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商守/국회의원
혹독한 IMF 경제위기의 터널을 용케 잘 빠져 나왔던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물론 글로벌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아직도 경제회생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유가 및 환율불안으로 인한 교역조건의 악화 등 대외적 여건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적인 문제도 한몫을 거들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금융개혁이나 기업구조조정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고 있고, 노사문제와 공기업개혁 또한 아직도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우리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우리 경제에 대한 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떨어져서 메릴린치나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기관은 3.5% 내지 3.9%, LG경제연구원은 4.5%, 삼성경제연구소는 4.8%로 하향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도 작년 말 전망했던 5.3%에서 4.3%로 낮춰 잡으면서 미국 경제상황이 예상보다 악화될 경우 3%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건설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경련이 발표한 『2001년 1분기 산업동향 및 2분기 전망』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주택경기 후퇴와 신규물량 부족으로 민간기업의 투자유보 가능성이 커서 전년대비 4.4% 정도 수주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당분간 건설업계의 어려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원래 우리 건설업은 지난 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대규모공단 조성 등을 통해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하여 70년대에는 중동시장 특수로 인한 해외건설의 호황으로 외화획득에 앞장서면서 당시 1.2차 오일쇼크로 초래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80년대 이후 해외건설시장은 축소된 반면 국내에서는 대형 국책사업과 신도시 건설 등에 힘입어 80년대 중반 약 10조원 규모이던 국내건설시장이 97년에는 무려 80조원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지난 IMF 경제위기로 건설업이 크게 위축되어 수주액은 급감하고 대형 건설업체들이 연이어 도산했으며, 최근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현대건설조차 유동성 위기를 겪는 등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여 해외수주 규모는 97년의 4분의1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IMF 이전 20%를 넘던 GDP 대비 건설투자비율도 15%대로 떨어진 상태이며, 업계 전체 적자폭의 확대와 함께 부채비율도 600%가 넘어 제조업의 약 3배에 달하고 있다. 생산성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91년 이후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 연평균 증가율이 4.8%에 그쳐 제조업의 11.3%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며, 노동생산성도 지난 3년간 제조업이 연평균 12.8% 증가한데 비해 건설업은 -3.3%로 오히려 하락하는 등 갈수록 취약점을 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우리 건설업계는 정부의 경기부양, 대형 국책사업 추진, 신도시 건설 등에 의존하여 외형적 팽창에만 치중하다 보니 IMF 이후 산업구조의 고도화, 주택보급률 상승 등 외부적 여건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을 통한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시장경제 논리가 전혀 작동되지 못하고, 건설업면허제의 등록제 변경, 건설공제조합 출자의무화 폐지, 10억원 미만 공사 입찰시 실적증빙제 폐지 등 정부의 규제완화와 맞물려 오히려 건설업체의 수가 급증, 일반건설업체만 하더라도 금년 3월말 현재 9,429개에 이르는 등 과다경쟁이 극심해지고 있다. 또한 건설업체의 구조적 폐해 중의 하나인 다단계 하도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업체들이 발주자로부터 90% 이상을 현금으로 결제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도급 대금으로는 50% 정도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등 원도급자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 행위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건설경기의 침체로 건설업체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대출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주식, 회사채 등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도 급감하여 업계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연초에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 발표와 건설업체에 대한 유동성 지원조치 등으로 건설주가가 반짝 오르기도 했지만 주택수요 감소와 기업의 설비투자 위축 등을 볼 때 건설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앞으로는 지난 7-80년대와 같은 고도성장기의 폭발적인 건설수요는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우리 건설업체들도 미국의 벡텔사나 일본의 가지마 건설 등과 같이 플랜트, 엔지니어링 관련 기술력 향상에 힘을 기울여 전문성을 강화하고 선진국형 공사관리체계인 건설사업관리제도(CM)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신기술을 개발하기 보다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건설기술의 열악한 실정을 감안, 연구개발 투자예산을 대폭 확대하여 업계의 신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변별력을 상실한 형식적인 평가로 우리 건설기술 능력의 하향평준화에 일조했던 입찰제도를 개선하여 무엇보다도 기술능력을 최우선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제를 시급히 갖춰 무자격 부실업체들의 난립을 막고 시장퇴출을 적극 유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새로운 신도시건설 등을 통한 경기부양론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건설업계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비록 어려운 때에 부도나 법정관리 등이 불가피하더라도 수주영업, 하청구조 등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연결구조를 갖고 있는 건설업계의 특성을 감안하여 신중히 처리함으로써 그 파장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건설업계 스스로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경영투명성을 확대하여 신뢰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기존의 자금조달 수단 외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나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 등의 신규 건설금융 조달방안을 강구하고, 정보화와 e-Business에도 힘을 기울여 노동집약 저부가가치 체계에서 지식집약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건설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때에 우리 건설업은 한국경제를 책임지고 이끌고 나가는 힘찬 원동력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