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하는 말로, 이것 저것 다 잘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밖에 잘하는 게 없는 바보가 낫다고 한다. 또 거지도 제멋에 산다는 말도 있다. 이 말들을 뒤집어 보면, 인생의 멋이란 누가 만들어 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가꿔낸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평소 제 자신을 잘 모르고 산다. 세상(世相)에 부딪히면서 자신을 차츰차츰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가면서 그에 걸맞게 잘못을 깨닫기도 하고, 그 속에서 자기다운 인생을 가꿔낸다. 그게 우리들의 일상(日常)이다. 우선 내 자신이 그렇다.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산 듯한 내가 아직도 내 자신을 잘 모르고 산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용기있게 다 해내지 못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평소 마음속 생각이나 입에 담는 말, 그리고 행동이 한때에 그치지 않고 다음의 나를 형성하고 또 변모시키는데 말이다. 혹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보봐르나 싸르뜨르의 생애를 부러워하기도 할 것이다. 아니, 그분들이 실제로 얼마나 멋지게 살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보다는 별나지 않게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믿음직스러운 게 아닐까. 그저 순리에 따라 제때에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나무들처럼. 혼자서 살며 네 번째 겨울을 맞다보니 내게는 그게 더욱 절실하다. 새들이 떠나 버린 숲이 적막하듯 내 겨드랑이에 스치는 바람이 여간 시리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나름대로 꿋꿋한 의지와 질서가 없었다면 내삶은 이미 무너지지 않았을까. 가끔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아차 하고 정신이 번쩍 들곤 했으니까. 새삼 지난 세월들이 쓰디쓰게 돌이켜진다. 일과 후면 괜스레 거리를 서성이며 바람기 있는 여자의 유혹을 요행처럼 기대하던 몇몇 날들. 그러면서 어느 여름날엔 수많은 잎새들의 건강한 일상을 신뢰하고, 그러다가 또 내 문학은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외치며 살아온 나날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나를 비관론자라고 나무랐다. 괴롭고 고통스럽지 않으면 인생다운 인생이 아니라고 여긴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틈틈이 세상(世上)을 떠나 마치 뜬구름 같은 나그네로 살아온 듯싶고, 요즘도 드물게 그 증세가 발작하면 그만 염세에 빠지곤 하니 말이다. 아무렴 이 겨울엔 흰 눈 쌓인 숲길을 가슴이 지치도록 찾아 나서리라. 그래서 내 마음속의 칠흙 같은 어둠을 몰아낼 사랑을 찾고 싶다. 그렇듯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싶다. 누가 내 인생을 가꿔 줄 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이것 저것 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내 가장 사랑하는 문학 하나만을 잘하는 바보가 되자. 농사를 지으면서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낸 밀레의 적성에 비기지 못할 바에야 내 푼수껏 살자. 그게 내 삶의 멋일 테니까. 인생은 곧 자기 창조다. 그러니 내 인생도 내 자신이 고쳐 가면서 살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하겠다. 이를테면 시장에서 산 옷이 몸에 맞지 않아 고쳐서 입듯이.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여기며 아직 남은 인생의 절반을 새롭게 가꿔내자. 삶의 방식과 신념을 내 푼수에 맞에 고치며 사는 데에 땀 흘리자. 땀 흘리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마에 콧잔등에 땀방울이 솟아오를 때 그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바로 내 생활의 내적인 모습이니까. 비록 남들이 별로라고 여기는 작고도 하찮은 것들에도 나는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리라. 땀의 체험자만이 열매의 참맛을 느낄테니까. 그리고 내게는 고쳤으면 싶은 게 하나 더 있다. 이를테면 대화(對話)에서 상대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그것이다. 나는 가끔 상대에 대한 선입관으로 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지 못한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기회를 주어 그가 바라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대체로 그에 인색한 편이다. 대화란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고 논쟁하는 게 아님을 알면서 나는 곧잘 그랬었다. 마음과 느낌을 서로 나누는게 대화요, 나눔으로써 서로간에 이해의 길이 열리고, 향기가 피어나고, 그게 곧 사랑의 메아리인데 말이다. 좀더 솔직하자면 지난 반생(半生)동안 내 몸에 딱 맞는 옷이라곤 없었다. 기성복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맞춤옷도 일단은 손질해야만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옷을 고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옷을 고치는 만큼만 내 인생이 고쳐져도 삶이 늘 새롭고 색다른 분위기였을 텐데 하고. 그래그래, 이제 내게는 인생도 문학도 나에 걸맞게 고쳐 살아갈 일만 남았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