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경제전반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여러 업계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지 않은 업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주로 택시운전 종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택시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택시운전 종사자의 ‘생산고에 따른 임금’이 최저임금에서 제외된 것과 맞물려 최저임금의 인상은 택시업계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택시업체에서 최저임금법 위반 회피를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한 취업규칙의 효력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대상판결’)이 내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상판결은 택시업계뿐만 아니라 산업전반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이는바, 대상판결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대상판결의 사업주가 최저임금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대상인지 여부가 다투어진 판결(대법원2015도676, 2019.05.10.)에서는 최저임금법 위반에 대한 고의가 없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어졌다.
Ⅱ. 최저임금법 개정 내용
대상판결을 살펴보기에 앞서, 2008년 최저임금법의 개정 내용과 개정의 취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8.3.21. 개정되기 이전의 최저임금법(구 최저임금법) 제6조 제4항 및 동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에서는 정액사납금제에서 ‘고정급’ 이외에 생산고에 따른 임금인 ‘초과운송수입금’까지 최저임금 비교대상 임금에 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정액사납금제*에서 운송수입금이 적은 경우 택시운전근로자가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정도의 임금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문제점이 있었고, 택시운전근로자의 초과운송수입금이 비교대상 임금에 포함됨에 따라 고정급 금액이 최저임금에 현저하게 미달하여도 최저임금법에는 저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 운송수입금 중 일정액만 사납금 명목으로 회사에 납부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초과운송수입금은 근로자의 수입으로 하며, 회사로부터 일정한 고정급을 지급받는 임금형태
이에 2008.3.21. 최저임금법이 개정되었고, 아래와 같이 개정 최저임금법 제6조 제5항(이하 ‘특례조항’)에 따라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이 제외되었다.
■ 최저임금법 제6조 【최저임금의 효력】
- ①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 ③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근로계약 중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임금으로 정한 부분은 무효로 하며,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이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액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본다.
- ④ 제1항과 제3항에 따른 임금에는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을 산입(算入)한다.
- ⑤ 제4항에도 불구하고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3조 및 같은법 시행령 제3조 제2호 다목에 따른 일반택시운송사업에서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는 생산고에 따른 임금을 제외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으로 한다. (2008.3.21. 개정 특례조항)
Ⅲ. 대상판결의 내용 : 최저임금법 위반 회피를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한 취업규칙 변경은 무효
위와 같은 개정 최저임금법이 시행되는 배경 하에서, 대상판결은 최저임금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해 실제 근무형태에는 변화가 없음에도 소정근로시간만 단축하는 내용으로 변경한 취업규칙 조항의 유효성에 대해 의미있는 판결을 하였다.
1. 사실관계
일반택시운송사업 합자회사인 K운수(이하 ‘피고회사’)에서 격일제로 근로하던 택시운전기사 5인(이하 ‘원고들’)은 ‘정액사납금제’ 형태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개정 최저임금법 제6조 제5항이 2010.7.1.부터 피고회사가 소재한 파주시 지역에 시행되었고,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이 제외되었다. 이로 인해 피고회사가 지급해야 하는 고정급이 큰 폭으로 상승하였고, 고정급의 주요 재원이 되는 사납금을 증액하려는 유인이 커지게 되었다. 이에 부담을 느낀 피고회사와 원고들은 사납금을 증액하지 않으면서 최저임금법 위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0.7.29. 및 2010.10.27.에 원고들을 포함한 소속 택시운전근로자들 다수의 동의를 받아 노사합의로 취업규칙을 개정하였다.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의 변경이 없음에도 소정근로시간을 순차적으로 단축하여, 그 결과 소정근로시간은 월 209시간에서 격일제의 경우 월 115시간으로 단축함이 주된 내용이었다. 원고들은 이와 같이 실근로시간의 변경 없이 소정근로시간만을 줄이는 내용의 제1, 2차 취업규칙의 소정근로시간 조항은 최저임금법을 잠탈하기 위한 탈법행위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종전 취업규칙에 따른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최저임금액에 미달한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제1차 취업규칙 및 제2차 취업규칙 중 소정근로시간에 대해 규정한 부분은 강행법규인 최저임금법을 잠탈하기 위한 탈법행위로 무효라고 판단한 다음, 종전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 미달액을 계산하여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였다. 하지만 피고회사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를 제기하였다.
3.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의 쟁점은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인한 특례조항 시행에 따라 정액사납금제 하에서 사용자가 고정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것을 회피할 의도로 근로자들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의 변경이 없음에도 소정근로시간만을 단축하는 내용으로 개정한 취업규칙조항이 유효한 지 여부”이었다.
(1) 판단내용
위와 같은 쟁점에 대해 대법원은 “사용자와 근로자는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소정근로시간에 관하여 합의할 수 있다. 다만, 소정근로시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거나, 노동관계법령 등 강행법규를 잠탈할 의도로 소정근로시간을 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에 관한 합의로서의 효력을 부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덧붙여 “정액사납금제 하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을 제외한 고정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것을 회피할 의도로 사용자가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시간당 고정급의 외형상 액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택시운전근로자 노동조합과 사이에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의 변경 없이 소정근로시간만을 단축하기로 합의한 경우, 이러한 합의는 강행법규인 최저임금법상 이 사건 특례조항 등의 적용을 잠탈하기 위한 탈법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사용자가 택시운전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판시하며, “원심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결해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판단근거
대상판결의 판결 근거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① 최저임금법 특례조항의 취지는 택시운전근로자가 받는 임금 중 고정급의 비율을 높여 운송수입금이 적은 경우에도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며, 형식적으로만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시간당 고정급이 고시된 시간급 최저임금 수준을 충족하도록 편법을 예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사건의 소정근로시간 단축 합의는 강행법규인 최저임금법이 특례조항을 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 ② 최저임금법 특례조항 입법과정을 고려하면 국회가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인식한 상태에서 택시운전근로자의 안정된 생활보장 등 긍정적 입법 효과를 더욱 우선시한 것으로 소정근로시간 단축합의가 유효하다고 보아 실질적 규범력을 약화시키는 해석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③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일반택시운송사업에 국가에 의한 면허 제도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규제와 지원을 하고 있고, 이는 여객의 안전하고 원활한 운송을 도모하여 궁극적으로 국민의 공공복리를 증진하고자 하는 일반택시운송사업의 공공성이 반영되어 있다.
- ④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합의 관련 전후사정을 보아, 택시운전근로자 측이 자발적으로 합의했다거나 택시운전근로자가 예상치 못한 이익을 얻어 다소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들어 합의의 효력을 긍정할 수는 없다. 소정근로시간 단축합의의 효력을 유효하다고 해석하게 되면 최저임금법 특례조항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또한 여러 법률이 소정근로시간에 따라 근로자 보호 규정 내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중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합의가 유효하다고 해석되면 택시운전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에서 큰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불안한 지위에 처하게 된다.
* 근로기준법은 4주 동안을 평균하여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해 주휴일 제도(제55조)와 연차유급휴가제도(제60조)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고(제18조 제3항), 이러한 초단시간근로자에 대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은 퇴직급여제도를 설정할 사용자의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제4조 제1항 단서). 그리고 1개월간 소정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자는 고용보험 적용 제외 대상자이고(고용보험법 제10조 제2호,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1항), 건강보험의 직장가입자에서도 제외된다(국민건강보험법 제6조 제2항 제4호, 같은 법 시행령 제9조 제1호).
Ⅳ. 대상판결의 시사점
대상판결은 택시근로자들이 최저임금법에 의해 충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여하는 판결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이를 넘어 최저임금법 위반회피를 위해 실제 근무형태의 변화없이 소정근로시간만 단축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를 변경하고자 하는 사업주에게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 대상판결로 사업주들은 최저임금법을 회피할 의도로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 변경을 통해 실제 근무형태의 변화도 없이 소정근로시간만 단축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직종별 임금체계와 근무형태를 새롭게 정비하고, 가산 수당이 발생하는 연장ㆍ휴일 근무를 최소화하며, 다양한 비과세 급여와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장려금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면, 근로자들은 사업주가 실제 근무형태의 변화없이 소정근로시간만을 단축시키려는 경우, 대상판결의 택시운전근로자들의 경우처럼 ‘사납금 증액 회피’라는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동의해선 아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최저임금 미만으로 임금을 지급하면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대상판결은 정부에 최저임금 인상속도가 바람직한 것인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8년도 최저임금(시급 7530원)은 1인당 국민총소득 GNI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4위이며 올해에는 3위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빠른 인상속도는 지속적인 경기불황과 청년 실업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 상황에서 중소ㆍ영세 사업주에게는 인건비 부담과 경영 압박으로, 근로자들에게는 고용불안으로 작용하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정부는 향후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함에 있어서 공약 이행을 위한 정치적인 결정이 아닌, 경제ㆍ사회ㆍ노무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인상률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 ‘2018 최저임금 주요 노동ㆍ경제 지표 분석’ 보고서(최저임금위원회회 발간, 2018.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