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고 자랑하던 무역센타가 이슬람 과격 테러분자들에 의해 무너져 내려앉자 전세계인들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사건의 배경에는 기독교와 회교간에 뿌리깊은 갈등이 있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 신·구교간에도 오래된 증오와 갈등으로 이 순간에도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 있으니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가 바로 그곳이다. 차가 벨파스트 시내에 가까워오자 평화스럽던 목가적인 전원 풍경은 시내 군데군데에 걸려있는 검은 조기와 독립을 상징하는 아일랜드 깃발들이 원주민들의 끊임없는 독립에 대한 절규로 가슴속에 전해왔다. 이 분쟁지역도 1997년 4월 아일랜드와 영국지도자간에, 또 신·구교의 대표자간에 평화협정을 맺은 후 평화가 유지되는 듯 했으나 뿌리깊은 상호간의 불신 때문에 피의 보복이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무장단체인 IRA(Irish Republican Army)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어 일년에 수백 건의 총격사건과 폭발사건이 발생되고 있다. 특히 1978년 1월 30일에는 벨파스트 근교에 있는 런던데리에서 시위중인 북아일랜드 구교계 시위대에 영국정부군이 무차별 발포를 하여 13명이 사망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당시 27세의 청년이었던 보비 센드(Boby Sands 1954-81)가 형무소에서 단식 농성을 하다가 아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타임지나 뉴스위크지에서 표지로 다룰만큼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북아일랜드 문제는 또다시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보비 센드는 젊은 시인이자 혁명가였다. 오늘날 그의 얼굴은 벨파스트 중심가에 위치한 신페인당 당사의 벽에 그려진 대형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북아일랜드 독립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 사건이후 아일랜드계 사람들은 런던 데리(London Derry)의 지명에서 신교도의 상징인 런던을 빼고 데리(Derry)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이렇게 양 종교가 갈등을 시작한 까닭은 17세기 신교를 신봉하는 국가인 영국이 구교를 신봉하는 아일랜드를 침공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영국정부는 아일랜드를 영국화 시키기 위해 자국민들을 대거 점령지에 이주시켰다. 이들은 곧 아일랜드 경제권을 장악해 아일랜드 전체토지의 90% 이상을 영국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아일랜드 원주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845년부터 3년간 기근이 들어 200만명의 아일랜드 사람들이 양식을 찾아 미국으로 이주해 가거나 굶어 죽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원망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식민지배가 오래 계속되자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국어인 가릭(Galic)어를 잊어비릴 지경이 됬다. 영국어와 아이레어의 어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들어 영어의 성(catle)은 Dun이며, 산(mountain)은 ben, 언덕(hill)은 crock, 참나무(oak tree)는 derry로 쓴다. 아일랜드인들의 계속적인 독립주장에 부딪친 영국은 1920년 벨파스트를 포함해 특히 영국계 이주민이 많이 사는 북부 6개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독립을 허용했다. 불완전한 독립을 이룬 북아일랜드의 독립저항은 이때부터 본격화 됬다. 70여년이나 지난 1992년에 이르러 북아일랜드마져 자치를 허용했지만 160만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계 신교도 가운데 90%는 영국지배를 바라고 있고 구교계쪽의 반만 북아일랜드로의 통합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게다가 오랜 역사를 통해 몸에 벤 반영감정과 빈부격차 등으로 인해 양측의 반목은 끝일날이 없다. 실제 벨파스트는 신교지역과 구교지역이 나뉘어져 있으며 신교지역은 깨끗하게 정비된 골목에 좋은 저택이 많은데 비해 구교지역은 거리정비도 덜 되있고 주택들이 정비가 되어있지 않아 빈부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영국이 자국민 이주자들의 보호를 위해 취업, 공영주택배당등에서 차별을 해왔고, 18세기이후 토지 소유를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 독립 운동은 1968년 IRA가 조직되면서 본격화 됬다. 이에 신교도 측에서도 얼스터라는 민병대를 조직해 신·구교간의 유혈충돌이 본격화 되기 시작해 이제까지 적어도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3년 12월 영국과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평화를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1997년 4월 양국간의 지도자와 신구교 대표간에 평화 합의문이 타결되어 1999년 11월에는 신구교 자치정부가 출범하였지만 IRA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작년 2월 벨파스트호텔 폭탄테러 등을 감행하여 영국정부는 자치권마져 회수하여 직접 통치하고 있으며 이후에도 신·구교간에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폭력과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벨파스트 시청 앞 중심가에는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시청안 잔디밭에 짝을지어 앉아 즐기는 시민들 모습에는 그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것이 나그네의 눈에는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