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확산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경제는 미증유의 혼란에 빠졌다. 원유가격은 급등해 산유국과 정유업계는 대박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횡재세(windfall tax)를 거론하며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산유국 러시아는 물론 전통적 미국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을 줄여 국제적 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 및 업종별로 편차를 보이지만 불황 기조는 현저하다. 미국의 트위터와 메타(페이스북),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주가 폭락으로 엉망인 가운데 구조조정을 위한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플랫폼 사업의 뒷걸음치기는 불황 장기화 전망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변수다. 국제경제 동반 침체의 장기화 조짐이 확연한 상황에서 각국의 위기관리 실패 사례도 속출한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을 비롯한 각종 스캔들에 휘말린 집권 보수당 보리스 존슨 총리가 7월에 사임하고 로즈 트러스 총리가 새로 취임했다. 트러스 총리는 보수당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낼 심산으로 강력한 감세 및 규제개혁 정책을 내놨다. 감염병과 전쟁 및 불황이 심화되는 불안한 시점에서 트러스 총리의 급격한 정책 전환에 대한 불안감이 국내외로 증폭되면서 파운드화와 영국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트러스 총리는 세금과 규제 및 간섭은 “틀렸다(wrong)”고 목청을 높이며 ‘감세를 통한 성장(growth)’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소 생뚱맞은 타이밍에 빛바랜 낙수효과(trickle down)를 우려먹는 듯한 감세정책은 영국인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트러스는 최단명 총리의 오명을 쓰고 사퇴했다. 인도계인 후임 리시 수낵 총리는 트러스가 불러일으킨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감세정책을 대폭 수정하면서 강도 높은 재정적자 축소 방안을 발표했다. 자신이 이끄는 정부는 부채 문제를 다음 세대로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도 밝혔다. 국회 의석수가 극히 열세인 상황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세제개편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역동적 혁신을 통한 성장과 세수의 선순환을 내세우며 지난 7월 21일 제55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개최해 ‘2022년 세제개편안’을 확정했다. 전년대비 기준 13조 1,000억원 감세가 골자인데, 줄어드는 세금의 절반 이상은 법인세이고 나머지는 재산 관련 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가 대부분이다. 야권은 부자감세로 몰아붙이며 거세게 반발한다. 감세정책이 총리 낙마로 이어진 영국 사태도 한국 야권의 반대 행동의 강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국회의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 구성도 지연되고 있다. 감세정책을 옹호하는 사설과 칼럼이 일부 보수적 신문에 가끔 등장하지만 전반적 분위기는 무관심 내지 부정적이다. 극심한 여소야대 의석구조에서 타이밍도 어긋난 감세 띄우기 세제개편안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다. 정부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세제 전반을 가다듬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법인세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기업의 투자 활력을 끌어올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망이 부정적인 업종에 대해서는 사업재편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새로운 활로 개척을 도와야 한다. 우리나라 법인세 세율구조는 4단계 초과누진세율로 유례없이 복잡하다.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의 경우 최고세율 25%가 적용된다. 세율구조가 복잡하고 최고세율이 지나치게 높으며, 비과세ㆍ감면은 과다하고 복잡하다. 기업계의 로비를 받은 정치권이 세법 개정에 지나치게 개입해 공제 및 감면 항목을 양산함으로써 법인세 체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역대 정부는 세수확보를 위한 조정방안으로 중복지원 배제 및 최저한세 강화를 계속했다. 다양한 세제지원 사이에서 가장 유리한 배합을 찾는 것이 기업 세무관리의 핵심 과제가 됐다. 여러 가지의 세제지원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한 세법규정은 경제적 비능률을 유발한다. 기업은 절세를 위해 가장 유리한 방안을 찾기 마련이고 국가경제 전반적으로는 비능률적 배합으로 귀착된다. 세제지원이 추구하는 국가 정책의 목표는 개별기업의 세무관리 집행단계에서 철저히 외면되고 국가재정만 낭비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기업소득환류세 운영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여러 항목 중에서 선택하도록 규정된 가운데 역선택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법인세 체계를 인수한 박근혜 정부는 당시 야당이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계속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 부총리는 인하된 3%를 기업이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할 목적으로 기업소득환류세를 도입했다. 세율 인하 효과인 3%를 활용하는 3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부족한 사용분은 세금으로 환수한다는 취지였다. 적격한 사용으로 인정되는 3가지 지출은 투자, 임금증가, 배당증가였다. 도입 당시 비중을 둔 정책목표는 투자와 임금증가였지만 기업들은 배당을 늘리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활용했다. 정책목표는 철저히 외면됐는데 정권이 교체된 이후 문재인 정부는 배당을 상생지원실적으로 대체하고 명칭도 투자ㆍ상생협력세로 개명했다. 정책목표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세제지원을 신설할 때에는 적용요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사후관리를 강화한다. 연구 및 인력개발비에 대한 세제지원의 경우는 적용요건에 대한 규제가 매우 엄격하고 사후관리도 철저하다. 그러나 투자세액 공제와 특정한 손실보전 목적의 세제지원은 규제가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중복지원 배제나 종합한도 제한이 설정되는 등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쪽으로 기업의 세제지원 선택은 몰린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조세특례를 규정한 조세특례제한법의 조세감면을 너무 많이 사용함으로써 초래되는 지나친 법인세 세수 감소를 막기 위해 감면 후 법인세액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최저한세제도가 199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최저한세 세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어 규정된다. 대기업은 과세표준 1,000억원 초과의 경우 최고세율 17%로 마무리되는 3단계 누진세율이고, 중소기업은 7%이다. 선심성 조세감면이 많을수록 최저한세의 폐해는 더욱 심각해진다. 최저한세가 적용되면 일부 세제지원을 포기하게 되는데 적용요건이 까다로운 지원부터 순차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기업에 유리하다. 적용요건이 까다롭고 사후관리가 엄격한 지원부터 포기될 것이며 이는 정책목표에 반하는 선택으로 귀결된다. 연구비(인력개발비 포함) 사례 분석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와 심준용 명지대 교수의 공동연구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최저한세 규정의 차이에서 생기는 기업의 선택을 분석했다. 연구비 세액공제는 중소기업에 한해서 최저한세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대기업은 최저한세 적용대상에 포함되는 것이다. 심 교수와의 공동연구에서는 연구비 세액공제와 기타 세액공제(투자세액 공제 등)로 나누어 분석했는데 대기업의 경우 최저한세가 적용되면 기타공제보다 연구비공제를 먼저 줄이는 현상을 밝혀냈다. 대기업이 규제가 엄격한 연구비공제를 먼저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연구비공제가 최저한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최저한세 적용대상이 되면 오히려 연구비 지출을 늘리는 현상이 발견됐다. 최저한세가 기타공제에서만 적용되는 중소기업의 경우 최저한세가 적용되면 기타공제대상 지출은 줄이고 이를 재원으로 연구비공제대상 지출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경우 연구비공제를 최저한세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양화인 연구비 지출을 구축하는 폐해를 유발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입증됐다. 비과세ㆍ감면을 엄격히 심사해 투자 및 고용효과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출항목으로 엄선하고 최저한세는 폐지하는 방향으로 감면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국채와 지방채 이자를 비과세 대상으로 정했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하는 이점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일부 지방정부가 재원을 낭비하고 파산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방채 비과세는 세금을 징수해 발행주체에 직접 교부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소득세율이 50%이고 동일한 위험 수준의 기업 채권의 시장이자율이 10%인 경우 비과세 국채나 지방채는 5% 이자율로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채권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과세채권 이자율 10%와 비과세채권 이자율 5%는 같은 수익구조다. 비과세채권 이자율을 포기한 50%는 일종의 암묵적 세금(implicit taxes)인 것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에 대한 과세특례는 암묵적 세금으로 귀착되고 경제적 비능률을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이자율 급등으로 채권가격이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약정된 이자율이 시장이자율보다 낮아지면 그 채권의 가치는 줄어들고 상당한 처분손실을 감수해야 매각할 수 있다. 보험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기채권을 국민연금공단 등에 대량으로 매도하고 있다. 국세청 예규에 따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국민연금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은 국고에 귀속되는 소득임으로 법인세가 부과되지 아니한다. 채권을 매각한 보험회사는 발생된 처분손실을 손금에 산입해 법인세를 줄일 수 있으나, 국민연금공단은 만기 상환을 받으면서 챙긴 상환이익에 대한 법인세 납세의무가 없다. 이런 비대칭 구조는 채권의 거래가격을 정상적 대칭구조 과세거래보다 높일 유인을 발생시키고 이는 국고가 보험회사에게 암묵적 세금을 보조하는 효과와 동등하다. 보험회사가 보유 채권을 법인기업에 매각하면 두 주체 간의 대칭적 법인세 부과가 이루어져 문제가 없지만, 개인에게 매각하는 경우에는 비대칭 구조가 생긴다. 현행 소득세법에서 채권 이자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과세되지만 채권의 처분이나 상환이익은 과세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2020년에 신설돼 2023년부터 시행되는 금융투자소득세에는 채권 상환이익을 포함한 매매차익 모두가 과세대상에 포함된다. 정부의 2022년 세제개편안에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2년 유예하는 개정안이 포함돼 있는데, 야당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법인세와 소득세 과세방식의 차이에 따른 비대칭적 과세로 인한 경제적 비능률은 곳곳에서 발생한다. 특정한 과세가 이의 부과와 관련된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중립적(neutral)일 경우 그 과세는 경제적 능률(economic efficiency)이 확보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조세체계 곳곳에 자리한 비능률적 요소를 찾아내 신속히 개선함으로써 세제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비과세ㆍ감면을 대폭 축소하고 세율은 낮춰 경제적 능률이 확보된 법인세제를 정착시키는 데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