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세계경제가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국가간 노동이나 자본의 이동이 대폭 자유로워짐에 따라 각국은 고급인력과 자본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인하하는 등 조세경쟁(Tax Competition)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기업이 납세할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도 고급인력과 자본을 많이 유치하고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외국보다 경쟁력 있고 선진화된 조세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외국투자자들이 투자대상국을 선택함에 있어 조세특례와 같은 유인책보다는 감가상각이나 비용처리 등 조세제도의 합리성과 세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조세행정의 투명성을 더욱 중요시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외국투자자의 본국에서 투자자의 전세계 소득을 대상으로 과세하므로 세금경감이 투자유치국에서 투자자의 본국으로 이전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투자에 대한 세금경감이 투자유치국이 당초 기대하는 투자유인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행 조세제도 및 행정에 있어 불합리한 요소나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과감히 제거하고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세제로 거듭나야 내국기업을 국내에 머물게 하고 외국투자자를 유치하는 길이다. 최근 정부는 공적자금 상환 등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보충하기 위해 각종 비과세나 세금감면을 조기에 폐지하기로 하고, 학계와 재계에서 꾸준히 요구해 온 추가적인 세율인하도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정적자에 대하여 조세수입을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예산낭비를 없애고 재정지출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없이 늘어나는 예산을 국민의 세금으로 손쉽게 충당하려는 것은 곤란하다. 이제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둠으로써 건전재정을 이루기보다는 불필요한 예산축소 및 정부조직의 과감한 구조조정 등 정부의 쓰임새를 아껴 건정재정을 실현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장기세제운용방향인 「넓은 세원, 낮은 세율」차원에서 비과세나 세금감면을 축소하고 조세체계를 간소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나 그 시기와 방법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 연구개발(R&D)투자 등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키거나 당초 조세지원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조세특례는 적용시한을 연장하거나 세금감면 축소를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또한 불필요한 조세감면을 축소하면서 늘어난 조세수입은 세율인하 등을 통해 민간의 투자재원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자유시장경제하에서 정부보다는 민간부문이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지적하듯이 민간이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도록 해야한다. 세율인하가 반드시 조세수입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경영의 투명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세부담의 경감은 투자증대 및 내수진작 등 경기부양효과를 가져와 오히려 조세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싱가폴이나 홍콩 등에 비하여 아직 소득에 대한 세율이 높고, 세금이외에 각종 기부금이나 부담금 등 준조세에 대한 부담까지 고려할 경우 납세자가 체감하는 조세부담률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세율인하의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조세행정의 전문화와 과학화를 통해 과세기반인 세원을 확충하고 업무의 효율화를 꾀해야 한다.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과 과도한 사용으로 인하여 많은 사회문제를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신용카드사용에 대한 소득공제와 복권추첨제는 자영업자의 소득과 과세거래를 양성화하고 세수를 늘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신용카드사용에 대한 조세지원처럼 탈세를 막고 세원을 확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인 분석기법을 통해 성실한 납세자와 탈세자를 선별하여 관리함으로써 성실한 납세자는 존경받고 탈세자는 불이익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조세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 납세성실도에 관계없이 납세자를 똑같이 대우해서는 국민의 납세의식을 향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납세자에게 과도한 과세자료 제출요구나 불필요한 징수비용의 전가를 지양하고 각 부처간 자료공유와 데이터베이스 확충을 통해 납세자의 편의를 제고해야한다. 납세의무를 헌법에 명시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하여 납세자의 권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하는 면이 없지 않다. 국세청의 영문명칭을 National Tax Administration에서 National Tax Service로 변경한 것은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국세기본법에 납세자권리헌장을 명문화한 것은 납세자보호에 대한 국제적 요구를 수용한 결과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과세권자에 비하여 납세자가 상대적으로 불리하거나 불합리한 세법조항은 도처에 있다. 예를 들어 납세자는 계속 사업을 영위하면서 소득에 대해 매년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면 손실이 발생한 경우 전년도에 납부한 세금을 돌려주거나 기간제한 없이 향후 발생 소득에서 공제하도록 해야하나 현재는 5년 이내의 소득에서만 공제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또한 과세권자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리를 5년간 행사할 수 있는데 반하여 납세자는 소득신고서상 오류에 대해 2년 이내에 수정을 요구하도록 되어있어 불공평하다. 부동산 취득이나 자금조달에 대하여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도 납세자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권리를 제약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세법조문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기술하고 세목 수도 대폭 축소해야한다. 일반 국민은 현행 세법조문을 읽고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조세전문가의 도움 없이 세무신고서를 작성하거나 세액을 산출하기 어렵다. 세법이 난해하고 복잡함에 따라 납세자는 사소한 오류나 신고지연으로 인하여 과중한 가산세를 납부하기도 하고, 조세당국의 세법조문 해석결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투자의사결정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납세자의 불필요한 납세협력비용을 줄이고 세부담에 대한 미래 예측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쉬운 세법용어를 사용하거나 편제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대선이 있는 해에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을 우려하여 최소한의 세법개정이 있었다. 올해는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의 활력회복과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세율인하는 물론 불합리한 제도개선 등 세제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