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한국조세연구원 일반적으로 조세정책을 평가할 때 많이 사용되는 원칙으로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들수 있다. 대부분의 정책수립단계에서 이러한 원칙들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많은 논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조세정책을 입안할때에는 이러한 원칙들에 대한 평가에 앞서 조세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는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잃어버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투명성을 확보할 경우에는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어려운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합리적인 조세정책의 수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목표는 조세정책의 투명성 확보이다. 투명하지 못한 정책기반에서는 어떠한 정책목표도 달성하지 없으며, 납세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할 수 없다. 그래서 투명성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세정책의 SOC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선결과제들로서 다음 네가지를 제시한다. 1. 소규모사업자를 위한 부가가치세제 개편 소규모사업자를 위한 납세협력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특례과세제도는 탈세 및 세무부조리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여 사회적 편익보다 비용이 높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소득세제의 선행세목으로 부가가치세제가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 특례과세제도는 탈세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악용되는 폐단을 가지고 있다. 특례과세제도의 기본적인 개편방향은 부가가치세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세사업자를 위한 제도로 시행되어야 한다. 먼저 간이과세 대상자인 영세사업자의 범위를 대폭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부가가치세에서 규정하고 있는 영세사업자의 구분은 연간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세면세자, 간이과세자로 나누고 있다. 부가가치세의 근간은 일반과세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영세사업자를 위한 제도는 가장 단순하게 처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2000년 6월 이전에는 소규모사업자의 범위가 간이과세 및 과세특례로 나뉘어 운영하였으나, 과세특례제도를 폐지하고 간이과세로 개편하였다. 이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지만, 특례과세가 적용되는 대상범위를 점차로 줄이는 후속적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현행 간이과세 대상자 수를 점차로 줄여 일반과세자가 부가가치세제의 대다수가 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부가가치세 특례과세제도의 개편방향은 일반과세를 중심으로 정착시키고, 영세사업자에 대한 제도를 단순하게 하고, 영세사업자의 적용범위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사업자를 위한 간이과세제도를 일시에 폐지할 경우 현실적으로 조세저항이 높아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는 정책으로 현행 기준금액인 연간매출액 4,800만원을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 2. 조세정보의 공개 정책수단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이 투명하게 파악이 되어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세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가지 조세개혁과 관련한 제안들은 투명한 정책과정 및 결과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세정책의 투명성 제고는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조세정책의 투명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모든 정보가 조세정책 관련 부서에서 축적 되어야 한다. 납세자에 대한 정보가 세무당국에서 모두 축적하고 있어야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른 납세자의 행위변화를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주어진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축적된 자료는 모두 납세자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는 정확한 실상을 모두 공개함으로써 납세자들의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지금처럼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조세정책의 실상을 공개함으로써 오는 저항을 회피하기 위해 정보를 숨기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세정책에 대한 납세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은 현실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실상을 공개함으로써 조세정책에 대한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납세자들이 조세정보를 구하기가 쉬워야 한다. 필요한 조세정보에 대한 납세자들의 접근을 쉽게 하는 정보망을 구축하여야 한다. 3. 과학적 정책수립을 위한 지적 인프라 구축 조세정책은 납세자들에게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조세정책의 개편은 정확한 자료를 사용한 효과분석을 토대로 여러 가지 가치판단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세정책이 개편될 때마다 이에 대한 실증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실증분석을 토대로 정책제안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요즈음에도 1986년의 조세개편에 대한 실증분석이 활발하게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연구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시행된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기 보다는 실증분석이 뒤따르지 않은 미래의 정책제안에 대한 연구의 가치가 높은 경향이 있다. 과거의 분석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므로, 높은 연구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반면, 미래의 단순한 정책제안은 규범적인 접근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구비용이 낮은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실증분석보다는 미래에 대한 정책제안에 대한 연구결과의 가격이 휠씬 높은 경향이 있으므로, 구체적 분석이 없는 정책제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조세정책이 구체적인 실증분석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정책제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계의 연구와 정책입안자들의 직관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조세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학계에서는 규범적인 정책제안보다는 구체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연구에 보다 학문적 가치를 두는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4. 세무조사에 대한 납세자들의 신뢰회복 세법에서 규정된 원칙에 따라 납세자의 성실납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조세행정이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을 개별적 혹은 여러 가지 정책조합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조세행정의 기본방향은 신고납부제도를 바탕으로 자발적인 납세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조세행정이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실제소득을 정확히 신고하게 하려면 정부와 신고자가 대칭적인 정보를 가져야 한다. 즉 정부가 신고자의 실제소득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신고자는 정부가 성실도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정보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 이에 따라 신고자는 본인이 불성실 신고를 하게 되면 세무조사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실신고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신고납부제도하에서 납세자들에게 개인의 윤리와 도덕만을 강조함으로써 성실신고로 유도할 수는 없다. 제도적 장치 없이 개인의 윤리와 도덕만을 강조하면 신고납부제도는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신고납부제도하에서 납세자의 성실신고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납세자가 성실신고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높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즉 불성실 신고를 할 경우 세무조사를 받을 확률이 높게 하고 불성실 신고자로 확정되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부담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불성실 신고로 인한 기대손실이 기대이익보다 훨씬 높게 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조세부과 제척기간도 대폭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는 납세자로부터 세무조사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세무조사는 납세자들의 자발적인 납세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므로, 세무조사라는 정책수단이 정당하게 집행되고 평가될 수 있는 환경조성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납세자들의 세무조사에 대한 불신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 때부터 행해왔던 세무행정을 통해 축적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세정당국자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어떻게 하면 세무조사에 대한 납세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가이다. 여기서 세무당국과 납세자들간에 정보의 괴리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세무당국입장에서는 1999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세행정개혁을 통해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효과도 매우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무조사도 전산정보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세무조사를 투명하게 과학적으로 개혁하라고 주문하면 답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세무조사의 전 과정을 납세자들에게 모두 보여줄 수도 없는 정책수단의 한계가 있어 세무당국으로는 매우 곤욕스러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무당국이 실제로 세무조사를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무당국이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세무조사를 한다는 믿음을 납세자들에게 어떻게 주는가 하는 것이다. 세무당국의 정책적 고민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 납세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막연하게 세무조사는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아무리 홍보해도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세무당국에서도 세무조사의 투명성과 과학성을 납세자들에게 믿게 할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