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東 云/혜천대학 세무회계과 교수(E-mail : dwjung@hc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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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낭만적인 1892년의 서부 아일랜드를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 당시의 유럽의 상황, 특히 엔클로저 운동과 산업혁명으로 산업화가 일찍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19세기 들어 이미 봉건제도(지주제)가 완전히 소멸하여 영주도 농노도 없어졌지만, 여전히 농민은 자유롭지도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시로 나가 쥐꼬리만한 임금으로 공장에서 일을 하든지, 아니면 농촌에 남아 지주의 통제아래 일을 하든지 해야만 했다. 지주의 목적은 가능한 소작료를 제때에 많이 받아내는 데 있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집을 불태우거나 강제로 쫓아내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학대에 저항하는 농민들은 죽음도 감수해야만 했던 형편이었다. 한마디로 소작농을 착취하는 지주계급에 대한 농민들이 불만이 극에 달했던 상황이었다. |
한편 이 시기는 미국의 경우,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미국)의 개척기로, 뉴프론티어의 땅, 신천지 미국은 산업자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곳곳에 산업의 동맥이라 부를 수 있는 철도가 놓여지고, 유럽에서의 대량이민으로 인한 계층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다수 소작농 이주자들의 산업노동자로의 전환이 급속한 속도로 전개되고 있었던 시기다. 소작농에 불과한 조셉(톰 크루즈)의 아버지는 평생 소같이 일했지만, 지주의 과중한 소작료와 부당한 횡포로 인하여 자기 땅을 소유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하에서, 지주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남자가 땅이 없으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거야. 땅은 남자의 영혼이지. 땅을 갖겠다니 넌 기적을 원하는 거다. 하지만 네가 그 꿈을 이룬다면 이 아비는 하늘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을 게다." 아버지의 유언이다. 땅을 가지지 못해 한 평생을 소작농으로 보내며 온갖 수모를 겪으며 어려운 생활을 한 아버지의 피맺힌 한(恨)을 아들 조셉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땅을 소유하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평생을 열심히 일했지만, 소작농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지주에게 대항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 장례를 치르러 가는 도중 소작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지주 크리스티의 밑에서 일하는 스티븐(토마스 깁슨)에 의해 집이 불태워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셉은 자신의 아버지가 지주에 의해 죽었으므로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지주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고, 자신도 땅을 가져야겠다고 결심을 굳게 다진다. 대지주 크리스티를 죽이기 위해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그는 크리스티를 만나게 되어 그의 뒤를 쫓아가지만 그를 암살하는 데 실패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결국 그의 집에 잠입하여 마구간에서 숨어있던 중 승마를 마치고 돌아온 지주의 외동딸 쉐넌(니콜 키드만)과 마주치게 된다. 농사만 짓고 살던 젊은 청년이 살인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워낙 낡은 총을 가지고 간 그는 오히려 쉐넌에게 쇠스랑으로 찔리고, 총알이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고, 총이 자신의 눈앞에서 폭발함으로써 부상을 입고 만다. 그들의 첫 만남은 이랬다. 크리스티의 암살에는 실패하지만 조셉은 봉건적 관습을 거부하는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현대 여성 쉐넌을 숙명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미국에 갈 생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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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은 그 집 2층에 감금(?)당한 채 치료받게 되는데, 부상에서 회복되면 교수대의 고통을 치르게 할 생각이다. 그녀의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있던 중 아래층에서 소리가 나자, 그곳에 내려갔다가 그의 집에 불을 질렀던 스티븐을 발견하고는 싸움을 벌임으로써, 자존심을 상한 스티븐으로부터 결투를 제의 받게 된다. 그날 밤 항상 자유를 꿈꾸던 쉐넌은, 조셉에게 미국 거주자에게 160에이커의 땅을 준다는 광고 전단을 보여주며, 자유의 땅인 미국(신천지, Far and Away)으로 함께 가기를 제안한다. |
다음날 결투를 하던 중 위기에 처한 조셉을 쉐넌이 구해주자 결국 둘은 미국으로 도망가게 된다. 땅을 얻고자 하는 조셉과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하는데 여자 혼자로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남자 하인이 필요했던 쉐넌은, 각기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함께 떠난 것이다. 당시 미국에는 인디언으로부터 빼앗은 광활한 대지를 개간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유럽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주하게 되었는데, 미국 정부나 이민 오는 사람들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의 씨앗이 된다. 그들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1892년 9월 보스턴에 도착한다. 그러나 사기를 당하여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털린 채, 오누이로 행세하여 같은 방에 기거하며, 닭털 뽑는 공장에 일용 노동자로 취직하게 된다. 사실 이들이 도착한 보스톤은 미국자본주의의 거대한 인력시장이었다. 구역마다 구역장이 있었고, 이들이 인력조달의 일차적 책임자였다. 맨몸으로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온 노동자들의 생존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창녀와 거친 노동자들이 우글거리는 보스톤 항구에 숙식이 정해지고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한편, 아일랜드에서는 소작농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들에 의해 크리스티의 저택이 불태워진다.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낀 크리스티 가족은 쉐넌도 찾을 겸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평소에 쉐넌을 좋아했던 스티븐도 같이 합류한다. 지주의 딸로 태어난 쉐넌이 공장의 하찮은 일에 적응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일을 못 한다고 핀잔을 주는 작업반장에게 욕을 하여 일당을 못 받기도 하고, 손에 물을 묻혀 본적이 없으니 빨래도 못하는 둥 어려움의 연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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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조셉은 오클라호마로 하루 빨리 가서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내기 권투시합을 벌인다. 내기 권투에서 승승장구하여 그 덕에 돈을 좀 모은다. 쥐꼬리만한 임금에 허덕이던 쉐넌은 내기 권투가 벌어지는 클럽에서 춤추며 돈을 벌고자 한다. 그곳에서 많은 돈을 걸고 권투시합이 벌어지게 되는데, 조셉은 쉐넌에게 추근거리는 시의원에게 신경을 쓰다가 시합에서 지게된다. 그러자 그는 그곳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버려진 후,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마침 그 근처에 쉐넌을 찾으러 온 스티븐을 목격하게 되자, 쫓기듯 도망친다. 아픈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오니, 먼저 그의 집에 와 있던 그에게 많은 돈을 걸었던 시의원과 구역장이 그의 돈을 모두 빼앗고, 빈털털이가 된 조셉과 쉐넌은 추운 겨울날 집에서 쫓겨난다. 먹지도 못하고 헤매던 두 사람은 우연히 빈집을 발견하여 그 곳에 들어가, 그 둘은 부부로서 만찬을 즐기는 즐거운 상상을 하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어 쉐넌이 그만 총상을 입게 된다. 그들의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쉐넌의 부상으로 그들은 헤어져야만 했다. 어쩔 수 없게 된 조셉은 딸을 찾으러 보스톤으로 건너온 쉐넌의 부모에게 그녀를 맡기고 자신은 일거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8개월 후 조셉은 철도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쉐넌을 그리워한다. 마침 공유지로 남아 있던 땅을 나누어준다는 오클라호마로 떠나는 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자신도 그곳으로 향한다. 마침내 조셉과 쉐넌은 오클라호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땅을 얻기 위해 몰려들었다. 사실 광활한 땅을 주정부가 개인에게 무상으로 불하해준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 영화에서와 같이, 광활한 토지에 미리 세워 놓은 깃발을 뽑고 대신 자신의 깃발을 꽂으면 바로 자신의 땅이 되는 식이었다. 실제로 오클라호마의 유명한 땅따먹기 달리기(land race)는 미국의 법률에 의해 인정된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늑대와 함께 춤을(Dance With Wolves, 1990)> 이후 많은 영화들의 소재로도 쓰였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일정넓이의 원하는 땅을 소유하게 되는 이 경주는, 미국정부가 서부개척을 유도하기 위해서 제정한 법률로서, 이 영화에서는 1893년 9월 16일에 있었던 경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불하방법을 통해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하여 수확을 거두는 것은 개인이나 정부에게 모두 좋은 일이었다. 이를 통해 개인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고, 정부는 세금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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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 영화의 압권인 말 경주 장면이 나온다. 200여대의 마차, 400필의 말, 이틀간 1,0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웅장한 장면인데, 그 장엄한 장면 중 뒷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스쳐가고, 그 뒤엔 야생마를 몰며 깃발을 들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조셉의 멋진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 원래 인디안 원주민들의 소유였던 광대한 땅을 총칼로 빼앗아 자기들 멋대로 깃발하나만 들고 자기 것이라고 고함 한번 지르고 깃발을 꽂으면 자기 땅이 된다니 엄청난 약탈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
즉, 아메리카의 근대 역사는 원주민(인디언은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고 붙인 잘못된 이름이다.) 학살의 역사이다. 15세기말, 백인이 첫 발을 딛고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사이에 백만여 원주민 가운데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이 탄생된 뒤에도 살육은 그치지 않아 1890년에는 25만 여 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20세기초에 시행된 이른바 문명화정책은 저들의 문화를 뿌리 채 뽑아놓고 말았다(金光彦, 白人우월 西部劇전형 탈피 - <늑대와 춤을> 北美원주민 풍습·생활상 흥미, 조선일보, 1991. 4.26.).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레이스를 벌리고 조셉은 우여곡절 끝에 땅을 차지한다. 그리고 쉐넌과의 사랑도 이루게 된다. 본고는 이 영화 속의 소작농의 평생의 소원이었던 토지의 뜻과 이의 경제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늘과 땅이 있고 인간이 생긴 것이니 하늘과 땅은 생(生)의 근본이 되고, 조상이 있고 자손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니 조상은 우리들의 근본이 된다. 임금이나 스승이 있어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이니 임금과 스승은 치(治)의 근본이 된다. 하늘과 땅을 섬기고 조상·군사를 받드는 것의 세 가지는 예(禮)의 근본이다." 순자가 한 말이다. 영화 속의 소작농의 유언과도 같이, 땅은 우리 삶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 제주도 무속신화에서는 하늘과 땅이 하나이었는데, 상하로 갈라지면서 하늘은 신령들의 영역이 되고, 땅은 사람과 짐승들의 영역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은 신과 인간, 거룩함과 세속, 천국과 세상 등으로 양분적 대립을 빚고, 땅은 자체의 상징성을 갖추게 되었다. 제주도의 고(高), 부(夫), 양(梁)이 태어난 삼성혈(三姓穴) 신화는 땅이 곧 인간 탄생의 모태임을 말해준다(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한국문화 상징사전], 땅, 동아출판사, 1992., p.244.). 마찬가지로 성경 창세기에서도 태초에 신이 흙으로 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빚어 영을 불어넣음으로써, 최초의 인류가 탄생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도 역시 땅은 생명의 터전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땅과 몸은 하나, 즉 신토불이(身土不二)인 것이다. 또한, 한국인에게 있어 물은 산과 함께 생활 환경의 양대 기둥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이 있듯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곳에 사람이 살고 마을이 형성된다. 이 경우, 둘 다 풍요로운 생산성 또는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를 대조해 보면, 산이 성스러운 종교적 성역으로 생각된 반면에, 물은 활성화된 경제적 생산력을 상징한다(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앞책, 물, p.285.). 따라서, 땅은 나라의 근본(지자국지본, 地者國之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예외는 아니다. 땅은 사람에게 먹을 것을 산출하게 해줌으로써, 기아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토지(土地, land)의 뜻과 경제사의 발전과정을 통하여 토지의 중요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고 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땅은 자유롭다. 땅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펄벅의 [대지(大地)]의 한 대목으로, 사람의 삶은 땅과 더불어 이루어짐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토지(土地)에서 토(土, 흙 토·땅 토·뿌리 토; soil)자는 초목의 싹이 땅위로 나올 때 싹에 흙이 묻어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라 한다. 흔히 土는 두 개의 부분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二와 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二는 지층(地層)을 뜻하며, 은 초목의 싹 또는 나무를 심는 모양을 가리킨다. 따라서, 땅에다 나무나 돌을 세워 신앙의 상징이나 경계의 표시를 나타낸 것이다(孔在錫, 하루한자(44) - 土, 조선일보, 1994. 4. 1. 15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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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地, 땅 지·곳 지·바탕 지; earth)자는 본래 지( )로 썼다. 이것은 산언덕(阜= )의 땅(土)을 파헤치는 멧돼지(彖, 단)를 본뜬 것을 통하여, 땅(land)이란 뜻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후에 는 土에 흡수되어 생략됐고, 彖은 사( , 뱀 사·다를 타)로 바뀌었다가 다시 야(也, 어조사 야)로 변화됐으니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셈이다(전광진, 생활한자(973) - 地殼, 조선일보, 2002. 8.16. 39면). 또한, 이 글자는 흙(土)이 모여 뱀처럼 꾸불꾸불한(也) 모양을 이룬 것이 땅이란 뜻으로도 풀이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토지는 만물을 생기게 한다고 하였고, 장자에서는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다"라고 하였다. 또, 토(土)자는 여근(女根)의 상형문자라는 설도 있다. 이로 보아 중국에서 땅(대지, 大地)은 원초적인 여성의 생산력, 그리고 그와 맺어진 여성성 등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앞책, 땅, p.245.). 따라서, 토지는 생산력 즉 생명의 터전으로서의 땅이란 의미와 자신의 영역이나 소유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경제학상 토지의 의미는 땅(토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공기·토지 등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물질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회계학상 토지계정은 기업이 영업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토지, 즉 점포, 영업소, 사무소, 창고, 공장 등의 대지 등의 증감변동사항을 처리하는 계정이다. 따라서, 투자목적으로 소유하는 토지(투자부동산)나 부동산매매업의 매매용 토지(상품) 등은 유형자산으로서의 토지계정의 회계처리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와 같이 토지라는 용어는 사용되는 상황이나 관계 또는 관점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진다. 즉, 부동산 개발업자에게는 토지가 자본이지만, 도시계획가에게 토지는 계획대상이 되는 공간으로 본다. 이처럼 토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지므로, 다양한 토지의 개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http://www.kuri365.com/life/life01_02_19. html.). ① 공간으로서의 토지 공간으로서의 토지는 지표라는 단순한 2차원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중과 공중을 포함한 3차원적 공간을 의미한다. ② 자연으로서의 토지 토지는 일광, 강수량, 바람, 그리고 토양 등 여러 가지 자연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자연물이다. ③ 생산요소로서의 토지 토지는 자본·노동과 더불어 3대 생산요소의 하나이다. ④ 소비재로서의 토지 토지는 공원 놀이터와 같은 위락용 토지와 아파트 같은 주거토지로서 최종 소비재의 역할을 한다. ⑤ 위치로서의 토지 토지는 위치에 따라 그 가치나 토지이용의 상태가 달라진다. 위치로서의 토지는 오늘날 토지에 부과되는 여러 가지 중요성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⑥ 재산으로서의 토지 토지는 개인이나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재산 중의 하나이다. ⑦ 자본으로서의 토지 토지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본이 아닐지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자본에 속한다. 즉,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토지는 다른 자본재와 같이 임대하거나 구입해야만 하는 재화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한 이래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인류의 발전과정을 체계적·계통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형태의 시대구분이 있을 수 있다. 그 중 경제사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다"(E. H. Carr)라는 말과 같이, 과거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관련에서 인식될 때 의미가 있다(金宗炫, [經濟史], 經文社, 1997, p.3.).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경제사는 과거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 중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그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히튼(H. Heaton)의 정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경제사를 인간의 물질적 욕구의 충족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노력은 자연적·기술적·사회적 환경에 의존한다고 지적하였다(金宗炫, 앞책], p.2.). 그러면 경제사적 측면에서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를 분류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 즉 인간의 물질적 욕구 충족수단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것은 바로 땅의 소유방식이었다. 땅은 유사이래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산수단이었다. 인류 탄생 초기의 얼마 되지 않는 수렵기간을 빼고,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땅을 갖고 있는 자가 인간을 지배했고 세상을 호령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지주는 어디서고 최고이었으며, 인류는 수천년 이상을 땅을 갖겠다는 소망 하나로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었다(이재광, 영화로 보는 세계노동사 ② - 아일랜드 소작농들 땅 찾아 미국으로 몰려든 <파 앤드 어웨이>, 중앙일보사, [이코노미스트], 제477호, 1999. 3.16. 참조.).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시조이기도 하지만, 그의 경제사적 분류는 그 의미가 크다. 그는 [경제학 비판]이란 책 서문에서 "인류의 경제학의 역사는 대범하게 말해서 원시적, 아시아적, 고대적인, 중세봉건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시민적 생산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라고 한 이래, 원시공동사회·고대사회·중세봉건사회·근대시민사회라는 일련의 구분은, 경제사적 시대 구분의 하나의 전형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에 따라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로 원시공산제, 씨족공동체라고도 부른다. 이 시대는 일반적으로 유사 이전의 선사시대(先史時代)에 인류가 형성했던 사회라고 정의(金舜坤·尹榮子, [經濟史], 韓國放送通信大學, 1990, p.35.)되는데, 생산과 분배가 씨족이나 부족 같은 혈연적인 공동체를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집단노동을 통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 시대로, 모든 재산을 공동소유함으로써, 사유재산제도가 인정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먹을 것을 찾아 유목생활(채취나 수렵생활)을 통한 자급자족경제가 이루어진 시기를 말한다. 따라서, 혈연 중심의 평등한 사회를 이루었다. 둘째, 고대사회(古代社會)이다. 상형문자 혹은 금석문·파피루스 등과 같은 문자의 기록에 의해 사회구성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시기로부터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후에 다수의 부족국가가 구로마제국영토 내외에 성립하는 기원 5, 6세기경까지를 일괄하여 고대사회라 한다(金舜坤·尹榮子, 앞책, p.43.).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원시공동사회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는 공동체적 혈연관계가 약해졌다는 사실 외에 농경 및 정착단계가 성숙되어 가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런 도구의 사용으로 생산력의 급격한 증가가 이루어짐으로써, 사회에 잉여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자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앉아서 먹는 좌식자층(坐食者層)이 발생하게 된다. 이들은 생산수단을 독점(사유화, 私有化)하고 타인의 노동력을 수탈(收奪)함으로써 특권적 지배층으로 성장하였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무엇을 빌릴 때 쓰는 차(借, 빌 차·빚 차·도울 차; borrow)자는 사람 인( )에 오랠 석(昔)을 짝지운 글자로, 백성이 나라의 땅을 오래 빌어 경작한다는 뜻이다. 이 글자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분화는 기준은 바로 땅인 것이다. 이 시대의 특성을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촌락(村落) 중심의 공동체(共同體)가 형성되었다. ②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즉, 정착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곡물생산은 노예, 소유는 시민(市民, 귀족(貴族)을 의미함.)이라는 계급이 발생(노예제)하게 된다. 이는 사유재산제도가 발생했다는 증거이다. ③ 유치한 농업생산이 이루어졌다. ④ 지배계급의 일방적인 이익추구가 이루어졌다. 노예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로마시대를 고전고대사회(classical ancient society)라 하는데, 그 시대 말기에 대토지소유제도(라티푼다움)가 발생하였는데, 이는 노예들의 노동에 기반을 한 대규모 농장을 의미한다. 이런 대규모 농사를 통하여 농업생산력이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노예제도에 의한 대규모경영은 비생산적이었고, 노예공급도 차차 감소하면서, 노예제보다는 자유소작제로 변화하게 됨으로써, 중세봉건사회의 개화를 이루게 된다. 셋째, 중세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이다. 이 시대는 공동체적 혈연관계가 붕괴된 시기로, 그 대표적 특징으로 전기(前期)의 장원(莊園, manor)제도와 후기(後期)의 도시경제시대(都市經濟時代)를 들 수 있다. 전기는 5세기부터 12, 13세기 상업의 부활의 여세로 도시경제가 발생하기까지를 말하고, 후기로 이로부터 15, 16세기 내지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대혁명(1789∼1793)이 발발하는 18세기까지로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金舜坤·尹榮子, 앞책, p.91.). 첫째 장원제도란, 농장을 통하여 대규모 생산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데,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노(農奴, serf; 농민이 아닌 농민노예를 의미함.)와 그들을 관리하는 봉건제후(封建諸侯)가 존속하였다. 봉건제후로는 영주(領主, lord)와 기사(騎士, knight) 그리고 승려(僧侶, monk)를 들 수 있다. 이 시대의 땅 소유방식은 봉건영주제(농노제)이었다. 이 봉건영주제는 일정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왕이 충성을 맹세한 영주들에게 땅을 주고 그들을 관리했던 체제로, 농민들은 모두 영주의 소유물이었다. 이주, 직업, 농경방법 모두 영주에 의해 결정되었다. 심지어 영지 내 신부의 초야(初夜)를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기도 하였다(이재광, 앞글). 그러나 이 시대에는 농노들에게 약간의 인격적인 대우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고대사회의 노예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14∼5세기 무렵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농노가 줄어들고 소작농(小作農)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지주제(地主制의 성립). 영주들은 이들에게 경작과 이주의 자유를 주고 대신 세금을 부과하였다. 그 이유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환금농작물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주었고,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농노의 필요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농노를 줄이면 관리비용도 줄어들게 되므로 소작농을 늘린 것이다. 능력 있는 농부 한 사람이 능력 없는 농부 다섯 사람을 능가했으니 돈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다(이재광, 앞글). 영화에서와 같이 소·농간의 마찰도 심했는데,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일제하의 소작쟁의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20년대의 소작쟁의를 원인별로 분석한 다음 표를 보면 첫째가 소작권 취소, 둘째가 소작료 감액요구, 셋째가 지조와 공과금의 지주부담요구임을 알 수 있다. 소작쟁의의 원인
쟁의원인 |
실수 |
구성 비(%) |
소작취소 또는 소작권 관계 |
2,315 |
51.0 |
소작료 대납 |
312 |
6.9 |
소작료 증징 |
211 |
4.6 |
소작료 고율 |
582 |
12.9 |
공조, 공과 및 비료대의 부담관계 |
129 |
2.8 |
소작료 결정관계 |
43 |
0.9 |
두세 . 장세 등 특종 부담관계 |
10 |
0.2 |
소작료 운반비관계. 무상노동 |
27 |
0.6 |
소작료 불통일 . 소작지 개간비 |
29 |
0.7 |
수지불상 및 생활곤란 |
27 |
0.6 |
소작료 품질관계 . 부정양정 |
47 |
1.4 |
기타 |
87 |
1.9 |
계 |
4.524 |
100.0 |
자료 : 조동걸, [일제하 한국농민운동사], 한길사, 1978.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같은 농민 줄이기 현상은 유럽 전지역으로 확산된다. 단순한 확산이 아니었다. 농사를 짓지 않고 양(洋)을 키우면 더 많은 이익이 남았기 때문에 아예 폭발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제 그나마 남아 있던 농민들조차 필요하지 않게 됐다. 이른바 목양(牧洋)엔클로저가 등장한 것이다. 양들은 살쪘고 대신 농민들은 굶주렸다. 16세기 이후 유럽 농촌의 현실은 비참했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정치인이자 문인이었던 토머스 모어는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까지 말했을까(이재광, 앞글).. 이런 배경 하에서 농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아갔을까? 이들은 도시로 갔다. 도시빈민층을 형성했거나 아니면 거지, 부랑자, 도둑이 돼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했다. 지금 말로 표현하면 유럽 전역에 실업자가 넘쳐 났던 것이다. 비로소 도시경제시대가 발아한 것이다. 즉, 농기구의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져 농업생산력의 엄청난 증가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대로 농민의 숫자가 축소되었고 자가생산·자가소비에서 잉여농산물이 발생함으로서,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수한 농산물의 매매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상업도시가 출현하게 됨으로써, 상업자본의 축적과 근대화 의식이 고취되었다. 또한, 가내수공업이 등장하게 됨으로써, 기술축적이 이루어지게 된다. 넷째, 근대시민사회이다. 이 시대에 들어 비로소 공장(工場, factory)제도가 성립되게 되어 신분적인 제약이 없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노임노동자(free wage earner)가 등장한다. 한편, 공장소유자(factory owner)라 할 수 있는 자본가(capitalist)도 등장하게 된다. 이 때 비로소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기업의 대규모화에 다라 개인에 의한 자본의 투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땅을 주제로 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경제사적인 측면에서 봉건영주제가 무너지고 지주제가 성행했던 그 시대에, 아일랜드인들의 미국 서부 이민사의 한 단면을 취하여, 지주들의 착취에 시달렸던 한 소작농의 인생행로를 통하여 자본주의 생성의 모태를 보여주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땅은 우리네 인생의 터전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땅을 소유함으로써 안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인류의 전쟁사는 바로 땅의 수탈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면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땅 한 조각도 지니고 갈 수 없다. "나의 육신은 땅에게, 나의 영혼은 하나님에게, 그리고 나의 모든 작품은 영원한 인류에게…." 이는 위대한 미술가 미켈란젤로가 남긴 유언이다. 우리가 가진 땅은 잠시 맡아서 이용했을 뿐 우리의 것은 없다. 잘 쓰고 후손에게 아름답게 넘겨주어야 유산인 것이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공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