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번째 유산 | 휴식과 치유가 있는 문화재 ‘금천교(禁川橋)’ 예전 우리가 살던 고향 마을! 그곳에 들어서면 어귀에서 집 앞까지 비포장 S자 모양의 굽은 길에 장승, 서낭당, 작은 돌다리, 실개천 등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조상들은 궁궐, 왕릉, 서원, 향교, 절, 마을 등등을 외부 침입자나 각종 질병, 악한 귀신, 나쁜 기운이 공중과 육상이나 물길로의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여 그곳에 사는 이들의 안전을 지키고자 상징적인 아이언돔 형태의 방어시스템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그중 하나가 입구길목에 실개천을 가로질러 놓은 돌다리 ‘금천교(禁川橋)’이다.
금천교(禁川橋)는 궁궐이나 마을의 성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풍수적인 명당수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속적인 세상과 신성한 영역인 천상의 세계를, 궁궐의 안과 밖을 경계 지으며 백성과 임금을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그리고 성역으로 들어감에 있어 먼저 맑고 깨끗하게 흐르는 명당수에 세속의 더럽고 사악한 것들을 씻어버리고 정결한 마음을 갖춘 뒤 지나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궁궐에서는 커다란 정문을 들어서서 회화나무 곁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다리가 금천교다. 이 다리는 상서로운 각종 서수(瑞獸)들을 설치하여 지상과 물길을 따라 들어오는 악한 기운들을 차단하고 막아내는 상징적인 의미의 안전지킴이이자 검문소로 이용되었다. 조선궁궐의 금천교는 각각 이름이 다르다. 경복궁은 영제교(永濟橋), 창덕궁은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은 옥천교(玉川橋), 경희궁은 금천교(錦川橋), 경운궁은 금천교(禁川橋)라 부르며 처음 세워진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다리로는 창덕궁 금천교(錦川橋)와 창경궁 옥천교가 있다.
궁궐 대부분의 금천교는 두 개의 무지개 모양(홍예=아치) 교각에 멍에 돌을 올리고 다리 난간에는 판석에 안상(코끼리 눈 모양)을 새기고 동자석 기둥으로 미적인 감각을 살려 내고 있으며, 아름다운 정치가 펼쳐질 때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인 각종 서수(瑞獸)를 투박스런 돌들을 조화롭게 잘 다듬고 장식하여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다리 상판에는 장대석으로 삼도를 깔아 중심부를 볼록하게 하여 잠깐의 여유를 가지고 지나가도록 하였다.조선 왕릉의 경우는 풍수사상에 기초하여 산세와 지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친화적이고 주변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특징을 살려 능역과 속세를 구분 짓는 금천교를 능 입구에 설치하였다. 왕릉 대부분의 금천교는 바닥에판석을 깔고 난간이 없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지만 사도세자(추존왕 : 장조)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인 융릉의 경우 거의 완벽한 금천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조임금이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건너갔다. 조선 왕릉 금천교 중 유일하게 “원대황교”라는 다리의 이름을 갖고 있다.
금천교 관람의 경우 많은 관람객들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 다리 주위 특히 아래쪽에 배치된 서수들이다. 다리 아래쪽은 내려다보지 않고 주로 정면만 바라보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이문화재는 다리 입구에 잠깐 서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 서수들에 대한 해설을 귀담아 듣는 것이 관람의 묘미다.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세상살이가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살아가는 삶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휴식과 여유로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금천교는 속세의 근심과 걱정, 욕심을 흐르는 금천에 버리고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삶의 터전 가까운 주변의 ‘금천교’와 같은 문화재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좋은 장소다. 더불어 건축물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된다면 이는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리라. 한 가지 팁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문화재 관람을 제대로 즐기려면 그 지역의 문화재를 제일 잘 아는 해설사를 찾아 해설을 귀담아 듣고 찬찬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궁궐과 왕릉 문화재의 경우 많은 기간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현장에서 해설 경험이 있는 길라잡이들과 함께하면 한층 깊이 있는 감상의 시간이자 내일을 위한 기분 좋은 충전의 시간이 되리라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