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인 시월 사일,오후에 쿠스코에서 마츄피츄로 이동했다. 쿠스코에서 2,300미터 지점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대개의 관광객들은 마츄피츄에 가기 전에 우르밤바라는 휴양지에서 쉬어 가는데 우리 일행도 그리하기로 했다. 쿠스코에서 우르밤바로 가는 길에 보니 가파른 계단식 밭에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 많은 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잉카 사람들은 봄에 산양의 일종인 야마 때를 몰고 산에 올라가 계단식 밭에 파종을 해놓고 내려왔다 가을에 다시 올라가 추수를 한다. 이들이 산에 있는 동안에는 야마 젖이 그들의 양식이다. 여기 사람들은 삼모작을 한다는데 보통 3헥타르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다니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 우르밤바는 쿠스코보다 해발 500미터 정도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경치가 수려해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우르밤바가 가까워지자 면 소재지 정도 되는 촌읍에 학교, 주유소, 관공서 등이 한데 모여 있고 경찰지서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끔 나타나는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상납금을 바치고 간다는 것이다. 많지는 않은 돈 같아 보였지만 옛날 우리나라도 그랬는데 라고 생각하니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촌읍을 지나자 넓은 풀밭에는 소, 양, 돼지, 염소 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고 그 옆으로는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는데 샹그리라가 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쉬어가고 싶은 풍경이 연출되었다. 석양이 뉘엇할 무렵에 소네스타 포사다스 델잉카라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스페인식으로 노랑색과 파랑, 고동색으로 칠해진 이층으로 된 호텔은 네팔에서 본 산장같이 아늑하게 꾸며진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케빈과 같이 꾸며진 방의 마루 바닦에서는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초록색으로 칠해진 출입문짝이나 천장에 서까래 사이로 회칠한 장식 등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해가 서산 마루에 떨어질까봐 방에 짐을 던져놓고 카메라를 메고 나가 동네 느티나무 밑에 있는 두 마리의 양들을 석양을 배경으로 찍어 볼려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양들과 해가 떨어질 때까지 씨름을 했다. 시월 오일 목요일, 이른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는데도 두 시경에 눈이 떠진다. 오지 않는 잠을 다시 청하여 다섯시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여섯시 반에 떠나는 마츄피츄행 전동차 아우토바곤에 몸을 실었다. 당일치기로 마츄피츄 구경을 하자니 새벽부터 부산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마츄피츄를 보기 위해서는 미화 80불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 요금에는 호텔에서 역까지 버스요금, 아우토바곤 요금, 역에 내려서 마츄피츄까지의 버스 요금, 입장료와 현지 가이드 요금이 포함된 액수다. 호텔에서 우루밤바 역까지 가는 길에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남녀노소 농부들이 들에 나와 소를 몰고 밭을 갈며 김을 메고 농약을 치는 모습이 보통 부지런해 보이지 않는다. 우르밤바 강을 끼고 들어선 동네 집들도 벽돌로 지은 게 규모가 있어 보였으며 사람들이 부지런해서 그런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햇살이 맑은 날이라 멀리 안데스산맥의 만년설 봉우리도 보이고 가깝게 보이는 회색산은 아침 햇살로 인해 노랗게 물들어 보이는 게 무척 신선한 감마저 주었다. 아우토바곤에 오르니 차안은 외국 관광객들로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여섯시 반 정각에 기적을 울리며 전동차는 출발했다. 협괴로 된 왼쪽으로는 우르밤바 강과 계단식 밭 사이로 유채꽃과 같은 노오란 꽃들이 유난히 많이 피어 있었으며 강변에는 유칼리프 나무들이 서로 키 자랑을 하고 있었다. 열차 오른쪽으로는 깍아 지른 안데스산맥의 봉우리들이 만년설을 이고 있었으며 간간히 보이는 계단식 밭에는 선인장 사이로 자주색 감자꽃이 만발하였다. 종착역인 푸엔테 루이나스 역의 표고는 해발 2,000미터로 쿠스코보다 1,50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기후도 따뜻할 뿐더러 고산병에 시달리던 관광객들도 이곳에 오면 원기를 되찾을 수 있다. 푸엔테 루이나스 역 앞에는 우리를 태우고 마츄피츄로 올라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마츄피츄까지는 표고차 400미터 정도로 주곡 양장보다도 더한 13개의 심한 구비 길을 돌아서 올라간다. 이 길은 마츄피츄를 발견한 미국 예일대학 교수 하이람 빙검 박사의 이름을 따서 빙검도로라 부른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 얼마나 올라갔을까? 갑자기 눈앞에 돌로 된 공중도시, 앓어버린 도시 마츄피츄가 눈앞에 나타나니 가슴이 벅찼다. 해발 2,400미터 고지에 위치한 이곳은 잉카사람들이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피신한 곳이며 우르밤바 강 유역의 산들이 열대 정글로 이루어져 있어 공중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하여 공중도시라고 부른다. 이 곳에 오르니 우리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다며 이곳 역사공원 관리소 뽀르네오 소장이 우리 일행을 위한 간단한 역사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마츄피츄의 총면적은 5㎢이며 유적의 절반 가량은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유적 주위는 높이 5m,두께 1.8m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만든 요새이다. 유적의 오래된 부분은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만들어 졌다고 믿고 있으며 행정도시 쿠스코와 더불어 잉카제국에서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은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태양의 처녀들과 제관들만이 살고 있었으며 도시의 규모와 농경지 면적으로 추정하여 이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오천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느린 200명도 안되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가 붕괴되자 아타알파 왕은 체포되고 죽임을 당했으며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은 아타알파 왕의 사촌 망고로 하여금 왕실의 대를 잇게 하였으며 이후 그의 아들 마지막 황제 뚝방 아마르 왕 때까지 저항을 계속하였다. 뚝방 아마르 왕이 20만 대군을 정비하여 스페인 군대와 결전을 앞둔 날 야간기습을 당해 어이없이 패배하고 말았는데 잉카군대는 전투를 낮에만 하는 것으로 알고있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고만 것이다. 이 일로 뚝방 아무르 왕은 체포되어 목과 사지가 잘리우는 오시형을 당했으며 잉카 백성들은 그를 애도하며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했다. 이 때, 잉카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비밀기지인 비르카 밤바로 갔다고 한다. 베르카 밤바는 옛날 기록에 의하며 대단히 높은 산 꼭대기에 있고, 정교한 기술로 건축된 장대한 건물들이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찾지 못하다가 미국인 역사학자 하이람 빙검이 1911년 7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재발견하여, 마츄피츄는 400년이 넘는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잉카 사람들은 이곳이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왕이나 제관 등 이외의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올 수 없게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였다. 하이람 빙검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170여 구의 사람 뼈를 발견하였으며 이들은 하나같이 노약자나 여자, 어린이들의 뼈였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침공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잉카사람들은 왜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을까? 그리고 그들이 가져갔다는 황금은 왜 없을까? 이러한 의문점은 마츄피츄가 그들이 찾아갔다던 비르카밤바가 아니고 또 다른 곳일 수도있다는 가정이 나오며 이들은 스페인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제2의 잉카제국을 찾아서 어디론가 이동했으며 이동에 방해가 되는 노약자들은 죽여서 이들을 묻고 떠난 게 아닐까? 마츄피츄 유적은 걸어서 돌아본다. 유적 입구 지역에는 오두막으로 된 전망대가 있는데 돌로 정교하게 쌓은 집에 풀로 지붕을 이어놓은 건물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가파른 비탈에도 예외 없이 계단식 밭을 만들어 옥수수, 감자, 코카인 등 200여 종의 작물을 심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보면 태양신전, 왕녀의 궁전, 3개의 커다란 창문을 가진 신선한 광장, 태양의 문 등의 유적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나 안내인의 설명을 자세히 듣지 않으면 어느게 어떤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또 잉카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수인 물을 잘 관리해 멀리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수로로 만들고 수관을 만들어 오늘날 수도망처럼 그물망 식으로 17군데의 양수장을 통해 공급하였으며 지금도 깨끗한 물이 이 수로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마츄피츄 최고 봉우리에 가면 인티와타나라는 높이 1.8m의 해시계가 서 있는데 큰돌을 깍아 만든 해시계에는 신비한 기가 나온 다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기도하듯 이 돌을 붙들고 기를 받아간다. 안티와타나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돌로 지은 지붕 없는 오두막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그 뒤쪽에 장의석 이라는 신기한 돌과 묘지가 있다. 돌은 장례 때 울면서 춤을 추던 바위이며 바위에는 로프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여 있어 제물인 라마를 매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돌 바로 앞의 묘지에서 170여 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거주구역의 오른 쪽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콘도르 신전이 있고 신전의 반지하 부문은 감옥이었다고 한다. 잉카제국에는 "훔치지 말라, 게으름 피우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삼조율법이 있었는데 이것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서운 형벌을 주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며칠동안 음식물을 주지 않거나, 독거미를 감옥에 집어넣거나, 물은 주지 않고 물소리만 들리게 하는 등의 형벌을 주었다고 한다. 마츄피츄에서 마주 바라보면 해발 2,750미터의 젊은 봉우리라는 와이나 피츄가 있다. 마츄피츄에서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가파른 이 봉우리의 정상에는 계단식 밭들이 많이 있고 돌집 유 적들도 남아있는데 잉카사람들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 밭에서 지은 농작물을 신성히 여겨 태양신 에게 바쳤다 한다. 이곳에 오르려면 산입구의 관리 사무소에 주소와 성명을 적어놓고 가야하는데 등산 로가 험하여 사고에 대비하여 그리 한단다. 와이나 피츄 산정에 오르면 숨이 목에 차지만 정상에서 바 라보는 마츄피츄의 조망은 정말 일품이고 땀을 식혀 주기에 충분하다. 마츄피츄에서는 보통 네 시간 정도 구경을 하다가 다시 버스편으로 내려오는데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차가 내려올 때면 어느 새 나타났는지 칠 팔세 정도의 인디오 소년이 커브 길목마다 나타나서 굿바이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든다. 다음 커브에 다다르면 소년이 다시 나타나 버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굿바이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가만히 보면 같은 소년이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어느 새 소년이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버스에 타서 손을 내미는데 승객들은 물론 이 귀염둥이에게 팁을 준다. 이것은 길이 너무 커브가 심하기 때문에 버스가 돌아가는 동안 소년은 직선거리를 뛰어내려오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여튼 굿바이 보이는 하루 2회씩 이렇게 뜀박질을 하면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이들은 마츄피츄의 또 하나의 명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