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容秀 여기 우거진 숲이 없었더라면 땅과 하늘이 얼마나 심심했을거나, 여기 싱싱한 바람이 없었더라면 별들은 또한 얼마나 외로웠을거나, 그래그래, 요컨대 너희들의 소슬하지만 찬란한 몸부림이 그런 대화합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아름다워졌으니 그래, 이제는 의를 서둘 일이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하나의 세계를 지니고 산다. 그런데 그 세계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것은 일상(日常)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뤄진다. 나는 이 8월에 한 은사를 새삼 생각한다. 은사란 곧 은혜로운 스승이라는 뜻인데, 내게는 목월(木月)선생이 바로 그 은사다. 나의 시세계(詩世界)에 울타리를 치는 데 적잖이 영향을 미쳤고, 또한 20여년전 8월에 타계했기에 그렇다. 은사와 제자, 그 유대는 서로가 이해의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수십 수천명씩 거느리는 선생과 학생 사이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 은사와 제자 사이는 서로 간에 영적(靈的)인 메아리가 울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한낱 겉치레에 그칠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시인이 되기 전이나 그 이후 줄곧 은사의 은혜 속에 시세계가 형성되면서 살고 있다. 특히 세속적인 인습과 가치를 극복하도록 채근한 가르침은 내영혼을 늘 깨어 있게끔 고무시켰다. 그것은 곧 시인의 길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을 젊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나는 배고팠을 때 밥을 찾듯이 당시 열아홉 살에 지성스럽고 절실하게 스승을 찾았었다. 그러곤 은사(木月 선생)를 만났다. 내 처지에서는 무엇보다도 그분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었고, 그분의 인격은 그 후 오늘에 까지 나의 시세계에 메아리되어 울리고 있다. 은사니 제자니 하는 분별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제자의 입장에서만 존재한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세계를 갖도록 깨우쳐 주었으니 목월선생이야말로 내게 큰 스승이요 은사다. 나는 혼자서 하늘을 곧잘 우러른다. 특히 8월의 푸른 하늘에 떠 가는 흰구름에는 혼을 빼앗긴다. 은사를 만나 은사를 우러르는 것이다. 젊어서 좀처럼 없던 일이다. 굳이 밝히자면 1978년 8월 26일, 그날 이후 어느 날부턴가 생겨난 버릇이다. 서울 을지로 복판의 택시 안에서 은사의 부음(訃音)을 듣고서 달려갔지만 끝내 운명을 지켜보지 못한 한(恨)을 가슴에 안아야 했으니까. 그날 올려다본 구름빛이 어찌나 희던지! 옛말에 靑出於藍而靑於藍이라 했다. "쪽에서 나온 푸름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유능한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하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스러운 일이랴. 흔히들 스승에게서 배울 만큼 배우면 그 스승을 떠난다고 한다. 옛 성현들이 그랬다. 언제까지나 스승에 기대어 산다면 그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창적 세계를 이룩할 때만이 그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게 되지 않을까. 작년에 나는 대룡사에서 백일기도의 시간을 가졌었다. 몸이 대체로 약한 편이어서 요양을 겸한 일이었는데, 그때 귀넘어들은 말이 문득 생각난다. 상좌 하나에 지옥이 하나라는 승가에 전해져 오는 말이었다. 글을 가르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람을 깨우치는 일은 말이나 글로 다 될 수 없음을 일컬음이다. 스승이 되는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최근 문하(門下)에 몇을 두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다. 세상일에 쉽게 이루어진 것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내 문하생들이 자기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꽃피우도록 온 정성을 다해 거들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은 터이니 지난 날 내 은사의 헤아림을 얼마나 따라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8월 하늘의 구름빛은 예나 지금이나 마냥 희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