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경제는 미국의 심장부인 월가와 펜타곤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의 영향에 휩싸여 있다. 비인도적인 테러행위에 대한 분노감과, 유사한 테러사건이 또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복합된 심리적 패닉현상은, 미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다. 당초에 금년 4/4분기부터 미국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던 기대는 희박해지고 금년 3/4분기와 4/4분기까지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이른바 지구촌 차원의 불황(Global Recession)을 겪고 있다. 일본경제는 이미 2/4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고이즈미 총리가 구조조정 우선 원칙을 밀고 나갈 경우 금융부실을 치유하기 위한 향후 2-3년 내에는 일본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EU경제는 금년부터 가시화 되기 시작한 경제통합의 이점이 나타나기도 전에 미국불황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미국과 일본의 동시불황은 1차 석유파동이 났던 70년대 중반이래 처음 겪는 현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지역이 바로 동아시아 경제권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경쟁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던 싱가포르와 대만경제는 2/4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갔고 이들의 수출은 이미 전년대비 Δ20%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경제는 2/4분기에 2.7% 경제성장을 기록하여 동아시아에 있는 어떤 나라(중국 제외)보다도 양호한 성장을 유지하여 왔으나 7∼8월에는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약 Δ20%를 기록하면서 3/4분기 경제성장률은 1% 미만이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유일하게 중국만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외국인투자가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중국도 수출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당장의 경기침체로 인하여 취업기회가 줄어들고, 장사가 잘 안되며, 주가가 500선을 밑돌기 때문에 불안감에 쌓여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기침체 현상이 오래 갈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경제도 내년 1∼2분기부터는 호전될 것이다. 문제는 장차 중국이 부상하면 「우리는 큰 일 아닌가」하는 불안감과 「우리는 무슨 산업으로 먹고 살 것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미래가 결코 불안하지 않고 기회도 크게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경제는 우리의 70년대처럼 박진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중국은 상업적인 금융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고용의 2/3를 점유하고 있는 국영기업의 생산성이 낮고, 특히 오늘날 세계적으로 중시되고 있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이나 기업지배구조의 민주성을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경제구조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3년 반 전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여 금융시스템을 개혁하고 재벌기업의 경영시스템에도 많은 변화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과는 경제시스템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구조조정을 통한 시스템의 우월성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시장에 우리가 내달 팔 것이 많으면 많았지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것이 많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우뚝 솟은 선진경제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산업시대의 일본의 장점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아무리 일본국민이 근검 절약하여 저축을 잘해도 일본의 은행은 부실구조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70조엔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활용하면서도 금융구조개혁이 부진하기 때문에 국제금융사회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빨리 변화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얼마 전에 OECD에서는 회원국의 지식정보화 기반을 평가하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스웨덴과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한국경제가 정보화 시대에 재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평가인 것이다. 한국이 그 동안 추진한 구조개혁은 바로 개방적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진통이었다. 시장경제 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에서 정보화가 확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경제가 정보화 경쟁에서 한국을 따라 올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경제가 정보화의 기반이 되는 시장경제시스템에서 중국보다 우월하고 경제의 유연성 면에서 일본보다 더 빨리 변화해 간다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남북경제 협력을 통하여 북한과의 물류 통로가 되는 철도와 도로, 항만이 뚫리게 될 경우 한국은 일본, 중국과 러시아까지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물류 중심국가가 될 가능성도 갖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동시 불황으로 인하여 우리 경제의 경기회복이 내년 1∼2분기로 지연되더라도 결코 불안해하거나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경제가 변화와 개혁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국민적 에너지를 얼마나 결집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