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의 비자금 조성, 무조건 불법? _ 회사 대표나 운영자가 맞닥뜨릴 법한 법적인 문제들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이다.’ 회사나 기업을 꾸려가는 이들이 이런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곤 한다. 그만큼 사업체를 운영하는 어렵다는 점을 빗대는 표현이리라. 특히 회사의 대표 등 책임자는 각종 법적 규제로 전과자가 되기도 하고, 세금 문제나 각종 공식ㆍ비공식 자금 운용을 위하여 탈법과 관행을 오가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회사 운영자나 대표가 맞닥뜨릴 수 있는 법적인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정인을 회사 고문으로 위촉, 급여를 지급한 행위는 타당할까
규모가 큰 회사에서는 회사 운영자나 대표 등이 내부 절차를 거쳐 고문 등을 위촉하고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위는 합법일까, 불법일까.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이다. 법원의 판례는 급여의 수준, 고문 위촉의 정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운영자나 대표 등이 그 내부 절차를 거쳐 고문 등을 위촉하고 급여를 지급한 행위가 업무상 횡령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고문 등을 위촉할 필요성이나 정당성이 명백히 결여되거나 그 지급되는 급여가 합리적인 수준을 현저히 벗어나는 경우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문 등으로 위촉된 자의 업무수행능력뿐만 아니라, 고문 등의 위촉 경위와 동기, 고문 등으로 위촉된 자와 회사 사이의 관계, 그가 회사 발전에 기여한 내용 및 정도, 고문 등으로 위촉되어 담당하기로 한 업무의 내용 및 중요성, 회사 규모와 당시의 경제적 상황, 고문 등의 위촉으로 인하여 회사가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ㆍ무형의 이익, 관련 업계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2도4848, 2013.6.27., 판결 참고). 결국, 고문 위촉 행위가 △필요성이나 정당성이 없거나 △급여가 터무니없이 고액 등으로 비합리적이거나 △회사의 이익, 경제적 상황이나 업계의 관행 등에 비춰볼 때 적합하지 않다면,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고 해서 모두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 판례에 따르면, 회사 대표가 자신의 어머니를 고문으로 위촉한 행위에 대해 법원은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사례도 있다. 법원은 친족을 고문으로 참여시켜 보수를 지급한 것을 두고 “과연 회사를 위한 최선의 행위로서 적절한지 기업윤리적인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회사 내부의 정상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거쳐 임명된 점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것에 대한 보상과 예우의 측면을 고려한 점 △업무에 대해 자문과 조력자 역할을 한 점 등을 감안하면 횡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정리하자면, 회사가 예우 차원으로 혹은 그동안의 공헌에 대한 보상으로 전직 임원 등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보수를 지급했다면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자금을 조성하는 행위는 무조건 불법일까
가끔씩 대기업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비자금의 경우 크게 두 가지 측면, 즉 자금의 조성 과정(회사의 장부 등을 임의로 수정하여 돈을 따로 빼는 경우 등)과 사용 과정(회사 사업이 아닌 청탁, 로비자금, 정치자금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에서 불법이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자금이 드러나면 관여한 대표이사 등이 업무상 횡령 등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면, 비자금 조성은 무조건 불법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불법이 아닌 경우도 있다.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사례] B회사의 대표인 A씨는 거래처에 부품대금을 허위 또는 과다계상하여 지급하였다. 그 뒤 부가가치세를 공제한 돈을 자신이 관리하는 부인 명의 계좌로 입금받는 방법으로 약 6년간 200회 넘게 수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소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비자금은 사실상 회사의 영업 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조성한 것이고 전액 회사를 위해 사용됐다”며 착복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유ㆍ무죄를 오가면서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먼저, 비자금 계좌가 A씨의 부인 명의로 개설되었으나, △이 계좌는 A씨가 실질적으로 주식 전부를 소유하고 있는 B사의 비자금과 관련된 용도로만 사용되었고, △B사의 경리담당직원에 의하여 관리되었으며, △A씨뿐 아니라 거래업체들에 대한 세금계산서 발급 및 수취를 담당하는 임원이나 영업팀장들도 비자금 조성 과정에 관여, 조성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법인의 운영자 또는 관리자가 법인의 자금을 이용하여 비자금을 조성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인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법인의 운영자 또는 관리자가 법인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법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착복할 목적으로 법인의 자금을 빼내어 별도로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면 그 조성행위 자체로서 불법영득의 의사가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그 행위자에게 법인의 자금을 빼내어 착복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법인의 성격과 비자금의 조성 동기, 방법, 규모, 기간, 비자금의 보관방법 및 실제 사용용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도19568, 2019.2.14., 판결 참고). 즉, 기업의 비자금은 사용의 주된 목적이 중요하다. 만일 개인 용도나 착복을 위한 목적이 명백하다면 이른바 ‘불법영득의사(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처분하려는 의사를 뜻하는 법률용어: 필자 주)’가 인정된다. 하지만 이런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면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관련 판례를 통해 살펴보면, 비자금이 법인을 위한 목적이 아닌 착복을 목적으로 조성한 것이 명백한 경우, 비자금의 행방이나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하거나 지출 내역에 관한 합리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면, 비자금 조성 및 사용은 범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대표이사가 권한을 타인에게 포괄 위임할 수 있을까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진다. 대표이사는 회사의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행위 자체를 하는 회사의 기관이다. 회사는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 의사결정기관을 통해 결정한 의사를 대표이사를 통해 실현하며, 대표이사의 행위는 곧 회사의 행위가 된다. 상법은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대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이사가 자신의 권한을 타인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할 수 있을까?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라고 하더라도 그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여 대표의 업무를 처리하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 따라서 대표이사로부터 포괄적으로 권한행사를 위임받았다는 이유로 회사 명의의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무효이다. 더 나아가 이 경우 형법상 자격모용사문서작성 또는 문서위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다만, 개별적, 구체적으로 회사 문서 작성에 관해 위임을 받은 경우라면 유효이다). 공동대표의 경우는 어떨까? 주식회사에서 공동대표제도는 대외 관계에서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만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여 업무집행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대표권 행사의 신중을 기함과 아울러 대표이사 상호 간의 견제에 의하여 대표권의 남용 내지는 오용을 방지하여 회사의 이익을 도모하려는데 그 취지가 있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각자 대표’이다. 만일 회사등기부에 여러 명이 단순히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다면 각자가 대표권을 갖고 회사 명의로 계약을 맺거나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수 있다. 다른 대표이사의 ‘동의’나 ‘승낙’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공동대표는 독자적으로 대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공동대표이사의 취지에 비추어 본다면 공동대표이사 중 1명이 다른 공동대표이사에게 일반적, ‘포괄적’으로 위임함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다만, 특정한 사항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다른 공동대표이사에게 위임하는 행위는 가능하다.