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하나의 緣으로 해서 서로가 서로 속에 녹아 들어가 새로운 생명체로 창조되는 것 사랑의 빛은 넘쳐흐르는 기쁨을 그대와 내가 다 알았을 때 비로소 律動하는 것 사랑은 상관관계가 아니라 한 존재와 믿음이 부둥켜져서 마침내 宇宙를 밝히는 것
오용수 대룡사(大龍寺)에 봄비가 내렸다. 나뭇가지마다 새싹이 파랗고, 골짜기 물소리도 한결 맑게 들린다. 대나무숲을 흔들어대는 산새들의 노랫소리도 여간 상쾌하지가 않아 봄의 율동이 대룡산 기슭에 쫙 퍼진 듯싶다. 그러니까 월하스님과의 연(緣)으로 이곳 대룡사에 몸을 기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월하스님과 원력(願力)을 세우고 백일기도에 들어 아침예불에 동참한 첫날이다. 나의 기도란 무슨 소원을 빌기보다 마음 가난을 활짝 펴는 수행이라고 여길 따름이지만. "초발심(初發心) 때 바로 깨달음에 이른다"는「화엄경(華嚴經)」의 교훈을 상기하면서 내 도량(道량)이 앞으로 어떻게 이뤄질지 두려움이 앞섰다. 월하스님이 정해 준 방에 짐을 풀고 나니 여기가 남주정사(南洲精舍)구나 하고 마음이 놓였다. 내가 글을 써 온 40년 동안 제주에서 서울로, 다시 진해로 옮겨진 내 공부방인 셈이다. 방문을 열면 눈앞에 대나무숲이 있고, 그 앞으로 소나무들이 들어찬 산마루가 올려다보였다. 이곳으로 오면서 간직했던 조심스런 마음가짐(佛心)이 부디 봄과 더불어 움텄으면 좋으련만. 물론 내 일들이 원고지 칸을 메우는 것이니 주어지는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대룡사에 연을 맺었으니 그 연이 다하는 날까지 머물면서 나 자신을 가꾸고 다듬어야지. 월하스님과의 연이 소중한 만큼 그와 함께 텃밭을 일구면서 새로운 나를 찾아 여생을 보내리라. 수행자에게 자기 집이 따로 없듯이 나 또한 이곳의 남주정사가 곧 내 집이니까. 그날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아침예불에서 월하스님은 "성불(成佛)하십시오"하며 나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그리고 부처란 곧 자비심이요 그 자비심이 곧 성불이니, 이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 )」에 "불심이란 큰 자비심이다"고 한 기록에서 비롯되었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월하스님의 따뜻한 일깨움에 나는 경전의 말씀을 새삼 경건히 받아들였다. 아무렴 대자대비(大慈大悲)란 중생(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또한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월하스님의 법문(法文)은 내게 적잖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렇다. 대자대비란 어머니가 자식에게 쏟는 지극하고 간절한 희생과 사랑보다도 더 큰 것이려니. 그렇다면 월하스님과의 연은 곧 어머니와 자식간이나 다를 바 없고, 그 사랑속에서 나는 꼭 성불하리라 다짐한 터다. 그러고서 하루, 이틀, 봄기운이 무르익으면서 대룡산 자락에도 생명력이 넘쳐났다. 나뭇가지에서 노는 다람쥐 재롱도 제법이고, 개구리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도 귓전에 그치질 않는다. 여기저기에 들꽃도 피고, 바닷바람도 상긋하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날씨가 좋다 싶어 볼일을 겸해 나선 나들이길에서 월하스님이 갑자기 "내 봄은 어디쯤에 있느냐"고 외쳤다. 곁에 있던 내가 놀란 것은 물론이다. 나약함이라곤 어느 구석에서도 느껴지지 않던 월하스님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본 것이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러랴 싶었다. 사찰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종전 신도들과의 갈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바로 저기 뒹구는 낙엽과 같아요." 내 손을 꼭 쥐면서 그는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월하스님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그와 가까이 있으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안타깝게 그지없다. "합장하옵나니, 월하스님 주위에서 부디 마귀들을 몰아내주소서." 마음속 깊이 기도드릴 뿐 더도 덜도 생각이 잡히질 않는다. 그의 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만큼 무기력한 내 자신이 여간 밉지 않다. 하지만 대룡사에도 봄은 온다. 반드시 올 것이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월하스님은 슬기롭게 고통을 딛고 오뚜기처럼 일어설 것이다. 머지않아 대룡사에 평정을 되찾고, 많은 불자(佛子)들을 극락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요(卽佛卽心),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心外無佛)는 법구(法句)가 있지 않은가. 지금 월하스님이 겪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부처님께서 주신 시련일까? 지금의 고통도 월하스님의 마음이 만든 것이요 또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바로 그 자신의 몫이다. 악한 일에 마음이 머물면 그로 인해 지옥을 만들고, 착한 일에 마음이 머물면 그것으로 극락을 얻을 테니까. 월하스님, 대룡사에도 봄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원(願)을 가지십시오. 원은 삶의 목표이자 원동력입니다. 중심을 잃지 마십시오. 원이 있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당신께서는 꼭 해낼 수 있습니다. 털고 일어나 봄 뜨락을 함께 가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