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탈안
윤종훈(공인회계사, 참여연대) 급쟁이가 세금에 무관심한 한 그들은 영원한 봉일 수 밖에 없다 1999년 과세특례제도 폐지운동을 벌일 때의 일이다. 당시, 과세특례제도의 폐지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일부 국회의원들이었다. 과세특례제도의 폐지는 고소득자영업자의 이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이므로, 자영업자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이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과세특례제도의 폐지는 자영업자의 이익에는 반하지만, 반대로 봉급생활자에게는 득이 되는 조치이다. 과세특례제도의 폐지로 자영업자의 탈세가 줄어들게 되면, 세수가 늘어나므로 그만큼 근로소득세를 감면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편, 과세특례제도의 폐지로 직접적으로 손해보는 자영업자는 불과 50~60만명에 불과하지만, 간접적으로 이익을 보는 봉급생활자는 전국적으로 1천만명이 넘는다. 국회의원은 표에 살고 표에 죽는 직업이므로 표계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왜 50~60만명의 표 때문에 1천만명의 이익에 반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이는 50~60만표와 1천만표를 바꾸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이러한 필자의 의문이 평범한 소인배의 아둔함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소득자영업자들은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지역구 국회의원후보에게 선거자금의 일부분을 지원해주기도 하고, 향우회나 동창회 등을 통하여 선거운동을 해주기도 하며, 심지어 선거운동원을 조직 및 동원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준 고소득자영업자들이 매우 귀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요구를 쉽게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영업자들은 본능적으로 세금문제에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으며 관심도 많다. 한편,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봉급생활자들은 자영업자와 같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봉급생활자들은 세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세금에 대하여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회사에서 원천징수 및 연말정산하는 것으로 납세의무가 끝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하며 세금문제에 지독히도 관심이 많은 수십만명과 세금문제에 대하여 관심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1천만명 중 국회의원은 누구를 선택할까? 이는 물어보나마나한 일일 것이다. 세금문제가 나올 때마다 ‘봉급생활자가 봉이냐’라는 불만이 단골로 제기된다. 그러나, 봉인 그들이 세금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한 그들은 영원히 봉일 수밖에 없다. 세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이 팽배한 사회에서 조세개혁이 가능할까?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국민은 병역비리에 대한 분노감이 매우 크다. 그런데, 탈세문제에서는 그렇게 분노감이 큰 것 같지가 않다. 2000년 총선에서 입후보자의 탈세문제가 크게 이슈화된 것이 전례 없던 일이기는 하지만, 이는 지도층의 부도덕함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지 일반 국민들의 탈세문제에 대하여까지 분노감이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4명의 친구가 모였는데, 3명은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1명은 군면제 또는 방위출신이라고 하자. 이때 1명은 자신의 군경력을 매우 부끄러워 하고, 심지어 현역출신이라며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4명의 친구 중 3명은 봉급생활자이고 1명은 자영업자이다. 3명의 봉급생활자는 세금을 꼬박꼬박 낼 수밖에 없을 것이며, 1명의 고소득자영업자는 다른 3명에 비하여 소득은 많으면서 내는 세금은 적다고 하자. 이때 자영업자 1명이 자신이 탈세를 한 사실을 부끄러워 하며 이를 숨길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돈을 많이 벌면서 세금을 적게 내고 있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정직할 수밖에 없는 봉급생활자들을 비웃으면서 말이다. 병역의무와 납세의무 모두 다 국민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헌법상의 의무인데, 이에 대한 의식은 왜 이리 차이가 날까?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겪었다. 일제시대에 세금을 잘낸다는 것은 곧 일본정부의 배를 불리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당시에 세금을 빼먹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금을 빼먹고 그 돈을 독립군에 지원해준다면 이는 애국적인 일이 되었다. 일제시대는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만 준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는 국민에게 ‘세금은 부도덕한 정권의 착취수단’이라는 편견을 갖게 함으로써 우리나라를 탈세천국으로 만들었다. 탈세천국이 선진적인 복지국가가 될 수는 없다. 몇 년전 지방의 어느 중소도시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차량통행이 별로 없는 사거리에서 빨간 신호를 받고 서있었다. 그런데, 뒤에 서있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그냥 지나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그냥 서있자 추월하며 지나가는 차들이 한결같이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교통질서를 어긴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탈세문제에서 떳떳하지 못한 현실에서는 탈세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될 수밖에 없다. 세금에 대한 무관심과 무식, 탈세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에서 조세개혁이 가능할까? 조세개혁이란 단순히 제도를 개선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발전된 제도만큼 납세자의 의식도 발전해야 한다. 보의식 만큼 납세의식도 중요하다. 몇 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운전하기가 가장 겁나는 나라로 손꼽힐 정도로 교통질서가 엉망이었다. 그러나, 모방송국의 오락프로에서 교통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전국적으로 교통질서를 지키자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그 결과, 현재는 교통질서에 대한 국민의식이 몰라볼 정도로 선진화되었다. 우리 국민의 잠재력은 이만큼 대단하다. 나만 편하자는 생각에 너도나도 교통질서를 어길 경우, 결국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나만 이익을 보자는 생각으로 너도나도 탈세를 일삼는다면, 우리모두 피해자가 된다. 전국적으로 교통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벌인 것처럼 이제 ‘세금 제대로 알고, 제대로 내기’운동을 펼쳐야 한다. 우리나라 운전자의 교통질서에 대한 태도가 혼자서 운전할 경우와 자녀를 태웠을 경우에 매우 다르다고 한다. 혼자서 운전할 경우에는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다가도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매우 잘 지킨다. 물론 가족의 안전을 위해 교통질서를 더 잘 지키려고 하는 점도 있겠지만, 자녀의 눈에 ‘질서의식없는 나쁜 부모’로 비치기가 싫어서일 것이다. 작년에 자영업자의 탈세가 한참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을 때 어느 자영업자 한분이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언론에서 자영업자가 탈세를 한다고 떠들어대니까 초등학교 다니는 녀석이, ‘아빠는 왜 탈세를 해?’라며 물읍디다. 내 참, 애들보기 부끄럽고 창피해서…. 애들 때문이라도 앞으로 세금 제대로 낼테니까, 이제 자영업자 좀 그만 잡으쇼.” 그 전화를 받고,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건전한 납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미 탈세의 달콤함을 맛본 성인들이 완벽하게 건전한 납세의식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통질서의식과 마찬가지로 납세의식도 어린이를 통하여 어른들을 깨우치게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중고 교과서를 뒤져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납세의식에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었으며, 중학교 3학년 사회교과서에는 형식적으로 몇 줄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고도 정부가 납세자의 의식을 탓할 자격이 있을까? 이제, ‘빨갱이를 때려잡자’식의 안보교육보다 더 많은 부분을 세금교육에 할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