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의 출발은 조세법이다. 조세는 국가재정의 중심축으로 향후 개개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조세법의 원칙은 응능부담을 토대로 한 조세법률주의, 조세공평주의가 두 기둥이 된다. 조세중립성의 원칙은 조세입법의 지향점이다. 조세중립성의 원칙은 현대 조세국가에서 쉽게 유혹에 빠지는 조세정책적 입법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다. 그러나 나라살림은 정부가 맡고 있어 정부가 예산안을 짜며 이를 뒷받침하는 세법은 정부가 입법안을 내고 정기국회에서 예산심의와 동시에 세법안을 심사하여 마무리한다. 우리나라의 법제도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게 한다. 예산과 세법은 나라살림의 근간이기 때문에 그 성질상 정부가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거 세법의 개정은 국회에서 집권당과 야당이 서로 입장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대로 공통분모를 찾아 예측가능한 세법을 내놓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정치가 ‘통합과 포용’이라는 모토는 뒷전으로 밀리고 오로지 상대를 적으로만 보는 후진적인 행태가 자리 잡고 있다. 세법의 영역 역시 예외가 없다. 무엇이 좋은 세법이냐가 아니라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우리 편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가가 기준이 된다. 정치권의 진영논리에 따른 편가르기는 우리 사회에서 분열과 질시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2023년 법인세율 인하 개정안에 대하여 정치권에서 초부자감세냐, 국민감세냐로 당치 않은 편가르기 프레임으로 몰고 간 행태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건설경기가 침체되고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늘어나자 그 대책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율을 7% 내지 34%로 낮추는 개정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야당의 부자감세 구호에 이내 주저앉았다. 인간의 이기적 속성은 세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금 부담은 남이, 그 혜택은 내가”, “부자의 재산은 내 몫을 빼앗아 간 것이니 세금으로 내놓게 해야”와 같은 구호를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권은 이러한 국민의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어도 국민개세(國民皆稅)는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건전한 납세풍토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근래 임대차 3법,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취득세 중과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다. 폭등하는 집값을 잡는다고 다주택자에 대하여 옥석을 가리지 않고 일시에 몇 배의 세금을 물렸다. 과세 대상이 된 납세자는 하루아침에 난데없는 세금 폭탄에다 졸지에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집이란 것이 주식처럼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는 자산도 아니다. 납세자에게 보유로 인한 조세의 예측가능성을 빼앗고 대응수단도 봉쇄했다. 집값 폭등을 조세로 잡겠다는 허황된 목적만이 있었을 뿐 그 결과로 납세자가 어떠한 조세행동을 하고 그 여파가 어찌될지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증가된 세수 상당 부분은 집을 빌린 전세입자, 임차인에 전가되어 이들에 조세귀착의 결과를 낳았다. 당초 지속가능한 세법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국가와 납세자에게 큰 해악을 끼친 입법재앙이었다. 세법에 대한 불신과 저항만 키웠다. 흔히 쓰는 표현으로 국회발 인재(人災)이다. 결국 몇 년을 못 버티고 수정안이 마련되고 있다.
이미 제기된 위헌소송은 여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무기력하고 눈치에 능한 헌법재판소에서는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토록 망가진 세법입법절차를 정상적으로 되돌릴 방법은 무엇인가? 정상화의 요체는 전문가가 중심에 서는 것이다. 세제와 재정운용은 국가기능 중 전통적인 전문영역이므로 어설픈 아마추어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라 하여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세제의 골간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 집단인 세제실에 정작 전문가가 드물다. 세제실의 인적 자원으로 좋은 세법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인 데다, 힘이 세진 정치권의 위세에 눌려 제 목소리 없이 마구 휘둘리고 있다. 세제는 백년의 나라살림을 보고 중심을 잡아가야 한다. 그래야 납세자가 정부를 신뢰하고 삶을 설계할 수 있다. 납세문화 업그레이드도 중요한 가치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새로운 세제입법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정부 및 국회, 나아가 각 정당에도 세제위원회가 필요하다. 현행 세제발전심의위원회는 정부 세법 개정안의 통과의례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했으며, 왜 필요한 것인지 반문해 보라. 새로운 세제위원회는 성격상 자문기구이다. 그 구성은 세법, 재정전문가이고 상시적인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논의사항은 공개되고 일반 국민이 의견을 내도록 하여야 한다. 각 세제위원회의 자문안을 두고 공개토론하면 전문가의 집단지성으로 가장 최선의 안이 도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찌 어느 특정 정당, 국회의원이 그 골간에서 벗어나는 세제입법을 할 것인가? 그 길이 오늘날 세제입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정권이 바뀌면 그 정당이 추구하는 정강정책에 따라 세법, 특히 조세정책적 입법이나 재정운용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한계를 짓는 것에 자문기구의 정착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와 진보의 정책 차이는 재정운용의 차이를 불러오지만 재정의 기반인 세법은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 오랜 세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세법에서 진영논리를 빼어 낼 상설 전문가의 자문기구 신설과 운영이 절실하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온 국민의 세금 공부가 더해진다면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