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석 인 6월4일 낮 12시 마닐라 아키노 국제공항에 도착해 창밖을 보니 하늘엔 구름이 군데군데 보이고 날씨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워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고요하고 청마의 시에서처럼 어디서 닭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 사방이 한여름의 오수에 졸고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느낌은 환상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공항램프를 나서자마자 후끈한 여름기온이 온몸을 감싼다. 마중나온 아시아개발은행의 신명호 부총재와 윤증현 이사 말씀에 의하면 제일 더운 계절인 사오월보다 좀 낫다는데도, 우리 한여름 날씨보다 더하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의 도시 모습은 세계은행근무시 마닐라 상수도 사업을 담당하면서 드나들던 20년 전의 모습에 비해 달라진게 없다. 물론 6년전인 96년도 방문시에도 느꼈지만 도대체 나아지는 구석이 없다. 윤이사 말씀에 따르면 남태평양 지역 조그마한 섬나라들도 뭔가 나아지는게 있는데, 오직 이나라만 발전이 없다. 경제성장이 더디니, 재정이 불건전 하고, 이러다 보니 도로, 주택, 상하수도, 전력등 각종 인프라에 투자할 돈이 없다. 교통체증은 날로 심각해지고, 환경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다보니,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디젤 자동차의 매연 등으로 인해, 공해 문제는 심각하다. 마닐라 중심인 마카티 지역만 벋어나면, 판자촌이 현대식 아파트와 같이 있으며, 하천은 복개되지 않은채 정화되지 않은 회색 빛깔의 오수가 그대로 흐른다. 도로의 아스팔트는 공사이후 한번도 손을 못 봤는지, 군데군데 움푹 파인 곳이 성한데보다 더 많다. 시내 중심가 부촌인 만다린 지역의 이나라 최고의 왁왁(Wack Wack)골프장 주변을 흐르는 하천도 완전 시궁창이다. 장마철 걸래 냄새인 시큼 털털한 냄새가 몹시 향기롭지 못했다. 재정이 없으니 오수를 정화할 엄두를 못낸다.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하다보니 마카티 고급 주택가에는 집집마다 자가 발전기를 갖추고 있다. 정전시 비상 전력을 공급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지 신문을 보니 라모스 전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아로요 대통령이 현재의 전력난 해소를 위해 특별명령권을 사용하여 전력난 해결 특별법을 제정 할 것을 건의했다. 전력난이란 전력부족과 비싼 전력 요금 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현재의 비싼 전력요금체계는 그가 대통령 시절 무분별하게 외국인 전력회사를 유치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하지 현지 교포신문에 광고를 낸 사우나, 헬스크럽 업체도 "대형 발전기 보유, 정전시에도 정상영업"이라는 광고를 낼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정확충은 그림의 떡이다. 개발도상국들이 그러하듯이, 공공요금 인상이 매우 어렵다. 필리핀정부가 대중교통요금을 1페소 인상하고자 하는 안에 대해 이나라 최대규모의 노동자연맹측은 만약 정부가 대중교통요금을 인상할 경우 자신들은 10% 기본임금 인상을 계속 주장 할것이라 엄포를 놓고 있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고도 경제성장에 선진국형의 도시개발을 했고, 80년대초 까지만 해도 우리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던 이나라가 왜이리 발전이 뒤지게 되었는가? 60년대초 현재 문화관광부청사와 미국 대사관 건물도 필리핀 사람들이 지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두말 하것없이 이나라 정치가 잘못 됐기때문이다. 스페인에 의한 300여년 통치와 미국 식민지 50년을 통해 국민들이 국가관이 없어지고, 부의 균배가 전혀 이루어 지지않아 빈부의 격차가 아주 심하다. 이넓은 국토의 대부분을 몇몇의 영주들이 차지하고 있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해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민다나오등 회교권섬에서는 반군이 준동하고 있다. 1년에 삼모작을 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논농사를 제대로 짓지 않아, 쌀을 태국에서 수입해 먹고있다하니, 정말 우리가 보기엔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치가들은 영주와 결탁하여, 그들의 이권을 보장해주고, 독재로 장기 집권을 해왔다. 마르코스, 이멜라, 아키노, 라모스 등 역대 대통령들이 전부 영주집안 출신이다. 영주집안의 귀족출신 대통령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서민이자 삼류배우출신인 에스트라다를 대통령으로 뽑아 줬더니, 부정축재를 통한 치부와 축첩에다 한수 더떴다. 결국 대통령에도 쫓겨나고, 첩은 인도네시아로 피신시켰지만 부정축재한 재산은 환수도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어쩌면 권력자들이 부정축재 하는 것을 당연시 할정도로 이력이 났다. 부정이 얼마나 노골적이냐 하면, 현지 신문보도에 의하면, 현직 경찰서장이 부정한 경찰관을 고발한 여성 사업가에게 접근하여 일을 잘 처리해 주겠다며, 현금 일만 페소와 노키아 핸드폰 1개를 대가로 요구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특수수사대에 의해 체포되어 파면된 사실이 보도되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나라가 이렇게 썩었다 보니, 돈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외국은행에 돈을 예치해 놓고 있고, 생각이 깊은 지식인들은 대게 외국에서 거주한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모든 필리핀노들의 얼굴이 대단히 평안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카토릭을 신봉하고 있어, 종교적인 영향도 있지만, 오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제분수에 만족해 살며 결코 저항하지 않는다. 이나라 경제가 이러한 와중에서도 돌아가는 것은 무지렁이 들이 외국에 나가 열심히 일해서 번돈을 꼬박꼬박 보내기 때문이다. 가족의식이 강한 이나라 남녀 젊은 이들은 남자는 노동자로 여자는 가정부로 미국, 일본, 유럽, 한국, 홍콩 등 각처로 나가 열심히 일해 가족들에게 송금을 해준다. 어찌보면 필리핀은 모계사회라고 볼정도로 여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국민들 모두가 기후탓도 있지만, 낙천적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가 필리핀이다. 우리네 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고, 불행해 보이지만 자기들 기준에서 보면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다. 정말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가 보다. 마닐라 중심가만 벗어나면 공기가 좋다. 날씨가 덥다지만 구름속에 태양이 들어가면 시원하고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하다. 또 땅이 더워지면 하루에 한두번 소나기가 내려준다. 모두가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보니,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주고 숲에만 들어가면 망고나 바나나가 지천에 널려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는 이나라 지도자들은 개인의 권세와 치부달성에 여염이 없이 피곤하게살지만, 길도 없고,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는곳에 원두막처럼 판자로 집을 짓고 살고있는 무지렁이들은 마음만은 행복하다. 나라의 발전이 더디든, 부정부패가 만연하든 내일이 아닌것처럼, 국민들은 체념속에 하느님만을 믿으며, 그저 그렇게 살고있는 것이 마닐라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