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계학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학부시절, 회계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회계원리 책장을 넘기던 나의 눈을 사로잡은 문장이 있었다. 그것은 ‘회계는 기업의 언어’, 즉 ‘경영의 언어(language of business)’라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보다 회계의 본질을 잘 정의한 말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면 회계가 투명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회계를 경영의 언어로 정의한다면, 회계가 투명하다는 것은 경영의 언어가 투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 그 자체는 투명하다거나, 신뢰할 수 있다는 대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프랑스어가 독일어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거나 중국어는 일본어보다 투명하지 않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언어나 말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 즉, 화자와 그 말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회계를 기업의 언어, 경영의 언어라 한다면 이 언어의 화자는 바로 기업의 경영자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회계가 투명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경영행위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회계담당자, 내부감사, 외부감사인은 그 다음이다. 객관적인 수치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 수준은 세계 최하위이다. 2016년 IMD 회계투명성 지수는 61개국 중 61위였고,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ACGA) 발표 기업 지배구조 순위는 11개국 중 8위였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낮게 평가받는 이유는 기업의 내·외부 감사시스템이 경영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내부감사시스템은 경영자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특히 회계부정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적발하는데 있어서는 내부감사시스템에 가장 중요한 1차적 책임이 있다. 지난 해 대우조선해양에서 5조원대 대형 회계분식이 가능했던 원인의 하나는 남상태 전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전결로써 감사실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감사실이 폐지됨에 따라 감사위원회(사외이사)와 대우조선해양의 감사팀을 연결하는 가교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들로 감사위원회가 구성됨에 따라 대형 분식회계를 기업 내부에서 1차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스스로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은 내부감사나 감사위원 선임시 그룹총수나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려운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IMF경제위기 이후로 외부감사인의 독립성과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반면, 내부감사인의 선임시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하였다. CEO와 CFO로부터 독립하여 감사와 견제활동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내부감사는 높은 품질을 지닌 외부감사인을 독립적으로 선임할 수 없다. 그리고 독립적인 내부감사로부터 높은 품질의 외부감사서비스의 제공을 요구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받지 못하는 외부감사인은 소신 있게 감사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부감사인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감사와 감사위원에 대한 분리선출제도가 법제화 되어야 한다. 감사나 감사위원의 선임시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는 모두 합하여 3% 이내로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주주의 전횡에 의한 이사선임원을 제한하여야 한다. 그리고 상장기업의 내부감사와 감사위원의 자격을 회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자로 한정하여야 한다. 아울러 내부감사인에게만 외부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동시에 내부감사인이 선제적으로 기업의 회계이슈를 외부감사인에게 전달하고 그 해결방안에 대하여 외부감사인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분식회계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강화와 더불어 내부감사인의 책임도 대폭 강화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내부감사시스템이 기업에 구축된다면, 내부감사인은 감사투입시간, 투입인력, 감사품질 등을 고려하여 높은 품질의 외부감사인을 제 값을 주고 기꺼이 선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부감사인이 자신의 위험을 줄여 스스로의 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외부감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적이고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부감사인만이 외부감사 기능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감사와 외부감사가 같은 인센티브에 의해 한 몸처럼 움직일 때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투명성은 비로서 세계적인 수준에 진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