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신철영(申澈永) 금년도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동반 침체할 것이라는 깊은 우려에서 기대반 우려반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달 여를 넘어 진행된 반테러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금년도부터는 WTO하의 신라운드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있기에 각 국의 낮아진 관세는 거래를 확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기 침체를 방어하기 위한 각 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국가 간의 빈익빈부익부가 지속될 것이며 득을 보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는가하면, 한 국가 내에서도 무역의 증가로 이익을 보는 산업과 계층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해결되어야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위기 이후 지난 4년간 지속적인 구조개혁과 조정을 통해서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많은 노력을 해왔다.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씀씀이를 줄이는 등 세계가 놀랄 정도의 국민저력을 보여주었다. 외환보유고 확장에 주력한 결과 1,000억 달러가 넘게 보유하게되어 당장은 외환부족으로 인한 위기는 없을 것이고, 경제체질의 개선을 위하여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상시적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되어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인 장치*1)를 마련하였다. 한편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벤쳐기업 육성과 지원 등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사실이고, 4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러한 결과 최근 국제신용평가사(S&P)의 신용등급 상승으로 나타났다. 1인당GDP도 2000년 기준 9,730달러로 계산상으로 보면 위기이전 수준에 접근해 있다. 그리고 금년에도 약 3% - 4% 가까운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국내외의 예측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는 경제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모범국으로 지칭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1) 이 부분은 법과제도의 실질성이 문제가 되고있는 가운데 최근 또 다시 훼손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성공 뒤에 나타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금년 들어 1인당 세금부담은 약 260만원정도이고, 공적자금도 극단적인 계산으로 보면 가구당 부담도 1천만 원에 이른다. 아울러 약 60%를 점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루가 불안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노동조합의 테두리 밖에 있어서 임금과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함은 물론 여성근로자의 약 70%가 비정규노동자라는 현실은 훌륭한 외형적인 성공 뒤의 그림자이다.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의 확대이다. 소득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6년 0.27선에서 2001년에는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0.32정도로 악화되고 있는데, 이는 실업증가와 고용불안 등이 정보격차(digital divide)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의미는 승자독식시대에는 초기부터 제도적으로 불평등해소를 위한 제도적인 정비 및 사회 안정망을 준비해 놓지 않고 사후적으로 교정할라치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즉, 우리의 경우도 소위 생산적 복지의 틀 속에서 연간 10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부은들 가시적 성과나, 근본적 구조 틀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가 들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써왔지만 각종사회지표는 악화일로(惡化一路)에 있다는 사실을 면밀하게 되새겨야 한다. 상위 1% 소득계층이 하위10% 소득계층의 소득비율이 95년 4.76배에서 5.95배로 25%나 증가하였다. 역시 상위 1% 소득계층과 하위 50% 소득계층의 소득격차가 5년동안 2.741배에서 3.199배로 16.7%로 증가하였다. 소득격차로 인한 근로의욕상실과, 경제적 기회균등의 상실은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원동력에 있어서 큰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전후 일본과, 대만, 한국 등에서의 토지개혁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되새기고, 최근 중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면밀히 따져본다면 경제위기 이후의 빈부격차 및 불평등구조의 악화는 참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속증여세 보완과 비과세 감면 축소, 부동산관련 세제개편, 금융소득종합과세의 보완과 과세점의 대폭인하가 필요하다. 두 번째, 사상 최저의 저금리시대에 있다. 이렇게 저금리기조가 지속됨으로 인해서 빚이 많은 가계와 기업들은 차입비용 또는 금융비용이 낮아져서 건전한 소비가 이루어지고, 투자가 증가되어 경기부양이 되는 것을 기대하였다. 또 세금의 감면은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소비를 진작시키는 경로를 통하여 역시 경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은행예금자들의 입장에서는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보면 이자수익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연금생활자의 비중이 점자 늘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이 매우 클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4월 주요은행들은 최저금액을 10만원 또는 50만원으로 하는 최저선을 정하여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로 하였고, 심지어 어떤 은행은 동전을 교환하는데 인건비 등의 비용이 든다는 이유를 들어 역시 경영합리화라는 잣대에서 이 비용을 금융이용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러저러하게 생겨난 금융기관의 수수료종류가 20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금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 은행은 ATM기 서비스 원가를 41원으로 계산했으나 또 다른 은행은 1804원으로 44배나 차이가 나고 있으며, 송금수수료의 경우 원가를 가장 낮게 계산한 은행과 가장 비싸게 계산한 은행간 차가 1.86배나 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지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모두를 금융이용자, 특히 주로 서민들에게 지급할 소액예금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등 서민들의 과중한 부담으로 전가하고 있다. 서민들의 불만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몇 천억 몇 조원에 이르는 기업에 대한 대출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대출절차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자회수는 물론 원금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부실처리를 오히려 국민의 부담인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서 회생시키고, 서민들 대출금에 대해서 몇 십 만원을 수 삼 개월 연체시킨 경우 신용불량자로 등록된다. 200만에 가까운 신용문제자 수가 잘 나타내고 있다. 공적자금으로 살아난 금융기관들이고 보면 자구노력을 충분하게 하지 않은 채 경영의 효율성 제고라는 미명하에 거의 일방적으로 금융기관이용자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분명한 서민 차별적인 정책이며, 계층 차별적 정책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금년처럼 주택문제와 전월세 품귀현상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경우는 없었다. [경실련]에 호소하는 것들을 보면, 특히 나이든 4-50대의 가장들이 실직으로 어려워진 생활속에서 아이들의 장래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데, 돈이 없어 방을 구하지 못해 가장으로서 무능을 한탄하는 내용이 어느 때 보다 많았다. 전·월세 값이 폭등하여 주거비 부담이 사상최대 증가한 결과 가계지출 급증으로 주거비부담 22%나 증가하였다. 분석에 나타났듯이 금년도 전세 및 월세란은 크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주택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정책당국의 정책부재에 있다. 당국은 지난 98년 이후 그동안 주택경기활성화에만 신경을 쓰고, 그로부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민간이 건설하는 주택과 재건축에 대해선 평형제한이 없어 전용면적 18평-분양평형 24평형-이하 소형 아파트의 품귀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소형 아파트 의무 공급비율이 없어진 이후 1999년 소형주택비율이 다소 상승하였으나 수요를 충족할 만큼 공급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사상초유의 저금리시대는 시중유동성의 안정적 고수익 쫒기 현상을 초래하였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국내경기의 침체와 증권시장의 침체로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대기성자금이 고수익과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확보된 부동산 쪽으로 몰렸다. 아울러 전세만기가 도래한 경우 이 같은 수익을 전제로 월세로 전환하려는 임차자가 증가하였고, 여기에 2년 전에도 소란이 있었던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허용이 이번 대란의 원인이 되었다. 또 한가지, 금융기관들이 선진금융기법이라고 도입한 방향이 기업대출보다는 가계대출을 대폭 증가시켜 주택구입자금의 대출이 훨씬 용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금리시대에 자본의 성격상 고수익을 쫒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경제주체로서의 합리적인 행동임을 전제로 하면, 전세의 월세전환을 요구하는 집주인이나 부동산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질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주택공급은 경직되고, 한정이 되어있는 반면 수요측면은 이와 같이 금융의 확충이 손쉽고, 매우 탄력적이고 심리적 투기성까지 겹쳐 자칫하면 가격상승의 요인을 항상 구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그리고 심도 있는 정책을 구사하여야한데 그렇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개입과 지원은 시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안정과 임대주택의 공급 확대와 임대료 보조금 지급 등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지표 ·통계자료의 부정확성부터 바로 잡고, 공공주택의 기능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우리나라 서민주택공급의 젖줄인 국민주택기금의 운영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완전하게 이루진다는 전제 하에 주택정책의 기본방향은 소득증가도 감안하고, 소비자의 요구에 응하면서 시장기능에 의한 주택의 수급조절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네 번째, 160조에 가까운 공적자금투입에 대해서 최근 여·야는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공적자금의 조성 및 관리와 관련하여 감사원 특감결과는 한마디로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도덕불감증과, 이를 단속하지 못한 심각한 법적, 제도적 시스템의 오류를 드러냈다. [경실련]은 지난해 8월25일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하여 금융기관의 도덕적인 해이 및 위법한 사항과, 자금의 관리집행을 맡은 기관 및 공적자금투입을 받은 부실화된 대그룹 기업에 대해서 특별한 감사 및 수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감사원과,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즉, 1억원 이상 금융기관 부실을 유발한 사람과 법인, 부실채권 액수 5억원 이상 9,309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였다. 특별히 대우, 한보 등 16개 대기업 그룹계열사 106개사가 모두 포함되었다. 공적자금의 잘못된 산정 등의 집행 및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법적 또는 행정적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물어야 한다. 이번 면죄부의 의미는 "97년 외환위기의 모든 잘못은 민간부문에서 이루어졌고, 시초부터 지금까지 정책결정에 관여한 공무원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의미로서 어느 국민도 이를 납득할 수 없다. 지금까지 금감원이나 예보공사, 검찰이 취한 조치와, 앞으로의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지만, 지금까지 공무원에 대한 조치는 찾아볼 수 없어서 모든 것을 민간에게 떠넘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공적자금의 처리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2006년에 모두 상환할 수 있다고 국민을 우롱한 책임자를 고의가 아니라고 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상황이다. 모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지 않고, 일부 국민들에게만 고통을 강요해서는 국가적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이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민주화와 소비자권익을 바로하고, 한국적인 대안을 모색해서 더불어 잘살기 위한 사회건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우리나식의 재벌에 대한 구조개혁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재벌총수들과 합의하에 재벌개혁 5대원칙에 근거하여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개혁주체의 도덕성 상실과, 의지결여, 집요한 기득권층의 개혁방해 작업으로 정부의 개혁은 원칙을 잃고 표류하다 결국 재벌의 압력에 밀려 실종되었다. 99년 8·15 경축사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기존의 5대 원칙에 재벌의 금융지배 방지, 순환출자와 내부거래 억제, 변칙상속 근절 등을 추가한 이른바 5+3 원칙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정부는 출자총액제한, 금융계열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및 의결권 제한 등 5+3 원칙에 따른 핵심적인 개혁조치들을 모두 포기하였다. 정부가 만들고 추진해온 개혁정책들을 불과 2년 만에 합리적 명분 없이 스스로 폐기처분 하는 것은 무책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제 완전히 개혁의지를 상실했다. 이것이 걱정이다. 이외에도 많은 국가적인 과제들이 남아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야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경실련은 이같은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시민과 함께 할 것이다. 이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가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한 운동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또 올해는 월드컵, 지방선거, 대선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일련의 행사는 정치적 의미에서도 매우 크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더욱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 개최는 경제적 가치가 큰 만큼 성공할 수 있어야하고, 양대 선거는 두 말할 필요 없이 국가 백년대계에 필요한 인재들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다는 점에서 또한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차분하게 준비해야하고 치러져야한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지만, 그러나 정치논리가 시장흐름을 바꾸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