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和 聖/경영학박사, 극동정보대 교수
우리나라가 최근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가 시민단체의 활성화이다. 비정부기구·시민운동단체·NGO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러한 단체들은 지역별, 기능별로 다양한 형태로 결성되어 있고, 이들은 필요에 따라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단체와 연합하여 지역적·전국적으로 활발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활동분야는 재벌개혁운동으로부터 환경보호운동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나 최근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역별 시민단체의 예산감시활동이다. 불요불급한 경비, 선심성 경비, 사회적·경제적 효과가 의문시되는 경비 등이 예산안에 포함되는지를 편성단계부터 분석하고 그러한 성격의 경비가 예산안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 그 삭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산이 확정된 후에는 그 집행단계에서 과연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있다. 특히 판공비의 사용에 관심을 두고 있는바, 판공비사용내역에 관하여는 지방자치단체 외에 국가기관, 정부투자기관에 대하여도 관심을 두고 있다. 어쨌든 이들 시민단체의 활동은 지난해 4·13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본 바와 같이 후보자의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직접 관여하는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다음 번 선거와 관련하여 시민단체의 활동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하여 각기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특히 지난해 4·13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따라 피해를 입은 측은 이들의 활동을 좋게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몇 년마다 한 두 번씩 행사하는 투표권만으로는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전문화·세분화되는 상황에서 행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다고 보고 이러한 시민운동을 통하여만 시민주권시대가 가능하다고 시민단체에서는 보고 있으며, 이러한 시민운동의 활성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시민단체의 활동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 중의 하나는 공공기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권이다. 물론 정보공개청구권은 이러한 시민단체의 활동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개인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이 공공기관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반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국정운영을 투명하게 하여 깨끗한 국가확립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라 한다)을 시행하여 행정의 민주화와 투명성 확보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공개로 인하여 국가의 이익에 나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특정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이에 정보공개제도를 채택하는 국가들 간에도 정보공개의 범위를 각기 달리하는바, 우리나라에서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후 3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정보공개의 범위에 관하여 전혀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하나의 견해는 현행 제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므로 공개의 범위를 더 확대하여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의 견해는 우리나라가 세계 13번째로 이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진보적이어서 도리어 그 범위를 축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공기관의 판공비 사용내역 공개문제에 대하여도 위의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각기 다른 해답을 내 놓고 있다. 정보공개의 확대를 주장하는 측은 판공비는 국민이 납부한 세금에서 나간 것이므로 그 사용내역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 반대의 입장은 판공비란 그 성격상 특정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대부분 관련 분야의 전문가·여론주도층·관련공무원 등과의 회식비 등으로 지출되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비용이 얼마나 되는 회식을 가졌다고 공개되는 경우 누가 그 회식에 참석하여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에 협조하겠느냐고 주장하면서 그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그 자리에 참석한 자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정보공개제도에 관한 또 다른 논쟁거리는 특정 정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자도 당해 정보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현행 정보공개법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시민단체 등에 관련하는 자 등 정보공개확대를 주장하는 측은 공공기관의 정보는 최대한 공개가 보장되어야 깨끗한 정부를 구현할 수 있으므로 당해 정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자도 정보공개를 요청할 수 있어야 정보공개제도를 이해조차 하지 못해 이 제도를 이용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완전한 공개행정을 보장할 수 있으므로 현행 제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나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는 특정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이러한 제도는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자들은 특히, 개인이 작성하여 공공기관에 제출한 진정서 등 각종 문서도 일단 공공기관에 접수되면 비록 개인이 생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공공기관의 정보가 되도록 되어 있는 현행 제도하에서 이 공공기관의 정보에 대한 제3자의 공개요구에 행정기관이 응하는 경우 진정서 등의 내용이 공개되므로 행정기관에 문서 등을 제출하는 자는 자신이 작성한 문서가 추후 공개될 것을 우려하여 적극적인 진정 등을 하지 못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인의 안전 등에 악영향도 예상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정보공개법은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 개인의 안전을 위한 사항, 기업의 영업비밀 등은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개하는 정보 중에도 특정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삭제하고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한편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하 "개인정보보호법"이라 한다)에서도 일정한 개인정보는 공개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인정보는 정보공개법에 의한 공개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인정보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하여 보호되어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것인지, 아니면 정보공개법에 의하여 공개되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공개행정에 기여할 것인 지가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가 많아서 가치판단에 따라 그것이 공개대상이 될 수 있고 그 반대일 경우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판공비 내용의 공개와 관련하여 분명히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행정업무의 협조를 구하기 위하여 판공비의 지출이 불가피하고 그 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의 타당성 여부이다. 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그 관련 당사자가 공개를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현실적으로는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행정기관으로부터 업무협조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정당당하게 업무협조를 받았다면 그것의 공개에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전의 모 지방청의 장이 노동조합의 파업에 관여하였다고 말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고, 최근에는 모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외국의 주요여성인사의 몸매에 관하여 평가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이러한 발언이 출입기자들과의 점심식사도중 폭탄주를 하면서 취중에 나타난 것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의 업무협조요청에 매우 순응적인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러한 엄청난 특종감(?)에 대하여도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근무시간중에 공직자가 국민세금으로 폭탄주를 마셔 술에 취하여도 같이 자리를 한 사람이 기자라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현실, 엄청난 기사감이라도 점심을 얻어 먹으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 들은 정보라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현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공공기관에 대한 업무협조, 그것은 국민의 의무라 할 수 있고 정당한 업무협조는 자랑거리이므로 그 사실이 공개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으며, 나아가 합리적인 대가를 행정기관으로부터 받는 것도 문제될 것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 수준이 그에 못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시민단체의 판공비 사용내역 공개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것은 행정기관의 잘못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점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민단체가 여러 가지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는 점도 있으나 이들의 예산감시 활동과 같은 활동이 우리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건전한 사회형성에 기여할 것은 틀림없고 이러한 활동에 대한 국민이 기대도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