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지난 호에서는 재고자산이 손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재고자산’을 미래의 수익을 위한 준비된 자산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과도한 재고자산은 오히려 손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재고자산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수익성과 이익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에 적정재고자산 관리 방법으로 ‘재고자산 회전기간’ 및 ‘재고자산 회전율’이라는 재무지표도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효율적인 재고자산 관리를 통해 이익이 늘어났다고 해서 소위 ‘돈 사정’이 좋아졌느냐는 다른 이야기이다. 회사의 ‘돈 사정’, 즉 현금흐름 또한 좋아지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살펴볼 부분이 있는데, 이때 활용가능한 지표가 현금전환기간(Cash Conversion Cycle ; C.C.C.)이다. 오늘은 재고관리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현금관리를 측정할 수 있는 재무지표인 현금전환기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재고자산 회전기간’, ‘재고자산 회전율’ 및 ‘현금전환기간’ 등 재무지표를 활용하는 데에 필요한 주의사항 또한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재고자산 관리로 늘어난 이익, 현금이 될까?
회사에서는 적정 재고자산 관리를 위해 ‘재고자산 회전율’이나 ‘재고자산 회전기간’ 같은 재무지표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 지표들은 재고가 얼마나 빠르게 팔리는지를 보여주며, 기업의 영업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하지만 재고자산을 잘 관리해서 이익이 늘어난다고, 현금도 같이 늘어날까? 다시 말해, 재무제표상 늘어난 이익으로 실제 회사의 자금 사정까지 좋아진다는 뜻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효율적인 재고자산 관리가 손익계산서상의 ‘이익’을 늘려줄 수는 있지만, 현금흐름까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이익이 났는데도 현금이 부족해서 고전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제품을 팔아 매출이 발생했다고 해도 매출채권 회수가 늦어지거나 어려워진다면 현금흐름은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이익뿐만 아니라 현금흐름까지 고려한다면 ‘재고자산 회전율’이나 ‘재고자산 회전기간’을 포함한 ‘현금흐름 중심의 종합적 재무지표’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표가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인 Cash Conversion Cycle(현금전환기간, 이하 ‘C.C.C.’)이다. ‘현금전환기간’을 활용한다면 회사는 재고자산을 구입해서 생산 및 판매한 후에 현금을 회수하는 영업 현금흐름의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 확장할 수 있다.
C.C.C., 현금이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그럼,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C.C.C.에 대해 알아보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지표는 원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대금을 지급한 이후에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난 뒤에 매출이 현금으로 회수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회사의 돈이 ‘현금 → 재고 → 매출 → 외상매출 → 현금’으로 돌아오는 한 바퀴의 순환주기가 며칠 걸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순환이 짧을수록 기업은 보다 빨리 돈을 회수하고 다시 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재무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그림] Cash Conversion Cycle의 구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C.C.C.는 ‘재고자산 회전기간’, ‘매출채권 회전기간’ 및 ‘매입채무 회전기간’의 3가지 지표로 구성된다. 재고자산 회전기간(DIO)은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재고자산을 만들거나 사서 팔기까지 걸리는 평균기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매출채권 회전기간(DSO)은 제품을 팔고 난 후에 고객에게 돈을 받기까지 걸리는 평균기간을 의미한다. 또한, 매입채무 회전기간(DPO)은 원재료나 제품을 구매한 후에 공급업체에 돈을 지급하기까지 걸리는 평균기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C.C.C.는 재고자산 회전기간과 매출채권 회전기간을 더하고 여기에 매입채무 회전기간을 차감한 값으로 계산된다. 즉, 재고자산을 보유하는 기간과 매출채권을 회수하는 기간을 더한 값에서 외상으로 원재료 등을 산 후에 대금을 지급하는 시간을 제외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제품 판매를 위해 회사의 돈이 묶여 있는 총 기간을 의미한다. 가령, A라는 회사의 재고자산 회전기간이 60일이고, 매출채권 회전기간이 30일이며 매입채무 회전기간이 50일이라고 해보자. 즉, 총 40일의 C.C.C.가 산출되었다고 해보자. 이를 해석해보면 A라는 회사는 사업을 위해 돈을 지출한 시점부터 40일 동안 돈이 묶여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B라는 회사의 재고자산 회전기간과 매출채권 회전기간은 A회사와 동일하게 각각 60일 및 30일인데 반해, 매입채무 회전기간만 70일이라고 해보자. 이때 B회사의 C.C.C.는 20일로 계산되는데, B라는 회사는 사업을 위해 지출한 돈이 묶여 있는 기간은 20일이라는 의미이다. 즉, 같은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A회사보다 B회사의 현금흐름 관리가 더 뛰어나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림] C.C.C.는 기업의 현금흐름 효율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


C.C.C.가 짧으면 어떤 점에서 회사에 유리할까?
‘현금전환주기가 짧으면 좋다’라는 이야기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회사에 유리한 걸까? 먼저, 운전자본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자금을 미리 쌓아둘 필요 없이, 들어 온 돈으로 바로 다음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았는데 미처 매출대금이 들어오기도 전에 원재료 구입대금, 임대료 등을 빠르게 지불해야 한다면 굉장히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C.C.C.가 짧은 회사는 빠르게 자금이 돌기 때문에 ‘숨통이 트인 경영’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재투자 여력도 커진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사업을 하면서 이익이 발생하면 현금도 쌓이게 된다. 따라서 지불해야 할 대금 이상으로 번 현금의 회수기한이 빨라진다면 재투자 여력 또한 커지기 되는데, 이는 곧 성장의 속도와 직결되기도 하며 예기치 못한 경영 환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도 C.C.C.는 큰 영향을 미친다. 현금흐름이 빠르게 순환되면 외부 차입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자연히 이자비용 또한 줄어 든다. 유동비율이나 부채비율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회사의 신용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 정리하자면, C.C.C.가 짧은 기업은 자금이 묶여 있는 시간이 짧고, 현금이 빠르게 회전되며, 이를 통해 손익뿐만 아니라 현금흐름과 재무 안정성 모두를 챙길 수 있는 경영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돈이 일하고,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또 다른 돈을 벌어오는 선순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기업의 재무제표로 C.C.C.를 확인해보자.
이제 개념은 충분히 이해했으니, 실제 기업들의 C.C.C.를 한번 비교해보자. 국내에서 전자제품을 제조ㆍ판매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사업구조가 유사하지만, 두 회사의 C.C.C.는 다르게 산출된다. [그림] 삼성전자 C.C.C. vs. LG전자 C.C.C.
먼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채권 회전기간은 40 ~ 50일로 유사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재고자산 회전기간은 90일 ~ 100일 정도가 소요되는 반면, LG전자는 54 ~ 56일 정도 소요된다. 또한, 삼성전자의 매입채무 회전기간은 22 ~ 23일 정도 소요되는 반면에, LG전자에서는 50 ~ 53일 정도 소요된다. 이러한 차이로 삼성전자의 현금전환주기는 113 ~ 134일 정도 걸리는 반면에, LG전자의 현금전환주기는 43 ~ 47일 정도 소요된다. 이 수치만 본다면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LG전자가 더 적은 운전자본으로 더 많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동성 위기에서도 보다 더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볼 수1) 있다. 이처럼 C.C.C.는 단순히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현금 관리 능력’을 수치화한 지표이며, 기업의 체질적 유연성과 효율성을 가늠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이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삼성전자와 글로벌 대표 IT기업 Apple을 비교해보자. 두 회사는 스마트폰이라는 공통 사업영역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사업구조나 전략, 그리고 현금흐름 관리 방식이 매우 다르기에 C.C.C. 또한 큰 차이가 발생한다. 1) 다만, 규모의 경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재무지표상 산출되는 수치로는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효율적인 자금운용을 하고 있지만, 절대 수치로 비교해보면 삼성전자의 규모는 LG전자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무지표가 기업 간 비교를 하기에 유용하기도 하지만, 단순 비교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림] 삼성전자 C.C.C. vs. Apple C.C.C.
놀랍게도 Apple의 현금전환주기는 ‘마이너스’이다. 즉, Apple은 공급처에게 대금을 지급하기도 전에 고객으로부터 현금을 먼저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고를 들여오기 전에 이미 고객이 결제를 완료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구조가 가능한 걸까? 그 비결은 간단하다. Apple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유통망 장악력을 바탕으로 고객에게는 빠르게 현금을 받고, 납품업체에게는 늦게 돈을 지급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Apple의 협상력과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렇다면 Apple에 대해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낮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같은 C.C.C. 수치를 단순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120일’과 Apple의 ‘–70일’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격차는 단순한 재무관리의 차원이 아니며, 사업구조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숫자는 객관적이지만, 해석은 주관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기에 삼성전자와 Apple의 현금전환주기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먼저 ‘매출채권 회전기간’에서 두 회사 간에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사업구조 및 거래 형태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Apple의 매출 중 대부분은 스마트폰 기기 판매가 주력이지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기기뿐만 아니라 반도체 및 가전제품 또한 주력 상품이다. 이에 Apple의 경우 대부분의 제품을 기업이 아닌 최종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거래 형태인 BTC 거래가 대부분이지만, 삼성전자는 최종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 등과도 거래2)하는, 즉 BTC 거래도 그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매출채권 회전기간은 Apple 대비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재고자산 회전기간’에서도 그 차이가 극명한데, 이는 제조방식의 차이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Apple의 경우 제품 생산과 관련된 많은 작업들을 아웃소싱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생산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에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일부 아웃소싱 방식으로도 제품 생산을 진행하지만, 제품 생산과 관련된 많은 공정들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기에 차이가 있다. 또한, Apple은 제품 구성의 단순화, 고급화 전략 등으로 제품 판매를 위한 여유 재고를 유지할 유인이 적어 삼성전자 대비 재고자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제조방식의 차이로 Apple은 무척 짧은 재고자산 회전기간을 유지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매입채무 회전기간’에서도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매입거래처와의 대금지불 기한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도 현금전환주기를 줄이기 위해 Apple과 같은 전략을 세우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출채권 회전기간’을 줄이기 위해 기업 등의 거래처를 소비자로만 한정하기는 쉽지 않으며, ‘재고자산 회전기간’을 줄이기 위해 아웃소싱으로 생산구조를 변경하는 것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매입채무 회전기간’을 늘리기 위해 거래처와의 대금지급조건을 변경하는 것 또한 거래처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C.C.C.는 기업의 자금 흐름과 체질을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한 지표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산업구조나 유통 방식, 매출 모델이 다른 기업들을 단순 수치로만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C.C.C.를 통해 “숫자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말 해주지 않고 있는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는 C.C.C.뿐만 아니라 재무지표를 활용할 때도 주의해야 할 점들이다. 2)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가전, 반도체 등도 함께 판매하기 때문에 Apple과는 달리 기업고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이며, 기업고객의 경우 판매 후 30일 / 60일 등으로 대금지급조건이 최종소비자 대비 상당히 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무지표를 활용할 때 주의할 점들
그럼 재무지표를 활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재무지표의 단순한 비교는 동일 산업 내에서만 유의미하다. 유통업과 제조업, 플랫폼과 하드웨어 기업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따라서 재무지표가 같을 지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두 번째로 재무지표는 ‘흐름’을 보여줄 뿐이다. 단기 수치보다 추세와 맥락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규모, 연도별 변화, 계절성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세 번째로 재무지표는 회사의 전체 상황이 아닌 단면만을 보여준다. 즉, 인력 운영, 공급망 리스크 및 브랜드 가치 등은 반영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재무지표는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지표와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다. C.C.C.는 현금운영을 확인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지만 유동비율, ROE 및 차입금 비율 또한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즉, 재무지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C.C.C.는 회사의 자금 흐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 자체가 기업의 건강함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숫자는 결국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마치 체중계의 숫자가 건강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일 뿐, 실제 건강 상태를 판단하려면 운동 습관, 식단, 병력까지 모두 봐야 하듯이 말이다.
숫자 뒤에 숨은 맥락을 읽자
지금까지 재고자산 회전율, 현금전환주기(C.C.C.), 그리고 이를 실제 기업 사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단순히 ‘이익이 났다’, ‘재고가 줄었다’라는 결과를 넘어, 그 배경에는 어떤 자금 흐름이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회계와 재무의 진짜 목적이다. 재무지표는 숫자이지만, 그 숫자는 기업 경영의 리듬과도 같다. C.C.C.가 짧다는 건 단순히 돈이 빨리 들어온다는 뜻만이 아니다. 이는 기업이 외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현금을 만들어 내는 능력, 즉 경영 체력과 직결된다. 다만, 이 모든 지표가 항상 정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회전율이 높아도, C.C.C.가 짧아도 그 배경과 맥락이 없다면 판단은 쉽게 틀어질 수 있다. 숫자는 언제나 ‘이유’와 함께 해석돼야 하며, 특히 산업구조와 기업전략의 차이를 함께 고려할 때 비로소 재무지표는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