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분식회계가 발생될 때마다 지정감사제도의 도입이 주장되고 있다. 특히, 기업이 마음대로 감사인과 감사보수를 결정하는 비정상적인 자유수임제도의 현실 속에서 지정감사제도는 회계사가 꿈꾸는 로망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과거 내부통제제도와 같이 우리가 개혁적으로 도입한 제도들의 기능이 기대한 것처럼 작동되지 않는 반복된 경험을 되돌아 보면, 이러한 신제도의 도입 이전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지정감사제도의 이론적, 실증적 측면 등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론적 측면에서 지정감사제도는 회계감사가 공공재임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공공재의 주된 특성은?
공공재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공공재는 시장의 가격 원리가 적용될 수 없고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비배제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회사가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회계감사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는 사람들이 이것을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기회를 줄여 사람들 사이의 경합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공공재는 사람들이 소비를 위해 서로 경합할 필요가 없는 비경쟁성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가 비경쟁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회계감사보수의 할인경쟁이 문제가 될리 없다. 회계감사를 공공재로 판단하는 것은 회계정보를 공공재로 판단하는 것의 오류이다.
실증적 측면
지정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징벌적 제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징벌적 제재를 일반화하여 시장에 적용할 경우 회계감사자원의 배분이 왜곡되어진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서는 한계효익과 한계비용이 일치하는 균형점에서 가격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지정제를 통해 가격이 임의로 결정될 경우 회계감사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왜곡되어진다. 예를 들어, 지정감사제 도입 이후 현재 Big4와 중견 회계법인 및 중소회계법인 간의 회계감사시장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이 회계감사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자원배분으로 귀착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회계감사품질의 하락을 유도할 우려가 있다. 현재 지정감사인이 감사한 회사의 경우에도 분식회계가 일어나고 있는 실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정감사제가 회계감사의 품질을 향상시켰다는 실증적 결과가 없다.
감사수임비용의 하락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공공재는 시장의 가격원리가 적용될 수 없고 따라서 정치기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어진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기, 가스료와 같은 정부의 가격통제에 의한 가격 결정이 지정감사제 도입 이후 회계감사시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지금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감사수임료의 하락이 발생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적용의 어려움
지정감사제를 적용하는 경우 가장 중요한 판단은 기업과 감사인을 배당하는 일이다. 모든 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자유수임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각 기업에 적합한 감사인은 그 기업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정치기구에 의해서 또는 무작위에 의해서 기업과 감사인을 배당할 경우 전문성 하락으로 인한 감사품질의 저하가 일어날 수 있다. 직접적인 증거로 Big4 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이 Non-Big4 회계법인의 감사품질보다 항상 높은 것이 아니라 기업의 특징에 따라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존재한다. 그러면 누가 어떻게 각 기업을 회계법인에게 지정할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명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현재 기업이 갑, 회계사가 을이라는 인식이 지정인이 갑, 회계사가 을이 되어 갑만의 자리가 바뀔 뿐일 수 있다.
해외 신인도 추락, 추가의 IR 비용
국제회계기준 도입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국제적 정합성 제고이다. 그런데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있지 않는 상장기업 전체에 대한 지정감사제 운영은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신인도를 하락시키는 또 다른 Korea Discount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해외상장기업이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감사인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기구의 감사인 할당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또한 해외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로 인하여 해외투자자들에게 추가로 설명해야 하는 cost는 누가 부담하여야 할까? 이상의 이유로 지정감사제의 전면도입은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 지정감사제의 전면도입이 주장되고 있는 것은 최근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등의 분식회계에 대한 사회의 고질적 지침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정확한 원인 판단이 없는 단기적 처방의 위험이다. 상장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지정제 도입이 혁신적 방법일 수는 있으나, 금번 분식회계에 대한 맞춤형 처방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번 분식회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외부감사인의 독립성뿐만 아니라 전문성의 결여,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감사위원회 등 내부감사기능의 무기능이다. 따라서 이번 분식회계에 대한 해답은 외부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감사위원회의 정상적 기능 회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지정감사제의 전면적인 시행보다는 외부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지정감사제의 확대를 주장한다. 이를 “사전 예방의 지정감사제 도입“이라고 부르고 싶다. 구체적으로, 감사위원회는 기업의 외부감사인의 선임과 관련된 일련의 보고를 감독당국에게 하되 해당 외부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입증하여야 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감독당국에 의한 지정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감사인의 책임과 권한을 법률적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혁신적 방안이라 외칠 수 있는 지정제의 전면도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전 예방의 지정감사제 확대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회계감사시장의 정상화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회계감사품질이 높은 감사인에게 회계감사를 맡기고자 하는 유인이 기본적으로 기업에게 있어야 한다. 기업이 굳이 감사품질이 높은 회계법인에게 감사를 받는 경제적 사회적 동인이 없는데 회계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회계법인의 정책방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전문감사인’제도의 도입을 주장한다. 의사도 의사면허시험을 합격하고 나면 모든 질병에 대해 치료를 할 수 있지만, 피부과 내과 등 전문의가 되려면 별도의 합격을 해야 하듯이 공인회계사를 합격한 것만으로 모든 사업분야에서 회계감사를 수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회계사에게는 그 분야의 전문감사인으로 인정하여 별도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전문감사인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건설과 조선 또는 해양과 같이 특정 분야의 경우 전문감사인이 아닌 경우 회계처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회계감사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감사인 제도의 도입이 회계감사시장 정상화의 첫 걸음이 되리라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상장기업에 대한 지정감사제의 전면도입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 없고 실제로 적용가능성도 매우 낮으면서도 오히려 감사수임비용이 하락하는 의도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의 해결은 원인에 대한 올바른 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에 외부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정제를 확대하는 사전 예방적 지정제 확대와 회계감사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전문감사인제 도입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