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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土를 찾아서[12]- 오용수 아침에 깨어 보니 유리창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봄비를 걷어낸 햇살에 마음 상쾌할 듯싶은데 그렇지 못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하다. 요즘 며칠째나 계속되는 내 컨디션이다. 그래, 이 봄에는 이것저것 다 제쳐놓고 가슴 가득 사랑을 채우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소중한게 있을까? 사랑이란 어떤 계약이 아니요, 또 시한을 두고 하는 약속도 아니다. 사랑은 풀꽃 향기같은 그리움이요 기다림이다. 얼마만인가, 내게 ‘사랑’이란 말을 끄집어내는 것조차 새삼스럽다. 마치 신병(身病)의 재발처럼이나 촉촉히 젖은 눈빛에서 참으로 오랜만의 해후를 느낀다. 어느 한밤이 다 지새도록 사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만큼. 그렇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만은. 다만 한사람에게 통해져 있는 그 길을 걷고 또 걷고 싶다. 주저없이 누더기옷 훌훌 벗어던지고 그 가슴에 풀꽃향기로 가득채우고 싶다. 하여, 새벽같이 서둘러 집을 나섰다. 5월 2일, 마침 푸르른 달 첫 휴일을 맞아 여행 길에서 산행(山行) 길에서 합장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첫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大邱)로, 거기에서 대구 약령시 한방문화축제*를 둘러보고 문경새재*를 찾았다.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草.根.木.皮를 한약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廉神農氏를 기리는 축제로, 場 347周 행사가(5월 1일~5일) 대구광역시 남성로 약전골목에서 열렸다. *문경새재:백두대간의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이어져, 천험의 요새인 鳥嶺이 제 1관문에서 계곡을 따라 제3관문까지 이른다(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嶺南’지방이란 명칭도 이 조령의 남쪽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 엊그제 내린 비로 산골짜기에 물이 꽤 불어 있었다. 나뭇가지에 풀잎에 기운이 불쑥불쑥 솟는 듯했고, 산새들의 지저귐도 맑은 바람에 실려 한결 명랑하게 들렸다. 잠시도 멈춤이 없는 생명력의 날갯짓들이 신비롭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여간 가볍지 않았다. 마주치는 나뭇잎 풀임 하나하나에 내 자신을 비춰보면서 그것드링 한데 어우러져 숲을 이뤄낸 질서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우리 사회 질서도 이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나 풀잎은 무심한 것 같지만, 끈기와 의지로 싹을 틔우고 숲을 이룬다. 꽃을 피우고 꿈을 키워 내는 속삭임, 그들에게서 영(靈)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아무렴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 산에는 꽃이 있고, 들에는 꿈이 영근다. 그 바탕이 무엇인가, 그 생명력이 번탕인 즉 흙이다. 마른 씨앗이 흙 속에서 움트고, 잎이 우거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내가 살다가 삭아질 곳도 흙이다. 그 흙을 밟으면서 내 아침녘 찌뿌드드하던 기분은 싹 가시고, 문득 별이의 얼굴이 환하게 떠올려졌다. 그래, 그의 첫만남이 작년의 바로 오늘이었지. 두손이 절로 가슴에 모아졌다. 하늘과 구름, 흙과 바람, 나무와 풀꽃들, 그 틈에서 새삼스럽게도 나는 나 자신과 만나고 있었다. 맑디 맑은 자연의 품에서 그 크낙한 생명력의 신비를 캐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가끔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착각 상태에서 영원히 까어나고 싶지 않다. 사랑은 또 영원한 상실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주어 버렸을 때 더욱 넉넉해지는게 사랑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 사랑에 오래오래 눈멀고 싶고, 행여 돌팔매질 당하는 사랑일지언정 그 착각 속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나는 혼돈에 빠질 때가 가끔 있다. 정토(淨土)가 어디쯤일까 해서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 해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식이 과연 나다운 삶인가해서다. 요즘의 나를 정시(正視)해 보자면 사랑을 위해서 세상(世相) 보는 눈은 작게, 헛소리를 듣는 귀는 가늘게 속세에 대해서는 숨소리를 여리게 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꽃이나 새는 자기를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특성을 한껏 드러내고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산다. 비교는 항상 시샘을 낳기 마련이니까. 요즘 세상(世相)의 바뀜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그렇자면 그 틈바구니에서 내삶은 어떻게 바뀌어져야 할까? ‘자기의 삶을 살되, 그 삶에 휘둘리지는 말라’시던 선친의 살아생전 말씀이 새삼스럽다. 듣지 않아서 좋을 말은 듣지말고, 보지 않아서 좋을 것은 보지 말고, 읽지 않아서 좋을 책은 읽지 말고, 먹지 않아서 좋을 것은 먹지 말라고. 가려서 듣고, 갈려서 보고, 가려서 읽고 가려서 먹는게 참 삶의 지혜라고. 한마디로, 늘 내감정에 속지 않는 주인으로 세상을 살라는 일깨움이셨다. 溪淸白石出 天無紅葉稀 山路元無雨 空翠濕人衣 개울물 맑아 돌이 희게 보이고 하늘이 추워 붉은 잎 드무네 산길에는 봄디 비가 없는데 허공 푸른 빛깔이 옷깃을 적시네 문경새재 숲바람을 쐬고 돌아서는데, 오래 전에 귀담아 들었던 선시(禪詩) 구절이 떠올려졌다. 오늘 나들이에서 내 찌든 마음 속이 얼마나 비워졌을가? 어느덧 해가 기운다. 조령(鳥嶺) 마루턱을 넘으며 바라본 해넘이가 여간 곱지 않았다. 이제 내 인생의 저물녘도 저 노을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과연 저럴 수 있을까? 별아, 내 풀꽃을 아끼듯 너를 진정으로 아낀다. 넌 내게 참 삶의 길을 확인시켜 주었어. 꽃과 별, 구름과 바람도 나 혼자에겐 아무것도 아니란다. 오직 너와 함께할 때만이 존재가 있고, 생명도 지닐 테니까. 그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이 엽서를 네게 띄울 수 있어 무척 상쾌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