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인/한국신용정보(주)대표이사 장가계(張家界) 가는길은 멀고도 지루했다. 원래 저녁 7시15분에 심천을 출발하여 1시간 25분 후인 8시 40분에 장가계에 도착 예정이었던 중국 남방항공 3939편은 심천에서부터 아무 설명없이 한시간이나 출발을 하지 않더니 밤 9시 반경에 목적지도 아닌 호남성 성도 장사에 기착하였다. 장사에 내리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마철인지라 폭우로 인한 번개 때문에 비행기가 장가계에 접근 할수 없다는 것이다. 공항 대기실로 나가니 서울에서 북경을 거쳐 미리온 한국 관광객들로 초만원이다. 동행한 여행사가이드가 구내식당을 찾아 요기라도 할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안내방송을 들은 중국측 가이드가 비행기에 탑승 하라는 방송이라고 반가워하면서 나가자길래 따라 나섰더니 북경에서온 비행기 승객 탑승 안내방송을 잘못 들은것이었다. 다시 그 식당으로 가기도 계면쩍어 저녁을 쫄딱 굶고 기다리는데 누구하나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북경을 경유해온 한국 관광객들도 탑승을 한게 아니라, 시내호텔로 인솔한 방송이었다. 장대비는 계속내리고, 무료히 졸고 있는데 밤열두시나 되서야 오늘 비행기가 못 뜨니 장사에서 자고 내일 8시까지 오란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근 호텔에 가니, 방이 만원이라 항공사측에서 다시 시내에 있는 호텔을 수배하여 방에 드니 밤 1시반이 지났다. 눈을 붙이는둥 마는둥 이튿날 6시반에 새벽밥을 먹고 8시까지 공항에 나가니 우리일행 밖에 나와있지 않았다. 중국 승객들은 9시나 되서야 나타났다. 중국사람이 만만디 라더니, 비행기 시간까지 지키지 않아도 되는건지 도대체 말문이 막힌다. 우여곡절끝에 10시 반이 되서야 이륙했다. 그때까지 어제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서울팀은 출발도 못하고 있었다. 장가계는 열한시가 조금넘어 도착했다. 1시간 반거리를 15시간이 걸려 온 셈이다. 공항에 내리니 해발 1500m의 우뚝솟은 천문산(天問山)을 중심으로 뾰쭉뾰쭉하게 늘어선 산들의 위용이 예사롭지 않으며, 둥그레스름한 봉우리의 연속인 계림의 산세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공항을 빠져나와 무릉원인 장가계를 보기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부터 먹었다. 한국 요리를 한다는 큰규모의 식당인데 방마다 한국관광객들이 넘친다. 장가계 관광객의 90%가 한국 사람이라니 뭐가 잘못된게 아닌지.. 이들을 위해 조선족 가이드만 100여명이 일한다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해외관광안내 광고치고 장가계가 빠진 곳이 없다. 장가계는 연중온도가 16도 정도로 아열대 지역이다. 연중 비가 많이 내리고 산세가 높고 깊으며 경치가 아름다워 옛부터 무릉원이라 했다. 중국의 3대 명산으로 계림과 안휘성의 황산, 장가계를 꼽는데 어디가 더 아름다운가는 서열을 매기기 힘들다. 각 산별로 아름다운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1982년 국립공원을 지정하면서 1호로 장가계를 지정했다니 알만하다. 원래 이곳 지명은 한나라에 망한 용나라 유신이 피난와서 대용이라는 나라를 세웠다하여 대용이라고 부르다가 1994년 장가계로 개명했다. 장가계라는 지명의 어원은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공신인 한신과 장량을 죽이려하자 도망해온 장량이 이곳에 피신해 살았다하여 장가계(張家界)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 지방에는 토(土)씨가 주축을 이루고 사는데 매년 6월초가 되면 처녀, 총각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짝짓는 풍습이 있다. 이때 처녀들이 마음에드는 총각이 있으면 발꿈치를 밟아 의사표시를 한단다. 서로가 눈이 맞으면 택일을 하고, 열흘간은 처녀가 자기방에서 통곡을 해야한다. 그이유는 새가정의 행복을 빌고 부모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징표를 보이기 위함이라 하는데,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효녀로 칭찬한다니, 그런 풍속이 얼마나 오래갈지 궁금하다. 전국의 토가족이 300만명 정도라는데, 이곳에 70% 정도가 산다니 집성촌인것 만은 틀림없다. 이들의 살림은 산이 깊으니 밭뙤기가 적고, 살림은 윤택할리 없으나 언덕배기나 밭귀퉁이에 마당도 없는 집들을 지어 놓은게 이국적이어 보인다. 점심후 천자산(天子山)에 올라보는 장가계 관광에 나섰다. 인생부도 장가계 백세개능 칭노옹(人生不到 張家界 百歲豈能 稱老翁)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고서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장가계는 아름다운 곳이다. 장가계 무릉원의 가장높은 봉우리는 1334m이고 면적은 264평방키로미터이며 관광코스는 장가계시의 국가 삼림공원, 츠리현의 삭계곡, 쌍츠현의 천자산 풍경구 등 세개의 풍경구로 나뉜다. 이들 모두 인접해 있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를 다 보려면 사오일은 족히 걸린단다. 장가계는 1992년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된 오염되지 않는 자연경관과 환경을 보전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보기드문 수려한 봉우리와 기암괴석, 입석, 동굴 등 관광자원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천자산은 케이블카로 올라간다. 전체길이가 2084미터에 상하 고도차가 692미터인 이 삭도는 오스트리아의 도플메이사가 시공하여 1997년 5월에 정식 개통되었다. 삭도를 타고 오르면서 장가계 계곡을 보면 엄청난 자연의 조화와 신비로운 바위들, 뾰쪽솟은 바위들의 기괴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게된다. 우리나라의 금강산 만불상과는 또다른,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내려다본 내설악 풍경과 금강산 만물상을 결합한 풍경이랄까 기기묘묘하게 우뚝솟은 산봉우리와 각양각색의 바위모습, 그 사이로 수백년 넘게 힘겹게 살아온 소나무들의 모습이 참으로 신비롭고 조화스럽다. 천자산은 산이 높아 여름철 안개가 자주낀다. 만얀 안개가 끼면 이 신비롭고 웅장한 경치를 보지 못하고 온다. 우리가 그곳을 찬은날도 안개가 끼었으나 조금 기다리니 안개가 개어져 운좋게 경관을 볼수 있었으나 그시간은 그리길지 못했다. 천자산 동,남,서 삼면은 바위산이 수풀처럼 하늘을 받들고 있고 그사이로 깊은 계곡들이 뻗어있어, 마치 천군만마가 포효하며 달려 오는 것 같으며 기이함과 수려함, 야성의 미가 합쳐진 풍경이 경이롭기 그지없다. 천자산에서 보는 봉우리중 백미는 어필봉이다, 흙이 없는 돌 봉우리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서 마치 붓을 꺼꾸로 꽂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해서 어필봉이라 이름을 붙혔다한다. 전망대 옆에 바위산 모습과 멋진 장군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이 있는데 이분이 중국 10대 원수중의 한사람인 하룡(賀龍)장군이다. 인민군 창시자의 한사람인 하룡장군(1896-1969)은 이곳이 고향인데 동상이 천자산 아래 경관을 등지고 서있는 것은 평생을 객지에서 살아온 그분의 경력때문이라 하며 그 옆에 머리를 주인에게 숙이고 서있는 말은 평생 장군이 타고 아끼던 말이기 때문에 같이 조각한 것이라 한다.하룡공원이란 표지판의 글씨는 강택민 주석의 친필이다. 천자산 관광을 시간에 쫓기면서하고 내려와 십리 화랑에 들렸다. 중국 십리(중국 십리는 5km)에 걸쳐 모노레일을 타고 협곡의 양쪽에 있는 기이한 봉우리와 각양각색의 형상을 띤 바위들을 구경하는 코스인데, 그중에서도 낙타바위, 손가락 바위, 약초를 메고오는 할아버지 모습의 바위, 부부와 아이 모습을 한 가족바위, 삼자매 바위들이 신기하였다. 천자산과 십리화랑을 뒤로하고 내려오다보면 인공호수가 있는데 이곳이 보봉호다. 이제 내년부터 물이 완전히 차면 배를 타고 천자산의 신비한 모습을 구경할수 있다니 배에서 보는 천자산 협곡의 모습이 또한 장관일 것 같다. 무릉시를 들어가기 전에 있는 백장협(百長峽)은 고대전쟁터다. 이곳 주민들이 적군과 백번싸워 백번이겼다는 백장협은 무릉원의 관문인 셈이다. 천자산협곡 관광을 마치고 장가계 시내로 돌아오니 빗방울이 굵어진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장가계 공항에서 바라보이는 천문산을 현재 개발 계획중이라는데 이곳에 삭도가 놓이면 천자산 관광은 빛을 잃고 더 웅장한 천문산으로 관광객이 몰릴것이란다. 천문산에는 폭이 36미터에 높이가 131미터나 되는 자연문이 있어 이곳으로 프로펠라기가 지나 다닐수 있다는데 공항에서도 멀리 바늘 귀모양으로 생긴 천문이 보인다. 장가계시에서 저녁을 먹고 공항에 나가자 광주행 7시반 비행기가 연발이란다. 언제 비행기가 들어와서 몇시에 출발하는지 도대체 누구하나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곳에서 무려 2시간 반이나 기다리다 다행히 비행기가 와서 떠날수 있었지만 장가계 관광은 계속 비행기 때문에 속을 썩혔다. 놀란것은 대만에서온 관광객과 중국승객들은 기다리는데도 만만디 인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게 몹시 신기하고, 한편 잠시도 쉬지않고 불평하는 우리 일행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