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容秀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이별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이별하는 것 이별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이별하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이 슬픔에 자리를 내주고 이별이 슬픔에 자리를 내줄 때 이별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처음보다 더 숭고한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려니 꿈을 꾸었다 어제도 그제도 푸른 봄밤에 푸름 꿈을… 제기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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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리산으로 남해로 봄바람을 쐬고 돌아오늘 길에서였다. 일행 중 한 오십대가 너스레를 떨었다. 남자들에게도 사추기(思秋期)가 있나 봐요.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요즘에 돌연 허무해져서 죽고 싶도록 자신이 미워집니다. 선생은 안 그러시죠? 나는 대답 대신 씁쓰레 미소짓고 말았지만 바로 내가 곧잘 해온 말이었다. 어쩜 그리도 내속을 들여다봄일까, 제기랄! 물론이다. 사추기란 게 있지. 삼사십대까지 야망으로 일에 미치다가 오십을 앞두고, 또는 그 고개턱을 넘으면서 어늘 날 불현 듯 볼품없는 자신의 삶을 발견하곤 한숨짓는 경우가 그렇다. 차마 상상도 못해 본 자신의 초라한 몰골, 그동안 이룩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부끄러움에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털어놓는 허탈감이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남의 일은 아주 사소한 것도 크고 좋고 자기 것은 늘 가치 없이 여겨진다고. 내 딴은 피땀으로 살아왔음에도 이룩된 거라곤 남보다 작고 하찮게 보여지는 말이다. 그래서는 에라하고 직장을 롬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직업을 바꾸거나 아예 포기해 버린다. 나 역시 사십대에 직장을 두세 차례 옮기면서 변화를 꿈꿨지만, 그럼에도 번번이 못마땅한 세월을 이끌고 오늘에 이르지 않았는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가 인생의 중년기를 일과 사랑의 시기라 했음을 새삼 실감하는 대목이다. 제기랄! 전생(全生)을 어찌 찬란하게만 살 것인가? 나이 오십에 이삼십대의 열정과 야망을 그대로 바란다면, 또한 십대의 무지개빛 환상에 마냥 사롭잡히고 산다면 유치한 어른의 꼴이다. 인생은 때로 꿈을 깨부수어야 한다. 무모한 열정도, 턱없는 야망도 때론 꺾을 줄 알아야 한다. 현실에 맞춰가면 자신이 이룩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보석(寶石)은 비록 작아도 값진 것이듯, 무엇이 내 인생에 값지고 소중한가를 깨닫는 것이 곧 나이값일 테니까. 사랑도 매한가지다. 사랑의 양적(量的) 부족이 아니라 질적(質的) 부족에서 늘 문제가 야기된다.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사랑하는 슬픔, 이별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이별하는 슬픔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를테면 잘살던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 문제를 서로가 상대의 탓으로만 여기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곁에 있으면 짜증스럽다가도 막상 멀리 떠나고 나서야 그리워지는 변덕이 사람들 마음이 아니더냐. 가정이든 직장이든 울타리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소유하고 싶으면서도 때론 이탈하고 싶어지는 마음, 또 해방되고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를테면 사추기의 어리석은 착각이 아닐는지? 간밤 꿈에 헛것을 봤다. 푸른 봄밤에 푸름 꿈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제기랄! 시인은 나그네라더니, 이 봄에 저멀리 보이지 않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나서야겠구나. 참사랑을 찾아서 어디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