.세무조사의 임무는 따로있다? Ⅱ. 세무조사와 형평의 문제 Ⅲ. 법과 원칙에 의한 세무조사 Ⅳ. 민주주의적 세무조사의 태동? Ⅴ. 왜 법제화인가? Ⅵ. 무엇을 담을 것인가?Ⅶ. 세무조사의 화려한 변신
세무조사는 조세제도하에서 성실한 납세의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에도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세법이 정하는 세무조사권을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이유를 비롯한 많은 다른 목적으로 흥정하듯 오·남용해 왔으며, 납세자들도 평소에는 탈세를 일삼거나 관행상 부득이한 것으로 여기다가 세무조사에 이르러서는 응분의 납세와 처벌의 감수보다는 이를 무마하려고 하였고 더욱이 그동안 탈루한 세액의 일부만을 추가납부하게 되어 오히려 이익을 보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하여 세무조사는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성실한 납세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간 과외금지, 의약분업, 물가단속, 러브호텔 단속, 재벌해체 등에도 세무조사가 등장한 것은 그만큼 세무조사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한 채 한눈을 팔았음을 의미한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도 언론사의 천문학적인 탈세혐의와는 별개로 언론개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세무조사로 기록된다면 세무조사의 순수성은 또다시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결과 부실경비 계상과 매출누락, 그리고 기업주의 변칙증여 등에 있어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하였다고 하는 것은 응당히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하여 언론사와 사주를 고발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세무행정에 있어서 조세형평성은 엄정한 법집행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국세청과 언론사 자체발표 등의 내용을 보면 금액의 다과는 있을 지언정 똑같은 매출누락과 부실경비계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고발에 있어서는 언론사별로 이를 달리하였다. 한편 그동안 일부 자영업자나 전문직종사자 등의 납세자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의도적인 매출누락과 증빙없이 경비를 계상하는 일이 수없이 밝혀졌음에도 지금껏 이들을 형사처벌하였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 언론사세무조사시 적용된 조세범처벌법상 장부파기범이나 결손금과대계상범 등의 법적용은 아마도 건국이래 처음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누구에게나 엄정하게 하여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고 고의적인 탈세에 대하여는 예외없이 형사처벌까지도 하는 형평성이라면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무거운 세금은 참을 수 있어도 불공평한 세금은 참을 수 없다는 말은 세무조사에 있어서도 좋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지만, 이처럼 지속적으로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강조된 엄정한 세무조사는 앞으로 흔들리지 않는 법적용의 신호탄이 되어야 할임은 물론이다.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터럭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동안 세무조사가 제 역할을 하지못하였던 지난날의 낮은 형평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앞으로 이번 세무조사에 있어 강조된 탈세엄벌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국세청장은 언론사의 세무조사기간 내내 이번 세무조사는 법과 원칙에 의하여 세무조사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세무조사에 있어 법과 원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현행법상으로는 조세당국이 조사를 하면서 세무조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법이란 거의 없다. 현행법상으로는 세무조사는 각 세법에 세무공무원은 업무상 필요한 경우 질문·조사를 할 수 있다는 정도의 선언적 규정만 두고있고 절차적 규정으로는 국세기본법에 지난 96년 신설된 세무조사시의 사전통지 등 납세자권리 조항만 두고 있을 뿐 세무조사의 선정·조사범위·착수·기간·조사방법·한계 및 처벌조항 등의 내용이 전혀 없어 근본적으로 법에 의한 세무조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한, 세무조사에 있어 지켜야할 원칙을 누구도 알 수 없어 원칙에 의한 세무조사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조사의 원칙이란 법적 근거를 갖추고 당사자뿐 아니라 누구나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법과 원칙이 없는 상황하에서는 조세당국의 일방적인 주장과 상황논리만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탓할 방법은 없게된다. 작금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벌이는 조세정의-언론탄압의 공방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정치적인 이슈가 되었고 자연히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세무조사는 납세자가 언론사와 사주라는 특수성만 있을 뿐임에도 예전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세무조사와 달리 세무조사의 본질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에 주목한다. 그간 많은 조세학자와 조세전문가들도 세무행정의 주된 수단인 세무조사의 적정한 집행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국민들의 성실한 납세의식을 만드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지, 부정적인 역할을 할 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세당국이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앞으로 세무조사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조세제도와 조세행정의 앞날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통해 세무조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가시화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세당국도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세무행정을 바로 세우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고 그러려면 임의적인 잣대로 세무조사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실하며 이는 조세당국의 의지와 재량에 의지하는 것보다 법령에 세무조사의 절차와 한계 등을 담고 이를 예외없이 실천하는 것이 오히려 손쉬울 것이다. 우리나라 세무조사제도는 세무조사의 방법·절차와 한계에 관한 규정을 법령에 규율하지않은 채 세무조사의 진행에 관한 일반사항만을 공무원의 업무지침인 조사사무처리규정 등 국세청훈령에 담아 이를 기준으로 세무조사 제도를 운용해 오고 있다. 이로 인하여 세무조사는 세무조사권을 법령의 제한도 없는 권능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납세자는 정당한 절차와 납세자권익에 대한 주장보다는 자신의 탈세행위의 방어에 급급해 왔다. 그간 세무조사는 ▶정치일정 등 정치적인 이유나 물가단속 등 다른 정책목표 달성을 위하여 세무조사를 강화하거나 면제하는 등 그 운용이 오·남용되는 사례가 빈번하였고 ▶조사성과를 기관·인사평가에 연계하는 등 세입실적위주의 세무조사를 강조하여왔으며 ▶ 세무조사결과의 공개의 범위를 때에 따라 임의로 정함으로써 국세기본법상 비밀유지와 정보공개에 관한 국민의 기본권이 빈번히 충돌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세법에 의한 세무조사와 조세범처벌절차법에 의한 범칙조사를 혼용하여 법적 근거가 없는 특별조사를 빈번히 실시하여 조사는 범칙조사의 형태로, 결과처리는 세무조사와 같이 운용하는 등 조세인권 보장차원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이 때문에 납세자의 성실한 납세의무의 이행을 담보하고 탈세방지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여야 할 세무조사가 납세자의 권리와 정당한 조사권이 보호되지 못한 채 과세당국과 납세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도로 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법령상 세무조사는 각세법의 보칙에 질문·조사의 형태로 획일적인 내용을 담고있고 국세기본법에 세무조사시의 납세자의 권리를 규정하고있기는 하나 강제적이 없고 많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세법의 규정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어 법의 적정절차와 납세자권리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되지못하고 있다. 미국은 내국세입법(IRC)에, 독일은 조세기본법(AO)에, 프랑스는 조세절차법에 세무조사의 절차 등 상세한 내용을 법으로 정하여 운용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세무조사의 법제화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일단 세무조사의 법제화에 있어서는 외국의 사례 연구와 그간의 세무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집행에 있어서 조세당국과 납세자의 고통이 요구되는 것은 가능한 한 자세히 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각 세법의 보칙의 세무조사관련내용을 통합하여 국세에 관한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사항을 담고있는 국세기본법에 담아야할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 과세당국의 세무조사권과 납세자의 권리보호권의 유보를 선언하도록 하고 ▶세무조사권 남용의 금지, 납세자의 성실성추정의 원칙, 조사비례의 원칙, 납세자 권익보호의 원칙 등 세무조사시 전제되어야 하는 기본원칙을 천명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엄연히 가장 큰 조세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각 세법의 보칙에 초라히 숨겨져 납세자에게 감추어져왔던 세무조사에 관한 내용을 법체계상으로도 제대로 담아내어 납세자의 눈에 쉽게 들어오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사의 방법은 서면조사와 실지조사로만 구분하도록 하여 조세범칙조사와 세무조사를 혼용하는 특별조사를 폐지하여 행정조사임에도 납세자의 조세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세무조사대상의 선정방법은 납세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유가 있어야 하고 원칙적으로 이를 공개하도록 하며 ▶조사의 실효를 위하여 필요한 금융거래조사 등 정당한 조사기능은 강화될 수 있도록 하고 세무조사로 인한 납세자의 불편의 최소화를 위해 조사기간과 대상기간을 임의로 조정할 수 없도록 규정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 사전통지기간의 충분한 보장과 납득할 만한 조사사유의 통지가 필요하고 부당한 세무조사 중지명령 제도를 제도화하여야 하며 ▶1회조사의 원칙에 근거한 중복조사의 금지는 더욱 강조되어야 하고 현재 제한없는 조사연장은 객관적인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1회에 한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정치적 목적으로부터의 독립 등 다른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세무조사를 금지하도록 하고 ▶ 법령에 위반되어 위법·부당히 집행된 세무조사의 효력을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세무조사의 법제화이후 실효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아울러, ▶ 논란이 되고 있는 세무조사결과의 공개와 관련하여 현행 비밀유지의 규정은 성실납세정보(신고자료)에만 국한하고 조사결과 탈세사실이나 규모는 알권리 충족과 성실납세풍토 조성을 위해 불복절차가 완료되어 조세탈루사실이 확정되는 경우 세무조사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세무조사의 착수나 진행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하여야 할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 1975년 대규모의 세무조사이후 세무조사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조세제도에 있어 법의 적정절차의 보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자들과 정부, 입법당국의 6년간의 활발한 논의끝에 1981년 조세절차법이라는 조세에 관한 행정절차법을 탄생시켰다. 이번 언론사세무조사는 탈세에 대한 경각심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명망있는 조세학자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세무조사의 공정성확보 문제를 공론화하는 공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우리도 세무조사 제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논의를 통하여 개선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조세당국도 정당한 조사권을 제대로 집행하여 세무조사가 제 기능을 회복하고 납세자도 납세자권리의 사각지대로 여겼던 세무조사에 있어서 그들이 가져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도록 세무조사가 바로 설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