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東 云 혜천대학 세무회계과 교수(E-mail : dwjung@hcc.ac.kr)
사람이 살며는 몇백년 사나,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세재는 웬 고갤까.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소리 따라 흐르는 떠돌이인생. 첩첩이 쌓인 한을 풀어나 보세.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속엔 수심도 많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진도아리랑 - <서편제>는 [뿌리깊은 나무](제2호, 1976년 4월)에 발표된 이청준의 단편 소설, [서편제]를 비롯, [남도 사람], [소리의 빛] 세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1993년 영화로 제작되어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그 당시까지 한국영화사상 최다 흥행 기록을 세움은 물론, 판소리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끌어 모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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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엽, 전라도 보성의 소릿재 주막에 한 30대 남자 동호(김규철)가 찾아든다. 그는 주막 여인 세월네의 판소리 한 대목을 청해 들으며 지나간 세월 속으로 회상에 잠긴다. 서울에서 어느 판소리 명창의 문하생으로 있던 우봉(김명곤)은 스승의 애첩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그곳에서 쫓겨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소리꾼으로 살아간다. 동호가 네 살쯤 되던 1930년대 말엽, 동호는 콩밭 일을 하는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육자배기를 흥얼거리며 밭을 매던 어머니 금산댁은 사내의 노래 소리에 넋을 잃는다. 지나가는 나뭇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내가 마을 윤초시네 잔치에 불려온 떠돌이 소리꾼 유봉임을 안 금산댁, 둘은 사랑에 빠지고 함께 마을을 떠난다. 유봉이 데리고 있던 양딸 송화와 함께 살다가 동호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그 후 유봉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쳐 자신의 뒤를 잇게 하려고 애쓴다.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룬 의남매는 유봉과 함께 유랑생활을 하며 소리를 팔아먹고 살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더 궁핍해지기만 한다. 판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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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당장의 생계조차 막막해진 절대 위기의 상황에 처하여 세 사람은 이제 더 내일의 삶을 기약하기가 어렵다. 그 위기는 피해 돌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냥 주저앉아 버리면 이 일가의 삶은 그대로 파탄이다. 그래도 내일의 삶을 기약해 보려면 그 어려움과 아픔을 함께 껴안고 삭여 넘어가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 세 사람은 짐짓 진도아리랑의 신명기와 흥을 빌려 그 어려움과 아픔을 허허히 껴안는다. 그리하여 가냘프나마 주저앉으려는 기력을 다시 부추겨 올려 내일에의 힘든 삶의 길을 계속해 나간다(이청준, 서편제 - 다시 태어나는 말의 작가 노트 중에서). |
그러나 동호는 그 길을 뛰어넘지 못하고, 가난이 너무 지긋지긋하다며 유봉과 싸우고 떠나버린다. 동호가 떠난 뒤 송화(오정혜)는 동생을 잃은 슬픔 때문에 소리하기를 거부하고, 유봉은 가슴에 말못할 한을 심어 주어야 득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여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결국,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소리뿐임을 깨달은 송화는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피를 토하는 연습에 몰두한다. 세월이 흘러 유봉은 두메산골 폐가에서 쓸쓸히 죽고, 혼자 남은 송화는 비렁뱅이 소리꾼으로 전락하여 각지를 전전한다. 송화와 유봉을 찾아다니던 동호는 어렵사리 남도의 허름한 주막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송화를 만난다. 서로의 신분을 숨긴 채 밤을 지새우며 가슴에 맺힌 한을 판소리를 통하여 풀어헤친다. 그리고 나서 동호는 아무 말 없이 서울로 올라가고, 송화도 3년 동안 얹혀 살아왔던 객주집 주인 홀아비와 작별하고 어린 소녀를 안내꾼 삼아 어디론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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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는 1993년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신인여우상, 신인남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고,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차지함으로써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외형적 평가보다는 유봉, 송화, 동호라는 소리꾼 일가의 찌들린 삶을 통해, 외래 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음악이라고 하지만 외래음악보다 오히려 더 낯설기만 한 우리 전통음악의 멋을 새삼 느끼게 해줌으로써, 잊고 지냈던 우리 것에 대해 새롭게 바라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 |
판소리란, 구전(口傳)예술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鼓手)의 북 반주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노래와 말로 엮어 몸짓을 곁들여 청중들 앞에서 구연하는 공연예술이다. 이는 대개 창자(唱者)들의 출신지역(出身地域), 창법(唱法)과 음조(音調)에 따라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
동편제는 섬진강 동쪽, 즉 운봉, 구례, 순창, 흥덕 등 전라도 동편 지역에서 널리 유포되던 창법으로 명창 송흥록에게서 연유되었다고 하며, 남성적 분위기의 우조(羽調, 서양음악의 장조)에 걸맞게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므로, 우렁차고 장중한 맛을 준다. 반면에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 해남 등지에서 불리던 것으로 박유전 명창에서 연유되었다고 하며, 계면조(界面調, 서양음악의 단조)에 어울리는 여성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며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는 데 특색이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한이 맺혀져 소리가 된다. 그 한은 삶 속에 녹아들어서 하나씩 쌓여 갈 때에 삶이 한이 되고, 한이 삶이 될 때에 소리가 완성이 된다는 유봉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恨)을 승화함으로써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데 있으므로, 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이청준은,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고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을 한이라고 본다. 한풀이를 지향할 때 한은 원한(怨恨)이 되지만, 그 한을 초극하는 화해와 용서를 거칠 때 한은 창조적인 해소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즉, <서편제>에서는 가난과 사회의 냉대라는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득음이라는 최고 경지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주고 있으며, 송화와 동호가 마지막 만나는 장면에서 심청가 중 심봉사와 심청이가 극적으로 만나는 대목을 부름으로써, 가슴에 응어리진 한도 풀리고 이제야 비로소 득음을 위한 진정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가혹한 운명과 자유의 탄식 가운데 / 울도록 나를 버려두오 /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 숙명은 나의 영혼을 영원한 고통 속에 울게 하지만 / 사랑하는 이여 나를 버려두오 /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 오직 자비로서 나의 번뇌를 부수고 / 슬픔이 사라지게 해주오 / 오직 자비로서 나의 번뇌를 가혹한 운명과 /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 내 영혼의 고뇌를 부수고 안식을 주오… -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
이제 파리넬리에 대하여 살펴보자. <파리넬리(Farinelli Castrato, 1994)>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카스트라토 중의 하나였던 파리넬리(본명 카를로 브로스키, 1706∼1782)의 생애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7, 18세기 유럽에서는 교회법으로 여성이 무대에 서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으므로, 여성의 음역을 낼 수 있는 남성 소프라노들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카스트라토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에 이르기 전에 거세하여 소년처럼 맑고 투명하면서도 신비로운 목소리를 유지하게 됨으로써, 남성의 목소리로 변하지 않고 여성의 목소리를 그대로 지니되, 신체는 남성처럼 자라서 힘이 넘치는 목소리를 내는 성악가를 말한다. 그러나 1903년 로마교황청이 이를 금지함으로써 음악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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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파리넬리는 목소리가 아름다웠으며 기교가 뛰어남은 물론, 감정 표현이 완벽에 가까웠으며 음역은 세 옥타브 반에 이르렀고, 한번 호흡으로 음표를 250개나 노래할 만큼 호흡 조절이 자유자재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 음표를 1분 이상으로 길게 노래했다고도 전해지는데, 한마디로 위대한 성악가임에 틀림없다. |
영화는 교회 합창 단원이었던 카를로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카스트라토가 된 것을 비관한 친구의 자살을 목격하고 카를로는 큰 충격을 받는다. 세월이 흘러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 트럼펫과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내기가 한창이다. 어느 한 청년이 트럼펫 연주자와 대결을 벌이게 되고, 트럼펫 소리를 뛰어넘는 기교와 음역으로 트럼펫 연주자를 굴복시킨다. 그 청년이 바로 파리넬리(스테파노 디오니시)이다. 그 광경을 지켜본 헨델은 파리넬리를 영국으로 데려가 자신의 오페라에 출연시키려고 하지만, 파리넬리는 형 리카르도(엔리코 로 베르소)와 함께 가지 않으면 영국으로 갈 수 없다며 거절한다. 헨델이 파리넬리에게 노래만 하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모욕을 주자, 파리넬리는 그런 헨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이때부터 이들 사이에 갈등이 싹튼다. 이 후, 두 형제는 유럽 각 나라를 돌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파리넬리의 스승 포로포라는 자신이 이끄는 노블레스 극장을 살리기 위해 파리넬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언제나 헨델이 이끄는 코벤튼가든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파리넬리는 포르포라를 돕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도 그는 최고의 찬사를 받지만, 정작 파리넬리는 자신의 목소리만 최고로 보여줄 수 있는 기교뿐인 얄팍한 형의 아리아에 환멸을 느끼고, 점점 좌절감에 빠져 간다. 또한, 파리넬리의 고음에서 나오는 관능적인 노래로 하여금 듣는 많은 여자들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만, 그는 어떤 여자와도 사랑을 나눌 수 없으므로 마지막 잠자리 순간에는 형과 교대를 해야만 한다. 거세를 했다고 남성호르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끌어오르는 육체적 욕망이 없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공허감과 열등감으로 괴로워한다. 그의 노래는 어쩌면 그런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울려 나온 것이기에 더욱 절절한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형 리카르도는 마약을 주면서 위로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중병에 걸린 파리넬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거세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작곡한 음악만을 기계적으로 부르기만 하는 꼭두각시화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만든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파리넬리는 비록 적대관계에 있지만, 당대 최고의 음악가인 헨델의 음악으로부터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제는 자신의 예술혼을 충족시켜줄 헨델의 오페라를 부르기를 갈망하게 되면서, 형제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블레스의 주요 후원자, 마가렛의 조카인 알렉산드(엘자 질베르스테인)는 헨델의 오페라 악보를 훔쳐오고, 이를 무대에 올린다. 바로 그날 무대에 나서는 파리넬리에게 헨델은 형의 잘못을 폭로함으로써, 그의 좌절을 만끽하려 하지만, 오히려 파리넬리는 그 아픔을 극복하고 위대한 성악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생애 결코 잊지 못할 최고의 공연을 보았다고 느끼게 해준다. 파라넬리의 그러한 모습에 헨델은 진실로 감동 받게 되고, 이제야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게 된다. 실제로 이 때문에 본래 오페라 작곡가였던 헨델이 오페라를 그만 두고 주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형과 결별한 파리넬리는 궁정 가수로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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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형 리카르도는 동생과의 평생 약속이었던 오페라 오르페우스를 완성하고 용서를 바라며 파리넬리를 찾는다. 아름다운 형의 오페라를 본 파리넬리는 형을 용서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파리넬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형이 동침하도록 함으로써, 배가 부른 아내의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이제 형은 전쟁터를 향해 떠난다. <서편제>에서 송화가 아버지를 용서하고 득음의 길을 떠나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그들 형제의 마지막 작품인 아이를 남기는 모습에서 용서를 통하여 갈등의 늪을 벗어나게 되고, 비로소 이를 승화시키게 된다. |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18세기 평론가 만시니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서, "목소리 그 자체가 하나의 신비다"라고 했다는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남성의 박력과 여성의 섬세함을 모두 갖춘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소름끼칠 정도였으며, 특히, 헨델의 오페아 리날도 중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 장면은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 영화상의 목소리는 실제로 카운터 테너 데렉 리 라긴과 소프라노 에바 마라스 고드레프스카의 목소리를 컴퓨터에 의한 고도의 디지탈 음향 기법으로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헨델의 음악뿐만 아니라 지금은 음악사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리카르도 브로스키, 니콜라 포르포라 등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것과 당시의 분위기를 정교하게 재현한 극장의 기품 있는 무대, 파리넬리의 화려한 의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서편제>에서 갖은 역경 속에서도 판소리를 고집하는 유봉. 그의 투철한 프로정신은 높이 살 만하다. 과거의 자기 친구들에게조차 멸시를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딸을 득음의 경지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실에 너무 집착하여 딸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또한, <파리넬리>에서는 거세를 당함으로써 신의 목소리라 할만큼 섬특한 목소리를 내는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물론, 거세를 했다고 해서 파리넬리와 같이 모두가 뛰어난 가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카스트라토의 전성기였던 18세기 이탈리아에서만 4,000여 명의 소년들이 거세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가 아름다운 것은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세라는 인위적인 수단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을 통해 메조소프라노와 비슷한 음역의 카운터테너가 탄생되었다. 영국 성악가 알프레드 델러(1912∼1979)를 시초로, 현재 빅 3로 인정받고 있는 안드레아스 숄, 브라이언 아사, 데이비드 대니얼스들이 그들인데,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프로이다. 대체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객관적 분석적인 방법을 중시해 구별하기를 좋아하며 특정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프로)를 존경한다. 반면에 우리 나라 사람은 직관적인 판단과 화합 조화를 중시한다. 따라서, 각 분야에 두루 능통한 자를 존경했는데, 여기에서 나온 말이 삼절(三絶)이다. 시서화(詩書畵) 세 분야에 모두 특출한 것을 말한다. 지금 말로 표현하면 박찬호의 야구에 박세리의 골프, 이창호의 바둑 실력을 겸비하는 것이다(鄭錫元, 문화가 흐르는 한자 - 三絶, 동아일보, 2000. 1.23. 참조.).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다양화됨에 따라 각 분야에 두루 정통한 사람이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의 전문가가 요구되고 있다. 프로(professional)는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가능성이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기적이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일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전광진, 생활한자(423) - 可能, 조선일보, 2000. 7. 7. 26면 참조.). 즉, 프로가 되려면 정신을 엄격히 다스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남들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가능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프로페셔널리즘(프로의식)이란 자기가 하는 일, 그리고 그 일과 관련된 전문 지식에 자부심을 가짐은 물론,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행위를 하고자 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골프 인생의 4단계라는 말이 있다. 제1단계는 막 시작한 사람들의 단계인데, 이들의 특징은 만나는 사람마다 골프를 권한다는 것이다. 제2단계는 어느 정도 알게 된 사람들의 단계인데, 이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골프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3단계는 제법 잘하는 사람들의 단계인데, 이들은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만약 누가 물어오면 "잘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제4단계는 골프실력이 대단한 사람들의 단계인데, 이들의 특징은 누가 물어오면 "나 같은 사람에게서 배우지 말고, 비디오를 보거나 일류 프로에게서 제대로 배우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4단계까지는 아마추어, 그 다음은 프로의 단계라는 것이다(송병락, 이야기 경제학(26) - 프로와 아마의 차이, 동아일보, 2001.11.26. 33면). 즉, 프로란 도리불언(桃李不言)의 단계인 것이다. 도리불언은 복숭아 나무나 오얏 나무는 말을 하지 않는다란 뜻으로, 이들 나무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있어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 듯이, 정말로 실력 있는 사람은 굳이 자기를 내세우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많은 법이다. 천재는 1% 영감과 99% 노력의 결정체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종을 선택하여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땀과 눈물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관슬(貫蝨)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활을 쏘아) 이의 가슴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큰 화살로 어떻게 아주 조그만 벌레인 이를 꿰뚫을 수 있겠는가? 활솜씨가 귀신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옛날 비위(飛衛)라는 활쏘기 명수가 있었다. 하루는 기창(紀昌)이라는 사람이 활쏘는 기술을 배우려고 찾아왔다. 비위는 "우선 눈을 깜박이지 않는 것을 익힌 다음 다시 찾아오라"고 말하였다. 기창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일하는 베틀 밑에 바짝 눈을 대고,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발판을 보면서 눈을 깜박이지 않는 연습을 했다. 2년이 지나자 바늘로 눈을 찔러도 눈을 깜박이지 않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다시 비위를 찾아갔다. 그러나 비위는 이제는 "아주 작은 것도 크게 볼 수 있는 법을 익힌 다음 나를 찾아오라"고 말하였다. 기창은 가느다란 실로 작은 벌레 이를 묶어 창가에 매달고 매일 쳐다보았다. 열흘이 지나자 이가 커 보이기 시작하더니, 삼 년이 지나자 수레바퀴만큼 크게 보였고, 주위의 물건을 보니 마치 산처럼 크게 보였다. 이제 한 번 활을 쏘아보니, 과연 화살이 이의 가슴을 꿰뚫었다고 한다. |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은 프로의 모습이라 할만하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채득한 성공적인 지식노동자의 자기관리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① 목표와 비전을 가져라. 그것을 기준 삼아 미진했던 점에 대해서는 항상 다시 도전함으로써 성숙하라. ②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신이 보고 있다는 신념 하에 완벽을 기하라. ③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라. ④ 새로운 업무를 맡게되면 그에 부응하는 학습을 하고 학습을 평생 습관화하라. ⑤ 피드백을 활용하여 자신이 개선해야 할 점, 강점과 한계 등을 숙지하라. 목표와 업적간의 비교를 통하여 학습할 점까지도 파악하라. ⑥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자주 물어라. 또한, 그는 이러한 관리지침을 스스로 파악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한다. 자신을 생산적인 사람, 혁신을 추구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사람,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의 지속적인 자기 관리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실제로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김종호, 성공한 프로 직업인들의 비결, 조선일보, 2001.10.16. 18면).
성공한 프로 직업인의 비결
이름 |
내 용 |
성공비결 |
유난희 |
-쇼핑호스트(우리홈쇼핑) -하루 10억원 매출 기록 |
-상품의 장점을 한가지만 집중 소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구매욕구 자극 -독서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상품과 생산업체에 관한 지식을 철저히 습득 |
예영숙 |
-2년 연속 보험판매 여왕(삼성생명) -2000년 한 해 수입보험료 157억원 유치 |
-보유고객 1000명 확보, 월 1회 이상 만나거나 전화를 하여 친밀한 관계유지 -철저한 사후관리로 중도해약비율을 1%로 낮춤 |
정권수 |
-자동차 판매왕(현대자동차) -12년간 3000대 판매 |
-하루 평균 20명 자동차 구매상담 -고객의 차량 고장시 수리하는 동안 자신의 차를 고객에게 빌려줌 |
황성수 |
-자산관리 전문가(삼성증권) -올해 랩어카운트 상품 1000억원 수탁고 기록 |
-골프장과 고급아파트 집중 방문, 투자액 10억원 이상 VIP고객 100명 확보 -수익률 높은 타 금융기관 투자상품도 소개 |
박세리 |
-올해 미국 여자프로골프 시즌 5승 기록 -LPGA 상금랭킹 2위(153만3000달러) |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하루 800개의 샷 연습과 600번의 퍼팅 연습을 반복 |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들이 프로 직업인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배경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는 데 있다. 그 외에도 위대한 역사적 인물 속에서 그들의 철저한 프로의식을 느낄 수 있다. 크롬웰 정권의 대변인이었던 존 밀턴(1608∼1674)은 크롬웰이 죽은 후 왕정이 복고되자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극한상황하에서, 영문학상 유일한 세계적 서사시라고 일컬어지는 불후의 명작 [실락원(1667)]을 완성하게 된다. 남자로서 치욕적인 宮刑(궁형)을 당한 뒤 절망감에 자살을 결심했지만, 자살하게 되면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털 하나(九牛一毛)를 뽑아버린 정도의 하찮은 죽음에 불과한 것이라고 느껴, 각고의 노력 끝에 [사기(史記)]를 저작한 사마천(司馬遷). 음악가가 귀가 먹었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극복하고 위대한 합창교향곡을 탄생시킨 베토벤(1770∼1827). 시스티나 대성당 벽화를 1508년에 시작하여 12년만에 완성한 미켈란젤로(1475∼1564)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 12년 동안 나는 피로에 지쳐 식사도 제대로 못합니다"라고. 그런 그를 로망 롤랑은 "환희와 고통 두 가지를 다 사랑한 영혼이었다"고 하였다. 사랑과 혁명의 시인 신동엽(1930∼1969). 그는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마지막 연에서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고 통곡하고 있다. 진정한 프로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진정한 프로는 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며(물론, 현대에는 어느 분야이든 그 분야의 대가들에게는 부와 명성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그 대상이 무엇이든 뜨거운 가슴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일생 동안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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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선배들의 치열한 삶을 되새겨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기에 진정한 프로란 은퇴가 없다. 은퇴라는 것 자체가 죄악이며, 그들은 평생 현역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프로 10명만 있다면, 우리 나라는 더욱 희망찬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지나칠까?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 할지라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낸 성과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에서 프로가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는 프로들이 그 무한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 주는 나라이었으면 한다. 이런 자기 일을 즐길 줄 아는 프로들이 많은 나라, 그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