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경제는 어려운 상황이다.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투자가 위축되고 있으며, 미국 테러사태는 향후 경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일차적으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비롯하여 대외여건에 기인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조속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것이다.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하여 경기의 급속한 하락을 방지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경제회생의 주체인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이기 위한 기업경영 환경의 개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규제위주의 기업정책을 글로벌 시대에 적합하게 전환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의 규제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것도 바로 규제위주의 기업정책 때문이다. 먼저 경쟁을 제한하거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한 규제는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는‘글로벌 스탠더드’와‘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개혁과 구조조정의 대원칙으로 제시해 왔지만 시장경제에 맞지않는 규제가 아직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의 투자나 자금조달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제이다. 기업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획일적으로 가해지는 규제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속에서 이제는 일정한 규모가 되지 않으면 경쟁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따라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규제를 풀어 기업이 몸집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문어발식 확장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의 사업확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적기에 신규사업에 진출하거나 사업구조를 재편하지 못하는 등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지만, 이사회 구조를 법으로 정하는 것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 경영구조나 사업패턴은 환경의 산물이지 법이나 제도로 정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주나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이다. 총액출자제한제도와 같이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규제는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와 기업의욕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국내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규제는 세계시장에서 외국 거대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시장이 전면 개방된 상황에서 대기업을 규제하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 보다는 외국기업이 이득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와 같이 타회사 출자를 규제하는 일본도 자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지난 3년동안 규제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은 근본적인 개혁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개별 법령에서 문제되는 조항을 개선하는 방식으로는 본래 의미의 규제개혁에 충실할 수 없으며, 규제개혁과 공공부문의 개혁을 연계시키지 않고서는 또한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좀더 넓은 시각으로 민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모두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규제개혁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 재정립을 의미하기 떄문에, 민간의 이해관계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규제개혁을 공공개혁과 연계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위원회에 정책조정 기능을 부여하거나, 미국의 OMB(Office of Management & Budget)와 같이 공공개혁을 담당하는 부처에 통합하는 방안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만성적인 부처이기주의와 부처간의 중복규제를 정비하기 위해 각 부처의 기능을 조정하고 유사부처는 통폐합해야 한다. 셋째, 크게 달라진 경제환경에 따른 법령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관련제도의 개혁으로 시장규율이 빠르게 확립되고 있으며,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산업간의 경계도 종전과 크게 달라졌으므로 이제는 개별 법조항을 개선할 것이 아니라, 관련법의 통폐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규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질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간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크게 향상된 반면, 법규가 투명하지 못하고 규제권자의 재량권이 과도하여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경영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행정 서비스도 행정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규제도 정책이므로 정책목표를 미리 설정하고, 이를 위해 관련규제를 일괄적으로 정비하는 성과위주의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스피드 경쟁시대에 부응하는 규제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다른 정책결정 과정과 같이 규제에 대해서도 사전심사 기능과 규제효과의 평가기능 등을 보완하고, 규제의 전과정을 관리하는 규제관리(regulatory management)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규제에 시한을 부여하는 규제일몰제가 필수적이다. 글로벌 경쟁에 직면하여 선진국들은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경영환경 개선이 국가경쟁력 강화의 첩경이라고 인식하고 규제개혁, 기업의욕 고취 등을 경제정책의 대전제로 삼고 있다. 국가규모의 크고작음을 떠나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일류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는 활용하기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경제가 어려울 때일 수록 정부와 민간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여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