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기부는 일반적으로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경우,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하여 기부자가 공익법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어렵고, 기부자의 뜻에 따라 공익법인을 설립하려면 상당 규모의 재산을 출연해야 하며 주무관청의 허가도 받아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와 달리 공익신탁을 설정하여 기부하는 방법은 소규모 재산으로도 위탁자의 뜻이 반영되도록 신탁을 설계할 수 있고 신탁의 설정 절차 또한 공익법인 설립보다 훨씬 간단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우선 공익법인에 비하여 공익신탁의 설립과 운영상의 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본다. 첫째, 설립의 편의성이다. 공익법인은 설립을 위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공익신탁은 법무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설립할 수 있다. 그리고 공익법인은 사업목적별로 주무관청이 상이한데 비하여, 공익신탁은 법무부장관으로 일원화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또한 공익법인은 법인격을 가지므로 자본금이나 기관 등의 조직을 갖춰야 하고, 등기절차가 필요하며, 각 주무부처별로 최소 기본재산이 다르고, 일정 금액 이상이 되어야만 설립을 할 수 있음에 비하여, 공익신탁은 별도 조직을 만들 필요 없이 신탁계약만으로 이용할 수 있고, 소액으로도 설립할 수 있으며, 등기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공익신탁의 설립은 공익재단의 설립에 비하여 간편하고 비용이 절약된다. 나아가 신탁은 위탁자와 수탁자 간의 신탁계약이나, 위탁자의 유언 또는 신탁선언 방식으로 설정하므로, 공익신탁은 공익법인보다 내용을 자유롭게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재산 운영의 유연성이다. 공익 재단법인은 기본재산을 보전하면서 기본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목적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큰 규모의 재산이 필요하고, 출연재산의 수익으로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설립이 허가되지 않는다. 사단법인도 회비나 기부금 등의 수입으로 목적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설립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익신탁은 소액의 자금으로 설정할 수 있고, 기본재산의 유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신탁재산을 공익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며, 원칙적으로 수탁받은 날부터 3년 이내에 신탁재산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공익신탁은 1961.12.30. 신탁법 시행 이후 동법에서 규율되어 왔지만, 현재는 2014.3.18. 별도로 제정되어 2015.3.19. 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익신탁법」에 따르고 있다. 「공익신탁법」은 민간의 기부를 편리하게 하고 기부금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부자의 통제권을 인정하여 기부를 활성화하고자 마련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익신탁을 이용한 기부 실적은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2015년 「공익신탁법」 시행 이전 「신탁법」에 따라 운용된 1971년부터 2014년까지의 공익신탁은 일반공익신탁, 체육공익신탁 및 하나행복나눔공익신탁 등 3개에 불과하다. 이 중 일반공익신탁은 서울신탁은행의 전신인 한국신탁은행이 1970.11.10. 재무부장관의 허가를 얻어 학술, 기예부문, 육영부문, 자선부문, 체육진흥부문에 사회적 공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공익신탁법이 시행된 후 2015.7.22.에 제1호 공익신탁으로 법무부 천사(千捨) 공익신탁이 인가되었다. 월급의 1,000원 미만 끝자리만 기부한다는 의미에서 “천사 공익신탁”이라 불린다. 동법 시행 이후 약 7년 6개월이 지난 2022.10.10. 현재 총 34개(종료 6개 포함)의 신탁이 법무부의 인가를 받아 운용되고 있다. 그중 신탁재산 기준으로 1억원 이상인 공익신탁은 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통일기금 공익신탁 56.5억원(위탁자 1명, 수탁자 하나은행), ②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42.3억원(위탁자 93,275명, 수탁자 하나은행 등 13개 금융기관), ③ 장애청소년 복리 공익신탁 11.3억원(위탁자 1명, 수탁자 신영증권), ④ 광복 70주년 나라사랑 공익신탁 7.2억원(위탁자 68명, 수탁자 하나은행), ⑤ 범죄피해자 지원 스마일 공익신탁 3.1억원(위탁자 532명, 수탁자 하나은행), ⑥ KB맑은바다 공익신탁 1.0억원(위탁자 1,482명, 수탁자 국민은행) 등이다. 공익신탁의 공익사업(목적사업 포함) 유형을 살펴보면, 근로자의 고용촉진 및 생활향상 지원, 남북통일ㆍ평화구축ㆍ국제 상호이해 증진, 독립유공자 후손의 생계비ㆍ교육비 등 지원, 장학기금 조성 및 학교생활 지원과 같은 학술 관련, 난치성 질환 어린이 치료, 범죄 피해자 지원, 지역사회의 건전한 발전, 환경 보호와 정비 및 공중위생 또는 안전의 증진, 발달장애인 취업 지원과 같은 사회복지 관련 공익신탁 외에도 아이스하키 지원, 세계 시민학교 지원, 혁신사업가 기금 등으로 다양하다. 또한 ‘한비야의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 ‘이승철의 희망 리앤차드 공익신탁’, ‘허구연의 야구사랑 공익신탁’, ‘이상현의 장애청소년 문화체육활동을 위한 공익신탁’ 등 위탁자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공익신탁을 설정ㆍ운영할 수 있도록 하여 위탁자의 다양한 기부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또한 공익신탁에 자산을 신탁한 위탁자의 수가 1명인 공익신탁도 있는가 하면 93,275명이 위탁자로 참여한 공익신탁도 있으며, 수탁자의 경우 대부분 하나은행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현재 34건 중 하나은행이 21건, 국민은행이 9건, 부산은행이 1건, 유안타증권이 1건, 신영증권이 1건, 13개 은행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 1건이다. 이와 같이 공익신탁을 이용한 기부 실적은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신탁제도가 우리에게 낯선 제도라는 점과 공익신탁에 대한 조세지원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공익신탁에 대한 조세지원 제도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이라 한다), 「법인세법」 및 「소득세법」에 마련되어 있다. 상증세법에는 일정 요건을 갖춘 공익신탁을 통하여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재산에 대하여 상속세 과세가액 및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하는 규정이 있고,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서는 공익신탁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비과세 규정이 있으며, 일정 요건을 갖춘 공익신탁에 대한 출연재산을 기부금으로 인정하고 있다. 상증세법 제16조에서는 공익신탁에 출연한 상속재산에 관하여 “상속재산 중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이 종교ㆍ자선ㆍ학술 관련 사업 등 공익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을 하는 자(이하 “공익법인등”이라 한다)에게 출연한 재산의 가액으로서 제67조에 따른 신고기한(법령상 또는 행정상의 사유로 공익법인등의 설립이 지연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사유가 없어진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까지를 말한다)까지 출연한 재산의 가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 시행령에서 공익신탁의 범위와 출연 시기를 정하고 있는데, 상속세 신고기한까지 상속재산을 다음 요건을 갖춘 공익신탁을 통하여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에 출연해야 한다. 즉, ① 공익신탁의 수익자가 상증세법 시행령 제12조에 규정된 공익법인등이거나 그 공익법인등의 수혜자일 것, ② 공익신탁의 만기일까지 신탁계약이 중도해지되거나 취소되지 아니할 것, ③ 공익신탁의 중도해지 또는 종료 시 잔여 신탁재산이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및 다른 공익신탁에 귀속될 것 등을 그 요건으로 하고 있다. 또한 공익신탁에 출연한 증여재산에 관하여 “증여재산 중 증여자가 「공익신탁법」에 따른 공익신탁으로서 종교ㆍ자선ㆍ학술 또는 그 밖의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신탁을 통하여 공익법인등에 출연하는 재산의 가액은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제도는 상속세 과세가액 불산입 제도와 마찬가지로 위 요건을 모두 갖춘 공익신탁을 통하여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경우에만 적용받을 수 있다. 「소득세법」은 신탁재산 귀속 소득의 납세의무자를 원칙적으로 수익자로 규정하고, 수익자가 정하여지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신탁 또는 위탁자가 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신탁의 경우에는 위탁자를 납세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다. 「법인세법」은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수익자를 납세의무자로 규정하고, 목적신탁(공익신탁 제외), 수익증권발행신탁 또는 유한책임신탁으로서 수익자가 둘 이상이고 위탁자가 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지배ㆍ통제하지 않는 신탁의 경우에는 수탁자를 납세의무자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수익자가 정하여지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신탁 또는 위탁자가 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신탁의 경우에는 위탁자를 납세의무자로 한다. 위 규정에 따른다면 공익신탁은 수익자가 정하여지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신탁이므로 위탁자에게 과세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실질과 달라 불합리하므로, 「소득세법」은 “「공익신탁법」에 따른 공익신탁의 이익”에 대해서 비과세하고, 「법인세법」은 “「공익신탁법」에 따른 공익신탁의 신탁재산에서 생기는 소득”에 대하여 비과세하고 있다.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공익신탁으로 출연하는 재산을 기부금으로 인정하여, 일정 한도 내에서 법인은 손금산입, 개인은 필요경비산입 또는 세액공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법은 공익신탁제도를 지원하기 위하여 공익신탁에 기부하는 재산에 대하여 기부금으로 인정하거나 상속세 및 증여세에서 제외하는 등의 조세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익신탁이 아니라 일부 공익신탁에 대해서만 조세지원을 하는 등 공익신탁에 대한 과세제도에는 몇 가지 검토해야 할 과제가 있다. 앞으로 공익신탁 과세제도 개편 시 다음 사항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증여세제의 개선방안이다. 공익신탁에 증여하는 재산의 증여세에 대한 현행 세법 규정이 모호하여 해석상 혼란이 있으므로, 관련 규정의 해석론적 또는 입법론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신탁이익의 증여 규정인 상증세법 제33조 해석에 관한 사항이다. 사익신탁의 경우 위탁자와 수익자가 동일한 자익신탁에 대해서 위탁자에게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아직 존재하지 아니하는 공익신탁의 경우, 위탁자를 수익자로 보더라도 위탁자에게 증여세를 과세할 수는 없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상증세법 제52조를 살펴보자. 동 조항은 공익신탁을 통하여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재산의 가액은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탁자, 공익신탁 또는 공익법인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고, 주식 출연의 경우 공익법인 출연재산의 사후관리에서 불공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동 조항의 삭제 여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는 공익신탁 관련 상속세제의 개선방안이다. 상증세법 제17조에 따르면, 공익신탁에 출연하는 상속재산을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하려면 상속재산이 공익신탁을 통하여 공익법인에 출연되는 조건이어야 하는데, 이 조건 때문에 수탁자는 수탁재산을 공익법인에 전달하는 자금 전달형 공익신탁으로 역할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까지 공익신탁의 수탁자는 모두 금융기관이다. 앞으로는 금융기관뿐 아니라 공익사업 전문 수탁자가 공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공익사업을 수탁자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사업 집행형 공익신탁에 출연하는 재산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상증세법 제17조와 동법 시행령 제14조에서 공익법인에 출연해야만 공익신탁재산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조건을 삭제해야 하며, 「공익신탁법」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익신탁 출연재산의 사후관리는 「공익신탁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공익신탁법」에서 공익신탁을 자금 전달형 공익신탁과 사업 집행형 공익신탁으로 구분하여, 사업 집행형 공익신탁에 대해서는 인가와 관리ㆍ감독을 더 엄격하게 하는 방향으로 「공익신탁법」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상증세법에서 공익신탁을 공익법인으로 간주하는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익신탁을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의 범위에 포함하여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으로서의 세제 혜택과 사후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공익신탁에 관한 상속세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상속재산 중 주식을 공익신탁이나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때에 주식의 한도에 관한 것이다. 상증세법 제16조에 따르면 상속재산을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경우 출연한 재산의 가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하지만,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는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를 초과하는 가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한다. 그러나 상증세법 제17조는 상속재산을 ‘공익신탁을 통하여’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경우 출연한 재산의 가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에 관한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 주식을 직접 공익법인에 출연하든지 공익신탁을 통하여 출연하든지 세제 혜택의 차이가 없어야 하고, 이러한 점이 세법 규정에 명확히 반영되도록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공익신탁 기부금 세제에 대한 개선방안이다. 상속세제에서 논의한 것과 같은 문제로서, 현행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은 위탁자가 공익신탁에 기부하는 재산이 공익신탁을 통하여 공익법인에 출연되는 조건일 때에만 기부금으로 인정하는데, 자금 전달형 공익신탁뿐 아니라 사업 집행형 공익신탁에 대한 기부금도 세법상 기부금으로 인정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공익신탁에 대한 조세지원제도가 개선되고, 공익사업을 다양한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수탁자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익신탁에 관한 연구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