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1.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답을 구하려 머리 싸매고 고민해 본 주제이다. 크게 보면, 태어나서 가정, 교육, 철학, 종교 등 성장과 배움의 과정에서 형성된 ‘본질적인 나(A)’가 있고, 취업 이후 ‘사회관계 속에서 형성된 나(B)’로 구별할 수 있다. A와 B가 같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르다. A가 B를 보면 낯설기 짝이 없고, 이방인(異邦人)과 다름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세무서장인 甲은 직장에서는 친절한 상관이지만(B), 집에 들어가면 무심한 남편이 되고, 골방에 있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고독한 인간(A)이 된다.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乙은 자기 자식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지만(A), 직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자식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끔찍하게 고문할 수도 있는 냉혈한 인간(B)으로 변할 수 있다. 분명 학교에서 복지는 세금을 재원으로 한다고 배웠지만(A), 사회에 나와서는 정작 높은 수준의 복지를 받기 원하면서도 세금 부담은 지기 싫은, 이중적이고 비양심적인 주장을 굽히지 않는 ‘눔프(Not Out Of My Pocket)’ 현상에 물든 사람(B)도 적지 않다. 환경보호를 위해 쓰레기 소각장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A) 자신의 지역에는 그런 혐오시설이 오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에 경도되어 피켓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B)도 많다.
2.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구성
세계 2차대전으로 인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많은 젊은이가 이유 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알제리 태생의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소설 이방인(L’Etranger)에서 전쟁의 발발을 막지 못한 교육과 종교 등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주인공 뫼르소(Meursault)가 A인지 B인지를 치열하게 그리고 있다(1957년 노벨상 위원회는 카뮈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면서, 인간의식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수상의 이유라고 말했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주인공 뫼르소의 살인과정에 대한 ‘사실관계’를 담고 있으며 후반부는 그에 대한 ‘재판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뫼르소의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시작한다. 의례적인 장례 행사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친구 ‘레몽’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다가 어느 아랍인과 다툼이 생겼고, 그들이 레몽을 죽이려고 하자 레몽이 건넨 권총으로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의 후반부는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재판과정을 그렸다. 하지만 재판을 담당한 판사나 검사는 주인공 뫼르소가 ‘모친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을 경홀히 여긴 점, 장례 중인데도 여자친구 마리(Marie)와 희희낙락거렸던 점, 왜 총을 쏘았냐는 질문에 햇살이 너무 눈에 부셔서 그랬다고 대답하는 점 등을 보고, 뫼르소를 살인이 나쁜 것을 알면서도 살인을 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정신장애자(Sociopath)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뫼르소가 분명 아랍인을 고의로 살해한 것이라고 확신한 뒤 사형선고를 한다. 소설 속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진짜 뫼르소(A)’가 아니라 법과 제도와 주변인들이 만든 ‘가짜 뫼르소(B)’라고 본다. 어쩌면 뫼르소가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한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자질과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리라.
3. 이방인 ‘뫼르소’에 대한 재판과정
소설 이방인의 재판과정을 현대 형법의 시각에서 조명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즉, (1) 뫼르소의 행위가 ‘정당방위’인가 아닌가의 문제 (2) 정당방위라고 해도 그 ‘방위의 정도가 과한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뫼르소의 행위는 의도적 살인은 아니며 이는 사형이 아닌 몇 년 징역형 정도로 끝날 사안이다. 그런데 뫼르소에 대한 재판부의 편견이 사실관계를 왜곡하였고 그 결과 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카뮈가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구상했던 시기는 세계 2차대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같은 종교를 지닌 국가와 정치지도자들이 수많은 젊은이를 서로 죽이는 곳으로 몰아넣고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현실에 분노했으리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사회라 하는 유럽을 지탱한 핵심 요소인 교육과 종교조차 전쟁을 막지 못했다(세계 2차대전 당시의 유럽 사회보다 더 성숙한 현재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드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인간이란 전쟁 발생도 막지 못하는 교육과 종교 등 사회관계 속에 길들여진 인간(B)인지 아니면 사회관계망과 상관없는 인간(A)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사회제도에 길들여진 인간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며 인간은 행동하고 살아가는 주체라는 입장을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라고 부른다. 키에르 케고르, 카뮈, 도스토예프스키, 사르트르가 이를 따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4. ‘가짜 뫼르소’와 ‘만들어진 실질’
생뚱맞은 접근일지는 모르겠으나, 세법의 시각에서 소설 ‘이방인’을 분석하면 나름의 의미가 있는 몇 꼭지를 발견할 수 있다. 현행 세법 구조를 보면 납세자의 납세의무는 그 납세자가 알아서 그가 납부할 세액을 결정하고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단, 상속세와 증여세는 정부가 조사하여 세액을 결정한다). 그 뒤 정부는 납세자의 신고서를 검토한 뒤 오류 등을 발견하면 세무조사를 통해 이를 바로 잡는다. 그 대표적 수단은 국세기본법 제14조의 실질과세원칙(Substance over Form Principle)이다. 즉, 소득의 귀속자가 명의일 뿐이고 사실상 귀속되는 자가 있다면 사실상 귀속되는 자에게 세금을 물려야 하고, 소득의 계산은 실질 내용에 따라 계산하여야 하며, 세법의 혜택을 받기 위해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 경우에는 이를 무시하고 직접 거래를 한 것으로 보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실질과세원칙이란 “조세의 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과세요건사실에 관하여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하는 경우에 그 형식이나 외관에 불구하고 실질에 따라 담세력이 있는 곳에 과세함으로써 부당한 조세회피행위를 규제하고 과세의 형평을 제고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고 밝히고 있다(대법원 2008두8499, 2012.01.19., 판결). 다 좋은 말인데, 정작 실질(實質)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세법이나 판례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부당행위계산 규정의 ‘특수관계인’이나 ‘시가’ 규정을 묶어서 이것을 실질이라 간주하여 과세하고 있을 뿐이다. 즉, ‘본래의 실질’이 아니라 ‘만들어진 실질’을 실질이라고 보고 세금을 부과하고 꼴이라고 본다. 이는 마치 뫼르소의 재판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가짜 뫼르소’를 대상으로 재판하며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살인행위를 왜곡하여 고의적인 살인행위로 보아 사형선고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로마법 격언에 소송절차에 있어서 감정적 편견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누구도 타인의 증오로 짓눌리지 말아야 한다(Non debet aliquis alterius odio praegravari)”고 쓰여 있다. 새겨 둘 말이다. 실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와 규정이 없이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면, 납세의무 이행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제 논에 물 대듯이’ 실질과세원칙을 마구 끌어들이고, 납세자는 원래 세금을 안내려고 한다는 부당한 선입견으로 무장하여, 선량한 납세자에게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뫼르소를 사형시킨 재판관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듯이 무리한 과세를 한 공무원 역시 처벌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처벌 규정조차 없기 때문이다. 납세자가 억울하다고 항변하면 과세관청은 ‘세법 규정대로’ 했다고 차갑게 반응하는 것이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납세자가 성실하다고 전제하고 있는 세법 규정( 국세기본법 제15조 신의성실의 원칙)을 내놓고 무시하는 꼴이다. 세상의 말처럼 ‘아 다르고 어 다른 일’이 수두룩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법률조문 해석에 천착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가산세율 40%를 거침없이 부과하곤 한다. 성실한 납세자가 생각하는 실질에 따라 세액을 계산하여 납부하였으나 과세관청의 판단과 차이가 있어서 추가로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사유가 발생하였을 경우, 가산세의 부과는 과감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성실한 납세자에게는 ‘무과실 무가산세 원칙(No Fault No Penalty Principle)’의 적용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성실한 납세자는 본질상 성실을 주된 성품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의 본질은 탈세목적과는 상관없는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
5. 명확한 사실관계 확정을 위한 제언
사실관계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확정하는 것이야말로 세금분쟁을 막는 첩경이다. 다시말하면 ‘甲 = A’, 또는 ‘乙 = B’라는 등식이 확정되어야 한다. 사실관계만 확정되면 그 이후의 법률적용에는 어려움이 없다. 세법이 자세하게 논리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대한 진실은 납세자만 알고 있다. 그에게 불리한 사실은 그의 조력인(변호사, 세무사 등)에게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과세관청은 세금징수 목적으로 위 등식을 확정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금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불필요한 분쟁 발생을 피하기 위해 중립적 위치에 있는 제3자가 다툼이 있는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이와 같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세법에 ‘대체적 분쟁 해결 방안(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다. 이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사실관계에 있어서 실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분석하며 그 값을 계산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방안으로 납세자와 과세관청 사이의 협상, 조정, 중재, 화해 등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카뮈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 작가이다. 소설 ‘이방인’ 속의 뫼르소는 단지 개별 작품의 주인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조리’를 명료하게 인식한 인간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법과 과세관청은 ‘실질’이라는 안경만 쓰면 아무리 복잡한 경제 현상이라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만들어낸 실질’이 ‘본질적인 실질’을 쫓아내는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형법은 인간에 대해 육체적 사형을 주문할 수 있지만 세법 역시 인간에 대해 경제적 사형을 주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이 아닌 실질에 따라 과세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