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和 聖/경영학박사, 극동정보대 교수
요즈음 언론계와 광고업계가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에 관한 논쟁이다. 방송광고판매대행사란 TV나 라디오방송사업자(방송국)로부터 위탁받아 광고주 또는 다른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에게 방송광고를 판매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흔히 미디어 렢(media representative)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사업체는 어쩌면 방송국의 광고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방송국의 광고국 정도의 기능을 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문사의 광고국이나 신문사가 광고를 판매하기 위하여 설립한 자회사가 신문사의 광고를 자유롭게 판매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방송국의 경우도 1980년까지는 자신의 뜻대로 광고를 판매할 수 있었으나 1981년 이후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일명 "KOBACO"라 한다)를 통하여서만 광고를 판매하도록 하면서 현재의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20년간의 KOBACO의 방송광고판매독점권이 무너져가면서 미디어 렢을 어떻게 조직·운영할 것인가에 대하여 광고효과가 높은 방송국과 그렇지 못한 방송국, 그리고 민영방송국과 공영방송국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뿐만 아니라 방송광고시장의 지각변동은 신문·잡지의 광고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어 방송국 외에 신문사·잡지사 등 다른 언론기관들도 이에 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차피 언론기관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도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소비자단체 등 시민단체나 학계·정부기관 등도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그 논쟁은 뜨거워 가고 있다. 1980년 권력의 전면부에 나타난 신군부는 국회를 해산하고, 정부가 임명하는 자로 구성된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하여 입법권을 행사하게 한 뒤 수 많은 법률을 한꺼번에 통과시켰는 바, 이 때 한국방송광고공사법도 통과되었다. 이 법률에 따라 방송국은 KOBACO를 통하여만 광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방송광고판매권을 독점한 KOBACO는 땅짚고 헤엄치기 사업으로 많은 수익금을 남기어 방송문화의 발전과 언론인의 후생복지증진에 기여하는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몇 년 뒤에는 방송문화와 직접 관계없는 문화예술사업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지난 20년간의 KOBACO에 대한 평가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를 비판하는 측은 그 출범부터 극히 비민주적이라고 보고 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한 측이 언론을 길들이기 위하여 채찍과 사탕을 사용하였으며 그 사탕값을 제공하는 조직이 KOBACO라는 것이다. KOBACO는 법률에 의하여 보장된 독점권을 이용하여 광고주가 납부하는 광고료의 일부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공제하고 남은 금액을 방송국에 제공하는 "봉이 김선달"이 장사하듯 장사를 하였다는 것이다. 방송국의 고유권한인 광고판매권을 빼앗기고, 주 수입원인 광고를 자기의 의사대로 판매할 수 없게된 방송국은 그 프로그램편성에도 자주성을 잃고 집권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인의 후생복지증진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막대한 수익금을 남겨 언론인을 돈으로 회유하였고, 특히 방송관련 분야에서 생긴 자금으로 신문분야의 언론인에 대하여 사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KOBACO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하지 않다. KOBACO의 과거 출범배경은 따질 필요가 없으며 현실적으로 KOBACO가 독점권을 가졌기 때문에 방송국이 마음대로 광고료를 올리지 못하게 하여 물가안정에 기여하였고, 자유경쟁에 휩싸이면 살아남지 못할 방송국도 KOBACO가 광고를 주선하여 주었으므로 살아남아 다양한 형태의 방송프로그램을 국민에게 제공하였으며, 방송프로그램의 공공성 유지에 크게 기여하였고, 언론문화창달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KOBACO의 독점권이 없어지면서 앞으로 미디어 렢을 완전자유경쟁체제로 할 것인지 또는 제한경쟁체제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이 업무의 주관부서인 문화관광부가 그 시안을 만들때부터 뜨거웠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국은 확실한 수익증대가 보장되는 완전경쟁체제를 주장하고, 그렇지 못한 방송국은 제한경쟁체제를 주장하며, 지금까지 KOBACO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측은 완전경쟁체제를, KOBACO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은 제한경쟁체제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또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완전경쟁체제는 방송국간의 시청률경쟁을 부추겨 폭력물, 섹스물, 저급물로 방송프로그램이 가득 채워질 것이라고 완전경쟁체제를 비난하고 있다. 제한경쟁체제를 지지하는 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① 완전자유경쟁은 방송광고료의 인상을 촉발시켜 물가상승을 유도하고 ② 완전경쟁체제는 종교방송국이나 일부 지방방송국과 같은 시청률이 낮은 방송국은 광고수입의 감소로 문을 닫을 수 있어 국민들이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을 즐길 기회를 빼앗고 ③ 완전경재체제가 시청률 경쟁으로 방송프로그램의 저질화를 유도하며 ④ 완전경쟁체제의 도입이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 보듯 광고시장의 부정부패를 만연시켜 뇌물 등 스캔들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완전경쟁체제를 주장하는 측은 ① 방송광고료는 방송사 측이 결정할 사항이고, KOBACO나 다른 업자가 아무런 법적인 근거도 없이 이를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본다. 방송광고료 안정문제는 기존의 법체계로 해결하고 해결이 안되면 필요한 법체계의 정비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본다. 즉 미디어 렢과는 관련지을 수 없는 문제로 본다 ② 시청률이 낮아 광고효과가 적은 방송국을 살리기 위하여 완전경쟁체제를 반대하는 것은 결국 시청률이 높은 방송국의 수익금을 시청률이 낮은 방송국으로 빼돌리는 것이므로 잘못된 것으로 본다. 물론 국민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기 위하여 소규모 방송국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이를 지원할 수는 있으나 일부 방송국의 수익금으로 다른 방송국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태도다. 특히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방송국에 대하여 지원하는 것은 결국 국가가 방송광고체제를 이용하여 특정종교가 운영하는 종교방송국을 지원하는 것이 되어 방송국을 운영하지 않는 다른 종교단체와의 균형을 깨트려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저해하는 헌법위반의 소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③ 완전경쟁체제가 방송프로그램을 저질화시킨다는 주장에 대하여도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규율은 방송법에 의한 방송위원회가 방송법에 의한 절차와 방법에 의하여 해결할 문제이고 이를 아무런 법적근거도 없는 방송광고체제와 연결시켜 해결하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④ 방송광고를 둘러싼 부정행위가 생긴다면 그 부정행위를 형법 등 관계 법률에 의하여 처벌하고, 필요하다면 처벌체제를 강화할 문제이지 이것이 완전경쟁체제를 도입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 렢은 공중파방송국에 관하여만 적용되는 것이므로 기존의 케이블TV사나 앞으로 출범할 위성방송의 광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중파방송의 광고시장점유율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에 관련 업계가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현재 이 업무의 주무관서인 문화관광부에서는 앞으로 3년정도 지나면 위성방송을 이용한 광고시장이 생겨나고 그 분야는 현재 신문사의 광고와 같이 완전자율에 맡기도록 되어 있으므로, 위성방송을 시작할 때까지는 KOBACO와 그 자회사 1개사 정도만 방송광고판매업을 행할 수 있도록 하고 그 KOBACO의 자회사에는 방송국이나 대기업, 외국인들의 지분참여를 제한하여 상업성을 억제하고 공공성을 유지하되, 3년 후에는 점차 규제를 해제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팽팽한 두가지 주장에 대한 어중간한 절충식 타협안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완전경쟁체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측도 즉각적인 완전경쟁체제의 도입이 무리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현재 쟁점이 되어 있는 것은 ① 완전경쟁체제를 몇 년 후(2년 또는 3년)에 도입할 것인지와 그 과도기간 동안에 ② KOBACO 외에 몇 개의 미디어 렢을 인정할 것인지(1개냐 또는 2개 이상이냐) ③ 미디어 렢에 대한 방송국이나 외국인의 출자지분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지(10% 이하냐 또는 20% 이하냐), ④ 대기업이나 신문사·통신사에게 출자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인정하는 경우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지 ⑤ 종교방송 등 광고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방송국을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도입하는 경우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방송광고제도의 변혁이 방송프로그램의 질을 낮추거나 국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방송광고판매제도를 통하여 방송프로그램의 저질화를 방지하고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겠다는 논리도 다소 엉뚱하다고 볼 수 있다. 완전경쟁체제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 단지 20년간 길들여진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쟁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라며, 각 언론기관이 공익이 아닌 자사의 광고수입에 얽매어 보도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언론기관으로서의 존립필요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