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행정심판원 입법과 조세심판 시스템의 과제

조세쟁송절차에서 행정심판의 중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조세심판원은 1975년 ‘국세심판소’라는 명칭으로 출범한 이래 거의 반세기가 되어가고 있다. 2000년 1월 ‘국세심판원’으로 개편되었고, 2005년에는 지방세 심판도 맡게되어 조세심판전치주의하에서 내국세, 관세, 지방세를 망라한 조세소송 전 단계의 필수적인 행정심판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가 공약사항으로 내건 통합행정심판원 입법추진으로 그 향후 진로가 갈림길에 서 있다. 행정심판통합기획단과 자문단이 발족하고 각종 학술대회가 열려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합행정심판원은 현재 66개인 특별행정심판기관, 57개인 일반행정심판기관, 도합 123개 기관을 통합하여 운영한다는 것이다. 행정기능이 방대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가 되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명분은 현행 행정심판체계에서의 조직, 인력의 중복 및 비효율을 개선하여 국민에게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제도로 바꾼다는 것이다. 명분도 있고 너무 세분화되어 있는 행정심판절차를 국민의 입장에서 개선한다는 점에서 원론적으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총론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론에서는 챙겨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조세심판은 거의 반세기의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재판 전 권리구제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 왔다. 1988년 법 개정으로 조세소송은 종전 고등법원, 대법원의 2심 구조에서 제1심으로 행정법원이 신설됨에 따라 행정심판도 변화를 맞았다. 종전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라는 절차구조는 이의신청 및 심사청구와 심판청구 택일이라는 구조로 바뀌었다. 행정심판의 최종절차가 택일적이라는 기형적인 것이다. 권한과 조직을 놓지 않으려는 관계 부처 간의 힘겨루기 결과이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다. 현행 조세쟁송구조에 대하여서는 그 기능이 미미해진 국세청, 감사원의 심사청구를 폐지하여 조세심판원의 심판청구로 일원화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 별다른 이론이 없다. 한편 조세심판원을 좀 더 전문화하여 상임심판관으로만 구성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하여 조세소송의 제1심 역할을 맡기고 소송절차는 2심 구조로 환원하여 조세쟁송의 단계를 단축, 단순화시켜 더욱 신속한 권리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세소송은 1988년 이전까지는 고등법원, 대법원의 2심급이었고, 독일에서도 2심급이다. 미국에서는 전심절차 없이 바로 제소 가능한 특수법원 성격의 조세법원(Tax Court)이 제1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우리 법제도 소송 제1심 역할을 하는 특허심판원, 중앙해양안전심판원, 공정거래위원회 이의신청 등 전문영역이 기능하고 있다. 납세자로서는 현재의 과세전 적부심, 이의신청, 심판청구, 제1ㆍ2ㆍ3심 절차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 ‘조속 확정’이 이상인 조세 영역에서 조세쟁송 마무리에 수년씩 걸리는 것은 납세자, 국가. 쟁송기관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만을 증가시킨다. 조세심판청구 건수는 해마다 급증하여 지난 해 처리건수가 15,000건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분야 행정심판과 비교하여도 대규모이고 납세자인 국민 다수의 이해관계가 큰 분야이다. 조세행정심판의 개선은 통합행정심판원 신설 문제와는 별개로 위에서 지적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통합행정심판원의 신설은 입법사항으로 각계의 의견수렴과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어 그림이 그려질 것이므로 아직 조세심판원이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는 정해진 바 없다. 그렇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조세행정심판기관으로 국민 속에 자리 잡은 조세심판원이 통합행정심판원에 흡수된다고 하여도, 대통합 명분인 원스톱 처리나 신속처리로 효율성 강화라는 강점은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심판기관의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조세행정심판은 위에서 지적한 전문성 강화, 심사청구 통합, 장차 조세법원으로서의 역할 수행이라는 과제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조세법원으로서의 역할은 법원조직법의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 만큼 국민과 사법부의 공감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통합행정심판원에 흡수되는 경우에도 조세심판원의 연혁과 특성, 경험에 비추어 고려할 부분이 적지 않다. 첫째는 독립성 유지이다. 현재 심판업무를 담당하는 심판부가 8개이다. 심판의 통일을 위하여 합동회의가 있지만 그 외 사안에는 각개 심판부가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 이외의 다른 절차의 추가 도입이나 개입은 독립성을 해한다. 또한 조세심판은 장기간의 경험과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므로 타 심판업무와의 순환보직은 금물이다. 둘째는 전문성 확보이다. 심판관의 자격요건은 강화하는 추세에 있지만 전원 상임심판관화가 전문성과 책임성, 효율성 확보에 필요하다. 현재의 상임, 비상임심판관 시스템에서 과연 수많은 사건을 적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이 위법, 부당한 처분으로 인하여 권리와 이익을 침해당해도 그 처분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절차와 담당기관이 복잡하고 애매하여 불편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새로운 통합행정심판원 신설 취지는 이를 한 대문, 한 지붕 아래에서 효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23개 행정심판기관의 통합은 한 가지 잣대로 묶어 처리하기란 어렵다. 그동안 이렇게 복잡한 행정심판제도가 시행되게 된 것은 행정의 다양성과 전문성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세심판은 일반행정심판과는 별도로, 나름대로 국민 속에 자리 잡아온 가장 큰 행정심판 영역인 만큼 그 본래적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접목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