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연체한 세입자도 ○○는 보호된다 _ [주거침입 1] 주거침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

목 차
뉴스를 보면, 가끔씩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당사자들은 곤욕을 치르곤 한다. 당사자들에겐 고통스럽겠지만, 공적인 인물에 대한 사생활은 ‘알 권리’가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언론이 사생활을 공개하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특정인의 ‘은밀한’ 집안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도청, 감청하는 일은 엄연한 범죄이다. 이번 호에서는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거침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리시험’ 부정 저지른 사람에게 인정된 죄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주거의 자유는 엄연히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이런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법 조항 중 하나가 형법의 주거침입죄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먼저 객관식 문제, 다음 사례에서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것은 몇 개일까?
① A군은 친구 대신 대입수능시험을 치러주기로 했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A군을 수험생으로 믿은 감독관이 입실을 허락했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대리시험을 봤다. ② B씨는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세입자가 월세를 장기간 연체하자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면 짐을 다 빼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로 세입자의 연락마저 두절되자, B씨는 자신의 갖고 있던 비상키를 이용하여 세입자의 집에 들어간 뒤 짐을 빼고 출입문의 비밀번호도 변경해버렸다. ③ C씨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만나주지 않자, 여자친구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마침 같은 동의 입주자가 현관을 들어가는 틈을 이용하여 따라 들어간 C씨는 복도와 계단에서 그녀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④ D씨는 아내와 별거하던 중, 화해를 주선하겠다는 부모와 함께 오랜만에 자신의 집을 찾아갔다. 집에는 처제 혼자 있었는데, 처제는 “언니(D씨의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면서 걸쇠로 잠근 상태에서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D씨는 공구를 가져와서 걸쇠를 부수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정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우선 주거침입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 조항을 보니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주거란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 항공기, 점유하는 방실까지 포함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주거는 집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별장이나 천막, 임시 거주지도 해당한다. 관리하는 건조물은 공장, 청사 등 건물을 일컬으며, 점유하는 방실이란 건물 중 지배ㆍ관리하는 부분, 즉 가게, 사무실, 호텔 방, 연구실 따위를 말한다.
“신체 일부만 ‘침입’해도 주거 평온 해쳤다면 범죄”
주거침입죄는 주거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죄다. 따라서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침입 행위’(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침입이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또한 “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출입 당시 객관적ㆍ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침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의 전체가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손을 내밀었다거나 머리를 내미는 정도로도 주거침입은 성립이 인정될 수 있다. 판례는 “신체의 일부만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거주자가 누리는 사실상의 주거 평온을 해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죄가 된다”고 했다. 야간에 타인의 집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행위, 대문을 몰래 열고 들어와 담장과 피해자의 방 사이 좁은 통로에서 창문을 통해 방 안을 엿본 경우도 실제로 유죄가 인정됐다. 이러한 기본 지식을 토대로 지문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①번. 주거침입죄는 주인이나 관리자 승낙 없이 또는 추정된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경우에 성립한다. A씨는 감독관의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원은 “부정행위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승낙이나 허락을 얻어 들어갔다 해도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들어간 때에는 관리인의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이라고 판시했다. A씨는 주거침입죄는 물론, 수능시험을 대리응시한 행위 때문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도 처벌을 받았다. ②번의 B씨처럼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자, 비상열쇠를 사용하여 세입자의 집에 들어간 것도 주거침입일까? 법원은 ‘그렇다’고 했다. “월세를 연체한 세입자도 주거의 평온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결론이었다. 아무리 집주인이라고 해도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세입자 방에 마음대로 들어갔다간 주거침입죄를 면할 수 없다. B씨는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선 세입자를 상대로 건물 인도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받거나, 세입자의 동의를 얻어서 짐을 빼는 수밖에 없다.
아파트 복도, 현관도 ‘주거’ … 동의 없이 찾아가면 스토킹범죄도
③번의 사례에서 C씨는 여자친구의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의 복도, 현관 등에 들어간 정도로 범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주거침입죄의 주거의 범위에는 주거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정원, 주차장과 같은 부속물까지 포함한다. 판례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공용계단과 복도도 주거에 해당하기 때문에 성범죄, 절도 등 범죄를 위해 들어왔다면 주거침입이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법원은 “평소 그 건조물에 출입이 허용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거주자나 관리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하여 감행된 것이라면 주거침입죄는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판례를 더 살펴보자. “주거침입죄에서 주거란 단순히 가옥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원 등 위요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ㆍ연립주택ㆍ아파트 등 공동주택 안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계단과 복도는, 주거로 사용하는 각 가구 또는 세대의 전용 부분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부분으로서 그 거주자들에 의하여 일상생활에서 감시ㆍ관리가 예정되어 있고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거침입죄의 객체인 ‘사람의 주거’에 해당한다.”(대법원 2009도3452, 2009.8.20., 판결 등) C씨는 “평소에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주 찾아왔던 곳”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집 앞 복도와 현관에서 기다리는 것은 (현재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주거침입에 해당한다”고 일축했다. 한편, 2021년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C씨의 행위는 스토킹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 법에서 규정한 스토킹행위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 직장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 전화,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글, 말, 부호, 그림, 영상을 보내는 행위 등을 통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말한다. 스토킹범죄가 신고되면, 가해자에게 경찰은 접근금지조치 등을 취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스토킹범죄로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배우자 몰래 집으로 들인 내연 상대, 주거침입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④번 D씨의 사례는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잠금장치를 부순, 다소 특이한 사례다. 부부 혹은 동거자가 함께 사는 공간에서 어느 한쪽의 의사에 반해서 들어갔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이다. 대법원도 대법관 전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의견을 밝힌 사안이다. 또한, 이 사건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대법원 판결도 있다. 배우자 몰래 외도를 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내연관계에 있는 사람을 불러들였을 경우, 내연 상대에게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이 사건 역시 전원합의체 판결로 결론이 났다. 이 2가지 판결은 다음 호에서 설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