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알바 청소년도 법으로는 ‘개인사업자’? - 판례를 통해 본 근로자성 판단기준 -

음식배달 청소년, 엑스트라, 방송국 박수부대는 노동자일일까? 아닐까? 다양한 노동력을 제공하며 일정한 보수를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법의 잣대는 엄격하다. 법원은 이 중에서 1가지 직종만 노동자로 판단했다. 판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① 고등학생 A군은 B씨가 운영하는 배달대행업체에서 일을 했다. A군은 학교를 마친 오후 5시경부터 자정 무렵까지 일하면서, 가맹점에서 배달요청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배달을 나갔다. 급여는 건당 수수료를 합산하여 지급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A군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가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여 폐쇄성 흉추 골절과 흉수 손상 등을 입었다.
전화도 걸지 않고 스마트폰만 누르면 음식이 곧바로 배달된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오프라인으로 배달받는 배달앱 서비스가 인기다. 배달앱 업체는 인기 배우를 내세워 싸고 편안한 서비스를 강조한다. 이러한 편리함 속에 외면 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배달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이다. 그들의 지위는 그야말로 ‘을 중의 을’이다. 이들은 저임금에, 중노동에 시달리며 게다가 사고 위험에도 노출되고 있다. 배달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청소년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기본 권리나 최저임금, 휴가, 각종 수당도 제대로 청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렇다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위험한 노동에 시달리는 배달 청소년들을 법이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행법과 최근 판결을 보면 부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 A군에게 요양비, 휴업급여, 진료비 등 산재보험급여를 지급했다. 그리고 B씨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보험금여액 50%를 B씨에게 징수하겠다고 통지했다. 이에 B씨가 반발, 행정소송까지 이어졌다. 사건에서 쟁점은 A군이 B씨에게 “고용된 노동자였는지? 아니었는지?”였다. 산재보험은 노사관계가 성립되는 관계에서만 가입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기준법상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좀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규정에 의한 보험급여의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재해 당시에 근로기준법의 규정에 의한 근로자이어야 하고,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계약의 형식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 등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위에서 말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하여 정하여지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과정에 있어서도 사용자로부터 구체적·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사용자에 의하여 근무시간과 근무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여부, 근로자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업무의 대체성 유무,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이 있는지 여부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져 있는지 여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 등 다른 법령에 의하여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지 여부, 양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두9062, 2011.6.9. 판결 등 참조).
근로복지공단은 A군이 노동자라고 판단했지만 B씨는 수긍하지 않았다. B씨는 “A군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A군이 자신의 지시나 감독과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배달을 하고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관계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B씨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행정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A군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B씨에게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근로기준법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법원이 내세운 근거는 다음과 같다. ▲ A군은 가맹점에서 배달요청이 오면 스스로 배달여부를 결정했고, 배달 과정에서 B씨에게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았다. ▲ 고등학생인 A군은 업무시간과 근무장소가 별도로 정해지지 않았고, 근무태도 등에 따라 해고 등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없었다. ▲ A군은 다른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가능했고, 다른 사람에게 배달 대행을 할 수도 있었으며, A군의 수입은 오로지 배달 건수에 따라 산정되고 고정 급여를 지급받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법원은 “A군이 B씨와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판단했다. 심지어는 A군이 B씨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이른바 4대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점도 B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A군은 노동자가 아니고 독립된 개인사업자이다. 따라서 산재적용은 물론, 최저임금, 각종 휴가나 수당도 적용받을 수 없게 된다. 업주의 횡포가 있더라도 부당노동행위라는 주장을 할 수도 없다. 패스트푸드점이나 개인업체에 고용된 청소년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 그나마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배달대행업체의 비정상적인 고용방식은 업주와 청소년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보게 만든다. 이러한 판결이 고용은 책임지지 않고 푼돈을 주면서 청소년들의 노동력만 착취하는 악덕업주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 푼이 아쉬워 방과 후 알바를 하는 청소년을 ‘독립된 개인사업자’로 판단한 법원 판결 이면에는 노동력 착취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법의 사각지대가 되지는 않을까?
사례② 엑스트라(보조출연자)로 살아가던 B씨. 그는 한 기획사의 소개로 텔레비전 사극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해 왔다. 사극은 새벽까지 촬영이 이어지는 날이 많았는데, 하루는 현장에서 촬영 중 발을 헛디뎌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로 요양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유는 “엑스트라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B씨는 요양을 승인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근로복지공단은 “엑스트라는 근로관계가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출연료도 출연 횟수와 시간에 비례해 지급되는 사정으로 볼 때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엑스트라들이 출연료에 대해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사업소득세를 내는 것만 보더라도 오히려 사업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그런 형식적인 면만 따져서는 안된다면서 박수부대와는 달리 엑스트라가 노동자인 이유를 판결을 통해 설명했다. “법원, 엑스트라는 일용직 시간제 노동자와 유사” 법원은 ▲방송 일정과 인원·장소·시간·역할 배정 등을 제작사나 기획사가 결정하는데다가 엑스트라에게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고 ▲일단 출연 섭외에 응한 후에는 무단결근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촬영이 시작되면 개인행동, 무단이탈이 금지되고 ▲촬영 현장에서 기획사 직원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법원은 ▲엑스트라들이 길거리 행인, 식당 손님, 결혼식 하객 등의 배역으로 연기력이 요구되지 않고 ▲출연료도 동원 시간에 비례해 지급됐던 점을 볼 때 사업자로 보기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엑스트라들이 그때그때 출연할 촬영 현장을 선택할 여지가 있었기는 하나 이것이 “오히려 근로 형태가 일용직 근로자와 유사하다”며 근로자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행정법원은 “엑스트라는 촬영 현장에 일용직 형태로 고용되어 제작사나 용역업체의 요구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고 시간급 보수를 받는 근로자”라고 결론 내렸다.
사례③ ‘방송 영화 홈쇼핑 CF 박수부대 회원 모집’ C씨는 생활 정보지에 광고를 냈다. 이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평생 가입비 명목으로 3만원을 받고 방송국의 ‘박수부대’로 소개해줬다. 그는 일이 있으면 회원들을 연결해 주고 방송국으로부터 방청료를 받아 그 중 일부를 회원들에게 수고비로 나눠 줬다. 그런데 그는 직업안정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유료 직업소개업을 하려면 관할관청에 정식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 없이 사업을 했다는 것이다.
‘박수부대’란 촬영직원의 말에 따라 방청을 하면서 박수를 치거나 출연자에게 호응을 하는 일이다. 문제는 녹화방송 방청이 직업이 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박수부대가 노동자인지 여부였다. 1심 법원은 “방송국의 방청객 역시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맞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박수부대도 방송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본 것이다. “박수부대는 방송국 감독·지휘를 안 받아. 근로자 아니다” 그런데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항소심은 근로자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로부터 개별적·구체적 지휘 감독을 받는지,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항소심은 ▲ 회원들이 방청객으로 가면 2, 3시간 일을 하고 6,000원 ~ 1만2,000원 정도 받았으며 일하는 날도 불규칙적이고 ▲ 의무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사정에 따라 그만 두는 것도 가능하고 ▲ 방청비는 방송국이 아닌 인력업체로부터 받은 사실 등을 볼 때 방송국의 지휘를 받거나 고용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도 박수부대는 방송국의 근로자로 볼 수 없고, 따라서 C씨도 직업소개업을 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죄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