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기업이 설립한 한국법인의 상시근로자 수 판단기준에 관하여

Ⅰ. 서 언
최근 글로벌경영이 보편화되면서 해외에 지사나 법인을 설립하는 한국기업의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국가라는 경계가 많이 흐릿해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지사나 법인을 설립하는 사례도 많은데, 이때 한국지사나 법인에 한국의 법규를 어떻게 적용할지의 문제가 늘 화두였다. 특히 노동법의 경우는 불법파견 이슈와 같이 외견이 아닌 실질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계기업의 한국법인의 경우 이와 충돌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즉 외견은 독립된 법인이나 그 법인의 운영이나 주요한 의사결정은 모두 글로벌기업 본사의 관리자(소위 ‘Boss’로 불린다)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노동관계의 주요 영역에서 논란이 있었다. 가령 한국법인 소속 근로자에 대한 실제 사용자를 누구로 보아야 하느냐의 문제에서부터, 다국적기업이 국내에 지사나 법인을 여러 개 만들어두고 밀접하게 협업토록 하는 경우 사업장 단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등이 상당기간 쟁점이 되어 왔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상황에서 다국적(외국계)기업 한국법인의 상시근로자 수를 산정하는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이러한 판단은 형식보다 실질을 중요시한다는 기존의 노동법리에도 배치되지 않아 이질감이 덜하다. 다만 다국적기업의 한국법인이나 지사 중에는 그간 법인 단위로 상시근로자를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대부분의 노동관계법령을 적용해오지 않았던 사례가 왕왕 있었는데, 이들 회사의 입장에서는 대상판결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는 있다. 또한 이러한 법리는 국내법인의 쪼개기 사례에서도 충분히 참고될 수 있는 사항이기에 법인을 여러 개로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반드시 관련 법리를 숙지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대상판결 및 그 하급심의 내용을 살펴보고 해당 이슈와 관련해 각 기업에서 점검해야 할 주요 사항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대상판결의 내용
1. 사안의 개요
(1) 소송이 제기된 배경
- ① 원고는 2006.5.10. 설립되어 국내외 여행업 등을 영위하는 법인으로, 2016.6.10.경부터 서울 서대문구 D건물 6층에 본점(이하 ‘원고 사무실’이라 한다)을 두고 있다. 피고보조참가인(이하 ‘참가인’이라 한다)은 2016.10.17. 원고에 입사하여 재경팀 소속으로 회계업무를 담당하였다.
- ②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본사를 둔 외국법인인 ‘E’(이하 ‘E’라 한다)가 2015.11.경 원고의 지분 100%를 인수하였고, 이후 호주에 본사를 둔 디지털 관광 비즈니스 기업인 ‘F’(이하 ‘F’라 한다)가 2018. 11.경 E의 지분 100%를 취득하였다. 이로써 다국적 기업으로 다수의 종속기업 내지 관계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F이 원고의 최상위 지배기업이 되었다. F의 종속기업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호텔예약사업 등을 하는 ‘G’(이하 ‘G’라 한다)는 2017.2.1. 서울 종로구 H건물 17층에 한국영업소를 설치하였다. G 한국영업소는 F이 원고의 최상위 지배기업이 된 이후인 2019.3.경부터 2020.12.경까지 원고 사무실을 원고와 함께 사용하였고, 2019.8.1. 원고와 별도로 위 사무실에 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 ③ 원고는 2020.10.21. 참가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근로계약 해지 통지서를 전달하여 2020.10.22.자로 참가인을 해고하였다(이하 ‘이 사건 해고’라 한다).
- ④ 참가인은 2020.11.13.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원고의 상시근로자 수에는 G 법인 전체의 근로자 수가 포함되어야 하므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등이 적용되고, 이 사건 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구제신청을 하였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21.2.1. “원고와 G는 경영상 분리되어 있고, 참가인의 퇴직일 전 1개월 동안 원고의 상시근로자 수는 3명으로 산정되므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및 제28조에서 정한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구 노동위원회규칙(2021.10.7. 노동위원회규칙 제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0조 제1항 제6호에 따라 참가인의 구제신청을 각하하였다(I).
- ⑤ 참가인은 2021.3.15. 위 초심판정에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하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21.5.13. “원고는 실질적으로 G 한국영업소와 인사ㆍ회계 등이 통합되어 사실상 하나의 사업장으로 운영되었으므로, G 한국영업소 근로자 수를 합산하여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해당한다.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사실상 하나의 사업장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된 이상, 원고가 사실상 폐업상태라거나 참가인에게 부여할 업무가 없다는 것은 정당한 해고사유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초심판정을 취소하고 참가인의 구제신청을 인용하였다.
(2) 상시근로자 수 판단과 관련된 기초사실관계
- ① 원고가 밝힌 2018.11.경 이후 F의 자회사 현황을 살펴보면, F(호주법인) 아래 E(두바이 법인), J(홍콩법인)로 구분되고, 다시 E(두바이 법인) 아래 원고(한국법인)가, J(홍콩법인) 아래 K(홍콩법인), G(두바이법인), G 한국영업소가 하위 계열사로서 순차적으로 존재하였다.
- ② 2019.3.7. 기준으로 작성된 G 한국영업소의 통합팀(Combined team) 조직도에는 G 한국영업소의 지사장 L(영어이름 M)이 최상단에 기재되어 있고, 그 아래 Senior Account Manager, Operations Manager, Sales&Marketing Manager, General Manager[Commercial, 원고(A)], Accounting Manager의 직함과 이름 및 소속 팀원들이 각 기재되어 있는데, 당시 원고에 재직 중이던 근로자들도 위 조직도에 포함되어 있다. 참가인은 Accounting Manager인 N(영어이름 O)에게 소속된 팀원인 재무담당(Treasury)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원고의 대표이사인 P은 싱가포르에 거주하여 국내에 부재중이고, 위 조직도에 포함되지 않았다.
- ③ G 한국영업소는 2019.3.경부터 원고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위 사무실 내에서 원고와 G 한국영업소의 공간을 별도로 분리하지는 않았다. 원고 사무실의 임차료, 정수기 대여비용, 전화요금 등의 비용은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나누어 처리하였다.
- ④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모두 해외 호텔을 확보하여 여행사를 상대로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데, 원고는 주로 일본 등 아시아 소재 호텔을, G 한국영업소는 주로 유럽 등 전 세계 소재 호텔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호텔 예약 관련 업무에서 별도의 전산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 ⑤ 2019.3.경 이후 원고 재경팀의 업무 중 일부는 G 아시아ㆍ태평양으로 이관되었고 참가인을 비롯한 원고의 재경팀 근로자들은 원고의 재무ㆍ회계업무뿐만 아니라 G 아시아ㆍ태평양의 회계업무도 일부 분담하여 수행하였다. 참가인이 G 아시아ㆍ태평양의 회계업무까지 담당하며 업무가 과중해진 문제 등으로 원고 재경팀장인 N과 사이에 업무상 다툼과 갈등이 발생하자, G 한국영업소 지사장 L은 2019.7.경 이에 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2019.8. 및 9.경 참가인의 대리인인 노무사와 직접 전화통화를 하여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합쳐지는 중이라면서 참가인을 같은 회사 소속 부서원이라고 표현하며 본사에 제안할 참가인의 권고사직 조건을 협의하였다. 또한 L은 G 한국영업소 인사팀 직원으로 하여금 2020.1.부터 2020.2.까지 참가인의 근태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도록 하는 등, 참가인을 포함한 원고 소속 직원들의 인사 및 노무관리까지 담당하였다.
- ⑥ 참가인은 2020.2.경 원고와 G 한국영업소 직원 전체에게 하나의 노동조합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 이메일에는 2019.3.경 이루어진 인수합병과 조직개편 이후 원고 직원들이 사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G 한국영업소 L 지사장은 원고와 G 한국영업소 직원 전체를 상대로, “원고와 G 한국영업소의 합병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퇴사한 사실은 있으나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사직을 강요한 바는 없고 원고 직원들의 퇴사 경위는 참가인의 주장과 다르며 참가인이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는 회사 차원에서 추가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 ⑦ G 북아시아 지역 관리자인 Q는 참가인과 승진, 휴직에 관하여 직접 협의하고 이를 승인하였으며, 참가인에게 연차휴가 사용현황을 알리며 잔여 연차휴가 사용을 독려하고, 참가인의 무단 반차 사용 등 근태에 관하여 보고를 받고 G 한국영업소의 인사담당자에게 경고문을 보낼 것을 지시하는 등 참가인에 대하여 인사, 노무에 관한 결정권한을 행사하였다. 또한 Q는 원고의 재경팀 소속인 참가인과 N에게 연차휴가에 관한 법률자문 비용을 지급하도록 지시하고, 원고 직원들의 급여 지급을 지시하는 등으로 원고의 재무ㆍ회계업무에도 관여하였다.
- ⑧ 2020.3. 기준 원고의 근로자는 총 12명 남짓이었는데, 그중 5명은 원고에서 사직하자마자 곧바로 G 한국영업소로 소속을 옮겨 근무하였다. 이 사건 해고 무렵 원고의 상시 사용 근로자 수는 참가인을 포함하여 3명이고, G 한국영업소의 상시 사용 근로자 수는 6명이었다. G 한국영업소가 원고의 주된 사업지역이었던 일본 등 아시아 호텔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종료하였다고 볼 사정은 없다.
(3) 상시근로자 판단과 관련된 법리
- ① 근로기준법의 적용범위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여기서 말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는 기업체 그 자체를 의미하고(대법원 1993.2.9. 선고 91다21381 판결 등 참조), 사업장인지 여부는 하나의 활동주체가 유기적 관련 아래 사회적 활동으로서 계속적으로 행하는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는 단위 장소 또는 장소적으로 구획된 사업체의 일부분에 해당되는지에 달려 있다[(대법원2005도9218, 2007.10.26) 판결 참조]. 다만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보면 사업 또는 사업장이 기업체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 사업주가 ‘하나의 활동주체’로서 활동한 것인지 여부는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적용 기준이 되는 하나의 사업장인지 여부는 근로장소의 동일성과 더불어 제공된 설비의 사용관계, 사업의 목적 및 수행방법, 조직체계, 인사교류,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구체적 지휘감독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 ② 한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과는 관계없이 실질에 있어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반대로 어떤 근로자에 대하여 누가 근로기준법 소정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대법원2006도300, 2006.12.07) 판결, (대법원2010다107071, 2012.05.24), 107088 판결 등 참조].
2. 1심1)의 판단
1) 서울행정법원 2022.9.23. 선고 2021구합68704 판결
1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와 G는 별개의 독립된 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는 하나의 사업장으로 운영되었다고 인정된다고 하면서, 원고와 G 한국영업소의 근로자 수를 합산하면 5명 이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 ①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모두 F를 최상위 지배기업으로 하여 해외 호텔을 확보해 여행사를 상대로 판매하는 호텔예약 관련 사업을 하였고, 다만 원고는 주로 일본 소재 호텔을, G 한국영업소는 주로 유럽 소재 호텔을 취급한다는 차이만 있었다. 2019. 3. 7. 작성된 G 한국영업소의 조직도는 L(G 한국영업소 지사장)을 최상위 관리자로 하여, 원고 및 G 한국영업소 소속 직원들이 별다른 구분 없이 각 담당한 업무에 따라 팀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되었다. 이에 비추어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2019. 3.경부터 통합되어 하나의 조직으로서 해외 호텔예약 사업을 영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고는 2019. 3. 7.자 조직도는 여러 계열사 사이의 소통 관계를 보여 주기 위해 수시로 작성되는 것에 불과할 뿐 업무상 지휘ㆍ감독 관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나, 위 조직도의 표제가 ‘G 한국영업소’(통합팀)인 점, 실무적인 업무 협조 관계를 단편적으로 제시하는 문서에 불과하였다면 L 지사장이 원고와 G 한국영업소 소속 직원 전체에게 발송하는 이메일에 위 조직도를 첨부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운 점, 참가인은 2020. 2. 26. 노동조합 설립 제안 이메일을, L 지사장은 2020. 2. 27. “노동조합 설립은 직원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나 참가인의 주장 사실을 바로 잡는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각 원고 및 G 한국영업소 소속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발송하였을 뿐만 아니라, L은 위 이메일에서 참가인이 원고뿐만 아니라 G 한국영업소 소속 직원들을 포함하여 노동조합 설립을 제안한 것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거나 G 한국영업소는 원고와 별개의 사업장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하지 않았던 점, L은 2019. 8. 19. 참가인 측 노무사와의 대화에서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합쳐지는 과정에 있고, 참가인을 같은 회사 소속 부서원으로 인식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편 위 조직도에는 원고의 대표이사인 P이 아예 기재되어 있지 않은바, P이 아닌 L이 실질적으로 원고와 G 한국영업소 전체를 관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②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2019. 3.부터 원고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였고, 갑 제13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사무실 내의 공간이 법인 별로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열린 공간에 책상들이 배치되어 각 법인 소속 직원들이 서로의 업무 상황을 확인하거나 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독립된 별도의 영업조직을 갖추고 있었다거나 업무가 명백히 구분되어 독립된 사업 부문을 운영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제출된 증거자료에 따르면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별도의 전산 시스템을 통해 호텔 예약 관련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는 원고가 F의 종속회사가 되기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예약 관련 사이트 등을 계속 활용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근거로 원고와 G 한국영업소 직원들의 업무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원고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5명은 사전에 G 한국영업소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원고에서 퇴사함과 동시에 근로기간의 단절 없이 G 한국영업소에 입사하여 계속 근무하였다는 점에서 원고와 G 한국영업소의 사업 운영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조직체계가 독립적이지 않은 채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 ③ 앞서 본 바와 같이 L 지사장은 참가인의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G 필리핀 재경팀 담당자의 의견을 듣고(2019. 6. 10.자 이메일), 참가인과 N 사이의 다툼과 관련하여 노무법인의 자문을 구하여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를 진행하였으며(2019. 7. 23.자 이메일), 직접 참가인의 대리인인 노무사와 전화통화를 하여 ‘본사’에 제안할 참가인의 권고사직 조건 등을 협의하였다(2019. 8. 19. 및 2019. 9. 3.자 녹취록). 위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L은 원고 소속 직원의 병가, 휴직, 권고사직 조건 등 노무인사 관련 사항을 직접 담당하여 처리하고 이에 관하여 G 본사 또는 F 측의 승인이나 허가를 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고가 관련 초심판정 절차에서 제출한 참가인의 근태 관련 자료에 의하면, 2020.1.6. G 한국영업소에 입사한 인사팀 직원이 2020. 1.부터 2020. 2.까지의 참가인의 근태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왔는바, 위와 같은 L 및 G 소속 직원의 노무인사관리를 단순히 G 한국영업소가 부재중인 원고 대표이사 등 관리자의 업무를 대행한 것에 그치는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 ④ Q는 참가인에게 참가인이 신청한 휴가의 법적 성질 등을 고지하면서 참가인의 휴직 신청에 관한 최종적인 지시(final instruction)를 보내겠다고 하였고(2019. 8. 22.자 이메일), 참가인의 휴직이 통상보다 긴 기간임에도 회사의 배려로 휴직 신청을 승인하는 것이라고 알렸으며(2019. 8. 23.자 이메일), 참가인은 병가 외에 참가인의 승진과 관련한 사항도 Q와 협의하였다(2018.11.15.자 이메일). Q는 참가인과 장시간 전화면담을 하여 참가인의 요구사항을 확인하거나(2019. 8. 30.자 이메일), 참가인이 무단반차를 사용한 것에 관하여 경고를 할 것을 인사담당자에게 지시하기도 하였다(2020. 2. 10.자 이메일). 이에 비추어 Q는 참가인 등 원고 소속 근로자의 노무인사 관련 사항을 직접 관리하면서 근로관계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Q는 참가인과 N에게 연차휴가 관련 법률자문의 비용을 지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고(2019. 3. 25.자 이메일), N에게 급여 지급 처리를 요청하는 등으로(2020. 1. 22.자 이메일) 원고의 회계 관련 업무에도 관여하였다. 원고는 Q이 F의 계열사인 R 소속 인사담당자로서 원고에게 잠시 도움을 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나, 위와 같이 Q이 참가인에 관한 인사노무 관련 업무, 원고의 회계 업무 등에 관여한 정도와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Q은 스스로 이메일 하단에 이름과 함께 기재한 직책인 ‘G의 북아시아 지역 담당 관리자’(Senior Administration Manager North Asia G)로서 원고의 인사ㆍ노무, 회계 관련 업무를 지휘ㆍ감독하였다고 인정된다. 따라서 G가 수직적인 관계에서 원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G 한국영업소와 원고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사업 내지 사업장으로 운영하여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 ⑤ 국적이 다르고 법적으로 분리된 여러 기업으로 구성된 다국적기업은 종속기업이 지배기업인 모기업의 통제하에 놓이게 됨에 따라 지배기업인 모기업의 대표이사 등 임원들과 종속기업의 대표이사 등 업무집행권을 가진 임원들 사이에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의 지배종속관계가 투영되어 일정한 수준의 지휘ㆍ감독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에 대한 G 한국영업소와 G의 업무상 관여 및 지휘ㆍ감독을 다국적 기업이 현지 법인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지휘ㆍ감독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원고는 이 사건 해고가 있을 무렵 경영이나 조직 관리에 있어 독자적인 재량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실질적으로 참가인을 포함한 원고 소속 근로자들을 지휘ㆍ감독하여 인사노무 관리를 하고 근로관계의 핵심적인 사항에 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G였던 것으로 보인다.
- ⑥ 한편 원고는 이 사건 재심판정에서 원고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었다고 본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이 사건 재심판정은 원고와 G 한국영업소가 사실상 하나의 사업장으로 운영되었다고 판단하였을 뿐, 원고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었음을 판정 이유로 삼고 있지 않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11조상의 사업은 영리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를 의미하는 ‘기업’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고, 사업주에 해당하는 ‘법인’과도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원고가 법인격이 형해화된 상태인지 아니면 독립된 법인격이나 권리주체로 인정되는지 여부는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의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평가되는지 여부와는 별개의 사항으로,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으며 이 사건에서 쟁점 판단의 전제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3. 2심2)의 판단
2) 서울고등법원 2023.9.22. 선고 2022누65919 판결
1심 판단에 대해 사용자(A법인)가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아래와 같은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다.
- ① 다국적기업으로서 E는 지리적으로 분할된 사업구역별로 사업장을 두고 원고와 동종의 사업(호텔 객실의 재판매)을 영위하는 독립적 기업단위이기는 하다. 그러나 참가인은 회계담당자로서 이는 다국적기업인지를 불문하고 기업 조직 내에서는 대표적인 후방 지원업무에 속한다. 특정 사업구역 내에서 본래 사업 목적에 따른 경쟁적인 영업활동을 수행하고 성과 달성을 목표로 하는 부서라면 별론, 적어도 이와 같은 후방 지원업무인 경우에는 사업구역의 분할 여부나 그에 따른 영업이나 기업 조직의 분리 여부와는 무관하게 사업구역이나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소속된 개별 기업 단위에 대해 공통적인 업무와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비용이나 운영의 효율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그리하여 참가인도 원고의 후방 지원업무부서에 속하는 동시에 E의 후방 지원업무부서에 소속되어 실질적으로 원고의 국내 영업뿐만 아니라 E의 아시아권 영업을 위해서도 동일한 내용의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참가인이 필리핀 소재 E지사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자 현지 담당자로부터 업무 관련 불만이 제기되었고, 이에 참가인에게 요구된 업무를 참가인의 직속상관인 F 대신 수행한 것만 보더라도, 참가인의 원고 및 E조직 내에서의 업무와 역할이 단순히 원고의 사업 영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이처럼 참가인이 수행하는 회계업무는 E조직 내의 회계, 재경 업무와도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고, 이를 통해 E의 사업목적 및 영업성과의 달성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던 이상, 참가인이 근로를 제공한 사업 또는 사업장은 원고 외에 E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② 나아가 비록 E의 본사가 외국법에 의거해 설립된 외국법인이고 그 본사가 해외에 있으며 정확한 상시 근로자 수가 밝혀져 있지는 하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도 E가 국내에 영업소를 갖고 있고 참가인이 해고될 당시 최소한 6명 이상 상시로 근로자를 고용하여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같은 장소에서 참가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후방 지원업무를 제공받았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참가인이 해고될 당시 해당 사업 내지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 수가 최소한 5명 이상이었다는 점은 쉽게 인정되고, 달리 E의 설립준거법령, 본사 소재지, 정확한 기업 조직이나 고용 관계에 관한 정보의 부재 등은 위와 같은 판단을 함에 있어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아니한다.
4. 대법원(대상판결)3)의 내용
3) (대법원2023두57876, 2024.10.25)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운영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서. 원고와 G 한국영업소의 상시 사용 근로자 수를 합산하면 5명 이상이므로,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 ①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같은 사무실 내에서 동종 호텔 판매업을 동일한 방식으로 영위하였고, 원고와 G 한국영업소 직원들은 2019. 3.경부터 이 사건 해고 무렵까지 G 한국영업소 지사장을 최상위 책임자로 하는 하나의 통합된 조직으로 편성되어 함께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원고 재경팀 직원들은 G 아시아ㆍ태평양의 회계업무까지 담당하고 G 북아시아 지역 관리자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았다. 원고와 G 한국영업소의 직원들과 관리자 모두가 두 회사를 사실상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 직원들 중 상당수가 G 한국영업소로 소속을 옮겨 계속 근무하는 등 직원들 간의 인적교류도 이루어졌다. 이에 비추어 두 회사의 인적ㆍ물적 조직과 재무ㆍ회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 ② G 한국영업소 지사장이나 G 북아시아 지역 관리자가 원고 직원들의 인사 및 노무관리 등을 담당하였고, 원고 내에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았는바, 원고 직원들과 G 한국영업소 직원들에 대한 인사 및 노무관리가 G 측에 의하여 통일적으로 이루어졌다.
- ③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회사들이 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업무와 조직이 혼재된 사실만을 근거로 그 회사들을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단정하여서는 안 되지만, 원고와 G 한국영업소는 이 사건 해고 무렵 이미 인적ㆍ물적 조직이 통합되어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사회적 활동단위로서 상당한 기간 동안 운영되어온 상태였다.
Ⅲ. 대상판결의 평석
현행 근로기준법 제11조는,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하고(제1항)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제2항).”고 규정하여 ‘상시 사용하는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달리 규율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단위가 되는 동법 제11조 제1항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 함은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적, 사회적 활동단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법인격의 분리 여부가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우선적인 기준이 되므로 법인격이 다른 기업조직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구성할 수 없음이 원칙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국내법인이든 글로벌기업의 한국법인이든 간에 법인단위로 상시근로자 수를 측정하고 적용되는 노동관계법규를 결정하는 것이 대원칙이라는 것이다. 다만 대상판결에서 판시한바와 같이 예외적으로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여러 개의 기업조직 사이에 단순한 기업 간 협력관계나 계열회사, 모자회사 사이의 일반적인 지배종속관계를 넘어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사회적 활동단위로 볼 수 있을 정도의 경영상의 일체성과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들을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복수의 기업조직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는 대상판결이 제시한바와 같이 “업무의 종류, 성질, 목적, 수행방식 및 장소가 동일한지, 업무지시와 근로자의 채용, 근로조건의 결정, 해고 등 인사 및 노무관리가 기업조직별로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사업주체 내지 경영진에 의하여 통일적으로 행사되는지, 각 단위별 사업활동의 내용이 하나의 사업목적을 위하여 결합되어 인적ㆍ물적 조직과 재무ㆍ회계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운영되는지 등”과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원칙에 대한 예외적 판단이기에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대상판결도 동일한 입장이다. 대상판결에서 제시한 법리를 참고할 때, 외국계기업의 국내법인에서 독립된 사업장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유의해야 할 주요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사/회계정책의 수립단계에서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주요한 글로벌의 방침 등을 국내법인에 적용될 정책 입안 시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그 세부적인 기준을 기획하거나 인사나 회계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의 실행 주체는 적어도 본사의 관리자가 아닌 한국법인의 최고 책임자가 하도록 권한을 설정/이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인사/회계의 실행(관리)단계에서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인데, 근태관리나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문제 등 인사의 실행 단계에서도 외국 본사에서가 아닌 소속 법인에서 관리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등 법인의 인사나 회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각 기업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사의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토록 하거나 인사발령이나 이동 또한 한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무분별하게 실행할 경우 자칫 하나의 회사로 오인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이러한 세밀한 영역에 대하여도 기준을 수립하고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이와 동시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예외 법리를 적용하는 경우에도 외국계기업 한국법인의 상시근로자 수를 통산할 때에는 국내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법인 및 지사(본 사안의 경우 한국법인과 G 한국영업소)만을 합산해야 한다는 것이고 외국법의 적용을 받는 외국법인 소속 근로자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같은 날 대법원은 유사 사례[(대법원2023두46074, 2024.10.25) 판결]에서 “외국기업이 외국에서 사용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국의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될 뿐이므로,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에서 사용하는 근로자 수까지 합산하여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의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하여 동일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Ⅳ. 결 어
대상판결이 설시한 법리는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다는 기존의 한국 노동법리에 부합하는 해석으로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부터 우려를 표해왔던 영역이기도 하다. 다만 그간 이슈화되지 않았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외국계 기업의 근로조건에 만족한 근로자들이 굳이 문제제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덜 느꼈던 측면도 있고(동시에 이직관리가 중요한 근로자 입장에서 문제점을 들추어내는 것을 꺼려했던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외국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법률관계이다 보니 단순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노사 간 갈등요소도 끊임없이 발생(괴롭힘, 해고, 구조조정 등)하고 있다 보니 점차 관련 이슈가 표면화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또한 인사관리의 형식조차 갖추지 않았던 과거에는, 각 기업으로 하여금 “형식이라도” 갖출 것을 요구했던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다면, 지금 대부분의 기업은 인사관리의 형식은 잘 갖추고 있는바, 과거에 비해 실질을 중시하는 것은 이와 같은 “관리 수준의 상향”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노사관계의 예측도도 상당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기업에서 인사노무관리를 할 때에도 이제 실질을 중시하는 근본적인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제시한 법리 또한 겸허히 수용하여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