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경제를 막기 위한 경기부양대책의 일환으로 꾸준히 논의되어 오던 감세정책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계기로 구체화되고 있다. 중산층 및 서민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들의 소득세부담을 10%정도 낮추어 주기로 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계층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고, 그 결과 중산층이 얇아졌다는 지적이 있고 보면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조치들은 오히려 때늦은 감마저 들 수도 있다. 또한 금년 들어 근로소득자들의 소득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치솟은 물가에다 세금, 의료보험금 등 각종 부담금의 인상을 감안하면 근로자들이 느끼는 체감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 나섰지만 경기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일본발 9월 금융위기설이 나돌고 있고 2/4분기 경제성장률이 외환위기 직후였던 98년 4/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후 가장 낮은 2.7%로 떨어졌다는 점도 감세정책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한 몫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세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세율에 비해 과표현실화 수준은 지나치게 낮아 광범위한 조세저항 및 탈세가 조장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징세기술을 비롯한 세무행정이 선진화되고 특히 작년에 신용카드 사용의 확산으로 과표포착율이 상당 폭 현실화되었다. 여기에다 부정확한 세수추계 문제마저 겹쳐 지난 회계연도에서 정부가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이 일반회계 기준으로 4조원을 상회하고 있다. 세계잉여금이 늘어난 것은 증권거래세가 당초 예상의 3배에 달하는 등 예상외의 요인도 있었지만 무턱대고 올려 잡는 세수추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적지않은 세계잉여금과 극도로 침체되고 있는 경기 분위기가 감세의 명분이 되면서 이래저래 감세정책이 경기부양의 마지막 카드로 대두되고 있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국가간의 조세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감세정책을 부추기고 있다. 자본이동이 자유화됨에 따라 투자유치를 위한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투자유치의 수단으로 조세인하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인데 최근들어 세계 각국은 자국의 기업을 붙잡아 두고, 다른 나라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고 소득세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닌 상황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1986년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의 혁명적 조세정책 전환이 있었고 이는 지난 10년간 경기호황의 밑거름이 되었다. 부시정부도 이미 향후 10년 동안 1조6천억달러의 감세안을 마련하여 시행에 들어갔고 일본과 유럽국가들도 적극적인 감세정책을 추진 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인 경기둔화와 더불어 세계 각국 경제의 공통 주제가 된 감세정책을 우리정부도 시행하여 기업의욕을 높여주고 경기회복을 꾀한다는 차원에서 감세정책은 명분과 이유 모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감세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상황인지 묻고싶다. 우선 무엇보다 재정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통합재정적자가 GDP의 20%수준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미진한 금융조정과정에서 예상되는 추가적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 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연금재정의 부실화 가능성, 그리고 정부가 약속한 막대한 사회복지지출 수요 등을 감안하면 지금은 감세보다는 국고를 확충해야 할 시점이다. 결국 재정지출 수요를 가중하는 요인들을 고려해 본다면 감세정책을 단행하고도 2003년의 균형재정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감세정책은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감세정책의 일환으로 세율인하들을 많이 논의하는데 우리나라의 세율 그 자체는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세율을 낮추기 보다는 과세표준을 산정하는데 있어 합리적이지 못한 각종의 규정을 고쳐나가는 것이 국민들의 납세협력비용을 줄이고 기업이 기업하려는 의지를 북돋아 주는데 더 효과적이다. 내수진작을 위한 일시적인 조치라고 하더라도 일단 감세조치를 취하고 나면, 이후에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세율 인상이 필요한 경우에도 담세자들의 저항으로 인하여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세금을 낮춘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소비와 투자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그 효과에도 상당한 시차가 있다. 미국의 경우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의 비중이 커 소득세를 낮추면 가처분소득이 늘어나 곧바로 소비증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세율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에 큰 효과를 얻기 힘들다. 우리나라 세제는 매년 소규모나마 개정에 개정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경쟁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세율체계가 복잡한 편이며 최고세율 등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세제 개혁에 대한 관심이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한 정책선택과정에서 후순위로 간주되었으며, 오히려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한시적인 세제정비로 조세제도의 개혁은 후퇴한 측면이 있다. 여전히 간접세의 비중이 높고 근로소득세제도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추세와는 거리가 멀다. 중장기 세제운용의 기본방향은 세원을 넓히고 세율을 낮추는 것이며 보다 근본적으로 조세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건전재정을 확립하는 것이다.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중장기 세제운용의 목표와는 상치되는 점이 많다. 현재의 경기침체가 해외적 요인에 기인하는바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적으로는 가계와 기업의 미래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감세정책이 과연 국내경기를 진작하는 효과를 어느정도 발휘할지도 의문이다. 이번 감세논쟁이 국가경제의 장래 비전에 입각하여 지식기반 경제를 앞당기는 차원에서 세제개혁을 중장기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