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와 조세재정정책

지난 십여 년간 피케티를 필두로 하여 사에즈나 주크먼 같은 젊은 학자들이 불평등과 경제성장과의 관계를 집중 조명하여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들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한 정도를 시기별ㆍ지역별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측정했고 소득이나 자산 상위 0.1%나 0.01%에 속하는 계층에게로의 부와 소득의 집중경로와 집중도와 그 의미를 부각시켰다. 1명이 999명의 경제를 어렵게 하는 세상에 살면서 그 교묘한 체제를 시장경제 혹은 민주주의라고 착각하게 하는 현실을 제대로 분석한 것이다. 이들은 불평등 혹은 자산축적의 경로를 밝히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세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에서 경제성장률보다 자본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필연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 보여주었다. 그에 따르면 자본수익률이 높은 중요한 요인이 자본에 대한 저율과세라는 것이다. 미국의 예를 보면 근로소득세는 대체적으로 비례세적 부담구조인데 자본에 대한 저율과세 때문에 미국에서 종합소득세 부담은 소득최상위계층(상위 0.1%)에게 있어서 소득상위계층(상위 10%)보다 훨씬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상위 0.1%의 자산축적 경로는 장기자본소득에 대한 저세율, 지주회사(Holding Companies), 국제적 조세회피(조세피난처) 등의 요인이 크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노동시장의 낮은 노조조직율과 이민정책으로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유효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세제개편안을 통하여 2022년과 2023년에 이은 세 번째 ‘부자감세’ 세법개정안을 제시했다. 올해의 세법개정을 통하여 특히 상속세, 금융투자소득세 등 자산 및 자본소득에 대한 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상속세 부담 완화는 불평등, 경제의 양극화라는 이 시대 최대의 경제사회적 위기 요인을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세제개편안에서 주목할 또 다른 사안은 자본소득에 대한 과도한 혜택이다. 주주환원 촉진세제(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확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ISA 세제지원 확대 등은 근로소득과 비교할 때 이미 과도한 자본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을 더 확대하는 것으로 공정하지 못하고, 세수가 부족한 현실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정책적 판단이다. 국민경제에서 성장은 상대적으로 소비성향이 높은 소득하위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줄 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통하여 성장과 세수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2024년 정부세제개편안이 제안하고 있는 개인의 자본소득에 대한 세 부담 경감은 소득상위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것으로 성장과 세수의 선순환을 가져오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세제개편, 즉 소득과 자산 상위계층을 위한 감세정책은, 낙수효과라는 매우 가상적이고 이념적인, 경제의 주변부에 미치는 전달효과가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한다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 세계의 경험이 웅변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수상 이후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경제의 글로벌화와 이동성 있는 생산요소인 자본에 대한 과세를 지속적으로 낮추어 왔고 결과적으로 자본 및 자본소득에 대한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소득상위 및 최상위 계층의 세금을 줄여주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는 심각해지고 소득중하위계층의 실질 소득은 정체되었으며 자산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그 이상의 명백한 증거가 필요할까. 이 상황에서도 정부와 경제관료들은 낙수효과만을 반복하여 되뇌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 및 자산상위 0.1%의 자산축적 경로는 어떠할까? 세제가 허용하는 경로로는 주식 및 부동산의 양도소득을 포함한 전반적인 자본소득에 대한 우호적인 세제도 작용하지만 미국과 다른 점은 법인세의 낮은 실효세율을 들 수 있다. 미국의 법인세 체계와 달리 우리나라는 배당세액에 대한 공제를 허용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법인세를 납부한 이후에 남은 소득을 주주들에게 배당하면 이에 대하여 배당세액공제 없이 다시 한 번 주주차원에서 소득세가 부과된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를 만든다. 그 외에 법인세제에서 높게 설정된 최고세율 적용 과세표준구간, 통합투자세액공제, R&D세액공제 등이 법인세의 낮은 실효세율을 가능하게 해준다. 법인의 대주주들은 이러한 특혜를 낮은 배당성향, 느슨한 회계관행의 환경에서 매우 유리하게 즐길 수 있다. 그 외에 가업상속공제 등의 제도를 포함한 상속세제도 우리나라 소득 및 자산상위 0.1%의 자산축적 경로로 들 수 있겠다. 상법이나 공정거래법이 허용하는 경로로는 재벌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합병, 물적분할 등의 기업구조변경이 해당될 것이고, 그 외에 중요한 것으로는 다주택자들의 부동산투자, 지주회사 등을 들 수 있겠다. 지주회사는 재벌그룹의 지배체계에서 과거 순환출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피케티, 사에즈, 주크먼들이 말하는 과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는 소득최상위계층이 누리는 소득의 대부분이 자본소득이기 때문에 이동성이 강한 성격의 자본이라는 생산요소에 대하여 과세가 가능한가가 관건이다. 경제학의 전통적 시각에서는 조세경쟁(tax competition) 때문에 어렵다거나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시각이 있었으나 주크먼은 과세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정책적 선택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에 대한 과세는 바람직하고 필요하며 다만 과세의 실행을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과세의 국제적 공조와 관련하여 세계에서 지난 10년간 시도한 내용은 크게 보아 국가 간 금융정보의 교환과 다국적기업에 대한 15% 최저한세에 대한 논의가 OECD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들 수 있겠다. 국가 간 금융정보의 교환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다국적기업의 저세율국가로 이익이전은 여전하다. 이를 통하여 글로벌 법인세의 10% 수준의 손실이 생기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글로벌최저한세는 이제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주크먼은 자본소득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통한 실효성 있는 과세를 위하여 여섯 가지의 제안을 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글로벌하게 억만장자(Billionaires)들에게 2%의 자산세(순부유세)를 부과하고 다국적기업에는 법인세 25%의 최저한세를 규정하여서 빠져나갈 구멍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과세의 실효성 확보를 위하여 나라마다 출국세를 도입하고 국세기본법에 경제적 실질원칙과 남용방지규정을 빈틈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하게 자산등록제를 실시하여 과세의 기본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조세재정정책은 우리나라 소득 및 자산상위 0.1%의 자산축적 경로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세제개편 그리고 재정정책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장기적 실천을 통하여 양극화가 야기하는 불평등과 저성장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세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한데 우선적으로 조세제도에서 가장 중심에 서있는 소득세가 바로 잡혀야 한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45%로서 추가되는 지방세 부담까지 고려하면 50%에 육박해서 세율수준으로서는 부족하지 않다. 다만,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이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금융소득 등 자산소득에 대한 취약한 과세가 문제된다. 법인세의 문제는 3,000억원 이상의 매우 높은 과세표준 구간에 대하여만 24%의 법인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이며 이외에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매우 높은 수준의 투자세액공제, 그리고 R&D 세액공제 등으로 실제로 기업이 부담하는 세율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이러한 혜택은 낮은 배당성향의 한국적 상황에서 종국적으로는 기업의 지배주주들에게 귀속되게 된다. 정부는 지금까지 가업상속공제라는 명분으로 상속세를 약화시켜 왔는데 여기에 더하여 자녀공제를 대폭 늘리고자 한다. 민주당은 배우자공제를 크게 늘리겠다고 한다. 상속세의 형태가 유산세 제도인 이상 어떤 명분이든지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만 작용할 뿐 상속세 납부 후에 남은 자산이 배우자의 몫이 되거나 자녀의 몫이 되는 것은 그들이 정하면 되는 것이다. 상속세는 대를 잇는 양극화 문제의 해소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조세제도인데 이를 약화시킨다면 양극화가 대폭 강화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외에도 조세제도에 자산 및 소득 상위계층들을 위한 특별한 구멍들이 있다. 우선 국외전출자에 대한 출국세 제도를 들 수 있다. 출국세는 대주주인 거주자가 해외이주 등의 사유로 출국하는 경우 출국 당시 소유하고 있는 국내주식 등의 평가이익을 양도소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인데 2018년 1월 1일부터 적용되고 있다. 내국인이 외교부에 해외이주신고를 하는 경우 납세증명서를 외교부에 제출해야 하는데 국외전출자의 요건은 출국일 전 10년 중 5년 이상 국내에 주소 또는 거소를 둘 것, 출국일 직전 연도 종료일 현재 소유주식 등의 비율ㆍ시가총액 등을 고려하여 대주주에 해당할 것 등인데 대주주는 상장/비상장/코스닥/코넥스 구분 지분율 1~4%, 지분금액 15억~40억원을 기준으로 한다. 주식양도차익은 거주지국 과세원칙이 적용되고 부동산양도차익의 경우 부동산소재지 과세이므로 문제가 없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나라 제도는 대주주 아닌 부자들의 경우(여러 종류의 주식에 분산투자)에 해당되지 않고 상속세 이슈가 남아있어서 상당한 과세공백을 내포하고 있기에 보완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이슈는 경제적 실질원칙(실질과세의 원칙)과 남용방지규정이다. 실질과세의 원칙은 헌법상의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원리로서, 조세의 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과세요건 사실에 관하여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하는 경우에 그 형식이나 외관에 불구하고 실질에 따라 담세력이 있는 곳에 과세함으로써 부당한 조세회피행위를 규제하고 과세의 형평을 제고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규범이다. 그런데 조세법률주의와의 관계에서 실질과세원칙의 실현이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실질과세원칙을 강하게 적용하자는 측은 실질과세원칙은 조세법률주의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세법규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경제생활관계에 적용함에 있어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목적적이고 탄력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조세법률주의의 형해화를 막고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조세법률주의를 보완한다고 보고 불가분적인 관계로 파악한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실질과세의 원칙은 조세공평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조세법의 기본원리로서 과세권의 행사가 실질적인 사실관계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 이를 배제함으로써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과세권의 남용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 납세자의 재산권을 침해함으로써 과세요건 법정주의와 명확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조세법률주의와 충돌할 염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원이 후자의 입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대변하고 있어서 실질과세원칙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