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부과처분에서의 입증책임 - 서울고등법원 2025.2.7. 선고 2023누71997 판결(이하 “대상판결”)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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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안의 개요
1. 기본적 사실관계
원고는 전자담배 수출입업을 영위하는 업체로 해외 수출사로부터 전자담배 원료인 액상 니코틴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업체이다. 전자담배 원료는 중국의 니코틴 생산업체(이하 “이 사건 제조사”라고 한다)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해외 수출사는 이 사건 제조사에서 생산한 니코틴 액상을 원고에게 수출하였다. 원고는 수입과정에서 수출사에서 소개한 대로 전자담배 원료(이하 “이 사건 수입물품”이라 한다)는 연초의 대줄기에서 추출되었다고 신고하여, 구 개별소비세법에 따라 담배사업법 제2조에 따른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1) 구 국민건강증진법상 담배사업법 제2조에 따른 담배에 부과되는 부담금2)을 신고ㆍ납부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 사건 수입물품 통관 과정에서 연초의 잎에서 추출했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있는 세관당국에 시정통보를 하였다. 세관당국은 이에 따라 전자담배업체들에 대한 관세조사를 한 결과 이 사건 제조사가 제조한 니코틴은 연초의 잎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면서 원고에게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고, 이를 보건복지부(피고)에게 통보하여 보건복지부도 원고에게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그런데 관세조사 과정에서 세관당국과 원고 사이에 이 사건 수입물품의 쟁점원료 제공 근거 문서(이하 “이 사건 주요 서증”이라 한다)와 관련하여 다소간의 혼동이 있었고, 이와 관련하여 세관당국과 원고 사이에 다소간의 주장과 진술이 번복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세관당국은 이 사건 제조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니코틴을 제조하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 없이, 오로지 진술증거 및 연초 대줄기를 이용한 니코틴 제조의 국내 경제성 분석만을 기초로 개별소비세를 부과하였고, 피고도 동일한 근거로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1) 구 개별소비세법 제1조 제2항 제6호. 2020.12.22. 법률 제176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개별소비세법은 담배사업법상 담배만을 과세대상으로 규정하여 연초의 잎 외의 부분으로 만든 담배에 대해서는 과세근거가 없었다. 2) 국민건강증진법 제23조 제1항, 담배사업법 제2조 제1호. 2021.7.27. 법률 제182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국민건강증진법은 담배사업법상 담배만을 과세대상으로 규정하여 연초의 잎 외의 부분으로 만든 담배에 대해서는 과세근거가 없었다.
2. 관련 법령
- (1) 담배사업법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담배”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
- (2) 구 국민건강증진법(2021.7.27. 법률 제182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3조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의 부과ㆍ징수 등】 ① 보건복지부장관은 제조자등이 판매하는 「담배사업법」 제2조에 따른 담배(「지방세법」 제54조에 따라 담배소비세가 면제되는 것, 같은 법 제63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에 따라 담배소비세액이 공제 또는 환급되는 것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 및 제23조의 2에서 같다)에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부담금(이하 “부담금”이라 한다)을 부과ㆍ징수한다. 1. 궐련: 20개비당 841원 2. 전자담배 가. 니코틴 용액을 사용하는 경우: 1밀리리터당 525원 나. 연초 및 연초 고형물을 사용하는 경우: 1) 궐련형: 20개비당 750원 2) 기타 유형: 1그램당 73원 (이하 각 호 생략)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민사소송법 규정이 준용되는 행정소송에서의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민사소송 일반원칙에 따라 당사자 간에 분배되고, 항고소송의 경우에는 그 특성에 따라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피고에게 그 적법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이 있다. 다만 피고가 주장하는 일정한 처분의 적법성에 관하여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일응의 증명이 있는 경우에는, 그 처분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고, 이와 상반되는 예외적인 사정에 대한 주장과 증명은 그 상대방인 원고에게 그 책임이 돌아간다”고 한 대법원 2016.10. 27. 선고 2015두42817 판결을 인용하면서, 이 사건 제조자는 이 사건 주요 서증에 따라 전자담배 원료를 제조한다고 한 바 있는데, 이 사건 주요 서증에 언급되어 있는 “연경(烟梗)”이란 주맥과 지맥을 의미하고, 원고가 농가구매영수증, 중국 농민 성명서 및 진술서, 이 사건 제조사의 과세기관 제출자료, 이 사건 제조사의 전 직원이 작성한 사실확인서 등을 제출하였으나 ① 원고가 애초에 이 사건 주요 서증 외에 다른 원료공급원을 언급한 적이 없는 점, ② 이 사건 제조사의 생산공정도 및 홈페이지 등에 언급되어 있는 문언에 비추어 원고가 제출한 위 자료들이 니코틴 추출을 위한 원재료 구매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아니면 농자재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재료 구매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점, ③ 원고 제출 영수증 중 일부는 이 사건 이후에 작성된 것이고 다른 영수증은 그 출처가 불분명한 점, ④ 중국 농민 성명문 및 이 사건 제조사 직원 진술서는 이 사건으로 문제가 발생한 이후 작성된 것이어서 그 기재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를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제조사가 해당 원재료로 니코틴을 제조한 것이 아니라 다른 농자재 제품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원고의 제출 증거들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기타 원고가 제출하는 다른 증거들은 모두 피고 측이 제출하는 일부 원고에게 불리한 간접증거들에 배치되며 이 사건 이후에 작성된 것들이라는 이유로 신빙성을 배척하면서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원심판결에 위법이 없다고 하면서 항소를 기각하였다.
Ⅱ.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조세소송 입증책임 일반원칙
입증책임이란 요증사실의 불확정에 따른 불이익을 어떤 당사자에게 부과할 것인지와 관련된 문제로서 그 분배는 공평의 원칙과 정책적 고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3) 이러한 입증책임은 소송에서 어느 요증사실의 존부가 확정되지 않았을 때 당해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어 법률판단을 받게 되는 당사자 일방의 불이익을 의미하는 객관적 입증책임과, 이러한 불이익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그 당사자가 요증사실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증거를 제출할 책임을 의미하는 주관적 입증책임으로 구분되기도 하나 실무에서는 특별히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4) 대법원은 “행정처분의 위법을 주장하여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위 항고소송에 있어서는 그 처분이 적법하였다고 주장하는 피고에게 그가 주장하는 적법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이 당원판례의 견해이고, 그 견해를 행정처분의 공정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위 입증책임과 처분의 공정력은 전연 별개의 문제이다5). 또 조세법정주의 하의 우리나라 세제에 있어서는 과세의 적법 여부를 성문의 세법을 떠나 국가재정적인 견지에서나, 세정의 실지에 맞추어 다룰 수는 없을 것(위법한 과세처분이 공공복리에 적합한 처분이 될 수 없다)”이라고 판시(대법원 66누134, 1966.10.18., 판결)한 이래 처분의 적법성은 과세관청이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학설 역시 종래 행정행위가 공정력이 있다는 견지에서 적법ㆍ유효하다는 추정을 받는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현재에는 처분청이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ㆍ입증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통설을 이루고 있다.6) 다만, 피고가 주장하는 일정한 처분의 적법성에 관하여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일응의 증명이 있는 경우에는, 그 처분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고, 이와 상반되는 예외적인 사정에 대한 주장과 증명은 그 상대방인 원고에게 그 책임이 돌아간다(대법원 2015두42817, 2016.10.27., 판결). 3) 김동복, “조세소송에 있어서 입증책임에 관한 연구”, 조선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12면. 4) 김동복, 위의 논문, 15-17면 참조. 5) 과거 대법원은 적법성추정설에 따라 행정처분에 공정력이 있음을 이유로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예도 있다고 한다(길용원, “조세소송상 증명책임에 관한 연구”, 광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68면; (대법원 62누157, 1962.11.1.) 판결). 6) 임승순, 『조세법(제20판)』, 박영사, 2020, 357면.
2. 일응의 증명에 관한 논의
- (1) 일응의 증명에 관하여 위와 같이 대법원은 과세관청의 “일응의 증명”이 있는 경우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증명책임을 납세의무자(원고)에게 전환한다. 즉, 일응의 증명이란 과세관청이 주장하는 해당 과세처분의 적법성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도로 일응 증명이 된 경우에는 그 과세처분은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와 상반되는 주장과 증명의 부담이 상대방에게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7) 구체적으로 일응의 증명이 무엇인지 여부가 문제되는데,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판례를 발견하기는 어려우나 학설상으로는 경험칙 가운데 십중팔구는 틀림없는 정도의 신뢰성이 높은 경험칙을 적용한 사실상의 추정을 뜻하는 것으로서 흔히 되풀이될 수 있는 정형적이고 규칙적인 사안이 문제된 경우에만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한다.8) 이에 대해서는 일응의 증명이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학설상9)으로는 판사의 심증이 형성되는 과정, 즉 자유심증의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실상 추정이라는 견해, 증명책임이 전환되는 것이라는 견해, 증명책임이 경감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 사실인정의 이름으로 법적 가치판단을 하고 그 법적가치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의 증명책임을 당사자 간에 분배하는 개념으로 보는 견해(법적가치설)가 존재한다고 한다. 생각건대 입증책임 자체는 과세관청에게 남아있는 것이나, 특정한 경우에 과세관청의 주장사실이 상당한 정도가 되어 어느 정도 입증된 것으로 보는 한편 상대방인 납세의무자에게는 반증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추정설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다수설도 마찬가지 견해라고 한다.10) 일응의 증명이 무엇인지 조금 더 쉽게 예를 든다면 단언할 수 없는 단순한 경험칙(“술을 마시면 지적능력이 떨어진다”)이 있고, 반드시 규칙성이 발견되는 자연법칙이 있다면, 일응의 증명이 있다는 것은 그 경험칙과 자연법칙 사이에 존재하는 법칙 중 특별히 법칙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입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11) 예를 들어 법원은 국세기본법상 2차납세의무가 있는 과점주주라는 사실은 과세관청에게 입증책임이 있으나, 과세관청으로서는 주주명부나 법인이 과세관청에 제출하는 주식이동상황명세서 또는 법인등기부등본 등에 의하여 과점주주라고 볼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면 일응의 입증을 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제2차납세의무자로서의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자가 그 주주 명의를 도용당하였다거나 실질적 주주가 아니고 형식상의 주주에 불과하다는 등 제2차납세의무자가 될 수 없는 사실을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92누10906, 1992.12.11., 판결). 즉, 실제로 주주라는 사실은 반드시 주주명부나 주식이동상황명세서에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증명되는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서류들에 주주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일응 주주인 것이 증명이 되고 과세관청은 입증책임을 다하게 되며, 만일 납세의무자가 주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상의 추정을 번복할 만한 특별한 사정, 예컨대 실질주주가 아니라는 사실12)을 입증하여 과세관청의 일응의 증명을 뒤집을 만한 사실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7) 길용원, “조세소송상 증명책임에 관한 연구”, 광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116면. 8) 길용원, 위의 논문, 116면; 정선주, “법률요건분류설과 증명책임의 전환”, 『민사소송』 제11권 제2호, 한국민사소송법학회, 2007, 145면. 9) 우리나라에는 크게 논의되는 것은 아니나, 일본에서 이러한 견해 대립이 있다고 한다(길용원, 위의 논문, 117-118면 참조) 10) 길용원, 위의 논문, 117면. 11) 길용원, 위의 논문, 116-117면 참조. 12) 주주권과 관련하여 형식설을 취한 (대법원 2015다248342, 2017.3.23.) 판결 이후에도 대법원은 간주취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과점주주가 되면 해당 법인의 재산을 사실상 임의처분하거나 관리ㆍ운용할 수 있는 지위에 서게 되어 실질적으로 재산을 직접 소유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담세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므로, 위 조항에 의하여 취득세의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과점주주에 해당하는지는 주주명부상의 주주 명의가 아니라 주식에 관하여 의결권 등을 통하여 주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여 법인의 운영을 지배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18두49376, 2018.11.9., 판결).
- (2)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에서 증거자료들이 있는 경우와의 구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응의 증명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학설상 다양한 논의가 있으나, 법원은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에 증거자료들이 있는 경우에 과세관청의 증명책임을 완화할 때 ‘일응의 증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서울고등법원은 E가 아일랜드 거주자로서 수익적 소유자로서 그 사용료소득의 귀속자이어서 한-아일랜드 조세협약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과세관청인 피고가 과세요건 사실인 원고의 이 사건 사용료소득에 대한 법인세 원천징수의무의 존재를 증명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나, 다만, 일반적으로 과세관청이 국제거래로 발생한 국내원천소득의 과세와 관련된 자료를 입수하는 데에는 납세자에 비하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점, 납세자가 거래구조를 스스로 명확히 밝히지 않는 상태에서 과세관청으로 하여금 당해 소득의 최후의 실질적 귀속자를 알아내어 과세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사자 사이의 형평이나 증명의 난이도 등을 고려할 때 불합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 점, 조세협약의 적용 및 그 적용요건을 충족하는 사실들의 주장 및 증명은 납세자가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 점, 과세관청에 소득의 실질적 귀속자에 대한 증명을 엄격하게 요구한다면, 최종적인 지배 법인이 여러 나라를 거쳐 여러 개의 도관회사를 두는 등으로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도록 한 경우에는 당해 거래에 도관회사가 이용된 사실, 납세자가 외국법인에 국내원천소득을 지급한 사실이 명백한 경우에도 그 소득에 대한 과세를 할 수 없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구체적 증명의 정도에 비추어 과세관청의 증명책임이 완화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의 경우, E가 아일랜드의 거주자라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피고가 E가 도관회사에 해당하고, E의 배후에 이 사건 사용료 소득의 실질적인 귀속처로서의 실체를 가진 외국법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일응 과세요건 사실을 증명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이와 같은 상태에서 원고가 한ㆍ아일랜드 조세협약상의 비과세 혜택을 받고자 할 경우 원고로서는 E가 이 사건 사용료 소득의 수익적 소유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서울고등법원 2017.1. 25. 선고 2016누40926 판결) 일응의 증명을 반드시 고도의 경험칙이라는 의미에서만 찾지 않고, 과세자료의 소재가 납세의무자에게 있다면 과세관청에게 그 증명정도를 완화시켜주는 증명방법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위 사안에서 본래 과세관청이 E가 수익적 소유자인지 여부를 입증하여야 타당하나, 위 서울고등법원은 과세관청이 E로부터 다른 곳으로 소득의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있고 E를 도관회사로 하여 다른 실질적인 귀속처인 외국법인이 존재한다는 정도만 입증한다면, 일응 과세관청의 과세요건사실이 입증되었고, 이후 사실 E가 수익적 소유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입증하여 과세관청의 일응의 입증을 번복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13) 그러나 상당한 정도의 경험칙에 의한 일응의 증명과 과세관청의 증명정도를 경감한 뒤 이루어지는 일응의 증명은 일응의 증명을 요하는 이유가 분명히 구분된다. 위에서 본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경우, 상당한 정도의 입증이 되어 자연법칙까지는 아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웬만하면 인정되는 법칙(예컨대 주주명부에 기재되어 있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이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사실관계의 대부분은 납세의무자가 지배하는 영역 안에 있는 것이어서 과세관청으로서는 그 입증이 곤란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 입증의 곤란이나 당사자 사이의 형평 등을 고려하여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입증케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납세의무자에게 입증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 부합한다(대법원 2004.9.23. 선고 2002두1588 판결)는 법리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위 서울고등법원의 법리는 과세관청이 상당한 정도의 입증을 하였다고 본 것이 아니라, 아예 과세관청의 증명정도를 경감하거나 그 증명책임의 소재를 납세자로 바꾸어 과세요건사실에 대하여 납세자가 적극적으로 입증하게끔 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위와 같이 사실관계의 대부분이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에 있다는 이유로 과세관청의 증명정도를 경감하여 일응의 증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아닌, 상당한 정도의 경험칙상 대부분의 경우, 과세관청이 주장한 사실이 있으면 그러한 사실이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같은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응의 증명’이 있다고 하여 한정적으로 해석하기로 하고, 아래 평석에서도 이를 구분하여 본다. 13) 이창희, 『세법강의(제16판)』, 박영사, 2018, 80면은 요건사실을 입증할 자료는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에 속하는 경우, 국가가 의심할 바 없는 분명한 입증을 하기는 어려우므로, 입증책임의 정도가 완화되어 요건사실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간접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일응의 증명을 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3. 대상판결의 평석
- (1) 일응의 증명이 되었는지 여부 대상판결에서 세관당국이 증명해야 하는 과세요건 사실은 이 사건 수입물품의 쟁점원료가 연초 잎에서 추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세관당국은 이 사건 주요 서증이 이 사건 수입물품 쟁점원료 공급 근거 계약이라는 전제하에 해당 서증에 기재된 문언인 연경(烟梗)이 담뱃잎의 주맥ㆍ지맥이라는 사실, 이 사건 제조사 홈페이지에 니코틴의 원재료는 담뱃잎이라고 보이는 일부 기재가 있는 사실, 만일 니코틴 제조에 연초 줄기가 사용된다면 이 사건 제조사의 투자 관련 서류와 홈페이지 어딘가에 관련한 사실이 나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관련한 기재를 찾아보기 힘든 사실 등을 주장ㆍ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 사건 제조사가 연초 잎에서 니코틴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되지 않으나,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사실들의 입증으로 이 사건 제조사가 일응 연초 잎에서 니코틴을 생산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판결 사안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 다툼에 관한 것으로 본안 심리 과정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졌을 것으로 보이나, 본고에서는 사실관계 다툼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세관당국이 일응의 증명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대상판결문의 법 논리만을 가지고 평석을 하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과세요건사실이 입증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판시하고 있기보다는 원고의 주장 증거를 배척하는 데에 좀 더 중점을 두어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세요건사실의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세관당국에게 있기 때문에 과세요건사실, 즉, 이 사건 수입물품이 연초 잎으로부터 생산된 것이 맞는지가 입증되었는지가 주된 심리사항이 되었어야만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세관당국이 이를 직접적으로 입증한 서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최소한 상당한 정도의 경험칙으로 일응의 입증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정도로 심리를 하였어야 한다. 대상판결을 잘 읽어보면 이 사건 제조사가 관세조사 과정에서 직접 ‘이 사건 주요 서증이 니코틴의 원재료와 관련한 유일한 서류이고, 해당 서류로 공급받은 원재료 외에 다른 원재료가 없다’라고 기재한 것을 유력한 증거로 하여, 그 이후 이 사건 제조사가 그와 반대되는 진술 및 해명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주된 입증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상판결 법원은 세관당국에게 원칙적인 입증책임이 있으며, 세관당국은 아무런 직접 증거를 제출하지 못해 입증정도는 상당히 낮아 일응의 증명이 인정되는지 여부 정도만을 심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판결문에 기재하고 있는 증거만 살펴보더라도 원고가 제시하고 있는 반대증거는 ‘농가14)구매 영수증’, ‘중국 농민 성명서 및 진술서’, ‘이 사건 제조사 전 직원의 사실확인서’이다. 대상판결은 이를 단순히 신빙성이 없다고 하여 배척하고 있으나, 이로 인하여 신빙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원고 제출 증거뿐만 아니라 세관당국이 제시하고 있는 이 사건 제조사의 과거 진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이런 경우, 대상판결 법원으로서는 어떤 진술이 더 맞는지 증인신문을 통하여 명확히 하는 등으로 사실관계 탐구를 위한 노력을 좀 더 기울이거나 그러한 노력이 어려웠다면 입증책임의 원칙대로 판결을 하였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있다. 한편, 소송과정에서 세관당국이 이 사건 제조자가 중국에 있는 만큼 직접 조사하기가 어려웠다는 측면을 고려하여 입증책임을 완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러한 증명책임의 완화 법리는 상당한 증거가 납세자의 지배하에 존재할 때에 오히려 납세자가 스스로 관련한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어서, 대상판결 사안과 같이 납세자가 이 사건 제조자로부터 생산된 니코틴을 원료화하여 수출하는 수출업자로부터 단순히 수입하는 수입자에 불과하여 이 사건 수입물품 제조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사안에 원용하기는 어렵다. 대상판결에서도 이를 직접 채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4) 이 사건 제조사는 이 사건 주요 서증뿐만 아니라 중국 농민으로부터 직접 원재료를 공급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2) 정당세액 입증책임 과세처분취소소송에 있어서 처분의 적법 여부는 정당한 세액을 초과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판단되는 것으로서, 당사자는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객관적인 조세채무액을 뒷받침하는 주장과 자료를 제출할 수 있고, 이러한 자료에 의하여 적법하게 부과될 정당한 세액이 산출되는 때에는 그 정당한 세액을 초과하는 부분만 취소하여야 하며, 그 전부를 취소할 것이 아니나, 이러한 자료가 없어서 정당한 세액을 산출할 수 없는 때에는 과세처분 전부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95누5400, 1995.6.30., 판결). 대상판결은 “원고가 추가로 제출한 자료가 니코틴 추출을 위한 원재료 구매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농자재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재료 구매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 사건 처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두 차례 서술하고 있다. 대상판결 역시 원고가 제출한 자료들에 의해서 이 사건 제조사가 연초 줄기에서 니코틴을 추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대상판결이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세관당국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일부라도 연초 줄기에서 니코틴을 추출해서 이 사건 수입물품을 제조했을 수 있으므로 그에 맞는 정당세액을 입증하라고 소송지휘를 하였어야 하며, 만일 그러한 입증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과세 전체를 위법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결론은 과세요건사실의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부과하였다고 보았을 때에만 이해가 되는 결론으로 입증책임을 임의로 전환하여 국고주의적으로만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고 보인다.
Ⅲ. 결 론
입증책임의 원칙이란 소송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법리이다. 누구에게 입증책임이 있는가는 소송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세소송에서는 판례상 과세관청이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갖는다는 법리가 확립되어 있고, 과세관청이 입증책임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는 법률요건분류설15) 등 다양한 이론이 전개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를 정당화하는 조세부과에 있어서 과세관청이 그 재산권 제한의 근거를 입증하여야 함은 헌법적 질서에도 부합하는 것으로도 생각된다.16) 조세는 법률에 의하여 부과하여야 한다고 천명하는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과세의 적법 여부를 성문의 세법을 떠나 국가재정적인 견지에서나, 세정의 실지에 따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대법원 66누134, 1966.10.18., 판결). 이는 법치주의 원리에서 도출되는 당연한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근래 국고주의적인 견지에서 많은 조세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상판결은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엄격하게 따져볼 문제였다. 대상판결과 같이 직접적인 입증이 어디에도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입증책임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관당국이 과세요건사실을 입증하였는지, 이를 입증하지 못하였다면 최소한 ‘일응의 증명’을 하였는지를 따져보았어야 하였다고 생각한다. 만일, ‘일응의 증명’이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러한 과세처분이 국가재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와 무관하게 위법한 처분이 되어야 함이 명백하며, 그것이 법치주의 부합한다면 설사 단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타격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의 법치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15) 이창희, 앞의 책, 80면은 세법에서 민법과 사실확정과 입증책임의 법리가 유달리 달라질 이유가 없다고 한다. 16) 헌법원리설적인 입장. 법률요건분류설이 통설로 취급되고 있다고 보이나(김동복, 앞의 논문, 40면) 본고에서는 특별히 입증책임의 분배의 타당성과 관련한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