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容秀
누군가를 사랑해 보라 처음부터 그 사람이 좋아지는지 내가 다가서는 만큼 멀리 달아나는지 아니면, 그 사람에게서 내가 멀어져 보라 내가 멀어지는 만큼 그가 다가오는지 그림자와 게임을 해보라 그림자를 향해 다가갈수록 멀리 달아나지만 내가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날 쫓아오지 않더냐 그래서, 너와 난 나와 넌 하루에 한번씩 승부 없는 게임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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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그게 초목이든 사람이든 세상에서 무엇보다 강하고 질기고 참을성이 여간 아니니 말이다. 봄비 촉촉이 젖어든 땅속에서 떡잎으로 솟아나는 씨앗의 생명이 그렇고, 길섶에서 여린 풀포기가 발길에 짓밟히고도 기어이 다시 일어나 제 모습을 찾지 않느냐. 우리 인생도 그렇다. 고고지성(呱呱之聲)으로 세상에 나와 온갖 고난과 세련을 겪으면서도 쉬 죽어지지 않는 것이다. 철부지로 자라서 로맨틱한 시절을 거치고, 야망의 삶으로 이어지다가 열매를 거둬들이는 서늘바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아무렴 인생의 나무가 땀의 열매를 거두기까지 온갖 고초를 수없이 겪지만 그때마다 참을성이 얼마나 강하던가. 분명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소년기를 신록(新綠)의 봄철로 보자면 야망에 찬 여름의 청년기, 수확의 가을 장년기, 그리고 겨울의 노년기를 사는게 우리들의 생애일 테니까. 떡잎이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우리 생애의 어느 한 과정도 단숨에 생략하거나 건너뛸 수 없다. 어디 봄철에 열매가 빨갛게 익던가? 청년(靑年)의 야망이 아무리 크고 성급해도 어디 그게 따먹을 수 있는 열매가 되는가? 그 야망이 큰 만큼 피땀 흘리는 노력과 고초도 뒤따르기 마련, 열매는 그 다음에 장년(壯年)에 맛을 보지 않는가? 20대 나이에 성공한 자식을 둘 수 없듯이, 아무리 하찮은 일에도 또 아무리 작은 성취에도 거쳐야 할 긴긴 세월 동안 겪어내는 고초와 피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게 별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을. 그렇담 우리가 지난 세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정답은 모름지기 초록인생 일 뿐이다. 봄비와 여름 뙤약볕을 잘 참고 견뎌낸 열매, 가을 서리맞으며 여문 열매, 그리고 겨울의 설한(雪寒)을 이겨내고 이듬해에 새싹을 틔우는 열매다운 열매를 따기 위해 늘 초록빛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새삼 내가 살아온 짧지 않은 내 나이가 어설프게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이가 어설프게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긴긴 세월을 과연 초록빛으로 살아왔는가? 그랬다면 또 내 생활의 몫을 제대로 해내었는가? 아니다, 그러질 못했다. 초록빛으로 살지도, 또 내몫을 다하지도 못하며 살아왔다. 사랑 또한 그랬다. 마치 그림자와 게임이라도 하듯 살아온 것이다. 내가 붙잡으려고 하면 자꾸만 달아나고, 멀어지려고 하면 바짝 좇아와 닦달했다. 승부 없는 게임 속에 내 사랑이 늘상 흔들렸다. 발길에 짓밟히고도 일어나 꿋꿋하게 제 모습을 찾는 길섶의 풀포기만도 못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오호라, 낭패여라. 법당을 찾아 참회라도 해야 할까? 여차하면 어디론가 떠나고픈 헛꿈에 목말라하며 지내왔지. 어느 때는 수행한답시고 절에 들었으나 산자락의 잡초만큼도 불자 시늉을 못했지. 산속의 잡초나 길섶의 풀포기는 땅바닥에서도 꽃피우고, 씨앗을 익히며 목숨을 소중히 하거늘 하물며 내가 그만도 못하게 살아왔다면 남들이 웃을일이겠지. 아무렴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에도 엎어진 몸을 일으키는 의지가 있고, 삶이 있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풀포기에도 끈질길 삶의 모습이 있고, 제 몫을 다하는 위대함이 있다. 그렇다. 오늘의 생활에 보다 충실하자. 그게 초록빛으로 사는 인생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