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대한민국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각자의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도록 규정하여 과세의 보편성에 입각한 「국민개세주의」정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성실하고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지를 자문해볼 때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스스로가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인지? 납세의식은 조세에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 및 가치관을 나타내며 국민의 납세행태의 근저를 형성한다. 납세의식은 단 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을 거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며, 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1) 조세의 적정성, 공평성 및 편의성, 2) 공공재에 대한 신용, 3) 사회적 투명성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왕조체제의 불평등한 계급사회를 거치면서 세금을 형평성에 맞게 부과하거나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국민이 원하는 공공재를 충분하게 공급할 필요성이 없었으며,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는 국가는 국민의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국가가 요구하는 세금은 가능한 한 회피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의식이 팽배하였다. 해방이후에는 정부주도로 성장위주의 정책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조세정책 입안 시 국민의 의사가 충분하게 반영되지 않았고, 징수과정에서도 납세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또 거래관행이 투명하지 못하여 신뢰사회가 구축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요소를 감안할 때, 우리 국민의 납세의식은 선진국에 비하여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세정책은 세금을 부담하는 납세자의 납세의식을 바탕으로 세워져야 하나, 지금까지는 이와는 무관하게 수립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의 납세의식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우리 나라 조세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전국의 30대 이상, 1045명의 납세자를 대상으로 납세의식을 전화설문 조사하였다. 첫째, 조세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understanding)를 파악하기 위하여 "세금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납세자들의 약 63.5%가 자기가 납부하는 세금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응답하여 우리 국민의 조세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에 대한 이해도에 어떤 매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세금에 관한 의견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TV, 신문, 인터넷 등의 대중매체(52.2%)"와 "동종업종이나 비슷한 여건에 있는 사람(26.1%)"이 나왔다. 둘째, 국민의 조세부담에 대한 인식(perception)을 알아보기 위하여, "소득의 몇 %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후 이 결과를 실제 조세부담률과 비교한 결과, 많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조세부담감이 실제 조세부담률보다 과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천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근로소득자에 비하여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세부담을 더 과중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납세순응도(willingness)를 알아보기 위하여 "어떤 마음으로 세금을 납부하십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세금을 기꺼이 낸다는 납세자의 비중은 약 35%에 불과하였다. 이를 계층별로 분석한 결과 연령이 낮을수록,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납세순응도가 낮게 나타났다. 세금납부를 꺼리는 집단에 대하여 "세금내기가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를 질문한 결과, 성실한 납세자가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분위기(38.7%), 세금이 제대로 쓰여지지 않아서(33.4%), 불공평한 세금 때문에(26.8%를 차지하였다. 넷째, 세무보고에 있어서 정직성(honesty)알아보기 위하여 "세금을 정직하게 신고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약 80.6%가 긍정적으로 응답하여, 납세자들이 실제 행동과는 달리 세금을 정직하게 신고하는 것에 대하여 규범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납세기여에 대한 인정도(credit to contribution)를 파악하기 위하여 "고액의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25.8%)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중이 "사회에 기여도가 큰 사람(18.9%)"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중보다 높게 나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여 부를 축적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한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하나, 설문조사 결과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부의 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도가 낮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의 5가지 측면에서 우리 나라 국민의 납세의식을 파악한 결과, 우리가 예상한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의 납세의식은 아직까지 낮은 수준임을 알 수가 있었다. 우리 국민이 스스로의 납세의식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아보고자 "우리 국민의 납세의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추가적으로 질문한 결과 약 38.7%가 우리 국민의 납세의식이 낮은 편이다라고 평가하여 위의 결과를 재확인 시켜주었다.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몇 가지 정책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우리 국민의 납세의식은 아직 낮은 수준으로 이를 함양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를 위하여 우선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단계에서 조세공평주의의 원칙에 의하여 각자의 능력에 맞게 공평하고 적정하게 부과되고, 징수과정에서도 납세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거두어들인 세금을 국방, 치안, 교육, 행정 등의 공공재에 국민의 선호도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다고 믿게 해야하며, 우리 사회가 투명하게되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구축되면 국민의 납세의식을 자연스럽게 고양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노력이 아니라 정부, 기업, 납세자 모두의 일치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조세제도를 적정하고 공평하게 설계하고, 국세행정을 투명하고 납세자 편의위주로 집행해야 하고, 거두어들인 세금을 납세자들의 기호에 맞게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기업은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창출하도록 해야 하며,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국민들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각자에게 부과된 납세의 의무를 수행함으로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속적인 세제 및 세정개혁으로 조세정의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그간의 국세행정 개혁의 결과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설문조사 결과 국민들은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국세행정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과세당국은 오늘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하며, 경제·조세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세행정 개혁의 내용도 병행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근거과세의 인프라 확충을 통한 세부담의 형평성제고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셋째, 납세의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홍보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사결과 세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납세자가 납세순응도도 높았으며, 납세순응도가 높은 국민이 성실납부행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예산처가 미국 CFI그룹과 한국생산성본부와 공동으로 개발한 행정품질지표의 청렴도지수를 국세청에 적용한 결과, 최근 세무서를 접촉한 경험이 없는 국민의 경우 국세청의 청렴도를 47점으로 평가한 반면, 최근 세무서를 접촉한 경험이 있는 국민은 국세청의 청렴도를 79점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납세의식은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납세자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국세행정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납세자들에게 과세당국의 노력과 성과를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넷째, 납세의식을 제고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초등학교부터 조세의 기능과 역할, 납세의무 등 세금관련 내용을 정규교과과정에 포함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설문조사 결과, 학력이 높을 수록, 젊은 층일수록 납세의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을 우려할 만한 사실이다. 특히, 미래의 납세자인 젊은 층의 납세 순응도가 저조하고 성실납세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인 사실은 장차 우리사회의 조세정의 구현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청소년들에게 세금에 대한 의식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