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석 인/한국산업은행 감사
10월 6일(금) 아침 일찍 비행기 편으로 쿠스코를 떠나 리마에 도착했다. 리마는 남미의 입구로서 상파울루나 리우 데 자에이로와 나란히 남미의 현관이다. 비행기 밖으로 나오니 공기는 탁하지만 우선 숨 쉬기가 편해 좋다. 기온은 10도 정도로 안개가 조금 끼었으나 봄이 오고 있다. 리마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획되어 있는데 구시가지 센트로는 볼만한 문화유산이 많다. 구시가지로 가는 길에보니 대우차들이 많이 눈에 뛴다. 이삼년 전만 하더라도 대우차가 이나라에서 제일 많이 수입된 차며 아까주라는 시에서는 차의 80%가 대우차라니 대단한 일이다. 구시가지 중심가에는 아르마스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이 있다. 산 마르틴 광장 주변에는 고급호텔과 각종 사무실이 밀집 되있는 비즈니스 지역으로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있고 아르마스광장 주변은 대통 령궁 대성당 시청사 중앙우체국등이 있는 관청거리이다. 이곳에 있는 대성당은 남미 최고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직접 손으로 초석을 놓아지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피사로는 1532년 카하마르카에서 당시 잉카 황제인 아타와르파를 붙잡아 프란시스코 라는 세례명을 주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 시킨후 1533년 7월 26일에 그를 교수형에 처했고 그 후 쿠스코를 점령한 다음 1535년 1월 리마를 건설하였다. 그 뒤 피사로는 정치적인 분쟁에 휘말려 1541년 6월 스페인사람 아르마그로에게 암살 되었으며, 현재 그의 유체는 미이라가 되어 대성당안에 안치 되어있다. 대성당은 그 후 여러차례 지진으로 인해 손상되었다가 복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각종 종교화와 잉카왕의 초상화들을 보존하고 있다. 리마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많았지만 시간에 쫒기다보니 국립인류 고고학 박물관과 황금박물관 만을 들러볼 수 있었다. 국립인류 고고학 박물관은 잉카시대 이전 즉 서기600년 이전의 도자기나 무덤의 부장품들이 많이 수집되어 있으며 또그리고 않아있는 미이라들도 많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덮어썼던 담요들은 낙타의 일종인 알파카털로 짜졌는데 천연 염료를 이용해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색깔이 바래지 않고 보존상태가 좋았다. 잉카조상들도 순장 풍속이 있었다. 대부족장인 시크라의 무덤에서 나온 유골들을 보면 살아있을 때 같이 지내던 부인과 시녀 두사람 초동 두사람을 산채로 매장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죽은 부족 장은 반드시 누어있는데 비해 나머지 사람들은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 죽은 모습을 발굴당시 모습 그대로 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또 서기 5백년에서 천년사이에 번성했던 와리족은 죽을 때 각종 곡식을 종류대로 항아리에 넣어 묻어 주었으며 물도 넣어 주었다. 또 어떤 지방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용기에 넣어 절벽같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이들을 모신 곳도 있고 그런 문화는 아직도 남아있다. 인류 박물관에는 나스카 문화의 해설이 잘 되있으며 출토품도 일부 전시되어 있다. 서기 100-600년 무렵 페루 남쪽 해안에서 80㎞정도 떨어진 나스카 지역에 번창한 문화가 있었는데 이들은 불가사의한 지상 그림을 많이 그렸다. 900㎢에 걸친 광대한 대평원(팜파)에 무엇을 형상화 하려고 해서인지 몰라도 직선, 삼각형의 도형과 동물, 물고기, 곤충 및 식물등의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비행기를 타고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이다. 그림의 크기는 대략 10m부터 커다란 것은 300mm에 이르는 것도 있으며 그 수효도 약 200개나 된다. 나스카의 지상 그림은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를 남긴 채로 거대한 대지의 캠퍼스에 그려져 있는데 약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은채 선명하게 그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리마에서 자동차로 8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곳 지상그림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 연구가들의 수효는 많으며 그만큼 학설도 수없이 많다. 우주인들이 만든 작품이라는 설에서부터 나스카 사람들의 달력이라고 보는 학설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어느것이 정설인지 알 수 없다. 언제, 누가, 무엇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큰 그림들을 그려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상그림의 존재에 대해서는 비행사들에 의해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세계적으로 알린 사람은 1939년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교수인 폴 코스코씨에 의해서다. 그는 고대 천문학과 관개학의 전문가로서 페루해안지방의 관개시설을 연구하다가 이곳 팜파인 헤니오에 새겨진 줄이 단순한 도로 유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비행기를 임대하여 공중에서 확인해 본 결과 어마어마한 지상 그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지상 그림의 일부는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손상되어 버려졌다. 점심때 이곳 대사로부터 불고기 대접을 잘 받은 우리일행은 오후에는 리마시내 몬테리코 지역의 고급 주택지에 위치하고 있는 황금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일본계 실업가였던 미겔 무히카 가요씨가 평생 모은 각종 보물들을 한데 모아놓은 곳이다. 페루의 역사와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가요씨는 평생을 바쳐 페루의 보물들을 수집하고 이를 연구하였던 분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된 이 박물관 1층에는 무기전시실이 있으며 지하에는 잉카이전 시대의 황금과 은, 동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와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지상 2층에는 직물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선 지상 1층에 있는 무기전시실에는 페루 독립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 사용했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우리 조선시대의 청룡도를 비롯해 각종 일본도와 사무라이 복장, 히틀러의 총, 중세유럽과 중동지방에서 사용했던 활, 도끼, 창, 칼, 총, 군복장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전시물들이 빽빽히 전시 되어있다. 2층에는 1600년전부터 생산된 페루의 직조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야마의 털에다 천연의 색소를 이용해 염색한 후 직조한 각종 직조제품은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웠으며, 특히 벽과 천장 가득히 잉카시 대 지폐크기의 황금판으로 연결한 도배는 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박물관의 자랑은 지하에 전시된 황금 장식물들이다. 현재 박물관에 전시된 황금도 잉카이전 시대의 금, 은, 동으로 만든 장신구와 집기 등으로 소품이 대부분이며, 잉카시대의 것은 피사로 침공때 모두 녹여서 본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보존된 것이 거의없다. 지하에는 5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실에서 3실까지는 검은방 이라하여 잉카이전 시대의 장신구들을 전시하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체를 황금으로 장식 해버릴 정도로 금관, 코걸이, 귀거리, 팔지, 장갑, 신발등 여러 가지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황금관을 쓰고있는 미이라로 있다. 제 4실은 녹색방이라 하여 황금만 세공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도금술과 연금술을 알게 하는 물건들이 전시 되어있는데 돌위에 도금한 것과 금,은을 이용하여 만든 각종 장신구들이 전시되 있다. 이중에는 머리에 구멍을 내고 수술을 한 후 머리 뼈를 금으로 땜질한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의술이 크게 발달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치아 교정술도 발달되어 있어 푸른 수정으로 틀니를 한 해골도 전시 되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적장들의 목을 잘라 미이라로 만든 것이 많으며 이중에는 입을 실로 꾀어멘 미이라도 있었다. 제 5실은 빨간방 이라하여 구리를 이용해 만든 컵, 나이프등 일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좁은 장소에 너무 많은 유물들을 전시하다 보니 황금박물관이 아니라 황금창고 같은 감마져 들 정도로 빽빽히 전 시해 놓은 전시관 이었지만 고대 페루의 찬란했던 황금문화유산을 한눈에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박물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