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인격적인 정신적, 육체적 결합’ 무엇을 뜻하는 단어일까? 바로 결혼이다. 법원의 판결문은 결혼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결합이 항상 평생 가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결혼생활이 막을 내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1년에 10만쌍이 넘는 부부가 남남이 되어 돌아선다.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264,455쌍이 결혼한 반면, 이 중 106,032쌍이 이혼했다. 그런데 결혼을 종료시키는 방법에는 이혼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혼 말고도, 혼인무효, 혼인취소가 있다. 각각 어떻게 다를까?
혼인을 종료하는 방법 1. 이혼
먼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혼이다. 이혼이란 남녀가 부부가 되겠다는 의사로 결혼해서 살다가 결혼 후에 생긴 문제로 나중에 갈라서는 것을 말한다. 결혼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살다 보니 성격차이, 외도, 폭행 등의 이유로 헤어지는 것이 이혼이다. 현행법상 이혼하는 방식은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 2가지가 있다. 협의이혼이란 부부가 갈라서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을 때 법원에서 최종 확인을 받는 절차이다. 재판상 이혼이란 배우자의 외도, 폭행 등 법에서 정한 이혼사유가 발생했을 때 소송을 통해 이혼하는 것이다. 민법(제840조)에 나와 있는 재판상 이혼사유는 다음 6가지이다.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그렇다면, 혼인무효와 혼인취소는 이혼과는 어떻게 다를까? 혼인무효와 혼인취소는 애초부터 결혼의 성립요건에 흠(하자)이 있는 상태로 혼인신고가 된 경우에 그 흠 때문에 혼인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혼이 처음에는 결혼의사나 절차에 문제가 없었으나 나중에 발생한 사유로 갈라서는 제도라면, 혼인무효와 취소는 처음부터 혼인의 성립이나 혼인의사에 하자가 있어서 관계를 끝나는 절차이다. 애초에 제대로 된 결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보는 셈인데 혼인무효와 취소는 모두 재판을 거쳐야 한다.
혼인을 종료하는 방법 2. 혼인무효
혼인무효는 당사자 사이에 결혼합의가 없거나, 8촌 이내의 근친간 결혼 등 혼인취소보다 하자가 더 심각한 경우이다. 혼인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예를 들어 4촌간의 결혼, 일방적인 혼인신고 등이 대표적인 혼인무효 사유다. 최근에는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 입국할 목적으로 위장결혼을 하는 사례도 적발되고 있다. 이것 역시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한다. 법에 나온 혼인 무효의 사유로는,
-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 (가짜 결혼, 일방적 혼인신고 등)
- 근친(8촌 이내 혈족)간의 결혼
- 직계인척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경우 (장모와 사위, 시아버지와 며느리 등)
- 양부모계의 직계혈족 관계인 경우 등이다.
사례 1 30대 남성 A씨는 맞선 주선자의 소개로 30대 여성 B씨를 만나게 되었다. 몇번의 만남 뒤 B씨에게 마음을 뺏긴 A씨는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 반면 B씨는 A씨에게 크게 끌리지 않아서 무덤덤하게 만남을 이어갔을 뿐이다. A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B씨가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고, 맞선 주선자를 통해 B씨의 신분증을 입수하여 몰래 혼인신고를 마쳤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혼인신고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 과정에서 두 사람은 동거를 한 적도 없고, 구체적인 결혼 계획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두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할 의사가 없었다면 애당초 무효라는게 판결의 결론이었다. 본인도 모르게 이혼 전력이 남을 뻔했던 B씨는 혼인무효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급작스런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한 혼인은 무효라는 판결도 있었다. 혼인의 합의가 없는 무효결혼과 관련, 대법원 판례를 소개한다. “혼인무효 사유는 당사자 사이에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비록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신고가 있었더라도, 그들 사이에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효과의사가 없을 때에는 그 혼인은 무효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4도11533, 2015.12.10. 선고 등)”
혼인을 종료하는 방법 3. 혼인취소
사례 2 C씨(40대 남성)는 올해 초 동갑내기 D씨와 결혼했다. 혼인신고도 마쳤다. 그런데 그는 7년 전 다른 여자와 혼인신고를 해 함께 산 적이 있었다. D씨에게 털어놓을까도 고민했지만, 결혼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이 사실을 숨기고 결혼식을 마쳤다. 하지만 비밀은 없는 법. 결혼 석달 후 D씨는 그가 이혼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우연히 가족 관계 서류를 보게 된 것이다. 속아서 결혼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D씨는 “결혼 전으로 돌려달라”며 가정법원을 찾았다.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이혼? 아니다. 혼인 무효? 아니다. 바로 혼인 취소다. 법원은 “이혼 전력은 혼인 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C씨가 초혼인 양 이혼 전력을 숨기고 혼인신고를 한 이상 사기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혼인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즉, 이혼 전력을 숨긴 것은 사기 결혼이어서 취소 대상이라는 말이다. 법원은 사기결혼에 대해 “혼인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을 명시적, 묵시적으로 기망하였고 이와 같은 기망에 의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상대방이 혼인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 혼인의 취소를 구할 수 있다”고 판시해왔다. 따라서 결혼 전에 상대에게 직업이나 학력을 속인 경우, 소득이나 재산상황을 과장하거나 속인 경우는 혼인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
사례 3 E씨(20대 남성)는 F씨(20대 여성)와 교제 반년 만에 결혼을 준비해야 했다. F씨가 E씨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예식장을 잡고 결혼식을 올린 뒤 함께 생활하던 두 사람은 아이를 출산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E씨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검사 결과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았고, 산부인과 확인 결과 E씨를 만나기 전 이미 F씨가 임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F씨는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E씨의 친자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고 오히려 친자인 것처럼 말하여 기망하였다”며 혼인취소 판결했다.
혼인 취소는
- ① 사기나 강박으로 인한 결혼
- ② 혼인 당시 상대방의 악질(惡疾) 등을 알지 못한 경우
- ③ 근친혼
- ④ 중혼(이중결혼)
- ⑤ 혼인 연령에 미달하거나 부모 등의 동의가 필요한 결혼에 동의가 없는 경우 등이 있다.
구분 | 이혼 | 혼인무효 | 혼인취소 |
---|---|---|---|
개념 | 남녀가 혼인의사로 유효하게 결혼했으나 결혼 도중 이혼 사유가 발생하여 혼인관계 해소 | 결혼 성립요건, 혼인의사 등에 하자가 있는 상태로 혼인신고가 된 경우 | |
결혼에 하자가 커서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는 상태로 복귀 | 유효한 결혼으로 인정되다가 혼인취소 시점부터 결혼관계가 종료 | ||
사유 | 재판상 이혼과 협의이혼 ※ 재판상 이혼 주요사유 ㆍ배우자의 부정행위 ㆍ부당한 대우(배우자 및 직계존속) ㆍ3년 이상 배우자 생사 불분명 | ㆍ결혼합의가 없는 때 ㆍ근친혼(8촌 이내 혈족) ㆍ직계인척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때 ㆍ양부모계의 직계혈족 | ㆍ혼인적령 미달(18세) ㆍ부모 동의없는 미성년자 결혼 ㆍ근친혼(8촌내혈족제외) ㆍ중혼(중복결혼), 악질 ㆍ사기, 강박결혼 |
예시 | 배우자의 외도, 폭행 시부모, 장인 장모 학대 일방적인 가출 장기화 | 일방적 혼인신고 위장결혼, 사촌간 결혼 시아버지와 며느리 결혼 | 형부와 처제간 결혼 협박에 의한 결혼 15세 중학생들의 결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