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간추린 칼럼] 근로시간 제도 유연화 방안

1. 근로시간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성
우리법상 근로시간 제도는 1주간 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는 12시간까지만 허용되고, 이는 업무성격이나 근로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직종에 적용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제정 근로기준법(1953년)이 1주 48시간을 규정한 이후 지금까지 1주 40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소폭 변경된 것 외에는 규제의 형식이 큰 변화없이 70여년간 기본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로시간은 과도하게 경직된 노동시장 체제에서 기업들이 경기변동과 물량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되어온 측면이 있었다. ※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유연성은 141개국 중 97위, OECD 36개국에서는 34위에 해당해 여전히 최하위 수준으로 경직성이 심하고,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OECD 38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 그러나,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장시간 근로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고, 우리나라 1인당 연간 평균 실근로시간은 2008년~2023년 15년간 2200시간대에서 1800시간대로 줄어들었고, OECD 평균과의 격차는 2008년 412시간에서 2023년 기준 130시간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 풀타임(Full-time) 근로자 주당 평균 실근로시간은 기존 인식과 달리 이제 OECD 평균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우리나라의 OECD의 1인당 연간 평균 실근로시간 격차 비교 >
< 우리나라와 OECD 풀타임 임금근로자의 주당 평균 실근로시간 감소 추이 >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자영업자 비중이 크고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작은 탓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비교적 길게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취업형태 구성의 차이를 통제하면, 우리나라와 여타 OECD 국가의 연간 근로시간 격차가 약 31%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KDI, 「OECD 연간근로시간의 국가 간 비교분석과 시사점」, 2023. 1.). 우리나라가 과도한 장시간 근로 국가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직적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추가 규제보다는 유연근무제와 같은 근로시간 선택권을 늘리고, 자영업자의 생산성 향상, 시간제 근로자 지원·활성화 등이 더욱 효과적인 상황이다.


2.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문제점
(1)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한 대응의 어려움
현실적으로 주문량 증가, 업무량 폭증 등 업무집중이 필요한 경우에 현행 주12시간 연장근로 제도 운영으로는 업무를 해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건설, 조선 등 수주산업에는 기상상황 등 외부요인으로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또한, 교대제에서의 근무조 변경과 갑작스런 사유로 대체근무가 필요한 경우 연장근로 1주 한도로 인해 인력투입이 불가능한 상황도 발생한다. 기업 상당수가 예상치 못한 휴가 등에 대비해 여유 인력을 운영할 수도 없고, 특히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구인난에 처해 있어 불가피한 사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부득이하게 한 사람이라도 주52시간을 초과하면 사업주는 범법자가 돼 버리는 문제도 있다. ※ 최근 6개월간 현행 근로시간 규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 사업주 중 주문 포기는 30.6%, 근로시간 규정 무시는 17.3%로 나타남 (고용노동부,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2023. 11.)
(2) 현행 유연근무제로는 기업의 탄력적 대응과 근로자의 시간 선택의 자율을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음
- 1) 탄력적 근로시간제 현행 제도로는 1년에 성수기가 2~3개월씩 2번이거나,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 집중근로가 필요한 시기가 3~4개월이 넘는 경우는 6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로도 대응이 어렵다. 주요국들에 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여전히 짧은 수준이다. < 주요국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최대 단위기간 비교 >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6개월 1년 1년(단협) 3년(산별협약) 1년(단협) 1년(단협) - 2) 선택적 근로시간제 통상 기업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3개월~1년 단위로 일정한 단계에 따라 진행되며, 정해진 기간 내에 각 단계별로 고객의 요구가 변경되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업무량 집중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은데 현행 제도로는 활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도는 근로자 개인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임에도 전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요건으로 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도 맞지 않다.
- 3) 재량 근로시간제 현재 재량 근로시간제도는 대상업무가 전문업무형 이외에는 인정되지 않아 제도 활용도가 낮다. 전문적인 특정 분야가 아니라도 기획업무 등 업무의 성격상 근로자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재량하에 성과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이 많기 때문에 대상 업무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근로자대표가 전문직이 가지는 업무상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적절하게 파악하고, 해당 직군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일본의 경우 전문업무형 외에 기획ㆍ입안 등의 업무를 스스로의 재량으로 수행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도 재량 근로시간제를 도입함(2000년 4월부터 시행).
- 4) 11시간 연속휴시간제 현행법상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1개월 초과 3개월 이내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등 제도 활용시 근로일간 11시간 이상의 연속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11시간 연속휴식시간의 예외는 ‘재난’이나 ‘인명보호’ 등에만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9년 2월 경사노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노사정 합의 시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예외 사유를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따르기로 했으나, 국회 입법과정에서 ‘천재지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이라는 문구 추가로 사실상 사용을 제한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교대제에서의 근무조 변경과 갑작스런 사유로 대근이 필요한 경우’가 중요한 예외 사유로 언급했으나 입법시 반영되지 않았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는 제도 성질상 근로자가 1일, 1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기 때문에 1일의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가 맞지 않다. 현장에서는 3개월 초과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1개월 초과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고 싶어도 11시간 연속휴식제도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 5)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현행법상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생산 차질, 고객의 요구사항 변경 등 근로시간 총량의 일시적인 증가가 필요한 다양한 변수가 있음에도 인가사유가 여전히 협소하다. 또한, ‘돌발적 상황’과 ‘업무량 급증’ 사유로는 연 90일밖에 활용할 수 없어 납기를 맞추는데 부족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정부 ‘인가’ 여부로 제한이 가능하므로 기간을 90일로 한정하지 말고 사안의 중대성과 필요성, 근로자의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정한 기간 제한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 20년에는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한시적으로 인가기간을 연 90일에서 연 180일로, ’21년에는 150일로, ’22년에는 해외 건설, 조선업 등 제조업의 경우 180일로 확대한 바 있음.
(3) 근로시간 길이와 일의 성과가 일치하지 않는 고소득ㆍ전문직에 관한 규정 미비
근로시간 및 휴일·휴게시간의 적용제외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이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로 거의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시대 흐름에 맞는 제도 개선 요구 또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산업구조의 변화, 고용형태의 다양화, 근로형태의 유연화에 맞추어 연구개발, 관리감독직, 전문직 등 고소득이면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근로자들에 대해 근로시간 등 적용제외 제도 모색이 필요하다. 연구개발직, 전문직 등 기업 핵심인력들은 근로시간만으로 일의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우므로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기업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 미국은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 또는 특정 업무 수행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하는 제도를 운영 중(White-Collar Exemption) ※ 일본의 경우 새로운 기술, 상품 또는 역무(役務)의 연구개발과 관련된 업무에 대하여는 연장근로 제한 적용에서 제외
3. 근로시간 제도 개선 과제
(1) 연장근로 관리 단위 변경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상황과 근로자의 건강보호를 위해서는 11시간 연속휴식제, 1주 64시간제 외에 다양한 건강보호 조치 중에서 노사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상황에 맞게 예외 사유를 둘 필요가 있다. ※ 연장근로의 규율에 있어 주 단위 근로시간 규제가 아닌 월 또는 연 단위 근로시간 규제를 활용하는 국가들도 상당수 - 일본은 월 45시간/연 360시간(휴일근로 불포함), 특별협정시 예외적으로 월 100시간/연 720시간 가능, 독일은 6개월 또는 24주 내 평균 8시간 한도 내에서 1일 10시간까지 가능(1주 최장 60시간 가능), 영국은 17주 평균 1주 48시간(연장근로 포함) ※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해 근로자도 동의하는 비율이 41.5%로 동의하지 않는 비율인 29.5%에 비해 높으며, 추가적인 소득을 위해 연장근로를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41.7%(제조업 51.2%)로 높은 수준(고용노동부,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2023. 11)
(2) 유연근무제 합리적 개선
탄력적, 선택적 근로시간제 활용 기간을 최대 1년으로 확대하고 전체근로자대표 또는 부분근로자대표(특정 집단에만 도입ㆍ변경하는 경우에는 적용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 서면 합의로 도입할 수 있도록 변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량 근로시간제는 시행령으로 규정된 대상 업무 제한을 폐지하고, 대상 업무를 노사 자율로 결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3)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개선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경영상 사정 또는 직무 특성 등으로 한시적으로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로 폭넓게 확대하고, 업무량 폭증시 1년간 90일 한도에서 1년간 180일 한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4) 연구개발, 고소득ㆍ전문직 이그젬션 제도 도입
근로시간의 배분, 업무수행방식 등에 있어 근로자 개인의 자율성이 커지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근로자의 전문성, 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연구개발과 고소득 전문직 경우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하는 제도 신설이 필요하다.
(5)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현행법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에 따라 연장, 야간, 휴일 근로 등에 대해 임금지급에 갈음하여 휴가를 부여할 수 있는 보상휴가제가 있으나, 현행 보상휴가제는 방식(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장기간의 적립기간을 설정해 운영하기 힘든 문제 등 활용에 어려움이 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해 노사가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행법상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