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제개편안 발표를 보며 - 국민은 더 이상 우민(愚民)이 아니다 - 河昇秀/변호사 1. 이번 세제개편안을 보면서 드는 단상(斷想) 재정경제부는 지난 9월 3일 내년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그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종합소득세율을 현행 10∼40% 수준에서 9∼36%로 인하하고, 근로소득공제를 확대하며, 양도소득세율 체계를 종합소득세율에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필자의 머리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세제개편안 자체를 뜯어보기 전에, 필자가 품었던 생각부터 늘어놓아 보고자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지도 이제 3년 반이 지나갔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 IMF이후 심화되고 있는 소득불균형과 실업문제, 사회 안전망 부재에 대한 비전으로 이른바 생산적 복지라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을 확대 실시하면서 자영자 소득파악을 중점과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국세청은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여, 지역 담당제를 폐지하고 기능별 조직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리고 재정경제부도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를 폐지하고, 신용카드 복권제도,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하여 자영사업자의 과표 양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조세정책을 보면, 도대체 이 정부가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중산ㆍ서민층의 세부담 경감을 내세우다가도, 정작 나오는 정책을 보면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소득세 경감조치가 나온다. 그리고 국가재정의 건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때아닌 감세는 왜 하는가? 더욱 모순된 것은 재정경제부 스스로 감세가 경기활성화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소득세 경감조치가 단기적인 경기부양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고 하면서, 왜 고소득층의 세금은 경감하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조세정책과 관련해서 정부가 그 동안 보여준 대표적인 행태가 드러난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말의 성찬과 실질적인 정책효과의 괴리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책입안자가 국민들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열려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정책입안자의 편의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려 한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앵무새처럼 보도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현실이었다. 누구에게나 좋은 조세정책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선전을 한다면 그것은 허상이다. 모든 세금을 내린다면, 결국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 세대의 세금을 경감하다 보면, 미래세대에게 무거운 국가채무를 넘겨주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조세정책이 달성할 수 있는 정책목표란 것은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정확하고 균형있는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책입안자들은 공청회와 같은 형식적인 의견수렴절차만 거치면 된다는 편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형식절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린 사고와 실질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담보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비판까지도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못하다면, 그 정부조직은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것이다. 2. 동전 뒤집어 보기 - 단순한 진실 이번 세제개편안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종합소득세율 인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그것은 한마디로 "고소득 계층이 세금 많이 내고 있으니 깍아주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단순한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고자 하는가? 차라리 "정부는 이번에 고소득계층을 집중적으로 배려해서 종합소득세율을 인하하고자 한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안되는가? 이번 재정경제부 세제개편안 발표내용을 보면, 국민들을 우민(愚民)으로 여긴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발표내용을 보면, 봉급생활자 1인당 평균 경감액이 22만원, 평균 15% 경감, 자영사업자 1인당 평균 37만원 경감, 평균 12% 경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세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누진세율 체계를 취하고 있는 소득세제에서 평균 경감액이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느 계층에게 얼마의 이익의 돌아가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보면, 진실은 단순하다. 전체 근로자의 46%에 해당하는 면세점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근로자에게는 0원의 혜택이 돌아가고, 연봉 1,80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근로자에게는 연간 6만원의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분명히 평균 22만원이란 말이나 평균 15% 경감이란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연봉 2억원인 사람에게는 578만원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다. 578만원이면 아무리 연봉이 2억원인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적지 않은 돈일 것이다. 그렇다면 재정경제부는 이렇게 국민에게 발표해야 한다. "이번에 종합소득세율을 인하하고자 하는데, 이 조치에 의해 전체 근로자중 혜택을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은 54%에 불과하고, 그중에서 실제 생활에 보탬이 될 만큼 세경감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더 적다. 주로 고소득계층이 이익을 보게 된다"라고 말이다. 그런 다음 재정경제부는 국민들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정책에 동의하느냐고. 그리고 특히 약간의 혜택을 받는 계층(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는 없지만, 연봉 2,000만원이 안되는 사람들이라고 하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 세금 7-8만원이 줄어드는데, 고소득계층은 연간 수백만원의 세금이 줄어든다. 당신은 이런 정책에 동의하느냐"고. 만약 이 계층이 "차라리 내가 세금을 지금처럼 낼 테니 그냥 고소득계층에게 세금 수백만원씩 더 걷어서 국가재정에 보탬이 되게 하라"고 판단한다면, 국민다수는 종합소득세율인하에 반대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재정경제부의 정책은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재정경제부는 평균 몇 % 경감, 평균 몇만원 경감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는지도 모른다. 재정경제부의 발표내용을 보면,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재정경제부가 보도자료로 뿌린 내용중에서 아래의 표를 보자. |
[표1 : 급여계층별 세부담경감(소득세율 인하 효과 포함)]
단위: 천원
┌────┬────┬─────────────┐
│ │ │ 개정안 │
│연간급여│현행세액├───┬───┬─────┤
│ │ │세액 │경감액│경감률(%) │
├────┼────┼───┼───┼─────┤
│1,800 │18 │12 │6 │33.3 │
├────┼────┼───┼───┼─────┤
│2,400 │52 │37 │15 │28.8 │
├────┼────┼───┼───┼─────┤
│3,600 │216 │186 │30 │13.9 │
├────┼────┼───┼───┼─────┤
│4,800 │426 │375 │51 │12.0 │
├────┼────┼───┼───┼─────┤
│6,000 │654 │576 │78 │11.9 │
├────┼────┼───┼───┼─────┤
│10,000 │1,770 │1,574 │196 │11.1 │
├────┼────┼───┼───┼─────┤
│20,000 │5,467 │4,889 │578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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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재정경제부 표를 보면, 급여가 낮은 사람일수록 경감률이 높고, 급여가 높은 사람일수록 경감률이 낮은 것으로 나와 있다. 마치 급여가 낮은 사람이 보는 혜택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금을 얼마 내지 않던 사람에게 경감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연간 급여가 1,800만원인 사람이 소득세를 18만원 내다가 12만원 내게 되어서 6만원의 세부담이 경감된 것이 그 사람의 소비나 저축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재정경제부가 제시한 경감률이란 것은 사실을 호도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조치로 인해서 계층별로 세후소득(가처분 소득)이 얼마나 증가하는가이다. 위의 표를 경제적으로 유의미하게 재구성해 보면 아래와 같다. |
[표2 : 소득계층별 세후소득 증가효과] (단위 : 만원, %)
┌──────┬────────────┬────────┐
│연간급여(A) │이번 조치로 인한 세액 경│급여대비 세후소 │
│ │감액(세후소득 증가액, B)│득 증가율(B/A) │
├──────┼────────────┼────────┤
│ 1,800 │ 6 │0.3% │
├──────┼────────────┼────────┤
│ 2,400 │ 15 │0.63% │
├──────┼────────────┼────────┤
│ 3,600 │ 30 │0.83% │
├──────┼────────────┼────────┤
│ 4,800 │ 51 │1.1% │
├──────┼────────────┼────────┤
│ 6,000 │ 78 │1.3% │
├──────┼────────────┼────────┤
│10,000 │196 │1.96% │
├──────┼────────────┼────────┤
│20,000 │578 │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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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를 보면 드러나듯이, 이번 조치로 인한 세액경감액(세후소득의 증가액)은 연간 급여가 높을수록 급증하고 있다. 또한 이번 조치로 인한 세액 경감액이 연간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율, 즉 세후소득 증가율을 보더라도, 연간 급여 1,800만원에 해당하는 근로소득자는 0.3%에 불과한데, 연간 급여 2억원에 해당하는 근로소득자는 2.89%의 세후소득 증가혜택을 받게 된다. 이것은 이번 조치가 소득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조치가 중산층.서민층의 세부담 경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표2는 표1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조치가 계층별 세후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것은 표2의 비율이다. 그렇다면, 왜 재정경제부는 학문적, 실제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경감률이라는 것만 보여주었을까?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 보면, 재정경제부는 이번 조치가 미치는 경제적 효과에 관해 왜곡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3. 소득세 경감조치의 부당성 또 한가지 지적하자면, 재정경제부는 외국의 소득세율 인하 동향을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소득세율이 외국에 비해 결코 높은 것은 아니다. 아래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할 주민세까지 포함한 최고세율이 44%로, 미국의 45%, 일본의 50%, 프랑스의 61.6%, 독일의 51.2%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재정경제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미국 BUSH행정부의 감세정책은 재정흑자기조 하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에는 오히려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우리 현실에서는 감세정책이 맞지 않다. 또한 일본이 90년대에 실시한 감세정책도 경기부양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
[표3: 각국의 소득세율 비교] (단위 : %)
┌───────────┬──┬───┬──┬──┬──┬──┐
│ │한국│프랑스│독일│일본│미국│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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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세 포함시 최고세율│44 │61.6 │51.2│50 │45 │40 │
└───────────┴──┴───┴──┴──┴──┴──┘
자료 : 재정경제부
재정경제부는 소득세 경감조치의 근거로 자영사업자의 과표양성화가 진행되고 있고, 최근 성과급제 확산으로 인해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자영사업자의 과표양성화는 이제서야 시작되고 있는 것이고, 그 효과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과표양성화에 따른 세부담은 기존의 탈세이익이 줄어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존에 행해지던 탈세가 억제됨으로 인해 고소득 자영사업자의 세부담이 증가한다고 해서 소득세 부담을 경감시켜줄 만큼, 탈세를 해 오던 사업자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이 과연 급증했는지도 따져볼 문제이다. 얼마전에 2000년도에 근로소득세가 56% 초과징수되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재정경제부는 해명자료를 냈다. 그 내용을 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
[표4] 최근 5년간 세수실적 (단위 : 억원, %)
┌─────┬────┬─────┬────┬────┬────┐
│ │ 96 │ 97 │ 98 │ 99 │ 00 │
├─────┼────┼─────┼────┼────┼────┤
│근로소득세│59,484 │53,229 │48,084 │49,382 │65,188 │
│(증가율) │(18.9%) │(△10.5%) │(△9.7%)│(2.7%) │(32.0%) │
├─────┼────┼─────┼────┼────┼────┤
│총국세 │649,602 │699,277 │677,977 │756,580 │929,347 │
└─────┴────┴─────┴────┴────┴────┘
위의 표를 보면, 실제로 2000년도의 근로소득세수 65,188억원은 1996년도의 59,484억원에 비해 5,704억원이 증가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97,98,99년도에 외환위기를 전후한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하고 임금수준이 하향조정됨에 따라 근로소득세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수의 추이로 본다면, 지금의 근로소득세 세수 증가는 1996년과 비교해 보면, 급증했다기 보다는 과거 수준을 회복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다른 국세는 43.1% 증가하는 동안에 근로소득세는 오히려 9.6% 증가된 것에 불과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는 경기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그동안 근로소득세에 대해 몇차례의 경감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소득세 또는 근로소득세가 전체 국세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소득계층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소득세 경감조치는 국가재정만 악화시키고, 소득불균형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1조 7,000억원이 넘는 세금경감효과는 고소득층에게 집중된다. 이것은 국가 세수의 감소분이 중·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에게 배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이 갈수록 쌓이고 있는 국가채무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서민의 살림을 고려할 때에, 현 시점에서 이런 정책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4. 천편일률적인 언론보도와 비판의 상실을 보며 매년 세제개편안에 대한 신문기사와 방송보도를 보면, 절망감을 느낀다. 어떻게 그렇게 신문이나 방송마다 보도되는 내용이 똑같을 수가 있을까? 재정경제부가 배포하는 자료를 요약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인가? 재정경제부의 논리가 맞는지, 재정경제부가 제시하는 수치에 함정은 없는지를 살펴보고, 검토한 기사를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가망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중요한 정책에 대해 이해를 하고 의견을 표명할 수 있을 때 실현된다. 그리고 국민들이 중요한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편향된 정보를 언론에 뿌리고, 언론은 그것을 요약해서 보도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조세정책과 관련해서는 민주주의를 논할 수없게 될 것이다. 제발 이번 발표를 보고,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점 이하의 근로소득자들이 자신의 세금이 줄어드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면 정부는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언론도 국민기만의 조연자들일 수밖에 없다. 일방통행식의 정보전달이 아닌 다양한 정보와 주장이 전달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