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선/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최근 대우그룹과 동아건설의 분식회계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대우의 경우에는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기관에 따라서 그 규모가 25조원이다, 혹은 41조원이다 하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분식회계((粉飾會計)라 함은 기업이 재무제표상의 재무상태나 경영성과를 실제와 다르게 보일 목적으로 가공의 거래를 통하여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조작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물론 기업회계기준에서 규정하고 있는 손익의 인식시점이나 금액이 어떤 경우에는 구체적이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기업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분식회계라 하면 이러한 회계기준에 구조적으로 내재해 있는 기업의 재량권을 벗어나 의도적으로 회계수치를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감독원이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실시한 기업 감사보고서 감리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감리에서 분식회계 사항이 지적된 기업은 총 724개 기업 중 165개 기업으로 나타났다. 동 기간 중 공개예정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시감리에서는 대상기업 263개 중 88개 기업이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환위기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았던 지난 1998년에는 감리대상 106개 기업 중 전체의 절반이 넘는 69개 기업이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의 감리결과로 밝혀진 분식회계의 대표적 유형으로는 매출액의 가공계상, 매출원가의 과소계상 또는 감가상각비 및 대손상각비의 과소계상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회계과정의 재미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어느 항목을 한 해에 과대계상하면 그 다음 해 또는 가까운 미래에 반대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2000년의 매출원가를 과소계상하여 순이익을 높여 보고할 의도에서 기말 재고자산을 과대계상했다고 하자. 2000년의 기말 재고자산은 2001년의 기초 재고자산이 되기 때문에 2000년에 기말 재고자산을 과대계상한 만큼 2001년 기초 재고자산은 과대계상되며, 이에 따라 2001년 매출원가가 과대계상되어 결국 순이익이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상태나 경영성과가 현상유지 내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분식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행위가 계속될 경우 분식의 규모가 천문학적 숫자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노릇이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하게 되는 동기를 살펴보자. 기업의 재무상태나 경영성과가 좋지 않으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기가 어려울 뿐아니라 사채발행 또는 증자 등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게 되는 등 자본조달비용이 커지게 되므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에서 분식을 통하여 경영의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시도인 셈이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분식이 한번에 그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됨으로써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업의 회계분식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비용을 야기시키는 행위라는 점이다. 기업은 유한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 및 배분하여 기업자신과 사회의 부를 극대화하는데 공헌해야 하는 경제주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명(?)을 지닌 기업이 분식회계라는 경제실질을 왜곡시키는 가공의 불법행위를 통하여 기업경영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집단은 물론 결국 기업자신에게도 커다란 손해를 가져온다면 이는 사회전체의 관점에서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회계분식의 일차적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회계정보의 작성자인 기업에게 있다. 기업이 자신의 경영성과를 보탬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에 비로소 회계분식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경영성과가 좋지 않더라도 보유자원을 새롭게 배분·운용함으로써 미래 경영성과에 대한 청신호를 제공하게 되면 좋지 않은 현재 경영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등의 자금제공자들이 기업의 미래를 잘 평가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출정책을 펴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 기업의 회계정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감사인은 다소 거창할지 몰라도 자본주의를 수호한다는 자세와 각오를 가지고 회계정보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려는 윤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감사인에게는 기업의 회계분식행위를 철저히 가려내는 것은 물론 적발된 분식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첨삭도 없이 100% 투명하게 이용자에게 알린다는 신조(信條)가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보다 우선해야 하며, 학교교육이나 감사인재교육 등을 통하여 이러한 기본원칙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경제에서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하여 자금을 조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정보제공자와 정보이용자간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시장에서 정보이용자 집단의 정보제공자 집단, 즉 기업에 대한 감시기능 및 처벌기능(discipline)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재무분석가 집단은 가장 일선에서 기업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기업의 투자설명회로부터 재무제표 공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제공되는 정보의 신뢰성이나 투명성에 관심을 갖고 분석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비록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분식정보에 대해서는 그 제공자에게 사후에라도 반드시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함으로써 자본시장은 항상 공정정보제공자 편이라는 게임법칙의 준엄성을 대내외에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이상의 모든 자본시장참여자들이 펼치는 게임의 장을 유지하는 바탕에 회계기준이 있다. 회계기준은 획일적으로 제정될 수도 있고, 대체안을 인정하도록 신축적으로 제정될 수도 있다. 획일적 회계기준의 경우에는 적용상 간편한 장점이 있지만 경영자의 사적정보가 차별화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신축적 회계기준의 경우에는 경영자의 사적정보가 차별적으로 공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대체안의 다양성으로 적용이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다. 회계기준을 주의깊게 제정함으로써 분식회계의 여지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다. 이는 회계기준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신용에 대한 윤리의식의 성숙여부에 관한 문제로 보여진다. 즉 분식회계는 사회구성원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또다른 하나의 척도가 되는 셈이다. 내가 당장 급하더라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을 위하여 차를 멈추는 것은 장차 내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다른 운전자가 나를 위하여 멈추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서양시민의 의식이 부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