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容秀
사랑이란 말처럼 흔해빠진 것도 없다. 그렇다 보니 그게 헤프다 못해 천박해지기도 하지만 딴은 그만큼 고귀하고 신성한 것 또한 없을 것이다. 우리말 사전에서 그 뜻을 보면, ①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② 남녀 간에 정을 들여 애틋이 그리는 일 또는 그 마음, ③ 동정하여 너그럽게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④어떤 사물을 몹시 소중히 여김 또는 그 마음, ⑤ 기독교에서 긍휼과 구원을 위하여 예수를 내려 보낸 하느님의 뜻이라고 풀이돼 있다. 한데, 그 중 그 어느 것에 해당되든 우리는 늘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고 산다. 그러다 보니 사랑이란 말이 가장 소중하기도 또 가장 천박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남녀 간에 있어 더욱 그렇다. 목숨을 다 바쳐도 좋을 그런 사랑이라면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지만, 그게 헤프다 보면 그 사랑엔 때가 묻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되니까.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마지막까지 다 사랑하며 살아지는 게 우리들 사랑 모습이 아닐까. 봄이 오고 있다. 눈(雪) 속에 움트는 봄이다. 언 땅을 갈아 엎고 새싹을 기대하는 봄, 일상(日常)을 찌푸리다가도 마른 가지가 틔워내는 촉을 보면 마음속 구김살이 펴지고 상쾌해지는 봄이다. 우정이나 애정은 묵을수록 더 두터워지고 더 깊어진다지만 그래도 새록새록 피어나는 정감은 반드시 필은하리니. 계절따라 꽃씨를 새로 심고 가꾸듯이, 우정도 애정도 문득문득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더욱 돈독해지는 것이려니 우리 사랑도 좀 봄갈이하자. 봄이 달려오고 있다. 겨울의 오랜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냇물도 새들도 그 소리 한결 맑고, 마른 가지도 새싹을 틔워내려 한다. 봄은 우리 삶의 모양을 빛깔로 소리로 바꿔낸다. 우리 사랑도 그런 봄의 색깔이 필요하다. 봄은 꿈이며 그리움이다. 봄은 그리움으로 크는 새싹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물질의 풍요시대라 해도 꿈의 넉넉함에 비할까. 덜 따뜻하고 덜 배불러도 우리 사랑을 봄의 색깔로 물들이고 싶지 아니한가. 사랑은 정직한 것, 숨차게 달려오는 봄을 꼬옥 끌어안고 기뻐하며 울자. 누가 훔쳐볼까 더러는 귓불 붉히며 꿈으로 그리움으로 사랑을 봄갈이 하자. 봄은 만남을 전제로 한 가슴 설레는 꿈이요 그리움이다. 하루에 한 두 번쯤 푸른 현기증이 일지 아니하는가? 겨울 속의 봄 풍정(風情)이다. 양지바른 돌담 밑 잔설(殘雪)에 눈이 간지럽고 물오른 가지 끝에 연초록 솜털잎 피어 날 듯 아지랑이 어리접지 아니하는가? 때론 기쁘고 슬픈 아픈 고개를 넘는게 우리네 삶이듯이 겨울 속의 봄 풍정에 눈이 시리지 아니하는가? 꿈고 그리움치고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듯이 우리네 삶의 이런 저런 고갯길이 어찌 애틋하지 않을까. 어느 한 밤 자고 나면 앞산이 뒤뜰이 연초록으로 어찌 깨어나지 아니할까. 봄이 고개를 넘고 있다. 봄이 오는 고개마다 아지랑이 피고, 그 아지랑이 얼마나 애틋한가. 고개 넘어에 보일 듯 보이는 듯 보고 싶어지는 얼굴이 기다려지지 않는가. 연초록 연분홍 빛깔로 다가서는 꽃잎이 그립고 또 그립지 아니한가. 봄이 우리 삶의 고개 넘어 가까워지고 있다. 모자란 듯 빠듯한 생활에서도 꿈이 그리움이 꽉 차면 그 넉넉함에 무엇이 부러우랴. 가을이 낙엽으로 비워지는 것이라면 봄은 그 빈자리를 제 빛깔 제 모습으로 채워내는 것, 이제 그만 그대 사랑도 봄 채비 서두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