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욱/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Ⅰ. 서론 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외차입에 의존한 부실투자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외환위기 극복과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인식이 많이 변화된 것 같다. 특히, 최근에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가 새로운 정책비전으로 등장한 것을 보면, 지난 수년간 우리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의 이러한 인식 전환에 앞서, 많은 나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인 직접투자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고 이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지식의 파급효과, 경쟁력의 강화 등 외국인 직접투자의 긍정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다. 이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들이 바람직한 정책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계적 추세가 되어 버렸다. 각국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검토하거나 시행하였으며, 그 중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조세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조세지원을 확대한 바 있다. 금년 초에는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 유치가 새로운 정책과제로 등장하면서, 산자부에서 이를 위한 세제지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지난 3월에 주한미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 유치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율을 대폭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비록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그와 관련된 조세정책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Ⅱ. 다국적 기업에 대한 조세지원의 한계 우선 외국인 투자에 대한 조세지원의 효과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살펴보면, 이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연구 중 다수는 조세지원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최근 아일랜드의 외국인 투자유치 성공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조세제도가 외국인 투자유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먼저 조세지원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견해를 지지할 수 있는 경우들을 살펴보자. 조세 외의 다른 요인으로 인해 투자가 제한되는 경우에는 조세지원이 효과가 없을 것이 비교적 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에 대한 조세지원이 투자자에 대한 실질적 세부담 경감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 국가들이 해외에서 발생한 자국기업의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하는 거주지국 과세원칙(residence principle)을 적용하되, 해외에서 납부한 세액에 대해서는 공제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조세제도가 나름대로 중요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다국적기업의 투자행태는 매우 복잡하며, 하나의 단순화된 틀로 설명하기 어렵다. 다국적기업이 절세 및 탈세를 할 수 있는 방법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조세제도가 이들의 투자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가장 간단한 에로 투자소득이 투자자의 거주지국으로 전액 과실송금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거주지국 과세원칙이 제대로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원천지국에서의 조세는 기업의 실제 세부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조세가 모든 종류의 외국인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특정한 형태의 외국인투자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의 본사 또는 지역본부 위치의 결정은 비교적 조세에 의해 영향을 받기 쉬운 투자에 해당될 것이다. 다국적기업은 전세계에 분산되어 있는 지사들의 조세부담의 합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유리한 제도를 제공하는 국가에 본사 또는 지역본부를 두고자 할 동기가 있다. 조세제도가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각 국가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부담을 경쟁적으로 낮추는 조세경쟁(tax competition)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위치 결정이 조세혜택 제공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면, 전세계적인 자원배분에 있어 왜곡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이 지역본부 소재지의 조세혜택을 활용함으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정당하게 과세할 수 있는 과세수입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OECD에서도 다국적기업에 대한 조세혜택을 유해한 조세경쟁(harmful tax competition)의 범주에서 검토한 바 있다. OECD에서는 1998년 4월에 유해한 조세경쟁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고, 회원국들이 이를 향후 5년 내에 폐지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1). 2000년에는 추가적인 보고서를 통해 다국적기업의 지역본부 유치를 위한 조세혜택이 유해한 조세경쟁의 범주에 포함됨을 확인하고, 회원국 중 8개 국가들에서의 제도를 개선대상으로 지적한 바 있다. *1) Harmful Tax Competition : An Emerging Global Issues, OECD(1998) 원칙적으로 과세권은 각 국가의 고유권한에 속하지만, 글로벌화된 경제에서는 각국의 조세정책도 글로벌 스탠다드(국제규범)에 의해 제약을 받게 된다.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의 제도는 OECD의 규범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를 유치하기 위해 조세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적절한 정책방향이라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조세지원 전반에 대해서도 OECD에서의 논의를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지역본부에 대한 조세혜택 등을 제외한 일반적인 외국인투자 관련 조세지원은 OECD에서도 유해한 조세경쟁의 범주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향후 논의 과정에서 그 중 일부 또는 상당부분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조세지원이 선별적으로 활용되고 국내 정책과의 괴리가 큰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에 대한 조세감면의 확대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조세를 외국인 투자유치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보다는 다른 측면에서의 지원 및 제도개선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Ⅲ. 근로소득세율 인하 주장의 타당성 논의 다국적기업의 지역본부에 대한 선별적 조세혜택이 OECD 규범으로 인해 제한된다면, 아예 국내세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방안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3월에 주한미상공회의소에 의해 작성되어 관심을 받은 보고서도 이러한 맥락의 주장을 담고 있다. 동 보고서는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를 우리나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를 20%대로 대폭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몇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기로 하자. 첫째, 그러한 주장은 우리나라를 홍콩, 싱가포르, 일본, 중국과 비교한 것에 근거하고 있는데, 여기서 비교대상이 너무 협소하게 설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보다 조세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평가한 싱가포르와 홍콩은 도시규모의 매우 특이한 국가(지역)에 해당된다. 이들 두 국가(지역)을 제외한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부담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2).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세제측면에서도 어느 정도의 경쟁력은 가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제반 여건이 너무 다른 홍콩과 싱가포르를 경쟁상대로 하여 비교(benckmarking)하는 것은 무리다. *2) 자세한 내용은 전영준, 근로소득세제 국제비교, 재정포럼 2002년 2월호, 한국조세연구원 둘째, 아직까지 근로소득세가 외국인 투자의 위치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실증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만약, 근로소득세가 다국적 기업의 위치결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라면, 국가간 경제적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큰 유럽에서 그러한 가능성이 더욱 클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다국적 기업의 유치를 위한 근로소득세 인하경쟁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국가간 경제적 이질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동아시아의 경우, 근로소득세가 기업의 위치결정에서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은 더욱 낮다. 셋째, 위 주장은 전반적인 재정여건 및 조세정책 방향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의 보고서는 물론이고, 다른 연구에서도 아직까지 근로소득세의 대폭 경감으로 인한 세수감소 효과를 보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대안은 검토된 바 없다. 대체재원 또는 재정지출 감축의 대안 없이 추진되는 근로소득세 인하가 초래하는 가장 명백한 결과는 재정적자 확대일 것이다. 외국인이 투자결정을 함에 있어서 해당 국가의 조세제도 못지 않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그 나라의 거시경제적 안정이며, 재정적자는 거시경제 안정도의 주요 항목이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추진된 세제개편이 재정적자를 확대시킨다면, 오히려 외국인투자가 감소하는 역설적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근로소득세의 대폭적 경감은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 할 수 없다. Ⅳ. 결론 다국적기업의 지역본부 유치를 위해 다양한 정책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조세혜택은 OECD에서 이미 유해한 조세경쟁으로 분류한 바, 우리나라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되지 못한다. 외국인 투자 전반에 대한 조세지원 확대에 대해서도, OECD에서의 유해한 조세경쟁 논의동향을 감안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향후 세계경제의 통합이 가속화됨에 따라, 법인세,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근로소득세까지도 인하하도록 하는 시장의 압력이 증가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및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 유치를 위해 국내의 근로소득세를 대폭 경감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대체재원의 마련 또는 재정지출의 삭감이 동반되지 않는 세율인하는 재정적자를 확대시켜, 그로 인한 부정적 파급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세율의 인하는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즉 그러한 세제개편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실현가능하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다국적기업의 지역본부 못지 않게 국내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효과가 큰 외국인투자들도 있다. 국내에서 실질적 생산 및 부가가치 창출을 담당하게 되는 투자, 그리고 R&D 센타 등이 그에 해당될 것이다. 만약, 외국인에 대한 근로소득세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투자와 관련하여 실질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부분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정도가 타당할 것이다. 조세혜택을 활용하려는 투자가 아닌 정상적인 경제적 동기에 따라 투자하는 기업일수록, 조세혜택보다는 전반적인 투자환경을 더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다. 즉, 조세보다는 일반적인 사업환경, 사회적 제도 및 인프라, 각종규제 및 노동시장 문제 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조세지원 확대보다는 외국인의 국내 기업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각종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무형의 사회적 인프라의 형성, 제도개선 및 일선행정의 변화, 의식의 변화 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