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문제제기
「상속세 및 증여세법(2018. 12. 31. 법률 제1610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이하 ‘상증세법’이라 한다) 제45조의2는, 명의신탁 재산의 증여의제라는 표제하에, 권리의 이전이나 그 행사에 등기 등이 필요한 재산(토지와 건물은 제외)에 관하여 조세회피 목적의 명의신탁이 있으면 명의수탁자가 실제소유자로부터 그 재산 가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이다. 이 경우 실제소유자, 즉 명의신탁자는 상증세법 제4조의2 제5항 제4호에 따라 연대납세의무를 부담한다.1) 한편, 상증세법 제68조는 같은 법 제4조의2에 따라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는 자에게 증여세 과세표준 신고의무(이하 간략하게 ‘증여세 신고의무’라 한다)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상증세법 제4조의2는 수증자(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증여자 포함)에게 같은 법 제4조에 따라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는 증여재산에 대한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증세법 제4조 제2항은 증여세 과세대상 중 하나로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은 상증세법 문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응 명의신탁 당사자 역시 증여세 신고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가 인정된다는 말은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명의신탁 당사자가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세기본법 제26조의2 제1항 제4호 나목에 따라 15년의 장기부과제척기간 적용 대상이 된다. 국세기본법 제47조의2 및 같은 법 제47조의4에 따라 무신고가산세와 납부불성실가산세2)도 부담하게 된다. 결국 명의신탁 당사자의 증여세 신고의무 부담 여부는, 증여세 납세의무의 소멸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가산세 부담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명의신탁 당사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재차 강조하자면, 이론적으로만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말 중요한 문제다. 부과제척기간 도과 여부는 증여세 납세의무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all or nothing’ 문제에서 어느 쪽 손을 들 것인가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가산세 문제는 어떤가? 명의신탁 시점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증여세가 부과되면 신고의무 불이행에 따른 가산세는 증여세 본세를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 장기부과제척기간까지 적용되면 그 부담은 훨씬 더 커진다. 예를 들어, 주식 명의신탁 후 10년이 지나서 명의신탁 사실이 밝혀져 증여세가 부과되면 가산세만 증여세 본세의 129.5%3)에 해당하게 된다. 증여세 본세를 넘는 규모다. 한발 더 나아가 만약 15년이 지난 후 증여세가 부과되면 가산세는 증여세 본세의 184.25%4)에 해당하게 된다. 그런데 명의신탁 당사자가 증여세 신고의무를 이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본디 명의신탁이란 대내적 법률관계와 대외적 법률관계를 달리 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의사 합치인데 명의신탁 당사자가 신고의무 이행을 통해 명의신탁 관계를 스스로 외부에 알리는 것은 명의신탁 관계를 형성한 본래 목적이나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명의신탁 당사자는 백이면 백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이하 ‘명의신탁 증여세’라 한다)를 부담함에 있어서 장기부과제척기간 적용과 막대한 가산세 추가 부담의 위험에 노출된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명의신탁을 억제하려는 입법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법률이 납세자에게 이행의 기대가능성이 없는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불이행에 터잡아 증여세 부과라는 본래의 제재에 더하여 추가적인 재제(장기부과제척기간 적용과 가산세 부과)를 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이하에서는 상증세법에서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인정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검토한다. 1) 참고로, 상증세법이 2018. 12. 31. 개정되면서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경우 납세의무자가 실제소유자로 변경되었다(현행 상증세법 제4조의2 제2항). 다만 위 규정은 2019. 1. 1. 이후 증여로 의제되는 분부터 적용되므로(부칙 제3조) 2018. 12. 31. 이전의 명의신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거의 규정이 적용된다. 그리고 현재의 규정에 따르더라도 실제소유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증여세 신고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따라서 이하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2018. 12. 31. 개정 이전의 상증세법을 그 대상으로 하지만, 현행 상증세법이라고 해서 논의의 결과나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2)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납부의무도 이행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일반무신고가산세 20% + 납부불성실가산세 연 10.95% × 10년 = 129.5% 4) 일반무신고가산세 20% + 납부불성실가산세 연 10.95% × 15년 = 184.25%
논의의 명확화
필자는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장기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되는 ‘결과 그 자체’, 가산세가 부과되는 ‘결과 그 자체’가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명의신탁을 제재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제재를 가해야 하는지는 이하의 논의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다. 법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적정 제재의 정도는 ‘명의신탁을 통해 회피 가능한 세액을 명의신탁이 발각될 확률로 나눈 금액’이 될 것이고, 이는 일차적으로 사회과학적 실증분석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산출된 제재의 정도가 우리 법 전체의 체계 내에서 용인될 수 있는지는 규범적으로 재차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하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장기부과제척기간 적용과 가산세 부과를 문제삼는 것은 장기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되고 가산세가 부과되는 결과의 가혹성 내지 과잉성 때문이 아니라5) 그러한 결과가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함에 따라 논리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일 뿐이다. 쉽게 말해, 입법자는 명의신탁을 보다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명의신탁 증여세 세율을 현재보다 훨씬 높게 정하거나, 부과제척기간을 무제한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2019. 7. 25. 발표한 2019년 세법개정안을 보면 50억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명의신탁할 경우 명의신탁 증여세에 적용되는 부과제척기간은 ‘과세관청이 안 날로부터 1년’이어서 사실상 무제한이다. 필자는 이러한 형태의 제재 방식은 (물론 경우에 따라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원칙 위반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이 글에서 문제삼지 않는다. 필자가 위헌성을 문제삼는 것은 입법자가 생각하는 적정한 수준(?)의 제재를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신고의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달성하는 현재의 규정 방식’이다. 5) 물론 학설 중에는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본세에 더하여 가산세까지 부과하면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입법론적으로’ 가산세 부과를 불허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이재호, “차명거래의 과세문제”, 『BFL』 제46호, 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 2011, 59면). 경청할만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명의신탁 당사자에 대한 증여세 신고의무 부과의 문제점
논의의 전제
(1) 명의신탁 증여세의 법적 성질 : 행정벌
명의신탁을 증여로 의제하여 증여세를 부과하는 이유에 관하여는 과거 크게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었다. 하나는 명의신탁이 실제로는 증여에 해당함에도 납세자가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명의신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라는 견해고(소위 ‘추정설’), 다른 하나는 실제 증여가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조세회피 목적의 명의신탁 자체를 규제하기 위한 취지, 즉 명의신탁에 대한 일종의 행정상 제재로 증여세를 부과하는 취지라는 견해다(소위 ‘제재설’). 이러한 견해 대립은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 요건 중 하나인 ‘조세회피 목적’을 해석함에 있어서 회피 대상 조세가 증여세로 한정되는지 문제에서 논의의 실익이 있었다. 추정설은 논리필연적으로 회피 대상 조세가 증여세에 한정된다는 입장을 취하였고, 제재설은 회피 대상 조세를 증여세에 한정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견해 대립은 헌재 1998. 4. 30. 선고 96헌바87 결정이 명의신탁 증여세의 법적 성질을 행정벌이라는 취지로 선언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6) 위 헌법재판소 결정은 구 상속세법(1993. 12. 31. 법률 제466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2조의2 제1항 단서 규정의 “조세회피 목적”에서 말하는 “조세”의 의미가 문제된 사안에 관한 것이었는데,7) 헌법재판소는 “단서조항 중의 ‘조세회피’는 증여세회피 뿐만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조세회피도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 합헌적인 올바른 해석이라고 하겠다.”라고 판단하여 소위 제재설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는 명의신탁 증여세의 법적 성질이 일종의 행정벌이라는 데에 실무나 학설상 별다른 이견이 없다.8) 6) 이창희, 『세법강의』(제14판), 박영사, 2016, 1121면 7) 1993. 12. 31. 법률 제4662호로 개정된 상속세법 제32조의2는 제3항에서 “제1항에서 조세라 함은 국세기본법 제2조 제1호·제7호에 규정된 국세·지방세 및 관세법에 규정된 관세를 말한다.”라고 명문으로 규정하여(현행 상증세법 제45조의2 제6항), 입법적으로 소위 제재설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8) 이창희, 앞의 책, 1121면 ; 김완석, “주식명의신탁에 따른 증여의제제도의 개선방안”, 『조세와 법』 제9권 제1호,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연구소, 2016, 5면 ; 강석훈, “명의신탁 주식의 증여의제에 관한 판례의 태도 및 그 해석론”, 『특별법연구』 제8권, 2006, 568면 ; 윤지현, “주식의 명의신탁에 대한 증여세 과세에 있어서의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한 소고”, 『조세법연구』 제9집 제2호, 한국세법학회, 2003, 141면
(2) 행정벌을 세금 형식으로 부과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제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명의신탁 증여세는 그 본질이 일종의 행정벌이다. 그런데 행정벌을 증여세 형식으로 부과하는 것이 헌법적 관점에서 문제가 없을까? 이에 관해서는 행정벌을 세금 형식으로 걷는 것은 법형식 남용에 해당하여 위헌 문제를 야기한다는 견해가 있다. ‘재정적 목적’은 조세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징표인데, “오로지 제재 내지 처벌 등의 목적으로 부과되는 조세는 조세의 형식을 띤 징벌이자 조세 형식의 남용으로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9)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 우리 법체계는 조세와 다른 법제도를 구별하여 예정하고 있다는 점10) 등을 논거로 한다. 그러나 행정벌을 세금 형식으로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별론으로 하고, 입법자가 제재의 방법으로 세금 형식을 사용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이상 이를 곧바로 위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11) 그 형식이 세금이든, 과태료·과징금과 같은 행정벌이든 이는 단순한 명칭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증여세가 비록 과징금 성격을 갖더라도 이는 입법재량의 한계를 현저히 일탈한 것이 아니어서 체계부정합으로 인한 위헌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12) 9) 이전오, “조세의 본질과 정책적 기능의 한계”, 『현대 조세소송의 좌표(소순무 변호사 정년기념논문집)』, 영화조세통람, 2017, 123면 10) 이동식, “조세의 유도적 기능과 한계”, 『조세법연구』 제19집 제3호, 한국세법학회, 2013, 44면 11) 윤지현, 앞의 논문, 142면. 12) 헌재 2001. 11. 25. 선고 헌바66 결정
(3) 명의신탁 증여세의 정당화 요건
외형상 세금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실질이 세금이라면 당해 처분의 정당화 요건은 세금 이론에 기초하여 풀어가는 것이 옳다.13) 헌법재판소 역시 개발부담금 사건에서 유사한 취지로 결정한 바 있다. 만일 이렇게 보지 않으면, 국가는 실제로는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그 형식만 세금이 아닌 것으로 바꾸어 위법한 과세권 행사를 막기 위해 축적되어 왔던 조세법 법리를 쉽게 회피할 수 있게 된다.
[ 헌재 2001. 4. 26. 선고 99헌바39 결정 ] “비록 그 명칭이 ‘부담금’이고, 국세기본법에서 나열하고 있는 ‘국세’의 종류에도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재정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반대급부 없이 법률에 규정된 요건에 해당하는 모든 자에 대하여 일반적 기준에 의하여 부과하는 금전급부’라는 조세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법 제5조 내지 제21조 참조) 실질적인 조세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개발부담금에도 세법의 기본원리 및 이론이 유추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처분이 세금 형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 실질이 행정벌이라면 행정벌에 맞는 정당화 요건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다.14) 따라서 행정벌에 해당하는 명의신탁 증여세의 정당성 여부는 제재의 필요성이 있는가, 제재의 정도가 적정한가 등과 같은 제재의 정당성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이와 달리 담세력에 상응하는 증여세인가, 실질과세원칙에 부합하는가 등과 같은 조세법 고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할 일은 아니다.15) 또한 명의신탁 증여세가 세금의 본질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더라도 이는 용납될 수 있지만(행정벌을 세금 형식으로 부과하는 이상 세금의 본질에 어긋나는 결과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제재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만약 명의신탁 증여세가 세금의 본질에 반할 뿐만 아니라, 제재의 본질에도 반한다면 그 정당성 근거를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까닭이다. 쉽게 말해,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의 위헌성이 문제될 때는 행정벌이라고 하여 비난을 비켜간 후, 막상 규정의 해석이 문제될 때는 세금이라고 말을 바꾸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3) 이창희, 앞의 책, 8면 14) 이창희, 앞의 책, 8면 ; 윤지현, 앞의 논문, 142면 ; 강석훈, 앞의 논문, 568~569면 15) 정주백, “2004년도 조세관련 헌법재판소 결정례 회고”, 『조세법연구』 제11집 제1호, 한국세법학회, 2005, 341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 사건에서 재판소가 본 것과 같이, 이 사건의 증여세는 벌이다. 실질이 벌이라면, 그것은 벌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증여세를 벌로 평가하였다. 그러면 이제, 이 사건 증여세를 세금으로 전제하는 판단은 모두 사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실질과세, 조세정의, 조세평등의 논리는 들어설 수 없게 된다. 벌에 대하여 어떻게 실질과세원칙, 조세정의를 논할 수 있겠는가? 벌은 벌의 원리로 심사되어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구체적인 문제점 검토
(1) 행정벌의 본질에 반하는 문제
관련 법리 법이 그 수범자에게 기대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법은 불가능을 강요하지 않는다(Lex non cogit ad impossibilia)”라는 법격언을 되새겨 볼 일이다. 가장 극단적인 제재 형태인 형벌 적용에 있어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다. 죄형법정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형사법 영역에서도 성문법률에 근거가 없는 일반적·초법규적 책임조각사유로 이른바 ‘기대가능성 이론’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기대가능성 이론이란 행위자가 행위를 할 당시에 적법행위로 나아갈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책임비난을 할 수 없고, 그 결과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논의를 행정벌 영역으로 끌어와 보면, 행정벌 대상자에 대한 자진신고의무 부과는 그 자체로 기대가능성 없는 요구인바, 이러한 요구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국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 즉 행정벌 부과 대상 행위를 찾아내고 요건 충족을 입증해야 할 책무를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이에 행정벌을 부과하는 경우 법률이 그 부과대상자에게 위법행위 내용을 자진신고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종의 행정벌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 행정벌인 과태료의 경우를 보자. 어떤 행위를 제재 대상으로 삼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어떤 행위를 허용하되 신고의무를 부여하고 그 신고의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어떤 행위를 제재 대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제재 대상 행위를 신고하도록 요구하고 신고의무 불이행을 또다시 제재 대상으로 삼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벌의 본질에 반하는 까닭이다. 검토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명의신탁 증여세라는 일종의 행정벌 부과 대상자에게 자진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셈이 되어 행정벌의 본질에 반한다.16) 헌법재판소 결정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물의 본성에 어긋난다.”17) 한편, 이러한 논의는 비단 행정벌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의미의 조세를 전제하더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명의신탁 증여세의 신고의무를 부정하는 논거로 부적절하다는 반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납세자로 하여금 세금을 내도록 요구하는 것, 그 전제로 정확한 과세표준과 세액을 신고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기대가능성이 없지 않은가?18) 그런데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납세의무자에 대한 신고의무 요구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재산을 반대급부 없이 국가에 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납세자에게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 그 전제로 정확한 과세표준과 세액을 신고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납세의무를 국가 입장에서 달리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의미의 조세를 전제로 한 신고의무에까지 기대가능성이라는 기준을 끌고 들어와 신고의무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헌법상 이미 기대가능성이 있다고 또는 있어야 한다고 전제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이다(구체적인 사안에서 납세자에게 신고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곤란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신고의무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신고의무 불이행에 따른 제재를 면제하는 것으로 족하다. 즉, 가산세 면제요건인 ‘정당한 사유’의 판단에서 고려하면 족하다). 헌법재판소 역시 “[납세자에게] 자발적인 신고와 납부 등의 협력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주된 납세의무에 수반하는 당연한 의무”라고 설시한 바 있다.19) 16) 오문성, “명의신탁 증여의제 신고의무의 문제점”, 2019. 9. 30.자 뉴스토마토 기고문에서는 “명의신탁의 본질적 성격과 신고라는 것이 처음부터 친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쓰고 있다. 17) 헌재 2002. 8. 29. 선고 2001헌바82 결정 18) 특히 실질과세원칙이 적용되는 영역, 예를 들어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이 적용되는 사례 등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더욱 강하게 들 수 있어 보인다. 19) 헌재 2008. 7. 31. 선고 2007헌바13 결정.
(2) 헌법상 진술거부권 침해 문제
관련 법리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책임에 관하여 자기에게 불이익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진술거부권은 형사절차 뿐만 아니라 행정절차나 국회에서의 질문 등 어디에서나 그 진술이 자기에게 형사상 불리한 것일 때에는 보장된다. 또한 진술거부권은 고문에 의한 진술 강요는 물론이고 법률로서도 진술을 강제할 수 없음을 그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만일 법률이 범법자에게 자기 범죄사실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그 미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가한다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20) 한편, 이미 성립한 납세의무를 확정하기 위하여 납세자에게 과세 관련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진술거부권 침해가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21) 헌재 2014. 7. 24. 선고 2013헌바177 결정 역시 “교통·에너지·환경세법상의 신고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납세의무자 일반이 모두 부담하는 납세의무를 확정하기 위한 절차의 일환으로 과세를 위한 기초정보를 과세관청에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여, 세법상 신고의무 이행은 원칙적으로 진술거부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위와 같은 논의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예로는, 위법소득을 얻은 자의 소득세·법인세 과세표준 신고의무와 진술거부권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위법소득을 얻는 자에게 부과되는 소득세·법인세는 그 형식이나 본질 모두 전형적인 세금이다. 그런데 위법소득을 얻은 자에게 진술거부권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무조건 과세표준 신고의무를 면제해 주면, 적법한 소득을 얻은 자보다 우대하는 불공평한 결과가 된다. 따라서 위 논의는 일반적인 세금에 관한 신고의무를 전제로 할 때에는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명의신탁 증여세는 그 본질이 세금이 아니라 행정벌이므로, 이러한 논의가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를 판단하는 데까지 일반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명의신탁 당사자가 증여세 과세표준을 신고하는 것은 그 실질이 증여세 납세의무 확정을 위한 자료 제공이라기보다는 과징금 부과대상자의 자진신고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설령 견해를 달리하더라도, 위 헌법재판소 결정은 세법상 신고의무 이행이 곧 형사처벌 대상임을 시인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되거나, 신고의무를 이행하면 과세절차가 곧바로 수사절차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등에는 세법상 신고의무 이행이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는 이런 경우에 가깝다. 따라서 위 논의는 어느 모로 보나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에 적용되기는 부적절하다. 20) 헌재 1990. 8. 27. 선고 89헌가118 결정 21) 이준봉, 『조세법총론』(제2판), 삼일인포마인, 2016, 931~933면 검토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은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조세회피 목적’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어떤 명의신탁이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명의신탁자는 소득세 등을 탈루한 것이 되어 「조세범 처벌법」 제3조(조세 포탈 등) 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조세 포탈의 가중처벌)에 따라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명의수탁자 역시 공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명의신탁 증여세 과세요건인 ‘조세회피’와 「조세범 처벌법」 제3조 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구성요건인 ‘조세포탈’은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단순한 명의신탁이 아니라22) 조세회피 목적이 인정되는 명의신탁의 경우를 보면, 명의신탁 방법으로 명의신탁자의 소유관계를 은폐하면서 그러한 사실을 과세관청에게 알리지 않는 행위는 조세회피라기보다는 소득세 등 과세요건에 관한 사실을 은닉함으로써 조세의 부과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행위로 평가되기 쉬울 것이다.23) 따라서 조세회피 목적 명의신탁에 따라 결과적으로 절약한 조세가 생긴다면 해당 명의신탁은 조세포탈 행위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명의신탁 사실 그 자체’를 넘어 ‘조세회피 목적’까지 자인하는 전제에서 증여세 과세표준을 신고하라고 요구하면 사실상 과세관청에게 범죄 발각 단서를 스스로 제공하도록 강제하여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25) 이와 관련해서는 헌재 2002. 1. 31. 선고 2001헌바43 결정이 참고가 된다.위 결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업자단체에 대한 시정조치로서 법위반사실을 공표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법위반사실 공표명령은 행위자로 하여금 형사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법위반 행위를 일단 자백하게 하는 셈이 되므로 진술거부권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헌법재판소 논리는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를 인정하면 행위자로 하여금 형사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조세회피 목적으로 명의신탁을 하였다’는 사실을 일단 자백하게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22)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주식을 보유하였다고 하여 그 차명이용 행위 한 가지만으로 구체적인 행위 동기, 경위 등 정황을 떠나 어느 경우에나 적극적인 소득 은닉행위가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1. 7. 28. 선고 2008도5399 판결). 23) 오윤,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의 본질에 비추어 본 폐지 필요성에 관한 소고”, 『세무와 회계 연구』 제5권 제1호, 한국조세연구소, 2016, 306면 24) 오윤, 앞의 논문, 306면 및 313면 ;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도5214 판결 ; 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4도12619 판결 25) 오문성, 앞의 글도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중여세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진술거부권 침해가 된다는 입장이다.
(3)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는 문제
관련 법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무죄추정원칙이다. 무죄추정원칙은 형사절차상 아직 공소제기 되지 않은 피의자는 물론이고 공소제기 된 피고인도 유죄 판결 확정시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로 다루어져야 하고, 설령 어떤 불이익을 가하게 되더라도 그 불이익은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검토 앞서 검토한 헌재 2002. 1. 31. 선고 2001헌바43 결정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법위반사실 공표명령이 무죄추정원칙에도 반한다고 보았다. 행위자에게 법위반사실을 공표하게 하는 것은 장차 형사절차에서 법위반사실을 부인하고자 하는 행위자의 입장을 모순에 빠뜨려 소송수행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원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예단을 갖게 할 소지가 있고 그 결과 장차 진행될 형사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의 경우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
(4) 양심의 자유 침해 문제
관련 법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여 양심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에는 세계관·인생관·주의·신조 등은 물론이고, 이에 이르지 않더라도 널리 개인의 인격 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 따라서 양심의 자유에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이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을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함된다.26) 이러한 법리에 터잡아 헌법재판소가 양심의 자유와 관련하여 판단을 내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① 법원의 사죄광고 명령 사례27) : 법원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민사상 피해구제 방법의 하나로 사죄광고를 명령하는 것은, 자기 신념에 반하여 자기 행위가 비행이며 죄가 된다는 윤리적 판단을 외부에 표시하도록 명령하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사과라는 도의적 의사까지 표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어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함.
- ② 운전자에 대한 강제음주측정 사례28) : 음주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이 강제로 음주여부를 측정하는 것은 그 대상자에게 윤리적 결정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어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
- ③ 공정거래위원회의 법위반사실 공표명령 사례29) :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업자단체에게 법위반사실을 공표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단순히 법위반사실 자체를 공표하라는 것에 그칠 뿐이고, 윤리적·도덕적 판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
(5) 평등원칙에 반하는 문제(부동산 명의신탁과의 형평성)
관련 법리 헌법재판소는,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과 부동산실명법상 과징금 규정은 입법목적, 규제 방식, 제재 유형, 제재를 받는 인적 범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주식 등의 명의수탁자와 부동산 명의수탁자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두 개의 비교집단이 아니라고 한다.31) 제재의 근거법이 다르고 제재의 형식이 다른 이상, 명의신탁 증여세와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한 과징금을 완전히 동일한 평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도 없고 또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부동산실명법에 따른 과징금과 명의신탁 증여세는 명의신탁에 대한 제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는 부동산실명법 입법 이전까지 부동산에 대한 명의신탁 역시 명의신탁 증여세 부과 대상이었던 점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묵과하기 어려운 정도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면 평등원칙 내지 형평성 관점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명의신탁 증여세의 합리성 내지 타당성 여부를 검토할 때에는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한 제재와의 형평성을 어느 정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32) 참고로, 부동산과 주식을 완전히 별개의 자산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리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부동산을 보유한 법인의 주식을 명의신탁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데,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자 사이에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세법상 간주취득세 제도를 보더라도 입법자는 부동산과 주식을 완전히 별개의 자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1) 헌재 2013. 9. 26. 선고 2012헌바259 결정 32) 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4두43653 판결은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 부동산 명의신탁과의 균형을 고려한 바 있다. 검토 당연한 내용이지만 부동산 명의신탁자는 자신이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는 사실을 신고할 의무가 없다. 다 같은 명의신탁임에도 명의신탁 대상 재산이 부동산인지 그 밖의 재산인지에 따라 신고의무 유무에 차이가 생기고, 그 결과 신고의무 불이행에 따른 추가적 제재 대상이 되는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꼴이 되어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소결론
이상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다양한 헌법적 문제를 야기한다. 즉,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부과하면 행정벌 대상자에게 스스로 자신이 행정벌 부과 대상자임을 신고하도록 요구하는 셈이 되어 행정벌의 본질에 반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조세회피 목적’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증여세 과세표준을 신고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된다. 명의신탁에 대한 제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부동산 명의신탁에 따른 과징금과 비교할 때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문제점 해결 방안
합헌적·합목적적 해석을 통한 해결
상증세법 제68조, 제4조의2 및 제4조 문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명의신탁 당사자 역시 증여세 신고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와 관련한 상증세법 규정을 해석할 때에도, 관련 규정은 명의신탁 증여세의 행정벌적 본질과 헌법상 진술거부권·무죄추정원칙·양심의 자유·평등원칙과의 관계에서 합헌적·합목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증세법상 증여세 신고의무자 범위에서 명의신탁 당사자는 제외된다고 해석할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대법원은 최근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가 인정된다고 판단을 하였다.33) 따라서 합헌적·합목적적 해석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분간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고 보인다. 대법원이 위 판단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33) 대법원 2019. 6. 13. 선고 2018두47974 판결
[ 대법원 2019. 6. 13. 선고 2018두47974 판결 ] “개정 상증세법 제68조 제1항 본문, 제4조 제1항 본문에 의하면,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는 수증자는 증여받은 날로부터 3월 이내에 증여세 과세가액 및 과세표준을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 원심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증여를 받은 자뿐만 아니라, 법령에 의하여 증여받은 것으로 의제되거나 추정되는 자에게도 증여세의 신고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신고의무를 부과한다고 하여 명의수탁자의 헌법상 양심의 자유나 진술거부권 등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제한 다음, 주식의 명의수탁자도 증여세의 과세가액 및 과세표준을 신고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원고들이 증여세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이상 … 부과제척기간은 15년으로 보아야 하고, …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 … 명의신탁 증여의제에서의 신고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또는 선제적 입법개선을 통한 해결
상증세법 제68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증여세 신고의무 자체는 합헌적이다. 문제는 명의신탁 당사자에게까지 증여세 신고의무를 인정하는 데에 한정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상증세법 제68조 제1항 본문의 ‘제4조의2에 따라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는 자’ 중 제45조의2 및 제4조의2 제5항 제4호에 따라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는 자가 포함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와 같은 형식의 위헌결정을 내려 준다면 명의신탁 당사자의 증여세 신고의무에 관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물론 입법자가 선제적인 입법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응의 입법개선안은 다음과 같다(지금까지의 논의는 2018. 12. 31. 개정 이전의 상증세법을 기준으로 하였지만 아래 표는 현행법을 기준으로 입법개선안을 생각해 본 것이다. 법개정은 현행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증여세 신고의무자 범위에서 명의신탁자를 제외한다는 취지다.
현행법 | 필자가 생각하는 입법개선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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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조(증여세 과세표준신고) ① 제4조의2에 따라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는 자는 … 증여세의 과세가액 및 과세표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 제68조(증여세 과세표준신고) ① 제4조의2에 따라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는 자(제4조의2 제2항에 따라 납부의무가 있는 자는 제외한다)는 … 증여세의 과세가액 및 과세표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
결론 및 정책적 제언
헌법재판소는 행정벌을 세금 형식으로 부과한다고 해서 곧바로 위헌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행정벌을 세금 형식으로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실질과 형식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에 대해서는 입법 당시부터 근본적인 문제점에 관한 지적이 계속되어 왔다. 주로 지적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① 명의신탁 증여세는 그 본질이 행정벌임에도 세금 형식으로 부과되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② 명의신탁을 통해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고 비난가능성도 적은 명의수탁자를 1차적인 증여세 제재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형평에 반한다는 점, ③ 명의신탁 증여세는 조세회피 행위에 대한 제재이므로 회피한 조세의 크기에 따라 세액이 결정되어야 합리적임에도 이와 무관하게 명의신탁 재산 가액을 기준으로 세액이 정해진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모두 행정벌을 증여세라는 세금 형식으로 부과하다 보니 발생된 것이다. 명의신탁 증여세 신고의무를 둘러싼 문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입법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8. 12. 31. 상증세법을 개정하면서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경우 증여세 납세의무자를 명의신탁자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개정으로 인해 기존의 문제점 일부가 개선된 것은 분명하지만, 명의신탁 증여세는 상증세법 전체의 체계에서 점점 더 이질적이고 기이한 형태의 증여세가 되어 가고 있다. 일반적인 증여세는 수증자가 납세의무자인데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경우에만 증여자를 납세의무자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을 개선하지 않고, 그로부터 파생된 현상들에 대해서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보니 발생한 현상이다.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면제하는 입법 역시 마찬가지 결과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입법으로 당장의 위헌적 상황은 개선할 수 있겠지만, 명의신탁 증여세와 일반적 증여세 사이의 괴리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벌은 행정벌 형식으로 부과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또한 그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명의신탁 증여세를 과징금 등 행정적 제재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개정은 그동안 지적되어 왔던 명의신탁 증여세에 내재하는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명의신탁 당사자의 증여세 신고의무를 배제하는 부분적 입법 개정은 이러한 근본적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또는 근본적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경우 현재의 위헌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속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① “명의신탁과 증여세 신고의무 ?부과제척기간과 가산세 문제를 중심으로-”, 『조세법연구』 제22집 제3호, 한국세법학회, 2016, ② “명의신탁 당사자의 증여세 신고의무에 관한 연구·부과제척기간 및 가산세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8.에서 명의신탁 당사자에게 증여세 신고의무를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그 개선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필자는 위 논문 내용에 논문 발표 이후의 상황 변화를 약간 추가하여 2019. 10. 4. 한국조세정책학회 11차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였고(주제 : 명의신탁 증여의제, 증여세 신고의무 문제없나?), 이 글은 위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