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상속세제는 35년 전인 1990년대에 현행의 틀이 만들어진 이래 현재까지 그 골격이 유지되고 있다. 이제 ‘구시대적 유물’에 가까울 정도로 낡았다. 그래서 한국의 상속세는 황금알 낳는 기업이 도산할 정도로 높다. 2020년 10월 타계한 이건희 전(前) 삼성그룹 회장 유족의 상속재산은 26조원, 상속세는 12조원이었다. 같은 조건의 상속에서 독일은 5조 4,592억원(한국의 45.5%), 영국은 3조 6,399억원(한국의 30.3%)으로 세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재무장관, 장바티스트 콜베르(Jean Baptistie Colbert)의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수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업인이 평생 일군 청년들의 일터, 기술과 경영노하우를 가진 강소기업이 과중한 상속세 때문에 폐업 또는 매각되거나 사모펀드의 먹이가 되는 국가적ㆍ개인적 손실은 막아야 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2000년부터 50%로서. 일본 55%에 이어 세계 2위다. 최대주주 할증 평가 20%를 감안하면 60%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된다. 높은 상속세율은 소득세 포탈이 만연했던 과거에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포탈한 소득세의 일부를 사후(死後)에 상속세로 거둬들인다(상속세의 소득세 정산론)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소득세의 성실신고납부가 정착된 현재는 높은 상속세율이 오히려 상속세와 소득세의 ‘이중과세’를 심화시킨다. 세계 각국이 투자 유치를 위해 상속세율을 꾸준히 내리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이 26%에 불과한데,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서 국제 추세와 역행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운 무한경쟁시대에 한국만 높은 상속세율을 고집하면 내외국인 모두가 국내 투자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또한 프랑스(45%), 미국ㆍ영국(40%), 독일(35%)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높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을 OECD 회원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26%) 수준인 30%로 낮춰야 한다. 한국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25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의 급격한 상승 등 ‘세원(상속세 과세대상)’은 크게 늘었는데, 높은 상속세율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함에 따라, 총 세수대비 상속세비율이 OECD 평균의 4배에 이른다. 그리고 한국에만 있는 최대주주 소유 주식 20% 할증평가는 폐지해야 한다. 할증평가할 경우 상속세율이 60%가 되는데, 세금이 아닌 ‘징벌’이 된다. 최대주주의 경영 프리미엄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최대주주 20% 할증평가는 과대평가에 해당한다. 한국의 높은 법인세율과 상속세율이 기업과 부자를 해외로 내모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가 공개한 2024년 ‘개인자산 이주보고서’에 따르면 미화 100만달러(약 13억 8천만원) 이상 보유한 부자들이 타국에서 6개월 이상 머문 경우를 기준으로, 한국의 고액자산보유자 순(純) 유출 인원은 지난해 1,200명으로 중국, 영국, 인도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국부 유출을 막으려면 ‘세율’을 낮춰야 한다. 기업과 부자들이 사업과 재산을 정리해 한국을 떠나면 생산과 투자, 소비, 일자리, 세금 모두가 날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누가 일구고, 세금은 누가 내나?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와 내년 예상 경제성장률이 1%대의 저성장 늪에 빠져있다. 복합 경제위기는 높은 상속세율과 법인세율이 주요 원인이다. 기업의 끊임없는 혁신 투자와 함께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세제로 사람과 기업, 돈이 한국으로 모이는 환경 조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 상속세제의 문제점은 세율만이 아니다. 먼저,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이 현재 30억원 초과인데, 독일은 402억원(26백만유로) 초과, 일본은 40억원(3억엔) 초과분부터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한국의 현행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은 25년 전인 2000년에 정해진 것이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9배 증가했다. 그동안 주택가격 상승과 경제성장, 물가상승 등을 종합 고려해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적어도 ‘90억원 초과’로 인상해야 적정한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은 1997년부터 28년 동안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상속공제’로 상속세 부담을 늘려왔다. 자녀 일괄공제 5억원은 서울 아파트 50평형이 5억원 정도였던 1997년에 설정한 것이 현재도 그대로다. 당시엔 소수 부유층이 내던 상속세를 이제 중산층도 낸다. 매년 물가상승률을 상속공제에 반영해온 미국의 지난해 상속공제 한도는 무려 1,292만달러(한화 약 184억원)로 한국의 18배가 넘는다. 국내총생산(GDP), 1인당 국민총소득(GNI) 등 한국과 미국의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한국의 일괄 상속공제 한도가 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수도권 소재 중산층 아파트의 시세(약 30억원)를 감안할 때, 중산층이 상속세 걱정 없이 주거안정을 누리려면, 일괄 상속공제를 현행 10억원에서 적어도 30억원(자녀 1인당 5억원, 배우자 20억원)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은 일괄 상속공제를 자녀 1인당 5억원, 배우자 10억원, 야당은 자녀 8억원, 배우자 10억원을 제안했다. 여야가 제안한 금액은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효과는 있으나, 이들이 상속세 걱정 없이 주거안정을 누리기에는 부족하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이라 한다)상 ‘배우자상속공제액’은 배우자 법정 상속금액을 한도로 실제 상속받은 금액을 공제하되, 최대 30억원을 한도로 한다. 이 금액이 일괄 배우자상속공제금액 5억원에 미달할 경우 5억원을 배우자상속공제액으로 한다.
[사례] 남편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고, 상속재산이 35억원(부동산 : 20억원, 예금 : 15억원)이며,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재산가액이 20억원인 경우, 여야 제안 상속세제 개정안별 상속공제금액과 부담할 상속세액을 계산한 결과는 다음 표와 같다.
주1) 상속인과 법정상속지분 : 배우자 : 1.5 자녀 A : 1 자녀 B : 1 주2) 배우자 법정상속지분금액 : 35억원 × 1.5 / 3.5 = 15억원 주3) 현행 상증세법 제26조의 상속세율, 기타 상속세 계산은 현행 상증세법 적용함.
한편, 피상속인 남편이 생존 시, 이혼하면서 민법 제839조의 2 제3항에 따른 ‘재산분할청구권’을 행사해 판결에 의해 재산분할금을 받는 경우 아내가 남편 명의 재산을 일구는 데 기여한 지분을 찾아오는 것으로 보아 금액의 규모에 관계없이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예컨대 남편 보유 자산이 140억원인 경우 재산분할청구 소송에서 아내 지분이 1/2로 판결받은 경우 아내가 70억원(140억원 × 1/2)을 재산분할금으로 가져와도 증여세 한 푼 내지 않는다. 그러나 현행 상증세법에 의하면, 상속의 경우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금 70억원보다 10억원이 적은 법정상속지분 60억원(140억 × 1.5 / 3.5)을 상속받는 경우에도 배우자상속공제 한도 30억원 초과에 해당하는 상속세 10억 4,000만원을 내야 한다. 부부 간에 동일금액의 자산이 이전되는 경우 이혼 때는 재산분할금 전액이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데 비해 상속의 경우 배우자상속공제 한도 때문에 고액의 상속세를 내게 된다. 이는 불공평 세제이고 자산가의 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다행히 여야 합의에 따라 배우자 상속공제 시, 배우자 법정상속지분 한도와 최대 30억원 한도가 모두 폐지된다. 배우자 상속은 부부가 공동으로 이룬 재산 중에서 자기 몫을 찾아오는 것이므로 한도 제한 없이 실제 상속분 전액을 공제받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이혼으로 ‘재산분할청구권’을 세금 절약 수단으로 이용할 요인이 없어지게 됐다. 한편 현행 상증세법에 따르면 부부 간에 10년간 6억원 이하를 증여받는 경우 증여세를 과세하지 아니한다. 이 규정은 그대로 유지되는지, 아니면 상속과 같이 부부 간 증여도 금액 제한 없이 증여세가 비과세되는지 불명확하다. 정부는 부부 간 상속을 한도 제한 없이 상속공제해주는 법 개정과 함께 부부 간 증여에 대한 과세쟁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기업상속에 있어 근본적 문제인 ‘미실현이득(상속재산 평가액)’에 상속세를 과세함에 따라 고액의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해 우수 중소ㆍ중견기업들이 폐업 또는 매각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해결해야 한다. 가업을 물려받은 후, 잘 운영하고 있는데 50 ~ 60%의 상속세를 내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기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정부는 상속을 부(富)의 대물림으로 볼게 아니라 ‘제2의 창업’으로 보고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기술과 경영노하우를 가진 기업들이 상속세로 인해 좌초하지 않고 살아남아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현행 상증세법에는 가업상속 시, 가업경영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원을 한도로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사전, 사후관리 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이를 적용받는 기업이 연 100여 개에 불과하다. 독일에선 연 2만개 이상 기업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는 데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은 상속인이 기업을 유지하면서 세금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동안에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후 가업을 접고 사업용 상속자산(주식 포함)을 매각, 현금화하는 시점에 피상속인이 사업용 자산을 취득한 날부터 상속인이 이를 양도할 때까지 발생한 자본이득에 대해 상속인에게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세수 일실이 없으면서 기업을 살리는 일거양득의 이점이 있다. 현재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국이 늘어나면서 상속세 없는 국가가 전체 회원국의 절반인 19개국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1950년 이래 75년간 유지해온 상속세과세방식인 ‘유산세과세방식’을 ‘유산취득세과세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 미국, 일본, 덴마크(4개국)가 채택하고 있는 유산세과세방식은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전체를 하나의 과세단위로 하여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유산취득세과세방식은 상속인별로 실지 상속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해당 세율을 적용하고 상속공제액도 개인별로 적용한다. 유산취득세과세방식이 ‘실질과세’와 ‘공평과세’ 그리고 ‘응능부담’의 제반 조세원칙에 맞고, 국제적인 추세(Global Standard)에도 부합한다. 정부는 유산취득세과세방식 도입을 위한 상증세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공청회를 거쳐 5월 국회에 제출, 연내에 입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유산취득세과세방식은 상속인이 실제 취득한 상속자산 파악을 위한 국세청 전산시스템 정비 등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2028.1.1. 이후 상속분부터 적용한다. 정부가 지난해 정기국회에 제출했던 상속세제 개편안은 세계적으로 높은 최고세율 50%를 선진국 수준인 40%로 인하하고, 자녀일괄 상속공제를 1인당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인상하는 등 시급한 최소한의 정상화였다. 그러나 거대 야당은 여기에도 ‘초(超) 부자감세’ 프레임을 씌워 전부 무산시켰다. 이제 ‘조세원칙’과 ‘국제추세’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상속세제의 정상화가 부자감세 논리에 매몰되거나 표 사냥 도구로 활용되는 등 상속세가 더 이상 정치적 ‘희생양’이 돼선 안 된다. 2023년 상속세 세수는 12조2,900억원(과세인원 : 1만 9.944명)으로 국세 335조 7,000억원의 3.7%에 불과하다. 상속세는 세수비중이 낮지만,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 방지, 부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 도구, 기업의 연속성 보장 등 ‘정책세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속세율 인하가 전제돼야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한국 상속세제 개편의 핵심은 ‘세율 인하’에 있다. 정부와 여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우리나라 상속세율 인하에 왜 침묵하고 있는가? 이제 해외 투자유치, 국내 부자들의 외국 탈출 방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과 직접 관련 있는 상속세율 인하를 ‘부자감세’라는 ‘프레임(Frame)’에 가둬둬선 안 된다. 정부는 우리나라 상속세율의 적정성 검토를 위해 여야, 학계, 국책연구기관, 조세전문가단체 등으로 구성된 ‘상속세율 연구 T/F팀’을 구성, 여기서 도출된 적정 상속세율을 상증세법에 반영하는 상속세율 정상화방안을 제안한다.
구분 | 일괄 상속공제 한도 | 배우자 상속공제 한도 | 실제 상속공제금액 | 상속세 과표 | 세율 | 부담할 상속세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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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배우자 | 자녀 | 배우자 | |||||
현행 | 5억원 | 5억원 | • 법정상속지분을 한도로 실제 상 속받은 금액 • 30억원 한도 | 5억원 | 15억원 | 15억원 | 40% | 3억 2,600만원 |
여당 개정안 | 자녀 1인당 5억원 | 10억원 | •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금액 • 배우자 법정상속 지분 한도와 30 억원 한도 : 폐지 | 10억원 | 20억원 | 5억원 | 20% | 9,000만원 |
야당 개정안 | 8억원 | 10억원 | 8억원 | 20억원 | 7억원 | 30% | 1억 5,000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