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메이커와 파산 鄭 東 云/혜천대학 세무회계과 교수 우리 나라에서는 예부터 가뭄이 계속될 때, 나랏님께서 정사를 잘못한 벌이라 하여 자신이 직접 기우제를 드렸다. 이 영화 [레인메이커(The Rainmaker, 1998)]의 rainmaker는 원래 기우제에서 주문을 외는 북미 인디언의 주술사라는 뜻이었지만, 병원이나 경찰서를 쫓아다니며 피해자를 유혹하여 재판을 하도록 하여, "당신은 이제 큰 돈 벌었어"라고 떠벌리는 싸구려 변호사나 사건브로커 또는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내리게 하는 인디언 주술사처럼, 부유한 고객의 소송을 위임받아 수입을 많이 올리는 법률회사의 스타 변호사, 즉 유력한 원외 활동가를 일컫는 말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1930년부터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인종차별법을 제정한 1948년까지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폭로한 [파워 오브 원]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인종편견에 맞서 흑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사람을 일컬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들이 전설상의 비를 내려주는 사람(레인메이커)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따라서, 레인메이커란 지칭은 가뭄이 심할 때 비를 내려주는 신처럼 희망을 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란 뜻이다. 영화 [레인메이커]는 그런 상징적 존재에 대한 명칭을 제목으로 내세워, 법정 안에서는 엄격한 질서가 요구되고 정의를 수호하는 듯한 열띤 격론이 펼쳐지지만, 법정 밖에서는 모든 것이 조작된다는 것을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직접적으로 정의로운 사람 또는 불의한 사람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법은 정의로운가? 법은 약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현실적으로는 회의적이다. 영화 속에서도 검사는 출세를 위해 법을 이용하고, 변호사는 돈만 벌 수 있다면 양심과 진실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데, 이런 인간들에게 경멸을 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순수와 열정으로 정의의 편에 서는 한 젊은이를 찾아낸다. [데블스 에드버킷]에서는 케빈(키아누 리브스), [어 퓨 굿맨]에서는 캐피(톰 크루즈), [레인메이커]에서는 루디(맷 데이먼)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갓 법대를 나온 순진한 신출내기 변호사로서, 이상을 추구하는 젊은 주인공이 불의한 거대조직의 음모에 맞섬으로써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승리를 이끌어낸다. 멤피스 법과대학원을 갓 졸업하여 아직 변호사 면허도 따지 못한 루디 베일러는 자격시험 준비와 일자리를 구하는데 정신이 없다. 부유한 주변의 친구들과는 달리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 할 만큼 절박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하던 술집 주인의 소개로 의뢰인의 푼돈을 뜯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브루저(분쇄기란 뜻) 스톤(미키 루크) 변호사 사무실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데, 매달 1,000달러 이상 수입을 올리지 못하면 그 부족액 만큼 빚을 지는 조건이다. 그는 법을 통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으며, 변호사들의 덕망을 높였던 1950·60년대의 인권변호사들의 이야기를 읽고, 법대에 들어갔지만 말이다. 루디가 만난 첫 상대는 부자 할머니 미스 버디(테레사 라이트)의 유언장을 작성하는 건과 백혈병 환자를 위하여, 막강한 힘을 가진 악명 높기로 유명한 거대 보험회사, 그레이트 베너핏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건이다. 부자 할머니는 자식들을 불신하여 1,000,000달러가 넘는 유산을 모두 TV 부흥목사에게 기부하겠다고 말하고, 루디에게 유언장을 작성해 오라고 한다. 그는 그 할머니 집 앞뜰의 잔디를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할머니의 아파트에 세를 들기로 한다. 한편, 백혈병에 걸린 청년 도니 레이(조니 휘트워스)는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보험회사가 골수이식에 필요한 보험금 지급을 7차례나 거절함으로써,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루디는 그 파렴치한 대형 보험회사를 상대로 한 보험금 청구소송을 위임받고 승소하면 1/3을 받기로 했는데, 이 1/3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이 받는 수임료이다. 루디는 도니와 그의 어머니(버지니아 매드슨)를 위해 보험회사 출신의 노련한 덱 쉬플릿(데니 드비토)의 도움을 받아 긴 법정싸움을 벌이게 된다. 덱은 보험업무에 정통하지만 변호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하여 법률보조원으로 일한다. 반면에, 보험회사는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구나 민사사건에 대해선 귀신같이 노련한 1급변호사 리오 드러먼드(존 보이트)를 앞세우고 있으므로, 법정 규칙과 판례도 아직 잘 모르는 루디가 이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승소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모한 일이다. 더구나 루디가 처음으로 사회에 나와 배우는 거라곤 병원을 쫓아다니며 억지로 사건을 떠맡는 일이다. 병원을 순례하며 변호사 시험준비를 하던 루디는 켈리 라이커(클레어 데인즈)를 만나게 된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 당해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 신세를 지는 불쌍한 그녀의 모습에서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에게 얻어맞아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어머니의 불행했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병원에서 자주 만나는 동안 켈리를 동정하게 된 루디는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하라고 권유한다. 마침내 루디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그 동안 배심원 매수, 탈세, 소득 은닉 등의 혐의로 FBI의 내사를 받아온 대표변호사 브루저의 신변에 불안을 느낀 덱과 루디는, 승소했을 때 보험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배상금을 출자금으로 하여 독립된 사무실을 차린다.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리오가 보험회사의 소송대리인으로 나와 소의 각하 신청을 한다. 첫 재판에서 루디는 재판장으로부터, "면허도 없이 내 법정에 함부로 들어오다니. 면허나 받은 후에 들어와. 면허를 받아와. 그 후에 다시 오라고!"라는 호통을 듣지만, 애송이 변호사를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 리오의 요청으로 그가 입회한 가운데 테네시주 변호사로서 선서를 한다. 불한당을 증인으로 세우고 멍청이 앞에서 맹세한 후에야 비로소 변호사가 된 것이다. 리오는 재판장을 설득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50,000∼75,000달러의 합의금을 제시하고, 조속히 사건을 끝맺으려 한다. 그러나 루디는 배상금으로 얼마를 받든지 자기 때문에 고생한 부모님께 드리고 싶다는 도니의 애절한 모습을 보고, 보 험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고 꼭 승소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보험회사 편만 들던 담당 재판장 하비헤일이 수영장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인권변호사 출신의 흑인 판사 타이런 키플러(데니 글로버)가 그 뒤를 이으면서 상황이 급전한다. 덱은 승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돈벼락을 맞게 되었다"(rainmaking)고 좋아한다. 급행처리(신속한 소송진행, fast-track)를 주장한 리오는 신임판사에게 무안을 당하고 와병중인 원고의 선서 증언(deposition)을 위해 판사가 입회한 가운데 사전 증거조사가 실시된다. 반대로 보험회사를 방문하여 실시된 선서 증언에서는 묘하게도 원고측에서 요청한 증인 4명 중 2명이 이미 회사를 그만둔 뒤였다. 그 사이에 켈리는 다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루디에게 도움을 청한다. 루디는 주인 할머니에게 켈리의 보호를 요청하고 보험회사 소송대책에 고심한다. 사무실이 도청되고 있음을 감지한 루디측은 반대로 거짓 정보를 흘려 배심원 선정 때 루디측이 배심원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리오측을 곤경에 빠뜨린다. 이윽고 배심원단이 구성되고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만, 루디의 미숙한 소송진행으로 사사건건 리오에 의해 벽에 부딪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비오는 날 옷가지를 챙기러 켈리의 집에 갔다가 그녀의 남편과 맞닥뜨린 루디는, 그의 폭력행사에 맞서 야구 방망이를 빼앗아 휘두르다가 그만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말지만, 켈리가 루디 대신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가 정당방위로 풀려나게 된다. 실험적인 치료방법에 대해서는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골수이식 수술을 위한 원고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한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밝혀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고측증인인 보험금신청 접수담당자의 증언이 꼭 필요하였다. 덱이 어렵게 이미 해직된 보험회사의 담당자였던 여직원 재키 러맨칙(버지니아 매드슨)을 찾아내 증언대에 서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로이는 도난 당한 회사규정을 가지고 왔으므로 증거능력이 없음은 물론, 전직 실무자의 증언은 회사의 냉대에 앙심을 품고 복수하기 위해 증언한 것이므로 공정성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녀의 증언조차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과 가진 자들의 횡포가 속시원하게 폭로된다. 루디측은 보험회사 사장(로이 샤이더)까지 증인으로 불러내 보험회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무더기로 보험에 가입시켰지만, 보험금을 청구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80% 이상 거절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루디는 또 보험회사에서도 골수이식 시술은 일반적인 치료방법으로 보험금지급이 재정적으로 타당하다(financially justified)고 명기되어 있는 보험회사 내부문건을 공개한다. 드디어 최후변론의 순간. 루디는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대니의 최후의 모습을 담은 테이프를 배심원들에게 보여주고, 저소득층 사람들의 정당한 청구를 거절하면서까지, 치부하는 보험회사의 횡포를 역설하고,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 사이 도니의 아버지(레드 웨스트)가 죽은 아들의 사진을 보험회사 사장 눈 앞에 조용히 들이민다. 결국, 배심원들은 150,000달러의 실질적 손해배상(actual damage) 외에, 50,000,000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을 결정한다. 미국에서는 배심원의 판단을 중시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소심에서도 손해배상액은 그대로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배심원들에게 극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변호사의 최후변 론이 중요시될 뿐만 아니라, 노련한 로이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 평결을 듣고서는 항소를 포기하고 아예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결국, 보험회사측 변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속의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말처럼, 대규모 보험회사를 응징하는 통쾌하고 극적인 사건을 연출했지만, 수고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레인메이커]는 변호사란 직업의 이상과 위선이라는 이중성에 속에서 고민하는 젊은 변호사 루디가, 법의 정글에서 법을 파는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그려냄은 물론, 제도화된 불의에 맞서는 한 개인의 위대함을 잘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세상에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약육강식의 현실의 질서는 뒤바꿀 수 없다. 그 자신이 본의 아니게 켈리의 남편을 살해했듯이, 변호사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양심의 선을 넘게 된다. 승소를 위해 계속 그 선을 넘다보면 그 선은 사라지고 아예 또 한 마리의 더러운 상어가 될 것이다. 결국, 루디는 법조계에 환멸을 느끼고 계속 법조계에 머물러 있었으면 수임건이 밀려들 것이 분명하지만, 그 길은 대의를 저버리고 자신의 인간성을 저버리는 패배의 길이므로, 켈리와 함께 멤피스를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이 영화에서는 몇 가지 사실이 우리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첫째, 자본주의의 안전장치라는 보험회사의 비인간적이고 악랄한 실체이다. 보험회사의 실무규약에 적혀 있는 청구실무지침서를 보면, 청구담당자들은 모든 청구를 3일 내로 거절해야 한다.라는 사실이 적혀있다. 보험금 지급신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지급을 의도적으로 거절하고 시간을 끌면, 힘없고 법적 대응 능력이 없는 보험가입자들은 대부분 지쳐 포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험가입자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제기할 확률은 아주 낮으며, 합의를 하게 되면 법정합의금만 지불하면 되므로 보험청구액 보다 낮은 금액을 지불할 수 있고, 설령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보험청구액만 지불하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입자들의 돈을 악랄하게 떼어먹는 보험회사야말로 전형적인 보험사기꾼으로, 가난한 사람의 등을 쳐 부자가 된 사악한 자본주의의 표상이다. 영화에서는 실제로 1년 동안 발행한 보험증권이 98,000건이고, 보험금 지급을 신청한 건수가 11,462건이며, 거부건수가 9,141건이었다. 둘째로, 법체제 자체의 모순과 허점이다. 진실이냐 거짓이냐라는 사실 규명과 법의 판결과는 무관하다. 법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꾸미는 기술(논리)이기 때문에,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따라서, 판결은 법정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happening)일 뿐, 법정 밖의 진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법조계 부패의 중요한 원인이 법정 밖과 안의 불일치를 가능케 하는 법체계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로 다가갈수록 루디는 법의 의미에 회의하고, 바로 그런 법을 비웃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유능한 변호사의 조건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변호사는 고객이 돈만 있으면 살인자라 하더라도 옹호하고 거액의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매춘부보다 못한 존재인 것이다. 영화중의 "자네 창녀와 변호사의 차이가 뭔지 아나? 그건 말이야, 창녀는 죽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거야."라는 덱의 대사와도 같이… 셋째로, 돈이라는 그 거대한 힘 앞에 법도 그들의 편이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재판에 진 보험회사가 파산신청이란 또 다른 합법을 가장해 한 푼의 보험금도 주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현실에서 정의는 오직 법을 통해서 실현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법망 밖에서 정의를 직접 행사하는 행동을 인정하고 있다. 즉, 루디가 켈리를 보호하려다가 우발적으로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게 되면서 둘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은 위기에 처한다. 결국, 켈리는 죄를 뒤집어쓸 것을 자청하고 감옥에 들어가지만 정당방위로 판정 받고 풀려난다. 그러나 루디는 불법을 저지른 것이므로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면 마땅히 고뇌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진실을 외면한 루디의 이중성을 질타하지 않고 켈리의 정당방위가 인정되게 끔 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법이 그들을 속였듯 그들 역시 법을 믿지 않고 현실에서 정의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법조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철옹성같이 무장한 기득권층의 성벽은 그렇듯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파렴치한 부자들을 징계하지 않으면 또 다른 선의의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므로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제기된 파산(破産, bankrupt)에 대하여 살펴보기 전에 큰 범주로서 부도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자. 부도(또는 도산)란 기업의 부채 상환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되어 채무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데, 이는 재무적 측면과 법률적 측면의 부도로 분류할 수 있다. 재무적 부도는 일시적 지급불능상태(자산]부채)와 파산(자산[부채)으로, 법률적 부도는 법적 절차에 의한 파산선고, 해산, 청산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부도가 우려되거나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업에게는 회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부도처리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즉, 부도가 난 이후라도 회사가 존속하는 것이 청산하는 것보다 경제적 가치가 크면 회사갱생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와 같이 기업이 파산선고를 하기 전에 워크아웃과 마찬가지로 기업을 회생시키는 방안(회사갱생제도)으로 은행관리, 부도유예 협약, 법정관리와 화의 등이 있다. 반면에 회생가능성이 없거나 존속시키는 것보다 청산이 더 효율적이면 정리에 착수하게 되는데, 파산선고, 해산 및 청산 등의 절차를 밟는다. 먼저 회사갱생제도부터 살펴보자. 은행관리(銀行管理)란 기업이 경영난과 자금난에 직면했을 때, 기업과 주거래은행간의 사적인 계약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제3자가 아니라 은행직원이 파견되어 경영 및 자금관리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직원상주파견관리 또는 전면관리의 형태로 시행된다. 직원상주파견관리는 채권보전의 목적으로 부실기업과 특정계약을 하고 직원을 상주파견하여, 자금·담보관리 등 부분적 관리를 하거나 기업경영에 일부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전면관리는 금융기관이 부실여신을 정리하기 위해 기업과 임의계약을 체결하고 기업 경영전반을 직접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은행관리가 시작되면 기업은 해당 은행을 통해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 받지만, 은행관리로 개선이 되지 않으면 법정관리를 통한 제3자인수 또는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부도유예 협약은 부도 발생을 유예하면서 채권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청산 또는 갱생여부를 협의하는 자율절차를 말한다. 법정관리(法定管理, 이의 정확한 표현은 회사정리이다.)는 기업과 채권자(은행 등)간의 협상에 의한 사적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구제장치이다. 기업이 자력으로는 도저히 회사를 살리기 어려울 만큼 빚이 많을 때, 법원에서 지정한 제3자(법정관리인)가 자금과 기업활동 전반을 대신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법정관리는 ① 기업·채권자·주주 등이 법적 절차에 의해 신청, ② 허가, ③ 법정관리, ④ 갱생 혹은 파산의 과정을 거치는데,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는 기업은 빚(채무)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기존의 모든 채무지급과 자산처분을 동결시키는 재산보전처분도 동시에 신청하기 때문에, 채권자는 그만큼 채권행사의 기회를 제약받는다. 법원은 신청 후 보통 3개월 정도 시간을 가지고 법정관리를 승인하는 것이 합당한가 여부를 심의한다. 법정관리가 기각되면 기업은 바로 파산절차에 들어가고, 수용되면 법원에서 지정한 제3자에 의해 회생작업이 시작된다. 화의(和議)는 파산이 우려될 때 파산방지를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로, 법원의 중재 아래 채무자의 신뢰성에 따라 성립여부가 결정되는데, 기업이 채권자들에게 빚을 어떤 방법(채무의 변제방법, 즉 화의조건)으로 갚겠다고 서로 약속함으로써 파산을 피하는 제도이다. 화의절차는 채무자의 개시신청으로 시작되어 보전처분, 정리위원 선임, 화의개시, 화의채권 신고 등의 순서로 이루어지며, 화의신청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법정관리처럼 재산보전처분 결정을 내려 부도를 막아준다. 그러나 법정관리와 달리 기업경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경영자가 계속 회사를 맡아 운영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워크아웃은 이들 제도와 달리 법원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계약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강제력도 약하다. 워크아웃이 금융기관에만 적용되는 데 비해 법정관리와 화의제도는 금융기관을 포함해서 개인, 기업 등 모든 채권자에게 적용된다는데 그 차이가 있다. 그러면 파산에 대하여 살펴보자. 우선, 한자로 파산(破産)에서 파(破; 깨뜨릴 파·쪼갤 파)자는 석(石; 돌 석)과 피(皮; 가죽 피)로 이루어진 자로, 돌을 던져 가죽이 터진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돌을 던져 어떤 것이 깨뜨려지고 쪼개졌다는 데서, 깨뜨리다, 쪼개다의 뜻이 되었다. 그리고 산(産; 낳을 산·기를 산)자는 언(彦; 선비 언)과 생(生; 낳을 생)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착한 선비가 태어난다는 데서 낳다 또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산업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파산이란 자산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은행(bank)에서 유래했다고 하므로 먼저 bank에 대하여 살펴보자. Italy의 Venice가 은행의 발상지인데, bank는 bench 또는 shelf라는 뜻인 Italy어 banca에서 유래한 것이며, tradesmans counter(상인의 계산대)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둑 또는 제방이라는 뜻의 bank는 고대 북유럽의 banke(=ridge)에서 비롯하여, 그 후 shelf, bench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 Latin어로도 bancus, banca로 되어 있어, 같은 의미로 쓰다가 counter가 되고, 다시 은행이란 말로 옮아갔다. 따라서, 제방의 bank, 은행의 bank, 의자 bench는 다 함께 원래는 같은 낱말이었다(孔德龍·陳泳泰, [英語敎育資料辭典], 檀國大學校出版部, 1975.). 유럽처럼 수많은 나라가 밀집해 있는 곳에서는 외국의 화폐를 그 나라의 통화로 바꾸어주는 환전(換錢)사업이 옛날부터 번성하였다. 물론, 수수료로 구전을 떼었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환전만이 전문이었지만 차차 부자로부터 출자를 받아 이것을 상당한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고리대금까지 겸하게 되었다. 이 돈장사는 도시의 광장이나 사원(寺院)의 뒷골목, 또는 시장 등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가게라야 테이블과 벤취뿐인 간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장사가 중세기 이태리에서 성했던 것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이록이 등장하는 무대가 이탈리아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탈리아로 벤취를 banca라고 하는 데서, 돈장사 자체를 banca라고 부르게 되었다. 즉,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어 bank의 근원이 되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은행에는 빠짐없이 벤취가 놓여 있다. 그런데 banca에서 돈을 꾼 사람이 돈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될까? 물론, 출자자에게 손실이 생긴다. 그러면 이들 출자자들이 몰려와서 벤취를 두둘겨 부셨을 것이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banca rotta(부서진 벤취)라고 했고, 영어의 bankrupt의 어원이 된 것이다. 부서진 벤취는 은행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bankrupt는 파산자, 파산의, 파산시키다의 뜻이다(월간영어사 편집부 편, [英單語 이야기], 月刊英語社, 1977.). 그러므로 파산(破産, bankrupt)은 채무자가 경제적으로 파탄상태에 빠짐으로써, 그 채무를 완전히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 또는 기업의 자산에 대한 가치 하락으로 인해 기업이 지급불능에 처했을 때, 그 채무자의 총재산을 모든 채권자에게 공평히 갚을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판상 절차를 말하는데, 재판상 절차를 법으로 규정한 것이 파산법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된 이 제도는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1962년 파산법 제정 때 명문화되었다. 이 용어를 도산이란 용어와 비교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자. 도산(倒産)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경제적 일상용어로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도산은 채무자가 갚아야 할 기한이 된 채무를 일반적으로(특정한 채무라는 의미로서의 개별적이 아닌) 갚을 수 없게 된 상태, 즉 결정적인 경제적 파탄상태(經濟的 破綻狀態)를 말한다. 그 징표는 스스로 발행한 약속어음이 부도가 나서 은행으로부터 거래정지처분을 받거나, 파산 그 밖의 도산절차의 신청을 하는 것 등이다. 한편, 파산은 도산이라는 상태를 파산법에 의하여 재판상 처리하는 절차 내지는 제도로서 사용한다(절차로서의 파산개념). 즉, 파산은 채무자의 총재산을 파악 환가하여 총파산채권자를 위하여 환가금(배당재단)을 배분(배당)하는 청산절차를 말한다. 또한, 파산이란 용어는 채무자의 경제적 파탄상태로서의 파산이라는 의미에서도 사용된다(상태로서의 파산개념). 이런 의미로서의 파산은 채무자가 갚아야 할 기한이 된 채무를 일반적으로 갚을 수 없게 된 상태를 말하고, 이런 의미로서의 파산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도산이라는 용어와 동일하게 사용한다(전병서, 도산과 파산절차 참조.). 이러한 파산을 은행관리·부도유예·법정관리·화의와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김건우, "회사정리법의 국제비교와 법적 절차", 경희대학교 경영연구소, [경영연구], 제3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파산이란, 기업이 재정적 파탄을 초래하여 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와 유사한 해산과 청산에 대하여 살펴보면, 우선 해산(解散, winding-up)이란 법인이 더 이상 존속할 이유를 잃었을 때, 법인이 본래의 권리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그 법인체가 회사인 경우, 해산을 하게 되는 이유는 존립기간의 만료나 정관으로 정한 사유의 발생, 합병·파산, 법원의 명령이나 판결, 사원총회의 해산결의가 있을 경우이다. 그리고 청산(淸算, liquidation)이란, 회사 등의 법인·조합이 해산에 의하여 모든 법률관계를 종료시키고 그 재산관계를 정리하여 이를 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절차를 말한다. 은행관리·부도유예·법정관리·화의·파산의 비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